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간 성경의 영감성에 대한 극심한 논란과 혼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자유주의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목사와 신학자일수록 성경의 권위에 대한 존경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도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면서 성경 이외에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교회 안에 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전쟁은 성경이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흔드는 전쟁입니다. 교회의 한쪽에서는 성경의 권위를 흔드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쪽에서는 성경 말씀을 높이 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성경에도 오류가 있기 때문에 선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경 말씀에 마음과 생애를 바쳐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만으로 교회를 운영할 수 있는가? 현대와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더 이상 성경만 가지고 목회할 수 없다. 심리학과 사회학 그리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입해서 교회 운영에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성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상에 빠지면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사회학 연구 자료와 통계와 문화가 성경 말씀보다 우위를 점하는 교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기보다는 사회학적 통계와 설문 조사에 의지해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하고, 예배를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맞추어서 선교하고 교회를 운영해야 한다.”는 정신이 들어오면, 부흥과 개혁은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현대 기독교회에서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이 예배와 선교를 결정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면서 “진리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인가?”를 찾는 열정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경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5~17)

 

어떤 신학자들의 경고

수십 년 전부터 소수의 경건한 신학교 교수들은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지금 신학교의 복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거닐고 있다. 신학교 강의실에서 플라톤이 강의하고 있다. 신학교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나타나자,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신학생들이시여, 조심하기 바란다. 세상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목소리가 신학교 강의실에서 울리게 되면서, 사도 바울의 음성과 사도들의 피 묻은 행적이 사라지고 있다!” 신학교에서 철학과 심리학과 사회학이 득세하면서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들의 신앙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가 교회를 운영하다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는 대신 사회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고 심리학자의 책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 현대 목회자들을 향해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시 23:1). 성도 여러분, 예루살렘 성전에 문제가 생겼는데, 왜 로마와 헬라에게 자문을 구해야 합니까? 사회과학의 이론이 어떻게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영적인 투쟁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우리는 교회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주의 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회에서는 비즈니스같이 거대한 조직을 가진 산업형 교회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며 수많은 교회들이 그런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사라지고 교세 확장에 대한 이론과 방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도 교회 성장법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교회 성장법’이란,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메뉴얼을 기초로한 교회를 성장시키는 방법 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세상 학자가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따라가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할 때 최고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져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성경을 펼쳐 놓고 “주여,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를 세우기 전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좋아하십니까? 어떤 설교를 듣기 원하시나요? 어떤 분위기의 음악을 좋아합니까?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합니까?” 이런 종류의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동네 사람들에게 돌려서 물어본 다음,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현대 기독교회가 진리처럼 붙잡고 있는 ‘교회 성장 메뉴얼’입니다. 물론, 교회는 죄인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의 필요를 가장 정확하게 하시고 채우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만일 교회가 지역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봉사하기 원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교회가 물어보고 따라가야 할 유일한 대상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왜 우리가 세상에게 물어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교회가 세상이 원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가 원하는 쪽으로 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게 해서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비록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한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큰 교회’를 세우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진리로 인도해서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의 인정과 인기를 위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전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달받은 모든 사람이 거절하고, 진리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이 외면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가야만 합니다. 만일 교회를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아무나 모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