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는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초림 때도 나타났고 재림 때도 나타날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오실 때마다 엘리야가 나타날까요?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에는 사탄의 격렬한 활동의 결과로 교회는 가장 어둡고 복음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가 되면, 사탄은 거짓 선지자들을 일으켜서 교회를 극렬하게 시험하고 그때마다 교회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점령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초림하셨을 때 두 번째 엘리야가 왔었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는 세 번째 엘리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때 나타났던 두 번째 엘리야는 누구일까요? 침례 요한입니다. “저가(침례 요한)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눅 1:17). 침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갖고 말씀을 전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가 되자, 침례 요한은 두 번째 엘리야로서 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요? 선지자들과 왕들(Prophets and kings)이라는 책 119쪽에는 엘리야가 어떤 심령과 능력을 갖고 있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엘리야는 죄를 책망하고 악의 물결을 물리치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Prophets and kings, 119)
이것이 엘리야의 사역이었습니다. 죄를 책망하고 악의 물결을 물리치는 것이 엘리야의 특성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란 무엇을 뜻합니까? 어떤 인간의 구속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엘리야로 나타난 침례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표현된 것입니다.
“저는(침례 요한)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 3:2,3)
“엘리야가 죄를 책망하는 사람으로서 백성들에게 나아갈 때에 그의 기별은 고침을 받고자 하는 죄로 병든 모든 영혼들에게 길르앗의 유향을 제공하였다.”(Prophets and kings, 119)
길르앗의 유향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기름을 뜻합니다. 엘리야는 죄를 책망하고 지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혼들이 회개하고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치유의 기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성령으로 영혼을 회복시키는 기별을 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죄를 지적하고 책망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분별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치유되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길르앗의 유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씀은 엘리야의 기별이 아닙니다. 반드시 죄로 병든 사람에게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엘리야가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이스라엘 교회를 바라볼 때에 그의 마음은 고통스러웠고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의 심령 속에는 교회의 죄와 배도에 대한 고통과 의분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엘리야로 온 침례 요한의 마음속에도 바로 그런 심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점령당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성소의 제단에 바치려고 가져온 가축과 양들을 빼돌려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습니다. 복음은 참 의미를 잃어버렸고 신앙은 율법주의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런 유대교회를 바라보는 침례 요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교회 속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때문에 죽어가는 교인들을 보는 침례 요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래서 침례 요한의 설교에는 엘리야의 심령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눅 3:7)
엘리야의 심령이란,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로 죽어가는 교회를 바라보면서 나타나는 거룩한 분노를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심령이 없으면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가 아닙니다. 그런 심령을 가진 복음의 전파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는데 그것이 엘리야의 능력입니다.
진리를 잘 설명하고 교리를 정확하게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교회를 점령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대항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엘리야의 심령을 갖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령이란, 반역과 배도의 시대에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뜻합니다. 엘리야의 심령이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는데 그것이 엘리야의 능력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이란 진리를 붙잡고 전진케 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은 하늘로부터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받지 않으면 마지막 시대 기독교회 전체를 휩쓸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 기만당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엘리야, 침례 요한이 전한 기별
두 번째 엘리야가 왔을 때 유대교회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사탄은 유대교회를 어떻게 점령했을까요? 율법주의로 점령했습니다. 율법주의의 문제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율법주의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율법주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위선과 형식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돈과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겉으로는 날마다 어린양을 잡아서 제단에 태웠지만, 속으로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가 실제적으로 체험되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양을 잡으면서도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율법에 순종했으며 죄를 범할 때마다 양을 잡아서 피를 흘렸습니다. 용서와 구원을 위한 완전한 의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와 죄 사함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율법주의 같은 이상한 가르침에 빠질 수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현대 기독교회는 율법주의를 부정하지만,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동일한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빠져 있을까요? 용서받은 열매,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문제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주님을 열렬하게 찬양하고 예배드리지만, 마음과 생애 속에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이 유대교회를 향해서 “너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기별을 전했던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막 1:4)
성도 여러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 회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날마다 어린양의 목을 따서 죽이고 피를 받으면서도 가슴속에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 이제 굴복하겠습니다. 온 마음과 생애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받아주시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기도를 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날마다 양을 죽이면서도 새 언약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를 구원과 축복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을 보내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 3:8,10)
침례 요한은 회개의 열매가 없으면 도끼에 찍혀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날마다 어린양을 잡아서 죽이면서 감사와 충성의 열매를 맺지 못하면 도끼에 찍혀서 지옥불에 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열매가 맺히게 될까요? 죄를 진심으로 슬퍼하는 회개를 하는 사람에게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회개하면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회개하면 말씀을 사모하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회개하면 주님께 헌신하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기도하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한 말을 하고 싶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친절하고 싶은 열매가 맺히고, 내 마음에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회개하면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열매가 맺히고 세상에 관심이 없어지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하늘을 그리워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전하는 것이 엘리야의 기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 살면서 지친 영혼들에게 왜 자꾸 회개하라고 말하고 죄를 지적합니까?” 성도 여러분, 열매 맺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설교가 우리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교회를 향해서 침례 요한을 엘리야로 보내셨고, 침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을 전하다가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두 번째 엘리야가 유대교회에게 기별을 전하고 다녀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교회는 엘리야가 왔다가 간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의 모습입니다. 엘리야의 기별이 전파되고 있는데 그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회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사랑만하면 구원받는다. 한 번 예수를 영접하고 믿으면 더 이상 구원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려고 하는 설교자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교인들의 죄를 책망하지 않고 열매 없음을 지적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 교회가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영들로 덮혀 있는 바벨론이 되었다고 경고합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성도 여러분, 지금 기독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와 같은 깊은 늪에 빠져 있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세 번째 엘리야가 올 때가 된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회가 칠흑처럼 깜깜하지만 세 번째 엘리야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성도들은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