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역사에서 언제 가장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게 될까요? 마지막 시대입니다. 왜 마지막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가장 많이 나타나게 될까요? 왜냐하면 사탄은 참된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참된 복음이 사라지면, 참된 거듭남의 경험과 경건의 능력이 사라지게 되고 경건의 모양과 형식만 남아있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교회에서 가라지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고 알곡들의 영향력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진리를 만나서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되고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데,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면 참된 성도의 경험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 교회를 거짓 선지자들로 채우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사탄은 미혹과 핍박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는 유대교회 속에 거짓 선지자들을 크게 불러들여서 성도들을 미혹해서 메시아를 영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중세기가 되자 사탄은 로마제국과 천주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끌어갔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핍박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 “미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핍박으로는 진리를 없앨 수 없으며 오히려 성도들의 신앙이 더욱 순결하게 되고 불타오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지막 시대가 되자 다시 “미혹”이라는 카드를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회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이 전 세계적으로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 미혹이 들어오는 경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신학교를 나온 사람이 성경을 잘못 가르칠 수 있습니까? 오랜 기간 동안 신학을 공부한 목사와 성직자가 어떻게 거짓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무엇일까요? 2천 년 전에 유대교회가 침례 요한의 설교를 거절하고 메시아를 영접하지 못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오늘날 기독교회 속에 수많은 거짓 목자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면 오늘날 기독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은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왜 2천여 년 동안 성경을 전수해온 유대교회가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거절했습니까? 구약성경 속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에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각종 표상이 너무도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왜 메시아를 거절했습니까? 왜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를 거절했습니까?
두 번째 질문: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와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사이에는 왜 400년이라는 긴 시간적 공백이 있습니까? 왜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유대교회로부터 인정받는 선지자의 글이 없습니까?
위의 두 가지 질문은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데, 두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4백 년 동안 유대교회가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유대교회를 깨우시고 성경을 기록하도록 섭리하셨는데,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4백 년의 기간 동안 유대교회는 깊은 암흑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이후에 성경에 포함될 만한 선지자의 글이 나올 수 없게 되었고, 유대인들이 4천 년 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아를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교회를 4백 년 동안 깊은 암흑에 빠뜨린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대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 중심의 신앙을 버리고 헬라 문화의 교육과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로마제국이 유대인들을 지배했지만, 그 이전 오랜 세월 동안 유대나라는 헬라의 영향력하에 있었습니다. 헬라가 로마에 의해서 망했지만, 로마제국의 바탕을 이루고 있던 사상, 철학, 교육 체제는 헬라에서 그대로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유대교회는 헬라 문화와 철학에 깊이 물들게 되면서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성경 말씀을 크게 왜곡시켰습니다.
유대교회의 저항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벨론에서 겪었던 쓰라린 포로 생활의 경험은 유대교회 지도자들 마음속에 다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어떤 참상이 일어나는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 9:14)
그러나 바벨론과 페르샤 제국이 무너지고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 제국이 유럽과 소아시아를 지배하자, 헬라 문화와 철학이 유대교회 속으로 깊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물론, 유대교회의 지도자들은 헬라 문화와 철학이 유대교회 안으로 들어올 때 생길 수 있는 배도와 죄에 대해서 두려워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이방인의 관습과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받았던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대교회의 젊은 사람들이 헬라의 교육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두 무리로 나누어짐
