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AD 100~313년(핍박과 순교의 시대, 사도 시대 이후~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회로 개종하기 전까지)

 

서머나 교회는 사도들이 모두 죽고 난 후부터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기 전까지의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핍박과 순교의 시대였습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이 모두 죽으면서 에베소 교회 시대가 끝나자, 그리스도인들은 목자를 잃은 양처럼 외롭고 힘겨운 신앙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탄은 그런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강력한 핍박을 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교회를 뿌리째 뽑아 없애려고 했습니다.

 

교회 이름의 의미

“서머나”라는 이름은 향수의 일종인 “몰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약은 그 원재료가 되는 나무를 쳐서 으깰 때에 진한 향기가 납니다. 몰약은 으깨고 칠수록 향기가 짙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로마제국이 가하는 극렬한 핍박을 통과했지만, 그 핍박은 교회를 파괴시키는 대신에 복음이 온 세상에 향수(몰약)처럼 번져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시대는 핍박의 시대였지만, 오히려 고난을 통하여 신앙이 승화되고 복음이 온 천하로 전파되는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계 2:8)

예수께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당신의 모습을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설명했습니다. 서머나 교회 시대에 예수께서는 왜 당신 자신을 그렇게 묘사했을까요? 로마제국의 원형극장에서 맹수의 먹이로 사라지는 서머나 교인들의 마음속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께서 나도 부활시켜 주실 것이다.”라는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부활 신앙이야말로 죽음을 목전에 둔 서머나 교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 2:9)

서머나 교인들은 큰 환난과 가난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지만, 그리스도의 눈에는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평생 동안 핍박에 쫓기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고난을 위한 부르심에 응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재물과 명예를 포기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서머나 교인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과 핍박은 서머나 교회를 순결하게 정화시키는 작용을 했습니다. 가난과 핍박은 가라지들로 하여금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지만, 알곡들에게는 거룩함과 충성의 열매가 더욱 풍성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가난에 시달리고 핍박 받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탄도 거짓 교리와 거짓 복음을 퍼뜨리기 어려웠습니다. 예수께서는 궁핍했던 서머나 교회를 가리켜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오직 두 교회만 예수께서 책망하지 않았는데, 그중 한 교회가 서머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에 대하여 잘 이해해야만 합니다. 굶주린 엘리야를 먹였던 까마귀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셨던 예수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셨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 시대에 기적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쫓았던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할 때, 가난이 내 인생을 따라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난을 기대하고 진리를 선택하면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적을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것이 서머나 교인들이 신앙이었습니다.

“네가 장차 당할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계 2:9~10)

서머나 교회시대에는 “십 일 동안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십 일 동안의 환난”은 얼마나 긴 기간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기간 예언에서 1일은 1년으로 환산하는 것이 예언 해석의 원칙입니다.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민 14:34).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 일이 일 년이니라”(겔 4:6). 그러므로 “십 일 동안의 환난은” 10년 동안의 환난을 뜻합니다. 서머나 교회 시대에 사탄은 로마제국의 핍박을 통해서 그리스도 교회를 뿌리채 뽑아버리기 위해서 극렬하게 핍박했습니다. 로마제국 황제와 정치인들은 기독교 신앙이 사람들 사이에 인기있는 종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회를 위험한 정치적 경쟁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오클레시안 황제 치하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10년간의 핍박, 즉 차기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해서 기독교회에게 자유를 주기 전까지 10년간의 핍박이 가장 극심했었던 사실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AD 303~313년).

그 당시 로마제국의 핍박과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에 대해서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기도하는 집은 땅에서 없어졌고, 성경은 시장 마당에서 불탔으며 설교자들은 붙잡혀 고문을 받고 원형극장에서 사자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졌다. 순교자를 죽이는 피 묻은 칼은 무디어지고 부서지기까지 했다. 사형집행자들은 피곤해져서 교대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능력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로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의 호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

죽음을 위하여 사자굴이나 원형극장에 끌려가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예수께서 주신 말씀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였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죽도록 충성해야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설교를 듣게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머나 교인들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죽도록 충성해야 구원을 지킬 수 있었는데, 21세기에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값싸고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평생 동안 가난과 환난 속에서 충성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믿었는데,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내가 어떻게 살든지 간에 구원받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도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죽도록 충성하지 않아도 구원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서머나 교인들은 운이 없어서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으니 힘들게 구원을 받아야 하고, 현대인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났으니 쉽게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원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언제나 동일합니다. 일곱 교회 시대 중 어떤 시대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믿든지 간에 성경 말씀에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만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일곱 교회 예언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을 공부하면, 오늘날 기독교회에 난무하는 거짓 복음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핍박과 가난이라는 시험을 받았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돈과 풍요로움과 이기심이라는 시험을 받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평화롭고 모든 것이 풍족할 때, 오히려 교회가 신앙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크게 배도하는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서머나 교인들보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이 사탄의 더 큰 유혹과 기만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순교보다 더 어려운 것은 돈과 세속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돈과 세속에 지배당하지 않고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

서머나 교회 시대에도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들을 귀가 있는 자들만 사탄의 미혹에 빠지지 않고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충성된 마음으로 순교와 가난의 길을 걸어간 성도들을 “이기는 자”라고 부르셨고, 그들에게 결코 둘째 사망(지옥불의 멸망)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