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부, 환자들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많은 경우에 건강한 사람들은 날마다 하늘로부터 받는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질병이 닥쳐오면, 비로소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나 건강한 자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급함에서 건지시느니라”(시 107:19-20)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병자들의 고통과 질병을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2천 년 전에 이 땅에서 봉사하시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자비로운 의사십니다. 그분께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향유와 모든 약한 것들을 고쳐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가 병 낫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신자들이 교회보다 기도원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건강할 때에는 내 교회 신자이지만, 죽을 병에 걸리면 기도원 원장의 신자가 됩니다. 나도 목사이고 기도원 원장도 같은 목사인데, 일단 죽을 병에 걸리면 기도원 목사에게 안수를 받으려고 내 교회를 떠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기도원이 붐비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목사나 신부 그리고 어떤 지정된 사람을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 고통당하는 자들이 직접 그리스도께 나와 치유하시는 능력을 붙잡을 것을 호소하십니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병실이 벧엘(하나님의 집)로 바뀔 수 있습니다.

 

치유 응답을 받는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병자의 기도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귀 기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오셔서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를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약속과 축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갈 수 있지만, 치료에 대한 약속은 회개하는 자에게만 이루어집니다.

 

  1. 생명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원인이 없는 질병은 없습니다. 생명의 법칙을 무시하는 삶을 살면 질병이 들어오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마음대로 먹고, 마음대로 살아감으로써 무거운 질병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옷 입고,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건강의 법칙을 무시했습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죄된 생활이 영혼과 몸을 쇠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셔서 건강을 축복으로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들은 전과 동일한 부절제와 방종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의 회복을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의 죄와 부절제를 조장하시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환자들은 믿음으로 치료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버려야 할 부절제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결정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 위해서, 병자들은 죄를 버리는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하며, 동시에 건강에 유익한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환자들은 건강의 법칙을 지켜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회개하고 자비를 베풀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간구하라”(약 5:16). 병 낫기를 기도하는 환자들은 과거에 하나님께 범한 죄와 사람들에게 범한 죄를 고백하고 피해를 보상하며 화해하고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죄가 있으면 그리스도께 나가 사함을 받은 다음, 환자 자신의 필요를 겸손하게 간구해야 합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치유의 은혜가 내려와서 환자에게 놀라운 치료의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회개와 자비의 심령을 달라고 주님께 매달리는 영혼에게 치유의 은혜가 내려질 것입니다.

 

환자를 위한 중보 기도

환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롬 8:26). 우리에게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 환자에게 최선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사상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십니다. 주님께서 이 환자를 가장 잘 아십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이 환자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환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께서 이 영혼을 사랑하는 크기와 깊이가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이 환자의 건강을 회복해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이 환자가 회복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주님의 은혜로 위로해 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그에게 오셔서 끝까지 지켜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작과 끝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만이 환자가 죽음의 병에서 다시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남은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 아십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병 낫기를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니다(눅 22:42)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신 후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러한 기도가 흘러나왔는데, 하물며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어떠한 기도가 흘러나와야 하겠습니까?

기도로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연계 속에 넣어두신 치료의 방법들을 이용하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협력하고, 회복을 위해서 스스로를 가장 적합한 상태에 두는 것은 믿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유익을 취해야 하며, 또한 천연계의 법칙과 조화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치료 방법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응답으로써 가장 쓴 잔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손이 그 잔을 우리의 입술에 대어주시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들이시여, 그대들이 어떤 인간 의사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았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생명은 그대들이 태어날 때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처럼, 돌아갈 때에도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육체의 병만을 위해서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육체뿐만 아니라 심령의 병도 고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 우주에서 그대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대의 최선을 위해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5부, 이렇게 기도하라