시간이 지나가면서 유대교회가 두 무리로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성경의 진리를 헬라의 철학자들과 학자들에게 전파하여,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유대교 신앙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정말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배울 것은 배우고 지킬 것은 지키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헬라의 대학에서 공부하면 이방인의 철학과 문화가 교회 속으로 들어와서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헬라 대학에서 그들의 문화와 철학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 사람들은 유대의 젊은이들을 헬라로 보내서 그들의 문화와 교육을 배우도록 허용한다면, 유대국가와 교회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파멸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기울어져만 갔습니다. 헬라의 학자들은 유대교회의 똑똑한 청년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초청하여 철학과 과학과 지식을 그들에게 교육시켰습니다. 점점 더 많은 숫자의 유대 랍비들이 헬라의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갔고, 거기서 유대인의 성경을 그리스 언어로 번역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눈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서, 유대교회에서 헬라 대학의 학위를 딴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헬라의 철학을 인용해서 성경을 강론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헬라에서 교육받았다고 해서 유대교회의 신앙과 표준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신앙과 상반되지 않는 교육을 헬라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청년들이 헬라에 가서 공부할지라도 우리가 필요한 지식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유대 청년들이 당대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 제국의 교육을 받는다면, 유대 청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적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에 유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설득당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진실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실 것입니다.”라는 말로 유대 백성을 설득했습니다. 그때부터 유대교회와 국가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헬라의 대학에서 철학과 지식을 습득한 사람들이 유대교회에서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갖게 된 것입니다. 헬라의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청년들이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고 유대교회의 지시를 따랐기 때문에 유대교회는 그들의 마음에 생긴 무서운 변화를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헬라에 가서 유학한 유대 청년들은 헬라 철학에 물들면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설교와 강론에서 “하나님께만 충성하라.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하라.”는 강조점이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에서 학위 중심으로 변질됨
유대나라의 학교들도 헬라의 학교처럼 졸업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습니다. Rav(랍비), Tana, Gayon, Sadi, Rabbon과 같은 등급들이 생겼습니다. 랍비 학교의 졸업생들은 졸업식 때 학위에 따라 다른 제복을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등급을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학위를 가진 사람은 독특한 옷과 모자를 써야만 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귀족 교육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산헤드린”이라고 불렀습니다.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헬라어이며, 히브리 이름은 베이트 딘(Beth Din)으로서 “위대한 법정”이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식과 학위가 강조되면서 영성은 쇠퇴해져 갔습니다. 유대교 신앙이 하나님 중심에서 학위 중심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헬라의 철학과 사상으로 성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유대 학교에서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을 배출해냈지만,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신앙은 퇴락해갔습니다. 경건의 모습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철학과 문화에 대한 교육 과정이 증가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는 줄어들었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세운 학교들은 설 자리가 없었고 차츰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성과 학위가 높여짐에 따라서 사람이 높여지게 되었고, 하나님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학식 있는 랍비들이 칭송받게 되었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고 신앙이 깊더라도 학위가 없는 사람들은 무시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수한 믿음은 사라져 갔으며 예배가 형식과 의식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랍비 중심의 교육에 관한 수많은 법이 통과되었지만, 학교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설교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육의 배도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부조들의 윤리”라는 책에는, 랍비들이 다음과 같이 가르쳤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살에는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10살에는 미스나(Mishna), 15살에는 저머라(Germara)를 공부해야 한다.”
