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5,18~19,24)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사람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정죄로부터 해방되는 중요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로마서 7장에서는 죄에 팔려서 끌려다니는 그리스도인,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리스도인, 율법의 정죄에 짓눌려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기록한 다음, 8장에서 이 모든 문제와 정죄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로마서 복음의 최고 정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험이 로마서 7장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할 때, 때때로 로마서 7장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서 정죄와 좌절의 늪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거기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로마서 8장 경험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기 원하는 구원의 경험입니다.
로마서 7장은 하나님의 법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장 말씀을 이렇게 시작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롬 7:1)
로마서 7장은 하나님의 계명을 알고 있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고 싶은데 자꾸 육체의 요구에 끌려다니는 죄인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해도 악을 행하게 되고, 의와 거룩함을 좇아가려고 해도 자꾸 악에 빠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의 모습이 로마서 7장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7장에 이런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2~23)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런데 자꾸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죄에 끌려가게 되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것이 로마서 7장 마지막에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7장에 나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서 8장에서 놀라운 복음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의 정죄에 짓눌렸던 사람이 8장에 와서는 크게 소리칩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외칩니다. 그런데 아무나 정죄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만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왜 정죄받지 않을까요? 한글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킹제임스 영어성경에는 정죄받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나옵니다.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그들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쫓나니)”(롬 8:1). 이것이 무슨 뜻인가요? 육체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성령의 음성을 따르기 때문에 정죄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갈라디아서에도 반복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7~18)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우리 속에 두 가지 음성이 있습니다. 한 음성은 육체의 음성이고 다른 음성은 양심을 통해서 들리는 성령의 음성입니다. 이 두 음성이 우리 속에서 치열하게 대적하고 싸우는데, 우리가 두 음성 사이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가야만 생명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the Spirit,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육신이 우리에게 말하고 요구하는 것을 따라가면 멸망에 이르게 되지만,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면 “생명과 평안”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7~9).
오해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말씀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욕망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두려운 사실은, 바울은 육신에 속해서 죄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5~16)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육신의 더럽고 이기적인 충동을 뿌리치고 성령을 쫓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될까요?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이 12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2절 이후에서 우리가 육신의 욕망을 물리치고 성령의 음성을 따를 수 있는 비결 3가지를 공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지치고 깊은 좌절을 경험했던 그리스도인은 로마서 8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에서 놀라운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