이제 마지막으로 기도와 관련된 말씀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하기 전에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희생을 바라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면 우리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드려지게 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최고의 유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기도하기 전에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딤전 6:16)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날개를 접고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칩니다. 기도는 우리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신(神)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어떤 분들은 친구에게 말하듯이 기도하라고 하니까 하나님을 함부로 대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러한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친구에게 말하듯이 기도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고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기도하라는 것이지 함부로 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성도들은 기도하기 전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왜 찬송을 불렀을까요?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마음이 준비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윌리엄 로우는 기도의 사람이었는데, 그는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성호를 여러 번 부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과 능력을 묵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거룩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주여, 자비로우신 구세주여.”를 부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그분의 영광으로 채우고 그런 다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기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이루는 것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함부로 생각 없이 말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런 마음과 태도로 주 앞에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너무나 가볍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땅의 대통령 앞에 나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나가게 됩니까? 하물며 우주의 왕이고 온 천사들의 경배를 받는 분에게 나아가는데 마음과 태도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기도하기 전에 기도할 수 있는 영, 즉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하늘 높이 들어올려 주십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는 다릅니다. 감동적이고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여러 가지 소원을 말하고 요구할 수 있지만, 결국 기도는 다음과 같은 일이 성취되길 소원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우리 위에 계시면 기도는 응답된 것입니다. 이것 이상 무엇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목적을 갖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도했으면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혹시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까? 너무 바빠서 짧게 드리고 일어서는 기도, 기도할 때 생각이 사방팔방으로 떠돌아다니는 기도, 똑같은 내용을 주문처럼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셔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한 기도, 무엇을 간구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기도, 이러한 기도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은 다음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그대 능력의 근원임을 기억하라. 성급한 기도를 드린 뒤, 소홀히 여겨지거나 잊혀지게 될까봐 염려하는 일을 돌보러 급히 달려가는 사람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그는 다만 급하게 하나님을 조금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는 육신적, 영적 능력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주님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는 곧 지쳐버린다. 그는 하나님 영의 고상하게 하고 고무시키는 감화를 느끼지 못한다. 그는 참신한 생명에 의하여 기력을 얻지 못한다. 그의 지친 몸과 피곤한 머리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접촉을 통하여 위로함을 받지 못한다.”(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글 3권, 194)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며 특권입니다. 기도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던지고 일어설 수 없는 시간입니다. 조용히 앉아서 듣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사람, 존 하이드

존 하이드는 기도할 때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간단하게 소원을 아뢰고 가만히 기다리는 기도를 반복해서 드렸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조용히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는지 들으려고 기다린 것입니다.

하이드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그분의 뜻을 물으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듣는 사람들마다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의 복음 사업은 인도에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알려주는 통보가 아닙니다. 기도는 소원을 간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구하면 놀라운 기적이 생깁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우리가 정말 이 말씀을 믿으면, 기도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연결되어 받아들이고 채우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영적인 빈곤이 하늘의 풍요로움으로 채워지고, 영적인 죽음에서 생명을 받아들이게 되고, 내 중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존 하이드가 기도하는 모습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존 하이드와 함께 기도했는데, 그는 존 하이드의 기도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존 하이드는 무릎을 꿇더니 5분 동안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거룩하심과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했습니다. 5분 동안은 내 심장 소리와 존 하이드 심장의 두근거림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한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잠시 후에 존 하이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입에서 “오, 하나님!”이라는 말이 새어나왔고, 다시 5분 동안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가?’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때 존 하이드의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기도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중보하고자 하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높이 들어올리고 “이 영혼을 구원해달라.”고 간절하게 구했습니다. 메말라 있던 내 마음속에 하늘의 생명과 평안이 흘러 들어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받았음을 알았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나는 참된 기도가 무엇이며, 기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시여,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분위기가 달라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과 대화하고 싶으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답답하니까, 앞길이 보이지 않으니까, 너무나 기가 막히니까, 주님께 찾아가 마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죄를 주님께는 고백할 수 있으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과 고통과 슬픔을 그분 앞에 내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걱정과 염려를 하나님과 직접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형편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눈물과 고민을 아십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와 양심의 가책과 너무나 바쁜 생활 때문에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아십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애환에 동참하길 원하시며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열 자녀가 있더라도, 부모는 가장 약하고 부족한 자녀에게 온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상심한 자, 떨고 있는 자를 마치 이 세상에 그 영혼 혼자 있는 것처럼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음껏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목적에 일치하는 것이라면 마음껏 간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수없이 실망시켰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그분의 사랑과 섭리와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약해졌고 의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용기를 내고 다시 믿음으로 기도드리기 바랍니다.

‘나는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을 순종하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찬미를 부르면서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짐이나 의무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가 누려야 할 복이고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과 능력을 주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나와 만나자.는 초청이고 호소입니다. 자녀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부탁하러 가는 것이 짐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주기 위해서 기다리는 분입니다. 자녀가 슬픔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감싸고 보호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 하늘 아버지께 우리는 날마다 자주 가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달라고 호소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을 때 행복하고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원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5-6)

 

기도는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울면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픈 자녀 곁에서 밤새 지켜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부르짖을 때 오셔서 지켜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을 믿는 사람은 기도할 때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의 삶은 아침에 시작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필요를 간절히 느끼고, 그분 앞에서 사는 것처럼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실 것입니다.

