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데일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개혁자인 틴데일은 헬라어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함으로 화형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그는 중세기의 천주교회가 가르쳐온 영혼불멸과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서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에 간다”는 가르침을 부인하였고 재림 시에 있을 부활을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소망으로 제시했습니다. 틴데일은 목숨을 걸고 교황과 천주교회를 향해서 다음과 같이 논박했습니다.

 

“그대들은 몸을 떠난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와 바울이 입증한 부활의 논증을 파괴하고 있다. … 참된 믿음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매순간마다 바라보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교의 철학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영혼은 언제나 살아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가르침을 섞어놓았으나 이것들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조화될 수가 없다. … 내게 말해보시오. 만약 영혼들이 하늘에 있다면, 그들이 왜 천사들과는 달리 새삼스럽게 부활을 받아야 하는가?”(D. Neal, History of the Puritans, Vol. 1, 269)

 

틴데일은 영혼불멸 사상과 부활신앙은 논리적으로 서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천주교회를 향해서 “사람이 죽는 순간에 영혼들이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에 가버린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부활은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틴 루터

마틴 루터는 1520년 11월 29일에 발표한 41개조 신조에서 “영혼불멸이라는 신조는 터무니없는 다른 견해들과 함께 로마 천주교회의 교리집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라고 논박하였습니다(The Problem of Immortality, p.256 by Petavel). 종교개혁 운동의 선봉장인 마틴 루터는 교황의 면제부 판매를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죽은 자의 죄를 면제해준다는 천주교 교리는 영혼불멸 사상을 근거로 해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연옥과 죽은 성자 숭배를 부인하였고, 죽음을 무의식의 잠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죽는 순간까지 영혼과 죽음에 대한 진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의 사후에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영혼불멸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단이라는 지목을 받게 되자, 그들의 스승인 루터가 마치 영혼불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위장함으로써, 마틴 루터가 생명을 걸고서 사수한 진리의 빛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18세기 성공회 학자이며 사제인 블랙번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자신들이 이단이 될 것에 대한 어리석은 염려 때문에 스승(마틴 루터)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대신, 자신들의 스승은 결코 그런 교리를 고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증명하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A Treatise in Millennium, Vol. 2, 328)

 

그러나 다음과 같은 글은 마틴 루터가 생전에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 아들의 고귀한 피를 통하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것을 깊고 달콤한 잠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관 속에 들어가는 것을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으로 착각하기보다는 무덤 속에서 무의식 상태로 잠자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나의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명백한 진리로 판명될 수 있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도다 …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는 죽었느니라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11-24). ‘가라사대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마 9:24).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을 완전히 거부하였다. 땅속에서 부패된 육체가 다시는 부패되지 않을 몸으로 영광스럽게 일어나게 될 것이며, 연약한 육체가 강력한 힘을 지닌 몸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Christian Song Latin and German, for Use at Funeral, 287)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마틴 루터여,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무덤의 문을 두드리실 때까지 나는 잠자고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즉시로 일어나서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 것이다.”(The Christin Hope, p.37)

 

존 밀톤

“실락원”의 저자인 밀톤은, 영혼에 대한 문제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방 종교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 자체가 ‘살아있는 영혼’이라고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합성시키거나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개의 다른 존재, 즉 영혼과 몸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사람 자체가 살아있는 영혼이기 때문에, 영혼은 몸, 이성, 감각, 활동력, 개성을 가진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에 생명력을 주기 위해서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셨는데, 인간의 몸에 생명의 호흡이 불어넣어지는 순간, 인간은 ‘살아있는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The Prose Works of John Milton, Vol. 4, p.188)

 

“죽음이란 생명력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견해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가르침이다. 사람이 죽을 때, 어떤 부분이 분리된다는 말인가? 영혼이 분리되는가? 만일 그렇다면, 몸은 어떻게 되는가? 영혼은 살아있고, 몸은 죽어 있는 상태를 어떻게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죽어 있지만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는 상태를 어떻게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영혼과 몸이 분리되는 현상을 죽음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상동, p.279)

 

양심과 성경으로 지켜온 부활신앙

틴데일의 제자인 프리드는 영혼불멸을 반대한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1575년 7월, 종교개혁자인 테르우르트와 피터스가 동일한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1611년 4월, 레가트와 위트만 역시 동일한 죄목으로 화형을 당했는데, 그들은 죽기 직전에 엘리자벳 여왕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26:19, 요한복음 11:25, 다니엘 12:2, 요한복음 5:25, 고린도전서 15:22, 데살로니가전서 4:16에 기록된 대로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의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오실 때, 무덤에서 성도의 몸이 일어날 것이며, 그때에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7세기 초에는 재침례파의 교리와 회중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인 침례교회가 영국과 화란에서 형성되었는데, 일반침례교(General Baptist)로 알려진 그들은 영혼불멸설을 부인하고 부활 때까지 무덤 속에서 무의식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1660년 약 2만 명 이상의 침례교인들이 서명한 25개조의 신조에는 이러한 그들의 신앙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실락원의 저자이며, 학자이며 시인이며 정치가인 밀톤에 의해서 퍼져나갔습니다. 독일의 신학자로서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스테그만에 의해서 영혼에 관한 진리가 다시 한번 확인되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성직자들이 교권과 교파에 얽매여서 교단 간에 높은 담을 쌓는 동안, 각 분야의 학자들과 전문 지식인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진리를 회복하는 데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산소를 발견한 과학자인 프리스틀리,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톤 경,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자인 휘스톤 등은 과학자요, 신학자로서 영혼불멸설을 공개적으로 부인했으며,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요, 신학자인 아이삭 왓츠는 초기에 받아들였던 영혼불멸 사상을 버리고 성경의 진리로 돌아섰습니다. 오늘날까지 성경주석학자로 손꼽히는 루터교회의 히브리 학자인 프렌츠 델리취는 자신의 구약성경 주석에서 “성경 전체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영혼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오스카 쿨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스위스의 오스카 쿨만은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정복하심으로써 다시는 죽지 않을 불멸의 영혼을 쟁취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죽음을 정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죽어야 하는데, 즉 몸과 영혼이 함께 죽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생명력 자체를 잃어버려야만 한다.”(영혼의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 8)

 

“영혼의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이라는 오스카 쿨만의 저서는 한국에서도 장로교회의 원로 신약성서 학자요, 목사인 전경연 씨에 의해서 번역되어 1965년 복음주의 신학총서 5권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오스카 쿨만은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기독교회의 소망과 영혼불멸에 대한 헬라 사상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영혼불멸을 믿는 헬라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의 부활 설교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웠다. … 신약에는 ‘영혼불멸이냐? 죽은 자의 부활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가르침은 결코 신약의 가르침과 조화될 수 없다.”(전경연 편, 8)

 

오스카 쿨만은 영혼불멸과 부활은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상반된 사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신앙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영혼불멸과 부활신앙을 연결지어 놓음으로써 빚어진 신학적 착오와 일반 성도들의 혼돈은 나로 하여금 침묵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혼불멸의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리스도교회의 핵심인 부활신앙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플라톤의 철학으로 희생시켰는데, 본인은 이 사실을 도저히 덮어둘 수 없습니다.”(상동, 9)

 

이제 다시, 독자들이 베뢰아 사람의 신앙으로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개신교를 세운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니면 플라톤과 천주교회의 신학을 받아들이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