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AD 313~538년, 타협의 시대

 

서기 313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이후,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국면 전환이 생긴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탄은 핍박과 죽음으로 서머나 교인들을 협박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한 사람이 순교한 자리에서 백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기독교회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만듦으로써, 교회 속으로 엄청난 돈과 명예와 인기가 쏟아져 들어오도록 유도했습니다. 극렬한 핍박에도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핍박을 중지하고 자유를 허락하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밀라노 칙령, 서기 313년).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AD 313년, 태양신을 섬겼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놀라운 사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가 개종하자 그를 따라서 수많은 태양신도들이 기독교회 속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교회는 밀려 들어오는 태양신 교도들과 로마 황제의 요구에 따라서 진리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황제는 태양신교 지도자와 기독교회의 지도자를 불러서 태양신교와 기독교회를 적당하게 혼합시킨 종교를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서 열두 제자들이 세워놓은 교회가 태양신의 이교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상한 종교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이름의 의미

버가모라는 이름의 뜻은 “높은 성, 높이 들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핍박의 시대 동안에도 굳건하게 지켜왔던 신앙이 번영의 시대로 들어서자 믿음의 성채는 무너지고 그 순결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AD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회를 국교로 선포한 이래 교회는 높이 들려졌고 인기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버가모 교회는 세속과 타협의 길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계 2:12)

그리스도께서는 버가모 교회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당신의 모습을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내셨습니다. 버가모 시대에는 예수님을 왜 그렇게 묘사했을까요? 버가모 교회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좌우에 날 선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세워져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태양신의 우상숭배와 오류가 하나님의 교회로 밀려 들어 올 때, 좌우에 날 선 검처럼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방어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칭찬

“네(버가모 교회)가 내(예수님)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계 2:13)

버가모 교회 시대에 예수께서는 안디바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칭찬했습니다. 안디바는 버가모에서 순교당한 그리스도인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안디바(Antipas)라는 이름에는 “Anti-대항하는, Papas-교부”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당시 “교부”라고 불리우던 교회 지도자에 대항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안디바(Antipas)라고 불렀습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회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교회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인정을 얻고 권력자들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서 타협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안디바”라고 불리우던 소수의 그리스도인 그룹은 타락한 교회의 지도층에 대항해서 일어났습니다. 타협과 세속의 길을 걷던 버가모 교회에 있어서, 안디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높은 성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타협과 배도의 길을 걷던 버가모 교회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충성된 증인 안디바” 이야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세속화되고, 타락시키는 주역이 되는 시대에는 예수께서 순결한 믿음과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교회의 권위에 저항하는 음성을 내면서 일어섰던 성도들을 칭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버가모 시대에는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나 외치는 종들이 예수께서 그 교회를 위해서 보내신 종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책망

“네게(버가모 교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교리, doctrine)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교리, doctrine)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 15)

예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게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인 버가모 교회의 타협을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이란 무엇일까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모압왕 발락이 주는 뇌물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모압왕 발락의 청탁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간교한 거짓 선지자 발람은 모압왕에게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발람은 모압왕에게 아름다운 모압 여인들을 모아서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보내 유혹한 다음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유도하라고 했습니다. 발람이 그런 계략을 제시한 이유는,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실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발람의 계략은 성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했고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전염병이 돌아서 24,000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발람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고 이교도들의 신앙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교회가 치명적인 영적 죽음의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그런 배도가 생겼던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가 받아들인 발람의 교리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교리, doctrine)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

기독교회가 300년 동안 계속되어 온 핍박에 지쳐 있을 때, 이교도인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태양신을 믿다가 갑자기 기독교회로 개종하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AD 313년, 기독교회에게 자유와 포교를 허락하는 밀라노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불법 종교로 핍박받던 기독교회가 로마제국의 공식종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로마 황제의 뒤를 따라서 수많은 이교도들이 기독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엉터리 교인들의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남에 따라서 기독교회의 부패와 타협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핍박하에서는 순결함을 유지하던 교회가 자유와 물질과 번영이 찾아오면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태양신교를 믿던 로마 황제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기독교회로 개종하자, 그때까지 로마제국를 떠받들고 있던 태양신 교도들은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역사에서 최고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태양신 교도들의 불만을 억제하고 그들이 기독교인들과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태양신교의 지도자, 율리우스 피르마쿠스와 기독교회의 감독 유세비우스를 불러서 협상을 했는데, 그것은 태양신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종교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AD 321년).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보고 그의 영민함에 감탄하고 있다. 이교도의 상징과 날짜, 여러 종교의식들을 기독교 전통에 섞어버렸다. 태양신교와 기독교 양쪽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혼합 종교를 만들어냈다.”(다빈치코드 1권, 351~353).
“교회 감독인 유세비우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신학을 태양신의 이교적인 이념과 로마 황제 이념으로 짜맞추어 기독교적으로 변형시켰다.”(Hans F. von Campenhausen, 희랍교부 연구, 대한기독교 출판사, 1977, 93).