능력의 전도자, 드와잇 무디의 열렬한 기도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주, 나의 구세주시여, 무엇을 위해서든지 나를 사용해 주시옵소서. 어떤 일에든지 나를 써주시옵소서. 여기 내 가난한 심령이 있사옵니다. 빈 그릇인 나를 주의 영광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여기 죄스럽고 고민하는 내 심령이 있사옵니다. 그것을 뒤엎고 주의 사랑으로 새롭게 하소서. 결코 흔들림 없는 확고부동함을 주시고 내 신앙이 더욱 강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 마음으로부터 ‘예수님, 나를 필요로 하시오매 내가 곧 나서리라.’는 말이 가능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독자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하늘 성소로 올려질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참된 기도자의 길로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4부, 하나님께서 응답하는 사람들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지 않으십니까? 죄에 붙잡혀 있고 세상에서 쓰러져 있으면 기도해도 소용없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죄에 빠져 있는 사람일수록 주님께 더 매달리고 더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종종 우리 귀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영혼이 너무나 메말랐기 때문에 기도해도 소용없다. 너는 위선자야.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니?” 사탄의 그런 속삭임이 들려올 때 머리를 흔들고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보면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응답은 내 느낌이나 내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간절함을 보시고 절규를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그들이 경건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와 죄에 깊이 빠져 있었고 거룩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한 공로와 행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명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에게 관심을 가지셨더라”(출 2:23-25)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셨습니까? 애굽에서 재미있게 살면서 만족하는 사람을 구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고통하며 부르짖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건져주십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자녀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찬미를 부르면서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의 기도는 응답한다

부모는 자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일까요?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성령께서 양심 속에 “이 길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고 말씀하실 때 따라가는 자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 성도들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144,000인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144,000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144,000인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마음껏 믿고 응답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144,000인)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하나님께서 왜 마음껏 응답하실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144,000인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들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고, 입에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1,5)

 

144,000인은 주님의 이름, 주님의 명예를 위해서 구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구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응답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은 하나님께서 마음껏 응답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의 속도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기도 응답은 많은 경우에 내 자신의 신앙과 영성에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떤 도전에 직면하게 될까요? 기도하는 사람은 거룩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도전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하늘 문을 열고 기도 응답을 받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거룩한 생애란 어떤 생애인가요? 죄와 세상을 버린 삶입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삶입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뜻에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Life of Jesus 2권, 373)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전체를 바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복종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런 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그럼, 선생님은 하나님께 어떤 것을 바치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떤 말씀에 순종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떤 계명을 끝까지 범하기 원하시나요?”

십자가 앞에서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이것은 십자가 앞에서 이루어지는 자연스런 변화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열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거룩함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경험’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경험’,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경험 속에 있으면,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주님의 뜻, 주님의 명예만 바라보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Do you know? 해로운 것을 요구해도 응답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해로운 것을 요구해도 응답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을 끈질기게 구하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들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하는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 106:15)

 

파리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연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기도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그 결과 연약해지고 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맞지 않는 기도에 응답해 주셨을까요? 그들이 영적으로 너무 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왕을 세우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끝까지 요청했을 때 그것을 들어주셨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한 왕들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들이 원망하고 신앙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들도 그렇게 합니다. 자녀들이 잘못된 것을 끈질기게 원하면, 어떤 때는 허락해줘서 스스로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일단 응답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고 그들 스스로 결과를 느끼고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 우리는 길을 멀리 돌아가게 됩니다.

3부,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기도 응답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예수께서 여러 번 반복해서 거짓말하셨다는 것입니까? 물론, 아닙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가 응답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지 하나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기사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대하는 사람의 기도가 응답받는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아야 할 것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령함과 경건은 기도와 비례합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기도에 대하여 새로운 마음과 사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기도에 놀라운 능력이 함께할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는 어떤 분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기도의 실패는 우리가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천주교회가 떨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대각성이 일어났다. 요한  웨슬리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세계가 한 사람의 교구가 되었다. 조지 휘트필드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수많은 무리가 구원을 받았다. 조지 뮬러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수천 명의 고아가 양육받았다. 지금도 하나님만 보는 자들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면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의 기도가 응답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며”(마 5:8)

 

기도 응답은 말로 받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응답은 철저하게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어떻게 기도할까요? 더럽고 세속적인 것을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의 청결을 구해야 합니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 마음의 은밀한 목적과 동기가 진실하며, 교만과 자아 본위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사심이 없고 어린애같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The mount of blessings, 25)

 

