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살펴보면, 상상할 수 없는 권세를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그대로 받을 것이다.”라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에는 조건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가지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

 

예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조건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유일한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고도 얻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주신 한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예수께서는 기도의 조건을 말씀하실 때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다섯 번 이상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 알면 하늘의 창고를 열어서 무엇이든지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름과 성품과 영광은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청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름을 반포하시고, 성품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8,19)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영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성품으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기도 내용이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요?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아무리 열렬하게 기도해도 ‘잘못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정욕과 자랑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땀을 흘리면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와 반면에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면 기도를 잘 못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구하면 아름다운 표현이 없고 말이 어설프다고 할지라도 기도는 응답됩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가 정말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가를 보시고, 무엇을 구하는가를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에 있는 동기와 목적을 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을 구하고 사역의 열매를 구하고 봉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명예와 인기와 출세를 위해서 신령한 것을 구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런 기도가 얼마나 많이 드려지는지 모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이유와 목적이 순결해야 합니다. 자아가 섞여 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탄이 그런 기도에 응답해서 원하는 것을 나눠줍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깊은 미혹에 빠져서 사탄의 영을 따라가게 됩니다. 진실하고 경건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응답받는다

예수께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1800년대에 스펄전 목사님이 드린 기도는 우리에게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해 보여도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위해서 길을 골라주시옵소서. 그 길이 반반하든 거칠든 간에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꾸불꾸불하거나 똑바르거나 주께서 인도하는 길은 평강과 안식의 길이라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주여, 저는 감히 제가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택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께서 저를 위해서 길을 선택해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제가 그 길로 나가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잔을 취하사 그 잔에 기쁨이든지 슬픔이든지 채워주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겠습니다. 주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한 대로, 좋은 일이든지 굳은 일이든지 골라주시면 저는 그것을 받겠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 응답받을까요? 100% 응답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고르시고 선택해 달라고 간구하는데, 응답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응답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는 길을 자신이 정하기 때문입니다. 내 잔에 내가 원하는 것을 채워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응답받는 방법과 시기를 내가 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망하게 하고, 아프게 해서라도 내 교만과 이기심을 꺾어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기도는 내 꿈과 내 성공과 야망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들로 우리의 기도가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응답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때때로 응답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가면, 이 땅에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늘에 가서 면류관을 주 앞에 내려놓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그때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간구를 거절하신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이 의롭고 거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만 응답된다면, 뭐하러 기도합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텐데요.”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받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성품과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주십니다.

 

천국 은행 문을 활짝 여는 방법

하늘은 은행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천국 은행의 수표에 내 이름을 쓰고,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요구하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그대로 받으리라.”

천국 은행에는 우리 소유의 예금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국 은행에 엄청난 보물을 갖고 계시고 무한한 신용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표 위에 당신의 이름을 쓰면 무엇이든지 은행에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기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응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신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수표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내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두 가지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기도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나의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왜 응답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응답하지 못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그릇의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어떤 사람은 간장 종지이고, 어떤 사람은 큰 대접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릇에 맞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만 원만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테니 천만 원을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천만 원을 달라고 기도해도 만 원만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릇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요구해도, 아무리 좋은 것을 요구해도 그 아이의 수준에 맞게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든지 그분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험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백지수표에 담대하게 천만 원을 쓸 것을 기대하시는데, 우리는 백 원만 써서 “주님, 이것만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께 충분히 요구해야 합니다. 시편 81편의 약속대로 ‘우리 입을 크게 열고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기도할 때 담대하게 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하면 반드시 응답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구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왜 주님의 뜻대로 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주께서 원하지 않은 것은 결코 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는 것입니다.

 

천국 은행에서 거절하는 경우

어떤 사람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는데, 그 사람 옆에 칼을 든 강도가 서 있다면, 은행에서 돈을 그 사람에게 내줄까요? 돈을 내주지 않습니다. 왜 안 줄까요? 왜냐하면 돈을 줘봤자 강도에게 빼앗기고 이용만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사탄의 덫에 걸려 있고, 사탄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을 위해서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심오한 과학입니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야만 이해가 되는 과학입니다.

 

Do you know? 하나님의 응답이 지체되는 이유

한 번 기도해서 응답받을 수 있다면, 기도에 대한 글을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조지 뮬러는 63년 동안 한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조지 뮬러의 죽음을 본 후 그 친구는 회심하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기다리라고 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안 된다”는 응답을 주시기 위하여 63년을 기도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기도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마음이 겸손해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사람 형편이 어려워지고 깊은 병에 걸려서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도 응답이 지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더 낳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에 “안 된다.”고 대답하실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아주 불편한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나아가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중의 사도 바울, 온갖 방언과 기적을 일으켰던 바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응답하지 않으셨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만약 하나님께서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돈으로 응답하고, 기도할 때마다 모두 들어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내가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기도 응답을 많이 받을수록 교만해지고 세속적이 되어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에는 응답하시고 어떤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기도의 응답은 철처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에 가면, 응답받지 못했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소원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을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