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연예인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면, 공항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팬클럽 회원들이 모여들고 환호합니다. 인기 가수와 영화배우들은 어디를 가든지 군중으로 휩싸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은 그들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많은 아이돌 가수와 배우들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기가 높을 때에는 팬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지만, 인기가 떨어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팬들은 자신을 즐겁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줄 때는 열광하면서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인기가 떨어지고 더 이상 자신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지 못하면 여지없이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이 팬클럽 회원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무리 열성적인 팬클럽 회원도 가수처럼 목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하지 않고, 배우처럼 혼신을 다해서 연습하지 않습니다. 팬클럽 회원은 가수와 배우의 공연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박수 치고 즐길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슈퍼스타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팬클럽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스승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배우는 제자처럼,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을 순종하고 생애로 받아들여서 살아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피묻은 길을 함께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팬클럽 회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기도할 때는 열성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고난 속에서도 진리에 순종하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명하시면 등을 돌리고 떠나갑니다.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그분께서 나의 삶을 간섭하는 것은 싫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때때로 충격적이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명령하면 팬클럽 회원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마 16:24). 교회나 교파가 주는 ‘안전감(?)’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진리를 버리고 떠나갑니다. 기독교 신앙을 단순히 “복을 받고 지옥을 면제해 주는 공짜 티켓”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 10:34). 참 이상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구세주인데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화평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들의 마음에만 허락되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절하는 마음마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양심에 가책을 주고 화평을 깨뜨립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에는 외로움과 곤란함과 핍박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셨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높이 외쳤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떡과 물고기를 나눠 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그와 똑같은 일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이름을 외치는 팬클럽 회원은 많은데 제자가 없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구원과 복과 건강과 재물은 좋은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 구원하시는 사람은 예수를 말로만 따르고 그분께서 나눠 주시는 복을 받아 챙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제자를 찾고 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피 묻은 깃발을 붙잡고 서 있는 영혼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편안하게 객석에 앉아서 구경하고 환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링 위에 올라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 매주 교회에 몰려와 예수님을 응원하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정말 적습니다. 팬은 맑은 날에만 그리스도를 찾지만, 제자는 폭풍우가 내리치는 날에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을 붙잡고 서 있습니다.
천국의 문은 육신의 떡이 아니라 생명의 떡을 먹기 위해서 그리스도께 나오는 성도들을 위해서 활짝 열릴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예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시자 육신의 떡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6). 세속적 필요를 위해서 따르던 팬들은 모두 예수를 떠났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던 군중 대부분이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복음을 전하셨지만, 십자가에서 홀로 외롭게 죽어 가야 했던 것입니다.
숫자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
예수께서는 떠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생명의 떡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기 위해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복음의 질을 떨어뜨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부자 법관이 찾아와서 구원의 도를 물어보았을 때에도 그가 듣기 원하는 말씀을 주시는 대신 그가 받아야 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자 법관을 너무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부자 법관의 마음을 얻으면 큰 교회 몇 개를 짓고 수많은 군중을 모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1,22).
오늘날 기독교회의 문제는 장사꾼이 물건 값을 낮춰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것처럼, 복음의 표준을 낮춰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싸게 나눠 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대가를 분명히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너무나 값싸게 팔고 있기 때문에 싸구려 복음을 받고 들어온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참된 제자의 길을 찾지 못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을 편안하고 편리한 길로 포장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지만, 교회는 제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팬들의 모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기독교회는 거짓말을 중단하고 세상을 향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동안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있는 그대로 소개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저희들의 죄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교인의 숫자가 아니라 헌신의 깊이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부자로 만들고, 복 많이 받게 하려고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세속과 죄로부터 구원해서 하늘로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좁은 길을 걷는 제자가 되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가난하고 힘들고 업신여김을 받을지라도 진리의 길을 걸어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설문 조사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몇 해 전에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라는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을 제자라고 생각했을까요?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제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답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답변이 나왔을까요? 이런 종류의 답변들이 나왔습니다. “나는 모태로부터 교인이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설교 들을 때 크게 아멘이라고 화답하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방언을 하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주말마다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성가대와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자녀들을 미션 스쿨에 보내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신앙이 좋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제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왜 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내린 평가를 모르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이면 안전하다.”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내린 예수님의 평가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5~17).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몸 안에 그리스도의 피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 빈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유혹에도 쓰러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진리가 인도하는 좁고 험한 길을 활기차게 걷지 못합니다. 잠시 잠깐이면 사라질 것들에 욕심을 내고 이기심에 붙잡혀 죄를 범합니다.
예수께서 주신 가장 두려운 경고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데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우리는 그리스도의 팬클럽 회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제자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좁은 길을 피해 가는 사람들, 진리가 무엇인지 관심 없는 사람들,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팬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어떤 미국 목사님이 목사가 가장 하기 힘든 설교는 이런 설교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참으로 멋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좋은 집을 갖고 있고 좋은 직장을 갖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와 착한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좋은 자동차와 좋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삶이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는 충격적이지만 진리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뜨겁게 찬송하고 예배드려도,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경험해도, 우리 마음과 생애 속에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 소유하는 재물과 물건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침 해가 뜨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입에서 나온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 인생 전체가 무가치합니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이런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만 맺으면 구원받습니다.” 그 말은 정말 진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말 올바로 맺어져 있다면 마음과 생애 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서 구원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잘되어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이런 간증을 합니다. “이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으니까 오늘부터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을 때, 죄와의 관계도 새로워졌습니까? 세상과 돈과의 관계도 새로워졌습니까? 아내와 남편과 자녀와의 관계도 새로워졌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정말 올바로 맺어져 있으면, 모든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돈과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원수와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권력이나 명예와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말 올바로 되어 있으면, 이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지 않게 됩니다.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며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한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의 주석과 개인적인 친분 관계를 맺으면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 우주의 통치자, 창조주 하나님과 만나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어떻게 될까요?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데,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변화이고 “거듭남”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진리를 소홀히 여기며 말씀과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거듭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높은 권위를 차지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사랑하던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며 소홀이 여기던 의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에 대한 미움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습니까? 의에 대한 사랑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함과 충성이 점점 커져 가고 있습니까? 이런 경험이 흔들리거나 불분명하게 되면, 예수님의 손을 놓고 제자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의 팬클럽 회원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사탄은 그런 사람들을 불의와 이상한 경험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우리가 있는데, 우리 마음에는 예수께서 거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헛되고 허무하고 황폐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상태가 잃어버림을 당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더 기쁨을 느끼고, 더 행복해지고, 더 큰 복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원하는가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가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가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내 마음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는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4~7, 10).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악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속에 어떤 아픔과 상처를 주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정말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날마다 물 마시는 것처럼 죄를 마시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멈추지 말고, 죄를 버리는 경험까지 나가야 합니다. 오랫동안 아끼고 애지중지하던 죄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깊은 아픔을 주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게 만든 죄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 회개와 헌신을 드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하늘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의 마음속에 참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비록 진리를 따르는 길이 좁고 험할지라도 분명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