어떤 마음이 청결한 마음입니까? ‘겸손한 마음, 사심이 없는 마음, 어린아이 같은 마음, 자기본위로 생각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께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했는데, 마음의 무엇이 청결하다는 것일까요? 동기와 의도와 목적이 청결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영적인 것을 구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 영적인 것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에 감추어진 은밀한 동기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유와 목적이 순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기도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가?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통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주문서를 작성해서 하나님께 보내면서 “이번 달에는 이것을 해주시고 다음 달까지는 저것을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일이 부탁하지 않아도 다 아십니다. 이것저것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이방인들)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7-8) 

 

복을 비는 기도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 “주여,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무엇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이렇게 드려지게 됩니다. “주님, 지금 제가 통과하고 있는 이 고통의 의미가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이 저에게 이루어질까요? 주님, 제 아들이 신앙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협력할 수 있을까요?” 이런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기도를 드린 다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기도하고 나서 성경을 펼칠 때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만약 성경을 펼쳤는데 “돌로 쳐서 죽이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스스로 목매어 죽는지라.”는 말씀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참 우습게 들리는 말이지만, 많은 분들이 충동이나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확신과 평안으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기도한 사람이 어떻게 확신과 평안을 얻게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1. 양심을 통해서 알려주신다: 기도하면 양심을 통해서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택하라. 이 길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주십니다. 그 음성을 들으면 확신과 평안을 갖고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심을 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마음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런데 살다보면 주님의 뜻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번잡하거나 혼돈스러워서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1.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신다: 기도하기 전에 말씀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읽으면 마음이 정리되면서 하나님의 뜻이 점점 분명하게 인식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야 할 길이 보이고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말씀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 위에 서서 드리는 기도는 응답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의 뜻대로 기도하고 싶어도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 말씀과 예언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통성기도, 방언기도, 철야기도, 새벽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엉뚱한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그것이 지금 기독교에서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도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드려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방언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방언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방언을 왜 주고, 어떤 사람에게 방언을 주는가를 성경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방언을 달라고 기도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상한 영이 찾아와서 미혹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먼저, 성경의 진리가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요즘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고 연습합니다. 그런데 내가 듣는 음성이 하늘에서 왔는지 지옥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 귀에 들리는 음성, 내 마음에 들리는 음성, 모두 성경으로 가져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말씀으로 지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탄도 천사로 가장하여 음성을 들려줄 수 있기 때문에 음성을 듣는 일은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한 사람은 기도 후에 마음에 평강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알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 말씀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면, 그 기도가 응답받을까요? 반드시 응답받게 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했습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대로 따라가면 영생이 있고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늘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마음속에 풍성하게 깊이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그것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해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죄를 버린 자의 기도가 응답된다

우리는 삶 속에 남겨둔 한 가지 죄가 기도의 능력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죄를 버린 사람의 기도가 응답받습니다. 죄를 범하고 정죄를 받아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상태에서는 기도의 능력이 나올 수 없습니다.

1700년대에 인도에 파송된 존 하이드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존 하이드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인도에 온 후 열심히 설교하고 전도했지만 열매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라서 깊이 좌절했다. 그러나 성령께서 양심을 통해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존 하이드야, 자아가 죽고 장사되어야 한다. 너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썩은 냄새는 영혼들을 진리로부터 멀리 달아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죄를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니? 내가 여러 번 책망했잖니? 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시는 분이라고 설교하지만, 네 자신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경험을 못하고 있잖니. 왜 내가 알려주는 죄와 악한 습관을 그대로 붙잡고 있니? 그것이 네 사역으로부터 하늘의 능력을 빼앗고 있단다.’ ”

존 하이드 선교사는 성령의 강력한 책망을 듣고 고뇌하다가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나는 울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죄, 특히 얽매이기 쉬운 죄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에게 승리를 주시든지 아니면 고국으로 돌아가 다른 직업을 구하게 해주시든지 둘 중 하나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때까지 저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존 하이드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존 하이드는 자신을 붙잡고 있는 죄로부터 풀려나기 시작했고 참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드린 수많은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후일에 그는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머물러 있을 때,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일은 주님 자신이 하신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높이 들림을 받으셔야 한다. … 우리와 그분 사이에는 ‘자아’가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그분이 당하신 대로 우리 자아도 그대로 당해야 한다. … 자아가 장사되지 않으면 옛 사람의 악취가 풍겨 영혼들이 도망하게 된다. …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가 높이 들림을 받으신다면 그분은 영혼들을 반드시 자기에게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굴복하고 죄를 버리는 사람의 기도를 응답하실까요?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됩니다.

기도하는데 응답받지 못하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기도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기도하면 주께서 움직이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를 구하고 긍휼하심과 복을 구하려고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하나로 연결될 때 기도가 응답됩니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의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가를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의 마음과 삶이 정결한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의 동기와 목적이 순결한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내 영적 상태도 모르게 됩니다.

