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회에 “구약시대에는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이었는데, 신약시대에는 누가 이스라엘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두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두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을 믿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신앙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꽤 많은 분들이 지금 중동지방에 있는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특별한 종이라고 믿습니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이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국가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극적인 회심을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큰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 믿음을 가진 분들은 이렇게 설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지역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인도 유대인들이고, 유대인들에게 마지막 시대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가르침이 성경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가르침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 기독교회를 받치고 있는 예언의 큰 기둥이 무너지게 됩니다. 비밀휴거가 무너지고 세대주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번 기사에서 다루는 말씀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게 된 배경

사도시대 이후 중세기를 거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회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지만, 십자가 이후의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를 영접한 성도들과 교회”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1948년 큰 전환점을 가져오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건국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1,900년 동안 온 세상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조금씩 구입하더니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성경 예언 해석이 크게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결국 이렇게 해서 성취되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도 이스라엘 국가를 사용하시는구나.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도 유대인들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사건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을까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144,000인은 유대인들이고,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도 이스라엘 국가라는 가르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나타나면서 어떤 현상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기독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실제 이스라엘 나라로 이민 가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중동지방에 있는 이스라엘로 헌금을 보내야 한다는 설교자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정책과 결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 주인공이고, 계시록의 예언이 그들에 의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예언을 통해서 사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사건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재건되기 전에는 전혀 이런 가르침이 없었는데,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세워지면서 갑자기 성경 예언을 그 사건에 맞춰서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예언을 사건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결국에는 성경의 기둥과 같은 말씀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어떤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성경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쪽에서 나오는 말만 듣지 말고 그 가르침이 성경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유대인들이 144,000인이고,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에 복음 전파의 주인공이 된다는 가르침은 빗나간 해석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가르침이 어디서, 어떻게 빗나가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빗나가게 되었는가?

유대민족의 역사는 배도와 불순종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케 하시고 돌이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까지 유대교회와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대민족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은 110만 명 이상이 살육당하면서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질문 : “유대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유업을 누가 이어받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얼마나 분명합니까? 오해할 여지가 전혀 없는 말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누가 하나님의 약속과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고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 : “신약시대에는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8,29)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피부와 몸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피부와 혈통이 중요한 것은 모두 구약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된다고 했습니까? 바울은 “이면적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는 사람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로 그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얍복강에서 이기는 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누구든지 복음을 통해서 죄와 세상을 이기는 경험을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택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이후에는 마음에 할례를 받는 성도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 어떤 경험일까요? 육체의 할례를 통해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 마음으로부터 죄와 세속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란, 성령을 통해서 참된 회개와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이고  마지막 시대의 유대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셨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고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축복도 교회를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질문 :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육신과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유대인의 육신을 갖고 태어났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약속을 받은 성도들이 “이스라엘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0주일 예언이 최종적으로 마쳐지자, “이제는 유대인들을 떠나서 이방인에게 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죽이고 복음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인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바울의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 :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신약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할례받는 경험을 하면 “이스라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거듭남, 중생)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5-16)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할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거듭나고 중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사상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 신앙을 ‘유대인의 할례와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를 할례와 유대인의 사상으로 끌고 가려는 거짓 선지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바울은 “누가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인가?”에 대한 질문에 분명한 답을 줍니다.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자녀가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3장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6장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