사도 시대는 기적의 시대였습니다. 사도들은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다니면서 방언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12제자 중에 11제자가 순교하고 사도 요한마저 밧모섬에 끌려가 유배당했습니다. 그렇게 사도 시대가 끝나면서 기독교회 안에 기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저기서 조금씩 특별한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지만, 초대 교회를 채웠던 현저한 기적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가 지나면서 방언도 사라졌습니다. 거의 1,800년 동안 방언은 기독교회 안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말세가 되면서 갑자기 방언이 전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교파에서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요? <방언 문제>의 마지막 결론으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오순절파 교회들에서 강조하는 순복음은 초대 교회의 은사와 이적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나타났던 기적과 방언이 왜 이 시대의 교회들에는 나타나지 않냐고 말합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이 행했던 기적, 사도들이 행했던 은사들이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았으니 나도 쫓아야 하고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으니 나도 걸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런 기적들이 이 시대에도 나타나야 할까요?
물론, 이 시대의 교회도 사도 시대의 순수했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방언이나 병 고치는 은사만 나타내면 안 됩니다. 그들이 했던 순수한 회개, 그들이 드렸던 전적인 헌신,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걸었던 진리의 좁은 길,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말씀에 충성하는 신앙,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대의 교회는 초대 기독교회와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초대 기독교회의 신앙은 없는데 그들에게 내렸던 하늘의 은사를 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교회와 그런 교인들에게 하늘의 권능이 함께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런 교회에게 하늘의 권능이 임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요?
초대 기독교회는 제자들과 사도들이 전파한 순결한 진리와 신앙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에 성령을 크게 퍼부어주셨습니다.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한 이후, 초대 기독교회는 은사와 기적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행하셨던 기적들이 초대 기독교회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서 죽은 자가 부활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소경이 눈을 뜨는 사건들이 생겼습니다.
방언과 은사가 사라지게 된 배경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사도들이 하나씩 죽어갔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던 사도 베드로도 죽어서 흙이 되어버렸고 12제자 중 11제자가 순교당했습니다. 사도 요한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만 그 역시 로마 황제에게 붙잡혀서 밧모섬에 유배당했습니다. 초대 기독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좁은 길을 걸으라고 호소하는 복음, 희생과 순교마저 불사했던 신앙, 뜨거운 믿음을 지켜왔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재강림이 지연되면서 지쳐갔습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는 정신이 교회 안에 들어왔고, 그 결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변질되었습니다. 그 당시 교회의 모습을 한 종교 서술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자…한 사람 한 사람 연로한 선구자들은 그들의 자리에 쓰러졌다. 선구자들의 짐을 분담하고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이어받아야 할 젊은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복음의 근본 원칙에는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The Acts of the apostles 580, 제1세기의 교회)
사도들이 순교당하고 초대 교회를 세운 늙은 장로들이 늙어가면서 교회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변화시키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사도들이 전수해준 옛 신앙은 그 빛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쳐준 신앙,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믿음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미혹하는 영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지배하게 되었고 기독교회는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를 통과하면서 깊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런 모습이 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교회와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있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사라지게 되자, 방언과 치유 은사와 같은 성령의 은사도 거두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거의 1,800년 동안 교회 안에서 은사와 이적이 불타올랐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서 은사와 방언에 대한 운동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 예언에서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로 접어들면서 순복음 운동이 일어나고 방언과 기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교파에서 방언과 기적을 환호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는 초대 기독교회와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다른 교회인지 알아야 합니다.
초대 기독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의 차이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일곱 교회 예언이 나옵니다. 일곱 교회 예언은 사도 시대부터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때까지 하나님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예언입니다. 일곱 교회 예언의 첫 번째 교회는 에베소교회(초대 기독교회)이고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인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즉 말세의 교회를 뜻합니다(마지막 사명 5호와 6호 참조).
에베소교회: 에베소교회는 사도들이 직접 세운 서기 1세기의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이 퍼부어진 교회이고 신약성경을 기록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제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직접 말씀을 전수받았고, 그들이 가진 신앙을 실제로 목격했던 교회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았을 뿐 아니라 진리를 가진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실제로 보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온갖 오류와 거짓 복음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순결했고, 진리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1-7)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에 성령의 큰 능력을 퍼부어주셔서 기독교 복음이 민족과 방언을 초월해서 전파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는 대역사가 이루어졌으며, 방언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죽은 자가 부활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로마 제국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로 일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경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생애를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가 교회 안에 있는 거짓 사도들의 정체를 드러낸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일하는 에베소 교인들의 수고와 희생과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이런 신앙적 특징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에게 오순절 성령의 능력을 퍼부어주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두려운 사실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기별 속에는 칭찬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재강림하시기 직전의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인데 이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칭찬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가장 심한 책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5-17)
왜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단 한마디의 칭찬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냐하면 마지막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 교회가 돈과 세속에 깊이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예언하고 있는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고, 일곱 재앙을 통과하며, 아마겟돈 전쟁을 치러야 할 교회가 전혀 준비 없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긴박한 순간에 깊은 잠에 취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의 성취를 앞두고 있으면서, 예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마음 속에 우상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돈의 우상, 자녀의 우상, 명예의 우상을 품고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서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성령의 음성을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답해야 할 질문