 

Do you know? 저는 기도할 줄 모르는데요

신앙이 좋은 사람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받지 못한 시골 할머니도,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도에 대해서 놀라운 말씀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말씀이 무슨뜻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잘못 구해도, 무지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도,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면 성령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우리의 소원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간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기도하고 싶지만, 말이 어눌하고 신앙이 부족해서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의 진정한 소원을 보시고 하나님께 전달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표현이 잘못되고, 심지어 잘못된 것을 구할지라도, 성령께서 여러분의 동기와 목적을 보시고 하나님께 올바로 간구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기도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려울 때, 외로울 때, 고통스러울 때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자유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응답하고 무엇을 주실지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 아버지를 믿는 자녀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대화하고 소통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가정에서 아버지와 자녀가 서로 말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그 가정의 분위기가 어떨까요? 끔찍할 것입니다. 대화가 없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하고,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자의 마음속에 평안과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Do you know? 기도하면 믿고 전진해야 한다

인도에 판티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난했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여인과 고아들을 위해서 평생 봉사했습니다. 그녀는 노년에 들어서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여인과 고아를 먹이고 입혔지만 한 번도 부유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 날마다 양식을 주시기에 행복했습니다. 하루하루 필요한 것 이상은 조금도 받지 못하고 은행통장도 없고 수입도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에 두려울 것도, 잃을 것도, 후회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주께서 그런 사람의 앞길을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2부, 기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기도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살펴보면, 상상할 수 없는 권세를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그대로 받을 것이다.”라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에는 조건이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가지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3-14)

 

예수께서는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조건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유일한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고도 얻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주신 한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예수께서는 기도의 조건을 말씀하실 때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다섯 번 이상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의미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 알면 하늘의 창고를 열어서 무엇이든지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이름과 성품과 영광은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청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름을 반포하시고, 성품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8,19)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성품과 예수님의 영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말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성품으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과 기도 내용이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내 영광’을 추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요?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아무리 열렬하게 기도해도 ‘잘못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정욕과 자랑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서 땀을 흘리면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와 반면에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면 기도를 잘 못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구하면 아름다운 표현이 없고 말이 어설프다고 할지라도 기도는 응답됩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가 정말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가를 보시고, 무엇을 구하는가를 보십니다. 마음의 중심에 있는 동기와 목적을 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을 구하고 사역의 열매를 구하고 봉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명예와 인기와 출세를 위해서 신령한 것을 구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런 기도가 얼마나 많이 드려지는지 모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동기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이유와 목적이 순결해야 합니다. 자아가 섞여 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탄이 그런 기도에 응답해서 원하는 것을 나눠줍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깊은 미혹에 빠져서 사탄의 영을 따라가게 됩니다. 진실하고 경건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응답받는다

예수께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1800년대에 스펄전 목사님이 드린 기도는 우리에게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나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길이 아무리 캄캄해 보여도 주의 오른손으로 나를 인도하시며 나를 위해서 길을 골라주시옵소서. 그 길이 반반하든 거칠든 간에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꾸불꾸불하거나 똑바르거나 주께서 인도하는 길은 평강과 안식의 길이라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주여, 저는 감히 제가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택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주께서 저를 위해서 길을 선택해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제가 그 길로 나가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잔을 취하사 그 잔에 기쁨이든지 슬픔이든지 채워주소서. 그리하시면 제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겠습니다. 주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한 대로, 좋은 일이든지 굳은 일이든지 골라주시면 저는 그것을 받겠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면 응답받을까요? 100% 응답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고르시고 선택해 달라고 간구하는데, 응답하지 않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응답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는 길을 자신이 정하기 때문입니다. 내 잔에 내가 원하는 것을 채워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응답받는 방법과 시기를 내가 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망하게 하고, 아프게 해서라도 내 교만과 이기심을 꺾어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기도는 내 꿈과 내 성공과 야망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들로 우리의 기도가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응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응답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때때로 응답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도는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가면, 이 땅에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늘에 가서 면류관을 주 앞에 내려놓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여, 그때 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간구를 거절하신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이 의롭고 거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만 응답된다면, 뭐하러 기도합니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텐데요.”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받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성품과 성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주십니다.

 

천국 은행 문을 활짝 여는 방법

하늘은 은행과 같은 곳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천국 은행의 수표에 내 이름을 쓰고,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요구하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그대로 받으리라.”