이렇게 해서 기독교회 안에 깊은 영적 어둠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오늘날 천주교회의 주요 교리와 가르침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는 첫 번째 교황을 베드로라고 주장하지만, 태양신과 기독교회의 혼합 형태로 기초를 놓은 천주교회를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피묻은 진리로 세운 초대 기독교회와 같은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 개종한 태양신 교도들의 요구들을 수용하기 시작했고, 또한 로마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많은 진리를 타협하거나 변경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던 우상숭배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자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베드로상, 바울상, 마리아상 그리고 죽은 순교자들의 석상이나 그림으로 대체해서 섬기기 시작했고, 그들의 종교 행습에 따라서 십계명이 변경되었습니다. 또한 이교도들의 영향을 받아서 지옥과 죽음과 영혼에 대한 가르침이 크게 흔들렸으며, 천사와 죽은 성자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태앙신을 섬기던 우상숭배자들이 기독교회 안에 들어와서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권유와 압박으로 인해서 기독교회 안으로 이교도들의 행습과 가르침이 물밀듯이 들어왔고,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들을 허용했습니다. 버가모 교회에서 그런 교회지도자들을 향해서 저항의 음성을 냈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가 모압왕과 공모해서 이스라엘 안으로 이교도들의 우상숭배를 들여왔던 것처럼, 버가모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은 로마 황제와 공모하여 우상숭배와 거짓 가르침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고, 그것이 버가모 교회가 받아들인 “발람의 교리”입니다. “네게 발람의 교훈(교리, doctrine)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4).

버가모 교회의 신학이 된 나골라당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

제1세기의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나타났던 “니골라당의 행위”가 버가모 교회에 와서는 “니골라당의 교훈”(doctrine, 교리)으로 발전되고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니골라당의 교리에서 벗어나려면, 세상을 포기하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버가모 교회 지도자와 신학자들은 태양신교 교리와 기독교 교리를 혼합시킨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니골라당의 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타협한 죄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버가모 교회 지도자들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더는 순종과 행위에 얽매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의 귀에 그런 철학적 주장은 매우 고상하게 들렸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초대 교회부터 3백 년 동안 걸어온 가난과 좁은 길 신앙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니골라당 교리는 크게 환영 받는 교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마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태양신교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버가모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니골라당의 교리는 그들의 입지를 지켜주는 강력한 신학이 되었습니다. 니골라당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논리 때문에 수많은 성경의 진리가 변질되었고 태양신교의 행습이 기독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니골라당의 핵심 교리는 한마디로 말해서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켰다.”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사탄은 이런 니골라당의 교리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지금까지 집요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거짓 구원론은 그 원조를 니골라당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유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으로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뜻합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6~18, 22).

버가모 교회에서 발람의 죄에 빠진 지도자들은 돈과 세속과 권력을 탐하였고, 그런 모습을 본 사탄은 버가모 교회 속으로 니골라당의 교리를 깊숙이 밀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었고 영적으로 완전히 몰락하였습니다. 두려운 사실은, 현대 기독교회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적 물결과 안일함과 권력이 현대 기독교회에 깊숙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그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자유의 의미를 곡해시키는 니골라당의 주장이 마치 진리처럼 포장되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교인들이 불순종과 세속적인 삶 속에서도 “나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호소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예수님) 네게(버가모 교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 2:16)

 예수께서는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아들인 버가모 교회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셨습니다.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께서는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검(칼-말씀)으로 싸우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예수님이 보살피고 인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과 싸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버가모 교회가 받아들인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가 얼마나 악한 것이면 예수께서 직접 검을 들고 싸우겠다고 하셨을까요? 소수의 충성된 안디바는 목숨을 걸고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엄숙한 경고를 전했습니다. 버가모 시대에는 안디바가 예수께서 직접 붙잡으시고 사용하신 종들이었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발람의 죄에 빠진 교회 지도층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의 약속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the hidden manna)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예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게도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약속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버가모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했는데, 하나는 “감추어진 만나”이고, 다른 하나는 “흰 돌”과 그 위에 새겨진 “새 이름”입니다. 감추어진 만나는 무엇이고, 흰 돌과 새 이름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만나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놀라운 양식을 준비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라!” 이른 아침에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 밖에 나가면, 지면에 내린 만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만나라는 단어의 뜻은 영어로 “What’s this?(이게 무엇이지?)”라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려왔는데, 그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경이로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이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온 예수님을 표상합니다. “내가 곧 명의 떡이로라,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만나)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48~51).

만나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버가모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은 감추어진 만나입니다. 버가모 교회에서 만나는 감추어졌습니다. 왜 만나가 감추어졌을까요? 버가모 교회가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감추어지게 된 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사랑한 발람과 같은 교회지도자들이 이교도의 우상숭배와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니골라당 교리를 받아들여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넓은 길을 따라갔기 때문에 버가모 교회에서 만나, 즉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이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하늘에서 내려 온 만나를 먹었는데, 버가모 교인들도 날마다 그렇게 하늘의 신령한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이 발람의 교리를 받아들였고, 니골라당의 교리가 버가모 교회 안에 높이 세워졌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만나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교회에서 올바른 복음과 가르침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교인들은 말씀의 기근 속에서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거절한 사람들은 날마나 생명의 양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것이 그들에게는 감추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나가 사라진 버가모 교회에서 날마다 예수께로부터 만나를 공급받은 성도들은 이기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흰 돌

서머나 시대에는 법정에서 재판을 할 경우, 흰 돌과 검정돌을 사용해서 재판 결과를 나타내었습니다. 흰 돌은 무죄 석방을 나타냈고, 검정돌은 유죄를 나타냈습니다. 또한 노예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에도 흰 돌을 주었는데, 때때로 자유인이 된 사람의 새로운 이름을 흰 돌 위에 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흰 돌은 싸움에서 15번 이상 승리한 투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버가모 시대에 흰 돌은 무죄와 자유와 승리와 명예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발람의 교리와 니골라당의 교리를 거절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흰 돌, 즉 죄를 사해주시고 진리 안에서의 자유와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흰 돌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받아 먹음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생애의 주인이 되어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세속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말씀이 생애를 인도하여 변화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흰 돌을 받는 경험이고,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새기는 경험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흰 돌 위에 새겨진 이름은 그 사람 자신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할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 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