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fan)의 사전적 정의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얼굴과 몸에 페인트로 태극기를 그리고 축구장에 가는 사람은 팬입니다. 팬은 관중석에 앉아서 응원만 할 줄 압니다. 경기장에서 필요한 희생과 고통은 전혀 모릅니다. 선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고 모든 기록을 줄줄 꿰지만 선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습니다. 예수께서 어디서 태어나셨고 어떤 기적을 행했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정확하게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예수님께 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사 29:13).
팬은 자신이 종교적인 규칙과 의식을 잘 지키기 때문에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하고 각종 헌금과 십일조를 드리고 양로원에 가서 봉사하기 때문에 “나는 제자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팬은 자신이 속한 교파와 교회와 가문과 성경 지식을 근거로 스스로 제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돌 가수에게 열광하는 팬들에게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돌 가수가 반드시 자신과 결혼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신랑이다”라는 강력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살든지, 내 마음속에 어떤 우상이 있든지 예수께서는 나의 신랑이기 때문에 나를 하늘 집으로 데려가실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팬은 입술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제자는 예수를 따라갑니다. 팬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데서 그치지만, 제자는 자신의 삶을 예수께 바칩니다.
팬이었다 제자가 된 니고데모
산헤드린 회원인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몰래 예수님의 팬으로 남아 있으면 잃어버릴 것이 별로 없지만, 제자의 길을 걸으려면 그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이유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요 3:2). 때때로 예수님과 동행하려면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팬은 예수님 때문에 삶이 조금 변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팬은 약간의 손질만 하고 예수를 따르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깊은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팬은 교리와 가르침만 받기 원하지만, 예수님은 복음과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밤에만 찾아오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낮에도 만나서 동행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초청이 니고데모에게는 매우 거북한 부담이 되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예수님을 고소하는 산헤드린 회의가 열렸는데 니고데모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게 됩니다.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 7:50, 51). 니고데모는 더 이상 믿음을 마음속에만 간직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평판이 망가지며 인생 전체를 위험에 빠트리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니고데모가 팬의 길을 떠나 제자의 길로 접어든 때입니다. 산헤드린 회원들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위협했지만, 니고데모는 갈릴리 출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서기 1세기의 어느 날, 그는 예수를 위해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더이상 숨기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서 “당신은 중고차 세일즈맨 같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매우 모욕하는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중고차 세일즈맨은 100% 진실을 말하는 대신, 50% 진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팔려고 하는 자동차의 문제점은 말하지 않고, 좋은 점만 과대 포장하기 때문에 중고차 세일즈맨의 신뢰도는 매우 낮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100%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50% 진실도 아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인 숫자가 줄어들고 매출이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대가가 무엇인지 말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제자가 되는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생애를 바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이집트의 왕 앞에 목숨을 걸고 서야만 했습니다. 다니엘은 페르시아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풀무 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대가를 처절하게 지불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그러나 오늘날 설교자들은 마치 중고차 세일즈맨이나 텔레비전 쇼핑호스트처럼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을 주는 것은 최대한 감추고, 세속적인 정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의 회개로 죄를 모두 용서받고 영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불타는 지옥을 피해서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설교보다 더 노골적인 설교들도 많이 있습니다. “돈방석에 앉고 싶습니까? 들어가나 나가나 복 받고 싶습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건강과 재물을 통째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죄를 버릴 수 없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가질 수는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안수받으면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설교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전형적인 팬클럽 회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팬들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주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복음을 원합니다. 그리스도 팬클럽 회원들이 교회를 향해서 하는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주일마다 교회 가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식사 기도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동차 범퍼에 예수님 물고기 표시를 붙히고 뒷 창문에는 ‘I love Jesus’ 스티커를 붙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제 삶이 방해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진실은 이것입니다. “회개 없이는 용서도 없습니다. 죄를 버리지 않는 회개란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개혁이 없는 신앙은 자기 기만입니다. 의의 열매가 없는 은사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모든 축복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사도 야고보의 가르침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8, 9).