천국 은행에는 우리 소유의 예금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국 은행에 엄청난 보물을 갖고 계시고 무한한 신용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수표 위에 당신의 이름을 쓰면 무엇이든지 은행에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기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응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신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수표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내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 두 가지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기도의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나의 하나님이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왜 응답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응답하지 못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그릇의 사람이라는 것을 아십니다. 어떤 사람은 간장 종지이고, 어떤 사람은 큰 대접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릇에 맞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만 원만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테니 천만 원을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천만 원을 달라고 기도해도 만 원만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릇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아무리 많은 것을 요구해도, 아무리 좋은 것을 요구해도 그 아이의 수준에 맞게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든지 그분의 결정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험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백지수표에 담대하게 천만 원을 쓸 것을 기대하시는데, 우리는 백 원만 써서 “주님, 이것만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 기도는 하나님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께 충분히 요구해야 합니다. 시편 81편의 약속대로 ‘우리 입을 크게 열고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것’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

 

기도할 때 담대하게 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하면 반드시 응답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대하게 구하지만 주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왜 주님의 뜻대로 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본인 스스로 주께서 원하지 않은 것은 결코 구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는 것입니다.

 

천국 은행에서 거절하는 경우

어떤 사람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갔는데, 그 사람 옆에 칼을 든 강도가 서 있다면, 은행에서 돈을 그 사람에게 내줄까요? 돈을 내주지 않습니다. 왜 안 줄까요? 왜냐하면 돈을 줘봤자 강도에게 빼앗기고 이용만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사탄의 덫에 걸려 있고, 사탄에게 끌려다니고 있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을 위해서 사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심오한 과학입니다. 기도는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야만 이해가 되는 과학입니다.

 

Do you know? 하나님의 응답이 지체되는 이유

한 번 기도해서 응답받을 수 있다면, 기도에 대한 글을 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조지 뮬러는 63년 동안 한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조지 뮬러의 죽음을 본 후 그 친구는 회심하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기다리라고 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안 된다”는 응답을 주시기 위하여 63년을 기도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원과 관련된 기도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마음이 겸손해지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사람 형편이 어려워지고 깊은 병에 걸려서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도 응답이 지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더 낳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에 “안 된다.”고 대답하실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아주 불편한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나아가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중의 사도 바울, 온갖 방언과 기적을 일으켰던 바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응답하지 않으셨을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만약 하나님께서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돈으로 응답하고, 기도할 때마다 모두 들어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내가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기도 응답을 많이 받을수록 교만해지고 세속적이 되어 멸망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에는 응답하시고 어떤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기도의 응답은 철처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하늘에 가면, 응답받지 못했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소원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을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1부,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번은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이 한 소년에게 “기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하며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소년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도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할까요? “하나님께 내 소원과 필요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한번은 어떤 집사님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달에 우리 아들이 꼭 일류기업 00회사 입사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아들이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크게 시험받아서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 맞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제가 드린 기도에 응답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의 심부름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가 나의 요청으로 채워져 있으면, 그런 기도는 거지가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구걸하는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기도는 방향이 정해진 소원을 간구하는 것인데, 그 방향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당신의 뜻대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처분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제 인생의 처음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이시여, 저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최선을 위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당신께 제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깁니다. 부디 당신의 선하신 뜻을 제 속에서 이루어 주옵소서.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로부터 영적 생명을 얻는 교제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배드리고 찬송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죄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영적 생명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살아있는 교제가 아닙니다. 그런 기도는 형식적인 교제이고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하는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교제는 허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나는 성화되지 않을까? 왜 나는 죄를 이기지 못할까?”라고 고민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늘과 교제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는 기도를 드려야만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마음의 문을 막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이유 :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말을 조리있게 잘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말에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말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권능의 손을 어떻게 인간의 말과 논리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기도는 하나님의 팔을 꺾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바꾸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는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내 소원과 필요를 아뢸지라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통해서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무엇을 얻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 그 다음부터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그 뜻대로 행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는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드려야 합니다. 1700년대에 독일에 친첸도르프 백작이 있었는데, 그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친구처럼 교제했습니다. 사람들이 친첸도르프 백작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작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친첸도르프 백작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나는 기도의 응답을 구하기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서 그분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큰 소원과 기대를 갖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풍요롭고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간구하지 않은 것들까지 풍성하게 나눠주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응답을 얻게 되는 비결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진실한 친구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의 친구가 전혀 연락하지 않다가 돈을 꿀 때나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얌체 같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그런 식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1년에 두어 번씩 부모를 방문하는데, 그들이 오는 이유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유산상속 때문이라면, 부모 마음이 어떨까요? 참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순결한 마음,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기 위해 움직이십니다. 일일이 요청하지 않고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최선의 것을 주십니다.

