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도 일곱 교회 예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의 피로 시작된 개신교회가 마지막 시대에 어떤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게 눈물로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편집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교회가 드러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첫 번째 계시인 일곱 교회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부터 재림 때까지 각 시대마다 사탄이 어떻게 교회를 공격했으며, 어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편에 서있었는지 보여줍니다. 일곱 교회 예언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이유는 중세기 기독교회 역사 속에서 성경의 교리와 복음이 어떻게 변질되었고, 변질된 가르침이 어떤 모습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 예언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믿음과 신앙을 가져야만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일곱 교회 예언을 살펴보면, 각 시대마다 누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설교를 하고 어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 예언은 현재와 미래를 보여줍니다. 일곱 교회 예언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기 직전인 이 시대에 교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상황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 5호에서 살펴보았던 일곱 교회 예언의 전반부를 잠시 복습해 보겠습니다(초대 교회 시대부터 중세기 암흑시대까지).

에베소 교회: 초대 교회가 첫사랑에 불타는 에베소 교회로 시작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처음 진리를 받아들일 때의 순결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4).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왜 에베소 교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을까요? 니골라당의 가르침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니골라당 사람들이 무엇을 가르쳤길래 그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될까요?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가 우리를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얽매이지 않도록 해방시켰다.”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육체의 정욕을 부인하지 않게 됩니다. 세상 쾌락을 즐기면서도 여전히 구원을 확신하는 기만에 빠지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요한은 깊은 탄식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는 사도 요한 자신과 동료 사도들이 피로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 시대로 넘어가면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가하는 핍박은 더욱 더 극심해 졌습니다. 사탄은 죽음과 가난을 통해서 성도들을 없애버림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이어져 내려가는 고리를 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이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었고, 가족을 데리고 지하동굴로 숨어들어가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런 서머나 교회의 충성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 버가모 시대에는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 황제가 갑자기 기독교회로 개종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독교회가 300년 동안 계속되어 온 핍박에 지쳐 있을 때, 이교도인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태양신을 믿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기독교회로 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로마황제를 떠받들고 있던 태양신 교도들이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최고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태양신 교도들의 불만을 억제하고 그들이 기독교인들과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태양신교의 지도자, 율리우스 피르마쿠스와 기독교회의 감독 유세비우스를 불러서 협상을 했는데, 그것은 태양신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종교를 만들자는 협상이었습니다(AD 321년). 이렇게 해서 기독교회 안에 깊은 영적 어둠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카톨릭교회의 주요 교리와 가르침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개신교회까지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엄청난 숫자의 태양신 교도들이 교회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교회 지도자들은 로마황제가 주는 돈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나 서머나 교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온갖 오류와 거짓 가르침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 “니골라당의 행위”가 “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니골라당의 교리는 태양신교의 행습이 기독교회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버가모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타협한 배도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씀에 대한 순종과 행위에 얽매지 않는다”라는 니골라당 교리를 세웠습니다. 이런 신학적 논리 때문에 버가모 교인들은 말씀에 충성하는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성경의 진리가 변질되었으며 태양신교의 행습이 기독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십계명도 그때 바뀌게 되었는데, 카톨릭교회는 그것을 기초로 천주십계를 만들었습니다. 니골라당 교리는 초대 교회부터 3백 년 동안 걸어온 가난과 좁은 길 신앙을 버리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갔습니다. 교회가 진리를 버리고 배도하고 타락하자, 교회는 두무리로 나뉘어졌습니다. 열두 제자와 사도들이 전해 준 옛 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들과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로 나뉘어졌습니다. 옛 신앙을 지키기 원하는 성도들은 버가모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설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회는 정치권력과 밀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기 538년, 카톨릭교회는 로마 황제로부터 종교, 정치, 군사력에 관한 막강한 권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카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거절하는 성도들은 핍박당하는 시대가 시작되었고 5천만 명 내지 8천만 명이 순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진리를 간직하고 지키던 성도들은 깊은 산과 계곡으로 들어가 광야 교회를 세웠습니다. 버가모 교회 시대에 들어온 수많은 거짓교리들과 우상숭배 행습이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치면서 교리화되어 천년 동안 교회를 암흑속에 가두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를 종교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서 16세기 초에 종교개혁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종교개혁 운동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교회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사명> 편집실에서 드리는 말씀

예언은 우리의 눈을 열어줍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런데 아무나 눈이 열리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귀 있는 자들만 그런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 예언에서 모든 교회마다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3) 이기는 자에게는…” 각 시대마다 예수께서 보내신 종들이 있는데, 그들은 예수께서 그 시대를 위해서 주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각 시대에 이루어지는 사탄의 기만과 미혹을 경고하고 교회 안에 들어 온 죄와 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각 시대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께서 보내신 종들의 말씀을 거절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들을 귀가 있고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성도들만 하늘의 기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4~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서 인도하시는 양은 주인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일곱 교회 예언 속에는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들은 온 마음과 생애를 다해서 이 시대를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독자 여러분에게 크게 임하시길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