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세상 종말까지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게 될지를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사탄의 공격에 응전하실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창세기 3장에서 발표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긴 예언이면서 동시에 구속의 계획입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 참여하는 지구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의의 종과 사탄을 따르는 죄의 종으로 나뉘어집니다. 창세기 3장에서는 그것을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들의 교회가 있고, 뱀의 후손들의 교회가 있습니다. 물론, 이 두 교회는 우리 눈에 보이는 교파나 교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향한마음속마음속의 충성과 헌신에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 교회 중 하나에 속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에는 수많은 교파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에는 오직 두 교회만 존재하는데, 하나는 여자의 후손이고 다른 하나는 뱀의 후손입니다. 이제부터 창세기 3장에서 발표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살펴보겠습니다.

 

(창 3:15) “내가(하나님) 너로(뱀, 사탄) 여자와 원수(enmity)가 되게 하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탄과 여자가 서로 원수가 되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여자”는 순결한 교회를 상징합니다(고후 11:2, 사 52:2, 렘 6:2). 다시 말해서, “여자”란 정결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벌어져서 시험과 유혹이 올 때, 성령의 음성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정결한 그리스도인(여자)입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요 18:37).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소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탄과 원수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원수’는 ‘enmity’ 입니다. ‘enmity’라는 말은 ‘적개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탄(뱀)이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말씀은, 성도들의 마음속에 사탄에 대한 적개심을 넣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이기적이고 악합니다. 그런 본성으로는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에 사탄에 대한 적개심을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은 거듭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창조의 역사입니다. 만일 거듭남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없었다면, 인간은 사탄에게 사로잡혀서 그의 명령을 복종하기 위해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상태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해서 거듭남의 역사가 이루어지면 사탄과 죄를 거절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전에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마음과 생애 전체를 주님께 드리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기 때문에 사탄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 속에 예수의 마음을 넣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마음속에 사탄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미워하게 되고 악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번 거듭남을 경험했던 사람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탄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지게 되어서 다시 육체의 본성에 지배를 받는 삶을 살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오늘날에도 사탄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하는 “여자”이고, 순결한 교회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사탄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강하게 저항하며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뱀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은 어떻게 다를까요?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뱀의 후손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봉사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뱀의 후손들과 여자의 후손들이 섞여서 예배드리고 있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뱀의 후손은 양심에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온 마음을 다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뱀의 후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약 2:19, 20). 귀신들도 하나님을 믿고 떱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뱀의 후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나타나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은 서로 원수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 첫 번째 케이스가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입니다. 두 아들은 모두 아담과 하와로부터 동일한 본성, 이기적이고 타락한 본성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뱀의 후손이 되었고 아벨은 여자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역사 또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들 사이에서 벌어진 투쟁의 이야기입니다.

 

(창 3:15) “여자의 후손은 네(뱀, 사탄)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사탄) 그의(여자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어떤 사건을 말할까요? 놀랍게도 이 말씀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은 순결한 믿음을 가지셨던 예수님을 뜻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뱀, 사탄)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골고다”라는 단어의 뜻은 “해골”입니다. 그러므로 골고다에 십자가가 세워졌다는 것은 십자가가 사탄의 해골(머리)을 내리찍음으로써 상하게 했음을 뜻합니다. 창세기 3장의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께서는 골고다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써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사탄과의 전쟁에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너(사탄)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 발에 못이 박히는 상처를 받으셨지만, 십자가가 골고다에 세워짐으로서 모든 인류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완전한 준비가 갖추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까요? 왜 우리가 아직도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받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승리하셨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가 섬길 자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이 될 것인지, 뱀의 후손이 될 것인지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마쳐지는 그날까지 우리 자신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과 천사와 사람 앞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는 중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든지 천사든지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한 편을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도 정확하게 둘로 나뉘어졌던 것입니다.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도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단 한 명도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중간에 서있으려고 합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 말입니다. 바로 그런 어중간한 신앙 태도 때문에 사탄의 기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에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편 아니면 사탄의 편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탄의 편에 가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기만과 미혹에 넘어갑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아담과 하와는 미혹을 받아서 사탄의 편에 섰습니다. 노아홍수 때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미혹받아서 멸망당했습니다. 롯의 때 대부분의 소돔성 시민들도 세상을 사랑하다가 미혹을 받고 멸망당했습니다. 구약시대 유대교회 지도자들도 세상을 사랑하다가 미혹을 받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도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세상을 사랑하다가 미혹을 받고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도 노아의 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서 멸망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재림)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왜 그렇게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넓은 길을 걷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좁은 길은 가파르고 협착해서 싫어합니다. 그래서 타락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만족시키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그것이 넓은 길입니다.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3, 24).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에서 사탄의 미혹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마음 깊숙히 담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장로교와 침례교의 전쟁이 아닙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전쟁도 아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고, 우리는 그 둘 사이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그 결정에 따라서 우리는 여자의 후손이 될 수도 있고, 뱀의 후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람의 구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인간의 구원을 설명할 때 “내가 어떻게 구원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내 구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지지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내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위해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지 않는 바울의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런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좁은 길 걷기를 두려워 하지 않게 됩니다. 사탄이 풀무불과 사자굴을 앞세우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공격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승리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2).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을 바라보는 성도의 마음속에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나는 믿고 회개했고 영접기도를 했으므로 내가 어떻게 살든지 구원은 보장되어 있다.”라는 식의 믿음은 전혀 발붙힐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복 받고 잘 믿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식의 기복신앙도 사라지게 됩니다. 냉랭하고 의미 없는 율법주의도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주의 왕좌를 노리는 사탄과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 계십니다. 인류를 하나님의 편으로 이끌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요 12:32).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사탄이 주는 유혹에 맞서 저항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내 구원과 내 축복만을 챙기면서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산 영혼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신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손에 다시 못질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사도 바울은 중요한 사상을 우리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지금 우주 세계와 천사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 우리가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산 영혼들이 하나님과 사탄의 치열한 전쟁에서 누구의 편에 서는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할 때, 여자의 후손들이 어떤 믿음과 신앙을 나타내는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지금 두 교회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택하겠습니까? 여자의 후손이 되겠습니까? 뱀의 후손이 되겠습니까?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고전 15: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