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에서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호흡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호흡”이 “영”으로 번역된 단어의 히브리어(구약성경) 또는 헬라어(신약성경)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만약 이 두 단어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죽음 이후의 상태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루아흐”
한글성경에는 사람이 죽을 때 마치 영혼이나 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루아흐”(ruach)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루아흐”의 뜻은 “성령, 호흡, 바람, 기운”이며 구약성경 전체에 총 389회나 등장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루아흐”는 “성령”이라는 의미로는 94회 사용되었으며 그 이외에는 번역하는 사람이 죽음과 영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에 따라서 “신, 영혼, 영, 호흡, 생기, 기운, 정신, 마음” 등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 이상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루아흐”가 “성령”으로 번역될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음과 생명을 묘사하는 성경절에 나오는 “루아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 또는 “생기”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구약성경에서 히브리 원어 “루아흐”가 어떻게 번역되었으며 또한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전도서 12:7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는 “영”으로 번역되었지만, “루아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죽을 때 “생명의 호흡(루아흐)이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마치 영혼이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처럼 번역함으로써 큰 혼돈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는 말씀이 모든 사람의 죽음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본다면, 악인의 영혼도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 됩니다.
시편 146:4 “그 호흡(루아흐)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계획)가 소멸하리라”
이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사람이 세워놓은 계획은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죽음을 설명하는 이 성경절에서는 “루아흐”가 “호흡”이라는 단어로 올바르게 번역됨으로써, 창세기 2:7의 창조 공식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7:5 “내가 생기(루아흐)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인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 말씀에서는 “루아흐”가 “생기”로 올바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어성경에는 “루아흐”를 “생명의 호흡”으로 번역했습니다. “내가 너희 속에 생명의 숨(루아흐)을 불어넣겠다”(겔 37:5).
욥기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이 내 코에 있느니라”
만일 이 말씀에서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했다면 “영혼이 내 코에 있느니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우습게 되겠습니까?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숨결(루아흐)”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코에 불어넣으셨던 그 “생명의 호흡”을 뜻합니다.
전도서 3:19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짐승도 사람처럼 죽을 때 호흡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짐승에게 어떤 형태의 혼이나 정신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으므로,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호흡”이지 영혼이나 혼백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이 다른 것이지 죽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서 짐승과 사람은 “동일한 호흡(루아흐)”이 있고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루아흐”를 “영혼”으로 번역한다면, 짐승과 사람에게 모두 영혼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영혼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까요? “루아흐”를 모두 “영혼”으로 번역하면 이런 문제들이 수없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전도서 12:7의 완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솔로몬의 말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몸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루아흐”를 어떤 의식을 가진 “혼이나 귀신”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히브리 원어에 대한 지식의 부족과 “영”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서 빚어진 오해입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해서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 당시 사용했던 “흙과 생명의 호흡” 이외에 어떤 것도 가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전도서 12:7에서 “영(루아흐)은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죽음을 묘사했을 때, 그는 생명의 호흡이 그것을 주신 분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호흡”만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신약성경의 “프뉴마”
구약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호흡, 바람, 생기, 성령”을 뜻하는 “루아흐”가 신약성경에서는 “프뉴마”(pneuma)라는 단어로 385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프뉴마”는 성령이나 악한 영으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하는 사람의 사상과 주관에 따라서 “영, 마음, 심령, 정신, 바람”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심지어는 “영혼”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고보 2:26 “영혼(프뉴마)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신약성경에 나오는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영혼”이라는 말을 성경의 난외주에서 찾아보면, “호흡(breath)을 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도서 12:7에서 “영”이라는 표현이 “생명의 호흡”을 뜻했던 것처럼, 이 말씀에서도 “영혼”이라는 표현이 “호흡”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호흡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0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영혼(프뉴마)이 떠나시다”
이 말씀은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생명의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프뉴마”가 “영혼”으로 잘못 번역되었기 때문에, 마치 예수께서 죽는 순간에 그분의 혼이 몸을 빠져나간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다시 한번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7:59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프뉴마)을 받으시옵소서”
이 말씀은 스데반의 생명이 끊어질 때 호흡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치 스데반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잘못 번역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389회 쓰여진 “루아흐” 그리고 신약에서 385회 쓰여진 “프뉴마”가 한글성경에서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원어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이 “성령”을 가리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연관되어 사용되는 경우에는 단 한 번도 불멸하거나 죽은 시체에서 연기처럼 몸을 빠져나가는 “영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음과 영혼에 대한 진실을 정말 알기 원하는 분들은 “신, 영, 영혼”이라고 번역된 말의 원어적 의미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살펴보아야합니다. 누구든지 죽음에 대하여 오해할 수 없으며 죽는 순간에 사람의 혼이 소리 없이 빠져나가 허공을 떠돌아다니게 된다는 미신에 빠질 수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영”이나 “영혼”으로 번역된 원어가 “호흡”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