미스나는 매우 두꺼운 성경 주석 책이었으며, 저머라는 미스나를 주석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 청년들은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서 지식과 지성만 발달되었고,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산 교육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해서는 점점 덜 살피게 되었고, 인간의 글과 학문에 대해서 점점 더 많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학제를 통과하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참신앙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매 안식일에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설교를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신뢰하는 정신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선지자의 말보다 학위를 가진 사람의 말이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유대교회가 침례 요한과 메시아를 거절한 이유
바로 그런 상황에서 침례 요한이 보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던 침례 요한은 유대교회에서 철저하게 배척당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가르치는 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반드시 랍비 학교의 교육 과정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마치지 못한 자들은 산헤드린에 의해서 밀려나게 되었으며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랍비 학교를 졸업한 자들은 특별한 표시를 달고 다녔기 때문에 그들의 복장에 의해서 인지되었습니다. 랍비의 자격을 얻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떤 참상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보내도 교회와 백성이 거절하게 됩니다. 랍비와 학위 받은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기별도 백성에게 전달될 수 없습니다.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 유대 땅에 태어났을 때, 그런 분위기가 유대나라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는 유대교회에서 인정하는 신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구약성경이 침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침례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기별을 받아들이는 일에 철저하게 실패했으며, 구세주의 기별을 받아들일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랍비들은 “이 사람이 배우지 않았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라고 빈정거렸습니다(요 7:15).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들도 예수에 대한 믿음보다는 유대교회에 대한 믿음이 훨씬 강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하나님 계시의 보관자로 선택하신 유대교회 가운데 구세주께서 나타났음에도,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했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철학과 뒤섞음으로써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과 듣는 백성이 진리를 분별하지 못했고 영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속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져 버렸고 살아있는 신앙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헬라 철학과 알렉산드리아와 아테네의 문화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힘을 빼앗아갔습니다. 이방 교육의 영향력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구세주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헬라 철학과 지식을 통해서 명예와 영향력을 얻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들이 물려준 옛 신앙을 고수하기를 포기했습니다. 왜 포기했을까요? 왜냐하면 그 당시 세상에서 인정받는 교육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을 더욱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회는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진리는 오류 속에 파묻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높은 지식과 학위와 명예를 갈망하자, 영성은 사라지게 되었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절하게 되었습니다. 유대교회는 구세주를 직접 보았고 만졌으며 그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구세주를 못 박아 죽여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이 백성 속으로 들어가서 영향을 발휘하면, 유대교 지도자들의 설교와 가르침이 거짓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유대인 역사의 교훈에 비추어보면, 오늘날 성경의 진리가 있는 그대로 전파되는 것을 막는 가장 큰 세력은 교회 목사들과 성직자들입니다.
물론 경건하고 진실한 성직자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성도들에게 올바른 진리를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
마태복음 24장은 재림의 징조 장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어떤 징조를 가장 먼저 말씀하셨나요? 말세에 나타날 “사람의 미혹”에 대해서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징조를 가장 많이 강조하셨을까요?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징조에서 가장 중요한 징조는 해와 달과 별의 징조도 아니고, 전쟁이나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징조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말세에 기독교회 안에서 나타날 “미혹”에 대해서 6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미혹”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미혹은 신학은 공부했지만 진리는 모르는 목사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습니다. 미혹은 교리를 알지만 살아있는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성직자들에게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사탄은 진리와 거듭남의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성직자를 통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데도 생명이 있다고 믿으며 기만당하고 있습니다.
유대교회가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하는 일에 철저하게 실패했던 이유가 지금 교회 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소수의 사람만 메시아를 영접하고 신약시대를 여는 주인공이 되었던 것처럼, 말세에도 기독교회는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적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말세에 기독교회의 배도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성경은 사탄의 미혹이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가장하고(살후 2:4), 그리스도로 가장하고(마 24:4,5), 성령으로 가장하고(계 16:14), 선지자로 가장하고(마 7:22, 24:11), 의의 사도로 가장하고(고후 11:14,15), 헌신한 종으로 가장(마 7:22)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사탄은 교회를 수많은 교파로 분열시키고, 교회 건물을 사방에 크게 지어서 군중을 모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성경을 가르치며 예배드리고 있는데, 이 모든 일을 누구를 통해 할까요? 교회 지도자들이 주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설교를 듣고 그들을 따라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 채 교회와 교파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은 망할 것이고 잊혀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 밑에서 영생을 얻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고 현세의 안전과 축복을 바라면서 헌금을 드리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헛된 예배”일 수도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8-9)
성도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에서 이탈해 있으면서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회 전체에서 “한 번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으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단 한 번의 속죄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가 용서받았기 때문이다.”라는 거짓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방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거짓 안전”에 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방언현상이 교파를 초월하여 번져가고 있습니다. 천주교와 불교에서도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언이 정말 하늘에서 온 이적일까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이적과 은사는 결코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행 5:32)
이번 호에서는 기독교회를 채우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참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호를 읽는 독자들에게 성령께서 눈에 안약을 발라주는 경험이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