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없었으면 오늘날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능력이 초대 기독교회에 퍼부어지고 방언 은사와 능력을 받은 사도들과 교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지 않았으면 기독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과 은사를 강조하는 교회들이 “오순절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오늘날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방언의 근거를 사도행전 2장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방언을 강조하는 수많은 서적들도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방언의 근거를 사도행전에서 찾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인데,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방언은 외국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언이 오순절에 주어진 이유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는데,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방언의 은사를 내리기 위해서 오순절까지 기다리셔야만 하셨을까?” 사도행전 2장 5~11절에 그 이유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때(오순절)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행 2:5)

오순절이 되자, “천하 각국”에 흩어져 살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외국에서 온 유대인들은 오순절을 마치면 다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이며, 그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복음을 “천하 각국”에 전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순절이었습니다.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speak in his own language, 자신의 언어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행 2:6)

미국에 이민 간 한인 교포2세, 3세들은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영어가 자신의 언어가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하 각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도 세대가 바뀌면서 모국어를 잊어버리거나 매우 서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방언의 은사가 내려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셔서 여러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언어로 설교를 들을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 장면을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어를 배웠거나 습득했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해서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된 것입니다.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 2:7,8)

갈릴리가 고향인 제자들이 여러 나라의 말로 설교를 하니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놀랐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주셨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방언이었습니다. 여러 나라들로부터 온 청중들이 제자들의 설교를 자신의 고향 말로 알아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제자들이 몇 개 나라의 방언으로 복음을 전했을까요?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리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0,11)

중동과 소아시아와 유럽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과 유대교회를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순절을 택하셔서 방언의 은사를 제자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날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방언”이라는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에 따르면 적어도 15개 이상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때문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그들이 듣고 깨달은 복음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방언이 반드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어야 하는 이유는 방언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복음 전파”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증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이 모두 외국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들려오는 방언의 모습을 살펴보면, 혀가 말리면서 나오는 ‘랄랄라 방언’을 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냅니다.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교회에서 들려오는 방언 중 어떤 것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외국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방언의 예증을 살펴보면 방언 은사가 외국어였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고넬료가 받은 방언 은사: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 10:44~46)

사도행전 10장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전도하는 장면입니다. 이방인 고넬료는 로마 사람이었고, 베드로는 유대인으로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행 10:1). 그래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났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언어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이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에게 내려졌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했습니까? 그곳에 있던 유대인들과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행 10:46).

베드로도 고넬료와 집안 사람들이 받은 방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내(베드로)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고넬료와 집안사람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오순절)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이 받은 방언은 제자들이 ‘처음’(오순절) 받았던 방언과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넬료와 그의 가족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전혀 몰랐고, 사용하지 않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의 방언: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이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전도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바울은 사도들 중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사도였으며, 가장 많은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12명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임했을 때에 바울은 그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방언을 받았을까요? 로마 제국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방언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언어를 받아야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는 여러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는 방언이 주어지지 않은 이유: 사도행전 4장에도 2장의 오순절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1, 4, 31).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였고 장소가 흔들리면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는 방언의 은사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곳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주지 않으셨을까요? 그곳에는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이 없고, 유대 백성과 유대 지도자들만 모여 있었기 때문에 방언이 필요없었습니다(행 4장).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은사 때문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자들에게 성령의 큰 능력과 함께 방언의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주의 종들이 예수의 증인이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Q. “방언은 신약 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입니까? 아니면 구약 시대에도 방언이 존재했었습니까?”

A. 방언을 통한 성령의 역사는 구약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방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사용하던 언어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이방 민족에게 보내서 이방인의 방언(외국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복음을 이방인의 언어로 전했기 때문에 그들이 말씀을 듣고 이해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도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 28:11~12).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하던 “알 수 없는 방언”을 책망했습니다. “율법(이사야서)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고전 14:21~22).

 

Q. “사도 바울이 ‘방언은 불신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가요?”

A. 사도 바울은 방언의 용도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남겼습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고전 14:22). 예수께서는 복음 전파를 12제자들 어깨 위에 올려놓으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방언의 은사(외국어)를 제자들에게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이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인 제자들이 유창한 외국어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자 방언은 불신자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이적이 되었습니다. 이방인들 마음속에 방언은 복음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한 번 설교에 수천 명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 2:38, 41).

그러나 오늘날의 방언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용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확신용으로 사용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방언의 용도가 변경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제2부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