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입니다. 옛날 유대 풍습에도 결혼하기 전에 하는 오늘날의 약혼과 같은 절차가 있었습니다. 신랑과 신부 모두를 결혼식까지 큰 책임과 약속으로 묶어주는 것이 유대인의 약혼이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약혼을 하면,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이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고향에 있는 내 아버지의 집에는 당신과 함께 거할 곳이 있습니다. 내가 이제 가서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는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당신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이용해서 재림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자 제자들은 그 의미를 금새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신랑이 약혼식을 마친 후 신부에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유대인 풍습에서 신랑이 고향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신부와 함께 살 준비를 하는데에는 대개 1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 동안 신부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나쁜 말과 행실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시집에 들어가면 언약(약혼)이 깨지고, 영원히 신랑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처소를 준비하고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은 신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신랑과 시아버지 가문의 풍습을 익히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온 마음과 정신은 신랑과 하나가 되어 살 준비를 하는데 바쳐져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진정으로 “시댁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풍습에서 신랑은 약혼을 하면서 신부에게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첫 번째 약속
신부가 갖고 있는 모든 부채를 포함해서 신부의 몸 값을 지불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묶고 있는 모든 멍에와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신부는 결혼에 앞서 먼저 자유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신부를 고향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데려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약속
신랑은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이전에 범했던 모든 죄악을 용서해 줄 뿐 아니라 신부가 죄를 범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신랑이 주는 두 가지 약속을 들으면서 신부의 마음속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신부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을 졌기 때문에 신랑이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정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신랑과 하객들 앞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랑의 은혜에 대한 신부의 마음입니다. 방탕하게 살아 온 신부는 자신이 결코 결혼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자비로운 신랑이 나타나서 모든 빚을 갚아줄 뿐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과거까지 완전히 덮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이런 언약을 들으면서 신부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신랑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소원이 솟구쳐 올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을 남편이라고 부르는 대신 “주님” (Lord) 부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의 심령에 새겨진 신부의 마음이었습니다.
약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부의 마음에 유혹이 들어 올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에게 베푼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면서 정결함을 지키게 됩니다. 신부는 차마 신랑의 은혜를 방탕함과 정욕으로 배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부는 빚진 자의 심령으로 신랑을 기다리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혹시 부지불식간에 죄를 범하면 너무나 죄송해서 며칠 동안 괴로운 심정으로 보내다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신랑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신부의 간곡한 편지를 받은 신랑은 신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탄원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제가 이 여인을 위해서 지불한 엄청난 몸값을 기억하소서. 저는 이 여인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여인을 용서했습니다. 이 여인과 영원히 살기 원합니다. 이 여인이 진심으로 회개했사오니 아버지께서도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소서!”
멀리서부터 신부의 악행과 이기적 품행에 대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신랑의 마음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신부의 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은 신부의 마음에서 신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감동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신부의 악행과 순결하지 못한 행실은 둘 사이에 맺은 언약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헌신한 신부라면 결코 그렇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 동안 신부는 자신이 미련한 처녀인지 슬기로운 처녀인지 스스로 나타내게 됩니다.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마 25:1, 2)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특징은 “정결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정결함”은 신부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고, 동시에 이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기대하는 유일한 요구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신부에게는 단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랑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고 의를 행하면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이것이 신랑에게 온 생애를 바치겠다고 헌신한 신부의 삶입니다. 신랑이 데리러 올 때까지 신부는 온 마음과 생애를 정결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신랑이 곧 온다는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깨어 일어나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심령을 이해한다면,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신앙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