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회는 언약과 계명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난 그리스도인도 동일한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십계명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십니까? 지금은 새 언약의 시대인데 왜 우리를 구약시대의 옛 언약으로 끌고 가십니까? 십계명은 옛 언약에 속한 것이고 옛 언약은 십자가에서 폐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신약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므로 우리는 더 이상 계명에 구속받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성경이라는 저울 위에 달아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계명과 언약에 대한 오해야말로 기독교회를 세속화시킨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국가법이 폐해졌거나 불필요하다는 사상이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온 나라가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동네와 도시에 온갖 범죄와 부도덕함이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인 계명을 경시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교회 안에는 부도덕과 세속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기 때문에 더 이상 계명에 얽매이거나 순종하지 않아도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기독교회를 뒤덮으면서 기독교인의 삶이 죄와 불순종으로 부패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면서 살아도 구원이 정말 유지될 수 있을까요?

 

언약이란 무엇인가?

언약은 히브리어로 “berith(베리트)”이고 영어로는 “covenant(커버넌트)”인데 그 의미는 “계약”입니다. 집과 자동차를 살 때도 계약을 하고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국민과 계약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대통령은 “법대로 집행”할 것을 약속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백성은 “국가의 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해야만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언약은 서로의 약속과 맹세에 기초한 상호 간의 합의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는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고, 어떤 경우에는 국가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언약이 맺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는 조건은 언제나 “너희가 내 말에 순종하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이 폐지되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깨뜨리고 불순종했다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과 인류의 조상(아담과 하와) 사이에 언약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함으로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그 결과 영원한 생명과 낙원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기초하여 성도들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고 그 결과 구원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조건

하나님께서 사람과 구원의 언약(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구원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언약을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들만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새 언약을 주셨으므로 한번 거듭나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구원의 언약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명하시는 대로 따라오는 사람들이 주님의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예수께서는 구원의 언약에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이처럼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구원의 계약에 분명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 십자가를 진 “공로”와 좁은 길을 걸은 “수고”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십자가의 은혜와 공로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사랑을 본 그리스도인은 그 은혜에 압도되어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면서 좁은 길을 걷고 싶은 거룩한 충동을 날마다 느끼면서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변화를 “열매”라고 부르셨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에는 “열매”라는 분명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한번 맺은 언약은 결코 깨질 수 없는가?

하나님과 한번 언약을 맺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을까요?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면서 맺는 계약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상호 간의 약속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이라는 계약을 할 때 그들은 서로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 신부는 결혼식장에서 죽을 때까지 서로에 대해서 충성과 헌신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했어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충성과 헌신이라는 약속을 저버리면 결혼관계가 깨질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었어도 계속해서 불순종과 죄의 길을 걸으면 언약은 깨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죄인을 불쌍히 여기지만, 인간 스스로 언약을 깼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죄를 고집하여 언약을 저버린 사람을 강제로, 억지로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떠나가는 아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다만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다렸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리스도인이 한번 하나님과 구원의 언약을 맺으면 결코 깨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에덴동산의 언약은 세상 끝까지 유지되는 구원의 원칙입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주 안에서 순종하는 생애를 살아야만 구원의 언약이 유지되고 생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영역 밖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찬송을 부른다고 할지라도, 뜨거운 난로를 손으로 잡으면 크게 화상을 입습니다. 우리 스스로 독약을 마시면서 생명을 보호해 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구원의 언약에도 그것을 유지시키는 분명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순종”입니다.

 

언약에 대한 심각한 오해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언약에 대한 정반대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있는 두 가지 가르침은 크게 충돌하고 있는데 특별히 계명을 중심으로 충돌합니다.

 

주장 A : “우리는 새 언약 시대에 살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새 언약 시대에는 예수를 영접하고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장 B : “새 언약 시대에는 정말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그렇다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범해도 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새 언약 시대에는 마음대로 계명을 범하면서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주장 A :  “구약시대는 계명으로 구원받았지만, 신약시대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영접했으면 어떻게 살든지 간에 구원은 보장된 것입니다.”

 

주장 B : “구약시대는 계명으로 구원받고, 신약시대는 은혜로 구원받는다면, 천국은 계명을 열심히 지켜서 구원받은 사람들과 은혜로 거저 구원받은 사람들로 나눠진다는 말입니까? 구약시대는 계명을 범하면 구원받지 못하고, 신약시대에는 계명을 마음대로 범하면서 살아도 구원받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다른 기준을 갖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나요?”

 

주장 A :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주장 B : “그렇다면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간음을 해도 되고 거짓말하면서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가고,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온갖 죄를 범하면서 살아도 구원받는다는 말인가요?”

 

기찻길처럼 나란히 가는 두 개의 주장 중 어떤 것이 진리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한 가르침은 우리를 “순종의 자녀”로 이끌어가고 다른 가르침은 “불순종의 자녀”로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죄와 불순종으로 물든 삶을 살면서도 “나는 구원받았다.”고 굳게 믿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언약에 대한 진리를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모르면 기독교 안에 있는 수많은 거짓 가르침과 복음의 혼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언약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됨으로써 참된 구원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