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예수님을 영접한 새 신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교회에 들어와서 가장 놀란 사실은 술집이나 댄스 홀에서나 들었던 음악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교회에서 그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예전에 술 마시고 춤을 추면서 가졌던 느낌과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올라오는 감정과 느낌을 자제하지만 제 마음은 참으로 혼돈스럽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음악 때문에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음악 때문에 혼돈에 빠지고 고통을 받을까요?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애굽(세상)의 음악이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독교회 안에서 유행가 리듬이 들려오고 팝뮤직과 리듬앤블루스(rhythm and blues)가 들려오고 랩과 록앤롤(Rock and Roll)이 들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가사는 예수님과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데 곡조와 리듬은 유행가인 음악이 교회를 점령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만약 인기 가수의 히트곡에 ‘십자가 그늘 아래’라는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면 어떤 찬양이 될까요? 만약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복의 근원 강림하사’라는 가사를 붙여서 찬양하면 어떤 느낌이 나올까요?

물론, 처음부터 기독교회에서 이런 음악과 예배가 이루어졌던 것은 아닙니다. 3~40년 전만 해도 기독교회 예배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드려졌습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복음성가’란 이름으로 세상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풍조는 너무나 깊이 들어와서 ‘성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보수적인 교단까지 세상 음악의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피아노와 오르간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드럼과 탬버린과 베이스기타가 설교 단상 위에 올려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복음 록(Gospel Rock)이라는 이름으로 록앤롤 음악이 힘있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서 설교 단상은 현대식 무대로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명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예배가 콘서트 쇼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음악을 교회에서 사용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옛날식 찬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을 붙잡으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문화를 교회 안으로 갖고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음악으로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독자 여러분, 이런 사상이 교회 안으로 들어온 후 교회에 내리고 있는 재앙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이 사라지는 재앙입니다. 청년들이 말씀에 관심을 잃어버렸습니다. 밴드와 요란한 음악을 사용하는 교회마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기독교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 음악을 통해서 청년들을 전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세상 음악을 통해서 청년들이 세상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의 음악가들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을 부모들로부터 빼앗아갈 수 있다.”(미국 밴드 그룹, 다니 부르어).

독자 여러분, 음악을 바꾸고 찬양을 열정적으로 한다고 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청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을 말씀에 충성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과 같은 청년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기독교 언론인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기독교회에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나는 몇 해 전에 로마서를 연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설교 단상에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이 크게 걸려 있었다(롬 12:2). 교인들은 집회의 주제 찬양을 모두들 열성적으로 불렀다. 교인들은 집회 내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자’라고 소리치면서 밴드에 맞춰 손뼉을 치고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면서 찬양을 했는데, 그 모습은 이미 세상을 그대로 본받은 모습이었다.”

 

독자 여러분, 세상이 너무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무엇이 거룩함이고 무엇이 세속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섞여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서 드럼 소리가 들리고 발라드와 록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교회는 그것을 거룩한 예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음악에 따라서 호르몬의 종류가 달라진다

세계 2차대전 이후부터 ‘음악 치료’라는 것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은 군인들에게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에 따라서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음악에는 사람의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향기 좋은 향수를 선호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눈과 귀와 코와 입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람의 마음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귀로 듣는 음악도 사람의 마음에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강렬한 비트가 있는 음악이나 대중가요를 들은 후에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읽으면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음악이 우리 마음에 이상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나 교인들 중에 가사만 기독교적이면 음악은 그것이 록뮤직이건 발라드건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가사가 아무리 좋더라도 음악이 올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경험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요? 빌립보서 4장 8절의 말씀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습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한 음악을 들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평안이 있는 사람은 대중가요처럼 들리는 찬송을 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성질과 다른 성질을 가진 음악들은 자연스럽게 싫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 교회 모습

독자 여러분, 사탄의 덫에 빠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영혼의 통로를 잘 지켜야 합니다. 지금은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벧전 1:13)라고 하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할 때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 교회가 ‘바벨론’이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 안으로 온갖 더러운 영들이 모인다고 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사도 요한은 어떤 모습을 보았길래 교회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고 했을까요?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예배가 온갖 거짓 복음으로 더럽혀졌고, 신령과 진리로 드려져야 할 예배가 세상 가수의 음악으로 덮여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향이 드럼과 베이스기타와 광란의 음악으로 올려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서 정말 두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바벨론의 예배 방식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교회 음악과 예배가 세상을 흉내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입니까? 청년들을 교회에 붙잡아놓기 위해서입니까? 세상 음악을 통해서 청년들을 모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좁은 길을 걷는 하늘 성도로 양육될 수 있을까요? 교회의 목적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인도해서 진리에 굴복시키고 하늘 시민으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울고 계십니다.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를 보면서 깊이 탄식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누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고 누가 사탄의 편에 서 있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기독교회 안에 들어온 금송아지 예배의 실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눈에 안약을 바르는 경험을 한 성도들은 참 예배와 거짓 예배를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