성경은 계속 기도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기도보다는 내가 노력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은 그렇다고 하지 않지만, 실제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내 노력으로 다 하고 나서 안되면 그때 주님께 가서 기도하겠다.’라는 생각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 속에는 주님의 뜻과 계획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는 기도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가 미신과 의미 없는 주문이 되어버립니다.

 

기도와 의무의 관계

두 사람이 농사를 짓는데, 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고 다른 사람은 불신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씨를 뿌려놓은 다음에 밭에 가서 일하는 대신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는 기도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누구의 농사가 더 잘 되었을까요? 불신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의 의무와 노력을 대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께 어떤 것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이 생겼을 때 의사에게 가서 진찰받기를 원하실까요? 아니면 의사에게 가지 않고 기도를 통해서 치유되기를 원하실까요? 이런 질문은 한마디로 답변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태도를 요구하시며, 그러한 우리의 태도에 축복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노력하다가 안될 경우에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기도는 비오는 날에만 기도하는 구두닦이 소년의 기도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기도와 의무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하나님께 여쭈어 보면서 우리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우리의 의무를 조심스럽게 수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대로 밀고 나가다가 스스로 탈진되어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양심과 지성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분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기도와 의무에 대한 문제를 예화를 통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소년이 물에 빠졌는데, 구명대가 근처 나무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선택할수 있습니다.

 

  1. 소년을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2. 소년에게 구명대를 던져줄 수 있다.
  3. 물속으로 뛰어들어 본인이 직접 구해줄 수 있다.
  4.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이 4가지 중에서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까요? 만일 그 사람이 수영을 잘할 수 있다면, 직접 물에 뛰어들어서 소년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수영에 자신이 없으면, 구명대를 던져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수영을 하든지 구명대를 던져주든지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태도가 기도와 의무가 잘 조화를 이룬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일 구명대를 던지지 않은 채 무릎을 끓고 소년을 구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고 광신적인 판단을 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그런 선택을 하는 분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만약 구명대를 던져주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이 구명대를 붙잡기를 거절한 뒤 “나는 하나님만 신뢰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기도만 한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은 상식과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의무를 혼돈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의무를 행할 경우에도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의 영의 주관하에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늘의 지혜를 따라서 어떤 때는 의무를 행하고, 어떤 때는 기도를 하면서 아름다운 신앙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도와 의무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모습입니다.

 

Do you know? 기도는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할까요?

기도는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집중력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반드시 기도를 오래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날마다 3시간을 기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나 3시간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기도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기도를 오래 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간절해서 도무지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너무나 바빠서 오랜 시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시간의 길이에 대해서 염려하지 마시고, 간절함과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설교하는 사람, 사람들의 신앙에 대하여 짐을 지고 있는 사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 이런 분들은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분들은 하늘로부터 영성과 능력을 받아야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싶지만, 너무나 지쳐서 기도할 수 없는 육체 노동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들을 동정하시고 불쌍히 보십니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포기하면서 장시간 기도해서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장시간 정신을 집중해서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물어봅니다. 가급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으나. 건강과 형편에 따라서 서서 하거나 의자에 앉아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심령과 마음의 태도입니다.

서론,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

운동선수들이 서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이기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고민을 하다가 경기 직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팀의 기도에 응답해야 할까요? 또 골을 넣거나 점수를 내면 상대편은 울상을 하고 낙담해 있는데, 관중을 향해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요? 날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할 수 없는 기도가 수없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는 천장까지도 올라가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곧바로 올라갑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낼까요? 이번 호에서는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일곱 번의 명령

요즘 많은 설교자들이 가상칠언이라는 주제로 감동적인 설교를 합니다. 가상칠언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하신 일곱 번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기 전에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곧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 엄숙한 순간에 예수께서 일곱 번이나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어보면 기도는 약속인 동시에 명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명령하시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겠다.”는 주님의 뜻이 충분히 제자들에게 전달되었을 텐데, 예수께서는 다시 기도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구하면 받을 것이라는 약속, 너희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는 약속,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기도를 그토록 강조하셨을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말씀을 주셨을 때는 예수께서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하늘로 승천하셔야 할 때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 이 세상에는 제자들만 남게 됩니다. 그들은 엄청난 핍박과 외로움과 가난과 고난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들 곁에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하늘로부터 받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기도하면 내가 반드시 응답하고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약속이 지금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결박당하기 전, 채찍을 맞기 직전에도 기도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6-27)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십니까? 지금도 주님께서는 똑같은 심정으로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여기는 것

