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는 예수께로부터 직접 복음을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의 교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리와 신앙의 기준은 처음 교회가 시작된 초대 교회이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가 갖고 있던 복음과 교리와 계명이 우리의 표준입니다. 만일 검은 말과 청황색 말 시대의 교회가 거짓 교리와 거짓 계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도 오직 하나의 교파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검은 말과 청황색 말 시대를 지나면서 천년 이상 동안 이교의 교리와 거짓 계명이 교회로 들어왔고 교리화 되었습니다. 구원의 도가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가 면죄부를 팔 정도로 깊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을 때 1517년, 하나님께서 마르틴 루터를 일으키셔서 종교 개혁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은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가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떠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버렸다고 외쳤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길을 걸어갔지만, 개혁자들의 입에서는 “기록된 말씀, 오직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라는 구호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유일한 표준으로 삼을 것을 호소”하는 것이 종교 개혁과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숨겨진 역사

카톨릭교회는 불길처럼 일어나는 종교 개혁 운동을 핍박으로만 억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 개혁자들의 주장이 너무나 성서적이었고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개혁과 가르침이 밀물처럼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지지자들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프로테스탄트”(Protestants)라고 불렀는데 그 의미는 “교황의 교리와 가르침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까지 개신교회에서 금기시하는 숨겨진 사건이 일어났는데, 독자 여러분은 그 사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창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교황청이 종교 개혁자들이 주장하는 “오직 성경”의 신앙에 치명적인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교황청은 1545년에 시작된 트렌트 공의회에서 그들이 발견한 개신교도들의 문제를 제시했습니다. 교황청은 그들의 대변인으로 로히오의 대주교를 정하고 성경만을 주장하는 종교 개혁파와 프로테스탄트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변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황청의 주장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카톨릭교회의 이 주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파와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에만 의존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만을 믿음의 표준으로 고백합니다. 그들은 카톨릭교회가 기록된 말씀을 떠나 전통을 따름으로 배도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카톨릭교회를 떠난 반역을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이 성경만을 따른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성경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받든다는 그들의 신앙 고백은 거짓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증거를 제시합니다.

증거: 성경 말씀은 분명하게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킬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배척합니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성경을 표준으로 받든다면 그들은 성경이 일관성 있게 명령하는 제칠일을 예배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된 말씀이 명하는 안식일 준수를 거부할 뿐 아니라, 카톨릭교회가 세운 전통 외에는 근거가 없는 일요일을 채택해서 그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만을 표준으로 삼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부당합니다. 그러므로 카톨릭교회가 갖고 있는 ‘성경과 전통’을 함께 받드는 교리는 필수적입니다. 실제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들도 카톨릭의 기준을 따라오고 있습니다.”(대영백과사전, “Augsburg Confession”, “Trent, Council of.” and “the proceeding of the Council”) 교황의 교리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개신교도들은 교황청의 이러한 논리를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트랜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종교 개혁 운동을 카톨릭교회의 거룩함과 권위를 대적하는 불법 저항 운동으로 규정했습니다. 지난 5백년 동안 개신교회는 트랜트공의회에서 개신교 신앙이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역사를 숨기고 있지만, 모든 것이 문서로 남아 있으며 카톨릭교회는 지금도 동일한 논리로 개신교회를 비판하면서 다시 어머니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개신교회는 교황의 교리에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이어 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중세기에 무너진 진리와 계명을 회복하고자 하는 종교개혁의 정신은 사라져 버렸고 각 교파마다 교단주의로 울타리를 높이 쳐 놓은 채 그리스도의 재강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검은 말 시대와 청황색 말 시대에 들어온 수많은 거짓 교리와 거짓 계명이 개신교회의 각 교파로 흩어져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남은 무리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어떤 교회를 인도하실까요? 현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교회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타락하였고 교파가 분열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밝은 빛으로 나가기 위해서 온 마음과 생애를 바치는 성도들을 인도해 오고 계십니다. 일곱 교회 예언에서는 그들을 이기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성경은 그들을 남은 무리라고 부릅니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남은 무리가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남은 무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사 10:22)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다 모래같이 많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을 따르는 남은 자들만 구원받게 됩니다. 사탄이 교회를 공격해서 교회가 크게 흔들렸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검은 말 시대에는 “감람유와 포도주”의 신앙을 갖고 있던 성도들이 남은 자였고, 버가모 교회에는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거절한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남은 무리였습니다. 청황색 말 시대와 두아디라 시대에는 깊은 산과 계곡에서 광야 교회를 세워서 진리를 지켰던 성도들이 남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학개는 오래전에 남은 무리의 특성을 이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남은 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학 1:12). 여호와의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을 청종하는 것, 이것이 선지자 학개가 말한 남은 무리의 특징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남은 무리

검은 말 시대에 무너진 십계명은 중세기 천년 동안 짓밟혀 오다가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우상을 만들거나 섬지기 말라”는 둘째 계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넷째 계명은 마지막 시대까지 짓밟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성도들, 즉“남은 자손”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계명을 회복시키는 “남은 자손”이 나타나면 사탄이 분노해서 그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이 왜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공격할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검은 말 시대에 무너뜨린 계명을 다시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계명을 무너뜨려야 니골라당의 교리를 교회 안에 세워서 성도들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짐승의 표 환난 때에도 계속될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손”이 승리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 환난에서 승리: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1~12)

마지막 남은 자손의 승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킹제임스 성경)

 

마지막 때 다시 부활한 니골라당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남은 무리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성직자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유대인의 신앙이고 율법주의이다”라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검은 말 시대와 청황색 말 시대에 있었던 말씀의 기근이 말세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왜 마지막 시대에 말씀의 기근이 일어났을까요? 검은 말과 청황색 말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무너뜨렸던 니골라당이 다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니골라당이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충성된 증인, 안디바의 신앙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중세기 종교암흑기 동안 광야에서 옛 신앙을 지켰던 성도들의 믿음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시대의 투쟁은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현대판 니골라당의 투쟁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어떤 신앙을 받아들이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구원과 영생이 결정될 것입니다.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십자가의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영혼의 평안을 뜻합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6~18, 22).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의 의미를 곡해시키는 니골라당의 주장이 마치 진리처럼 포장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지 않고 세속적인 삶을 살면서도 “나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누가 참된 예배자인가?

예수께서는 당신께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남기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예수님)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예배드리기만 하면 예수께서 항상 함께하실까요? 아닙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with Spirit and Truth, 성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성령과 진리)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온 마음으로 말씀을 따라가는 충성된 남은 무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찾고 계신다. 성령과 진리, 둘 모두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가 있는데 성령이 없으면 신앙이 메마른 형식과 위선이 되고, 진리가 없는데 성령에만 몰입하면 신앙이 기초가 없이 흔들리는 의미 없는 감정으로 갑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헛되게 경배하는 것을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doctrine-교리)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8~9). 헛된 경배란 어떤 것입니까? 입술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돈과 세속을 사랑하면서 사람이 만든 계명과 거짓 교리로 예배드리는 것이 헛된 경배입니다.

네 말 탄 자 예언을 보면, 검은 말 시대부터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이끄는 대로 거짓 교리와 거짓 계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 안에 우상들을 세우고 계명을 바꾸는 성직자들의 배도에 동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에는 그들이 교회의 주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의 교회 건물이 화려하고 숫자가 많을지라도 초대 교회부터 순교자의 피로 지켜 온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교단의 조직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파나 교단에 속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앞서 진리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하신 진리 위에 온 마음과 생애를 바치는 것이 구원과 영생의 길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에 대한 분명한 이해없이 수많은 교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등불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