놀라운 사실은, 마지막 시대의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런 영적 암흑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 방언과 이적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초대 기독교회가 다시 태어난 것처럼 방언을 말하고 병든 자를 안수하여 낫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초대 기독교회처럼 순결하지 않으며, 초대 교회처럼 죄와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데, 방언을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방언과 기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회에는 사도 시대의 신앙이 없는데 사도 시대의 방언과 이적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가장 문제가 많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가장 순결했던 교회인 에베소교회의 방언과 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에베소교회의 방언과 은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지금 이 시대는 사도 요한이 가졌던 신앙, 바울과 같은 믿음, 베드로와 같은 충성을 찾아보기 정말 어려운데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행했던 이적과 방언이 수많은 교회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시대의 미혹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재림의 징조장)에서 말세에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곧 이 세상의 멸망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폐허가 된다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이 끝나는 종말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세상 끝과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입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어떤 징조를 가장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말세에 “사람의 미혹”이 나타날 것이라는 징조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징조를 가장 많이 강조하셨을까요?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입니다. 재림의 징조에서 가장 중요한 징조는 해와 달과 별의 징조도 아니고, 전쟁이나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징조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말세에 기독교회 안에서 나타날 “미혹”에 대해서 6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 24:11)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 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말씀은 거짓 이적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막 13:21-22)
사도 바울도 마지막 시대에 사탄이 귀신의 가르침과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9-10)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는 사탄의 무기
요한계시록도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와 동일한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미혹”이 마지막 시대에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말세의 교회를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르면서 그 속에 “귀신의 영들”이 가득 차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깊은 영적 암흑 속에 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말세에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이적이 거짓 선지자과 악인들 사이에서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장면은 짐승의 표 환난에서 사탄이 어떻게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3-16)
사탄이 온 세상 사람을 미혹해서 하나로 모으는데 그가 사용하는 강력한 수단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이적이 언제 있었던 이적인가요? 구약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과 거짓선지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했던 이적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에는 사탄이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와 똑같은 이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적을 보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하늘이 보낸 사자들로 받아들이고 환호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미혹을 당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6)
이적을 통해서 온 세상을 미혹하는 사탄의 전략은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동일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사탄이 거짓 선지자를 통해서 미혹하는 모습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입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개구리의 긴 혀로 먹잇감을 채먹듯이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영들, 즉 귀신의 영들로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3-14,16)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미혹당하는 시대입니다. 말씀 위에 서야 합니다. 그것만이 사탄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적과 거짓 은사를 강조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에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당하는 영혼들과 귀신의 영들이 뛰노는 곳에서 빠져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8-11)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 19:20-21)
성도 여러분, 제자들과 사도들은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위에 순결한 초대 기독교회를 세웠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서 교회가 귀신의 처소가 되고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바벨론이 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교회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지구 인구 72억 명 중에 20억 명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 믿는 자가 많을지라도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적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성경 말씀입니까? 체험입니까?
현대 오순절 운동에서 나타나는 표적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언입니다. 그러나 방언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하지만 자신은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경쟁과 시기의 정신이 있으며, 자랑과 과시하고 싶은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영혼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언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다”라는 거짓 가르침과 설교 때문에 사탄의 미혹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짓 가르침과 거짓 복음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말씀으로 방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해도 “권능을 행하는 사람이 어떻게 거짓 교리를 말할 수 있는가? 방언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거짓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적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의 권위보다 은사를 행하는 사람의 말과 설교를 더 높은 위치에 둡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의 말씀보다 20세기 거짓선지자들의 말을 따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은사와 기적을 강조할수록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떨어지게 됩니다. 교회에서 “성령 체험나누기”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게 됩니다. 은사와 기적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며 말씀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진리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적과 감정적인 체험에 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방언을 하는 분들 중에 날마다 성경을 몇 시간씩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메마른 마음에 뜨거운 전율을 일으켜보겠다는 희망으로 성경을 읽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이적과 은사를 강조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직통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 66권 외에 하나님께 계시를 받는 새로운 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계시와 환상에 의존하는 것은 성경 이외에 또 하나의 진리의 원천을 갖게 되는 것임으로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사 체험과 황홀함 속에서 떠오른 생각과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을 거절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신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구약성경의 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 16:3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넘어서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을 이적과 체험 속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오순절 성령을 다시 체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정말 개신교인이라면 “오직 성경”을 외치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세기 로마 천주교회는 성경 이외에 다른 권위를 존중함으로써 부패와 세속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교황의 칙령을 성경과 같은 차원의 말씀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구호가 개신교회 기초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감정과 체험을 강조하는 은사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빌립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제자들이 하나님을 이미 보았음을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 그러나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직접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예수께서는 말씀을 믿는 대신에 눈으로 보아야 믿는 신앙을 크게 책망하시면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성경말씀보다 더 분명한 계시를 구하고 말씀을 통해서 얻는 것보다 더 강한 느낌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빌립과 같은 문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절대 확실한 말씀이 항상 우리 곁에 있는데 은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모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적과 짜릿한 느낌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말씀이 성령께서 주신 완전한 계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직접 주신 말씀보다 방언과 꿈이 더 큰 만족을 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말씀 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방언과 꿈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의 원동력이 진리로부터 나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진리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성도들아, 주님의 탁월한 말씀 속에
믿음의 굳건한 기초가 놓여 있으니
주님을 피난처 삼은 성도들아
주님이 이미 하신 말씀 외에 더 무슨 말씀을 하시겠는가?
우리 주님께서 성경 외에 무슨 빛을 더 주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성경 밖에 나가서 어떤 이적을 경험하고 어떤 은사를 체험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시도는 사탄의 미혹으로 들어가게 만들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계 2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