기도에 대한 약속이 너무나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데, 기도가 너무나 적게 드려지고 있고 기도에서 열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한번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된 새 신자가 수십 년 동안 신앙을 한 장로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장로님, 정말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예수께서 마태복음 21장에서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했는데 장로님은 정말 이 말씀을 믿습니까?” 장로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자 새 신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교인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습니까? 교인들의 기도를 들으면 별로 기대하지 않으면서 구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도들이 열렬하게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중에 하늘에 가면 후회할 것들이 많이 있을 텐데 이 땅에 사는 동안 진심으로 드린 기도가 너무나 적었다는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할 것입니다. 기도의 영역은 무한한데 우리는 너무나 적게 기도합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이 말씀을 믿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는 당연한 일입니다. 정상적인 것이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나 믿지 못합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보다 주변 사람과 내 ‘인맥’을 더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고 해도 사람들이 서쪽으로 가야한다고 말하면 그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어도 우리는 믿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5)

 

찬송가에 이런 곡이 있습니다.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아버지는 자녀가 염려하고 필요한 것들이 없어서 쩔쩔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필요와 염려를 아뢰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내게 구하라. 기도하라. 나를 시험하라. 나를 확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들이 수없이 있는데 왜 신자들이 기도를 열렬하게 하지 않을까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3가지 이유

기도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다면, 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아침에 아무리 바빠도 기도할 것이고 잠을 자는 시간을 아껴서라도 기도할 것입니다. 어떤 날 큰 문제가 생겨서 기도하지 못하면, 그날은 굉장히 큰 손해를 본 것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그런 분들 보셨습니까? 아마 거의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도 응답은 어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간섭과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인생의 해결책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기도하게 됩니다.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니”(사 44:3)

 

기도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답변이 무엇인지를 알면,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할 때,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할 때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죄를 품고 있으면 기도를 피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기도하면, 기도가 어떻게 될까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중언부언하다가 기도를 마치게 됩니다.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기도는 성도가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요일 3:21-22)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 수 있는 특권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의 기도만 응답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탄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너무나 바쁘고 삶에 지쳐서 기도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한다면, 정말 두려워합니다. 왜 사탄이 기도를 두려워할까요? 기도는 전능한 자를 붙드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얼마나 분명한 약속입니까? 그래서 사탄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기도를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기도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탄이 기도를 어떻게 공격할까요? 사탄은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기도를 포기할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사탄의 공격이 성공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탄은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기도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크게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코 응답할 수 없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자랑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처럼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해서 그들의 성품과 생애가 결정적으로 변화되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초점도 거기에 맞추어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고, 어떤 기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일까요?

이번 호에서 우리는 기도의 과학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있는 기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신앙, 이것이 이번 호에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기도의 비밀입니다.

 

Do you know? 조지 뮬러의 기도

조지 뮬러는 시편 68편 5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고아를 위해서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특별했는데, 고아를 먹이기 위해서 정부의 도움이나 특정한 부자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뮬러는 기도를 통해서 고아를 먹이고 입혔는데, 그는 자신의 기도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복해서 여러 번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들어오지 않았다. … 궁핍한 중에도 우리의 확신은 움추려들지 않았다. 나는 고아원 원장에게 혹시 주께서 그동안 돈을 보내주실지 모르니까 돌아오는 길에 우체통을 열어보라고 말했다. 우체통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직원 중에 자신의 돈 5실링을 기부하는 사람이 생겼다. 4시쯤 기도회를 하는데 상자 하나가 배달되었다. 그 상자에는 고아들과 성경 구입을 위한 돈이 14파운드가 넘게 들어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슬아슬하게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자마자 응답하시면 교만해질까 봐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절제하시고 조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헌신하고 희생하길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내놓기를 기대하십니다.

28호를 시작하며…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고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우정이나 사랑의 친교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말하는 데 있지 않고, 말을 뛰어넘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 사이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귀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조용하게 바닷가에 앉아 손을 잡고 침묵 속에 깊은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숲속을 걸으며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연과 하나님과 그리고 서로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헌신하며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때 완전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어떤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단지 누워서 기다리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진정으로 따라가는 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실패와 고난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인식한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행동과 간섭이 나타날 때만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험적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마침내,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자신의 활동적인 봉사를 완전히 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라는 무기의 사용법을 체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고, 그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조롱과 비난을 받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기도가 가지고 있는 놀라운 능력은 종종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엎드려서 열렬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기도의 비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까요?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번 호에서 독자 여러분은 하늘 문을 여는 기도의 비밀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는 “무릎으로 기도하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이 주는 감동과 메시지를 중심으로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