어떤 비용과 대가가 필요한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팬클럽을 갖고 있는 단체는 기독교회입니다. 수백개의 교파들이 저마다 거대한 팬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를 슈퍼스타로 모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팬클럽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27). 온 마음과 생애를 바쳐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때때로 부모의 반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호적에서 이름을 파 버리겠다는 호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가족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미워하라”는 표현은 제자의 길을 걷기 위해서 예수님을 어느 정도까지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쪽 마음으로는 결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할 때, 모든 사람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 14:28~30).
예수께서는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미리 정확하게 계산해 본 후에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팬들은 비용과 대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계약금도 필요 없고 원금도 없이 공짜로 하늘 집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편안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지만, 결국에는 제자 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도무지 너를 모른다”는 예수님의 선언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제자되는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직장을 잃어버릴 수 있고, 가족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버릴 수 있음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인가?
태어나면서부터 좁은 길을 좋아하고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거듭나고 변화된 마음을 가진 사람만 제자의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성령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생애 속에 역사하시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펼쳐지면서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의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변화는 품성과 습관에서 나타나고 생활 속에서도 나타나게 됩니다. 과거의 옛 생애와 현재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신앙과 품성은 일시적 선행이나 일시적 악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표현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은혜 없이도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도덕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예의 있게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자존심 때문에 누추하고 비겁한 모습을 감출 수도 있습니다. 이기심을 품고 있는 사람도 너그럽게 행동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사탄 중에서 누구의 편에 속했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누구에게 가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십니까? 여러분의 애정과 관심이 어디에 몰려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면 여러분의 생각은 그리스도께 있을 것이며, 그분을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바에 따라 몸과 마음과 생애를 바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일하게 될 것이고, 주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주께서 무엇을 좋아하고 기뻐하는지 살피게 될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그분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성령의 역사 이전과 이후는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전에는 미워하던 것을 지금은 사랑하게 되고, 전에는 사랑하던 것을 지금은 미워하게 됩니다. 교만하고 자기 주장만 하던 사람이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며, 허영심이 많고 거만하던 사람이 침착하고 조심스럽게 됩니다.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절제하게 되고, 방탕하던 자가 깨끗한 자가 됩니다. 세속적인 습관과 허영을 버리게 됩니다. 외모 단장에 힘쓰지 않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할 것입니다(벧전 3:3, 4).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분명한 증거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기를 좋아하고 의를 사모하며 가난한 자의 멍에를 풀어 주고 도둑질한 물건을 돌려주며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 그분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입으면,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서 샘솟게 됩니다. 예수께 나가 모든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모든 말씀과 계명은 가벼운 것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즐거움이 되고 희생은 기쁨이 됩니다. 흑암으로 덮였던 인생의 길이 의의 태양으로 환해지게 됩니다.
제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
각 교파마다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제자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하는 소수의 진실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삶 속에 문제가 많고 성품에 결함이 많은 것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내가 성령으로 거듭났는가?”라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낙심하여 뒤로 물러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 속에는 자신의 부족과 문제 때문에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가 낙담 속에 빠질 때 기도를 통해서 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나가 낙망과 좌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은혜와 위로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사탄에게 정복당했다고 느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거나 거절하거나 배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말하기를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예수께서도 우리가 죄 때문에 스스로 낙망할 것을 염려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6:27).
죄를 범했을 때, 유일한 해결책은 가난하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가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참된 중생을 경험했을지라도 유혹을 받을 수 있고 죄의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과 죄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혹시 죄를 범했을 때에는 빨리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죄를 움켜잡고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애 전체를 주님께 바치는 경험을 반드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쳐야만 우리 속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제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영적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예수께 가까이 갈수록 내 자신의 허물이 더 많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 보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 영적 눈을 더 밝게 해 주시고, 양심을 예민하게 해 주셔서 우리 자신의 부족과 감추어진 이기심을 예수님의 완전하신 성품과 비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예수님과 나의 차이점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예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내 자신의 공로와 행함과 선함을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더 주 앞에 나가 머리를 조아리고 겸손하게 됩니다. 더욱더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됩니다. 더욱더 성령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애를 날마다 바라보고 그것을 닮고자 하는 거룩한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사탄의 미혹이 힘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께서 생명력 있는 감화를 통해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령께서 성도 여러분의 마음 깊숙한 곳을 만져 주셔서 주님을 위해 생애를 남김없이, 후회 없이 바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주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여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