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게으른 종”은 장사를 해서 이익을 전혀 내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그가 갖고 있는 복음과 경험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갖고 있는 것으로는 영혼을 천국문으로 인도할 수 없었습니다. 선교란 무엇일까요? 길에서 전도지를 나눠 주는 것일까요? 지하철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일까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도와 바울이 생각하는 전도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생각하는 전도는 영혼을 제단에 바쳐서 태우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바울은 전도자는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양을 제단 위에 놓고 태우는 일을 합니다. 바울이 생각하는 전도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성소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혼을 성소(교회)까지 인도하면 전도가 끝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영혼을 제단 위에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 영혼을 제물로 바치는 지점까지 인도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단순히 교회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일평생 동안 전도의 삶을 살았던 사도입니다. 바울의 전도를 통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초대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 안에 들어온 신자들이 세속에 시험받고 넓은 길을 따라가다가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떠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휩쓸려 떠내려갔고, 돈을 사랑해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라고 했고(고전 15:58),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이라고 했던 것입니다(골 1:23).

바울은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태워야만 그 영혼이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영혼을 제단의 제물로 바쳐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예수님을 영접한 새 신자가 자신의 마음과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바칠 때까지 말씀을 가르치고 책망하며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란, 불신자를 교회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새 신자들에게 몇가지 교리나 몇가지 예언 해석만 나눠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영혼을 인도하고 전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잃어버린 양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바울에게 영혼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영혼을 주실 것입니다. 신자의 마음과 생애가 하나님의 제단 위에서 태워져서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가 될 때까지 전도가 중단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워진 영혼들을 받으십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하나님께 달란트를 받았지만,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음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의의 표준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사람은 심판 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복음을 “내 수준”에 맞추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목회자 자신이 복음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설교자가 참된 회개와 중생의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면, 복음을 “내 수준”에 맞춘 얄팍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내 수준”으로 낮추어야만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내 수준”에 맞춘 설교와 복음을 좋아합니다. 구원은 거저 주는 선물이니까 받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살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을 태우지 않는 설교와 복음은 영혼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그런 종은 영혼을 주인에게 인도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인도하게 됩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주면서 이익을 내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인에게는 어떤 이익(영혼)도 돌려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종을 향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전도는 말씀과 “내 경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경험”이 흔들려 있으면 정확한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됩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자신이 먼저 제단 위에 올라가서 온 마음과 생애를 태우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내가 제단 위에서 태워진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말씀의 제단에 올려놓고 태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주님께 많은 달란트를 받았을지라도, 복음에 대한 나의 이해와 경험이 올바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낼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주의 종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지는데, 한 무리는 영혼을 태우는 종들이고, 다른 무리는 영혼을 태우지 못하는 종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종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종의 설교를 듣기 원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