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또 하나의 징조, 하나님의 침묵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더라도 꾸짖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악을 범하고 하나님을 조롱할지라도 벌하지 않으시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때입니다. 세상의 죄가 너무나 극악하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호소하고 탄원해도 소용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죄를 범하도록 내버려 두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두려운 때는 없습니다. 지금은 죄의 잔이 채워지고 있는 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때입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롬 2:4, 5).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재림의 날에는 이 세상에 커다란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태풍이 땅을 휩쓸기 전에 완전한 고요가 있는 것처럼, 오늘의 하나님의 침묵은 곧 두려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분명한 징조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9, 11). ■

<마지막 사명> 편집장

3부, 신부의 마음을 갖고 계시나요?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마음입니다. 옛날 유대 풍습에도 결혼하기 전에 하는 오늘날의 약혼과 같은 절차가 있었습니다. 신랑과 신부 모두를 결혼식까지 큰 책임과 약속으로 묶어주는 것이 유대인의 약혼이었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약혼을 하면, 신랑은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이제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고향에 있는 내 아버지의 집에는 당신과 함께 거할 곳이 있습니다. 내가 이제 가서 당신과 함께 살 수 있는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당신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이용해서 재림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자 제자들은 그 의미를 금새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신랑이 약혼식을 마친 후 신부에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유대인 풍습에서 신랑이 고향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신부와 함께 살 준비를 하는데에는 대개 1년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 동안 신부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나쁜 말과 행실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시집에 들어가면 언약(약혼)이 깨지고, 영원히 신랑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처소를 준비하고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은 신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신랑과 시아버지 가문의 풍습을 익히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직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온 마음과 정신은 신랑과 하나가 되어 살 준비를 하는데 바쳐져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진정으로 “시댁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풍습에서 신랑은 약혼을 하면서 신부에게 두 가지 중요한 약속을 합니다.

 

첫 번째 약속

신부가 갖고 있는 모든 부채를 포함해서 신부의 몸 값을 지불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신랑은 신부를 묶고 있는 모든 멍에와 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신부는 결혼에 앞서 먼저 자유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신부를 고향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데려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약속

신랑은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이전에 범했던 모든 죄악을 용서해 줄 뿐 아니라 신부가 죄를 범했던 사실조차 잊어버리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신랑이 주는 두 가지 약속을 들으면서 신부의 마음속에는 놀라운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신부는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은혜의 빚을 졌기 때문에 신랑이 자기를 데리러 올 때까지 정결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신랑과 하객들 앞에서 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랑의 은혜에 대한 신부의 마음입니다. 방탕하게 살아 온 신부는 자신이 결코 결혼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자비로운 신랑이 나타나서 모든 빚을 갚아줄 뿐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과거까지 완전히 덮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이런 언약을 들으면서 신부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동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신랑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소원이 솟구쳐 올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신부는 신랑을 남편이라고 부르는 대신 “주님” (Lord) 부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막달라 마리아와 삭개오의 심령에 새겨진 신부의 마음이었습니다.

약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부의 마음에 유혹이 들어 올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에게 베푼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면서 정결함을 지키게 됩니다. 신부는 차마 신랑의 은혜를 방탕함과 정욕으로 배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부는 빚진 자의 심령으로 신랑을 기다리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혹시 부지불식간에 죄를 범하면 너무나 죄송해서 며칠 동안 괴로운 심정으로 보내다가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신랑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게 됩니다. 신부의 간곡한 편지를 받은 신랑은 신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 다음과 같은 탄원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제가 이 여인을 위해서 지불한 엄청난 몸값을 기억하소서. 저는 이 여인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 여인을 용서했습니다. 이 여인과 영원히 살기 원합니다. 이 여인이 진심으로 회개했사오니 아버지께서도 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소서!”

멀리서부터 신부의 악행과 이기적 품행에 대한 소문이 들려올 때마다 신랑의 마음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신부의 죄가 습관적으로 되풀이 된다는 것은 신부의 마음에서 신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와 감동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신부의 악행과 순결하지 못한 행실은 둘 사이에 맺은 언약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헌신한 신부라면 결코 그렇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 동안 신부는 자신이 미련한 처녀인지 슬기로운 처녀인지 스스로 나타내게 됩니다.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마 25:1, 2)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특징은 “정결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정결함”은 신부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절실한 소원이고, 동시에 이것은 신랑이 신부에게 기대하는 유일한 요구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신부에게는 단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랑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고 의를 행하면서 살게 됩니다.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이것이 신랑에게 온 생애를 바치겠다고 헌신한 신부의 삶입니다. 신랑이 데리러 올 때까지 신부는 온 마음과 생애를 정결함에 초점을 맞추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신랑이 곧 온다는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깨어 일어나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심령을 이해한다면,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신앙의 실체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

 

2부, 가장 분명한 재림의 징조, “사람의 미혹”

예수께서 가장 강조하신 징조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는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재림의 징조를 주신 이유는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재림을 기다리다 지치지 않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곧 이 세상의 멸망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폐허가 된다는 말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 세상이 끝나는 종말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멸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세상 끝과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입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어떤 징조를 가장 먼저 말씀하셨을까요? 말세에 “사람의 미혹”이 나타날 것이라는 징조를 가장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징조를 가장 많이 강조하셨을까요? “사람의 미혹을 조심하라” 입니다. 재림의 징조에서 가장 중요한 징조는 해와 달과 별의 징조도 아니고, 전쟁이나 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징조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말세에 기독교회 안에서 나타날 “미혹”에 대해서 6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 2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 24:11)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3)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 24:25,26)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미혹”이 무엇이며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뉴욕테러 사건과 교회

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동이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110층 세계무역센터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뉴욕에 있는 교회들에 뜨거운 열기가 생겼습니다. 뉴욕 테러 사건 이후로 교회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일요일뿐 아니라 화요일에도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유대인과 이교도 그리고 여러 인종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울면서 목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 뉴욕 테러 사건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단순한 사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사건입니까? 왜 이런 일이 미국에 생기게 되었습니까?” 그런 질문에 대해서 어떤 미국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중을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건은 사단이 저지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죄와 부도덕을 보면 뉴욕 쌍동이 건물 붕괴보다 더 큰 재난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시고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뉴욕 테러보다 더 큰 재난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나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시대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에 일어나는 재림의 징조들을 보면서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눅 21:26). 뉴욕 테러 사건 이후, 미국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조차 110층의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신의 경고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향해서 장자 일어날 환난과 재앙이 어떠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고로 받아 들였습니다.

 

뉴욕 타임즈의 설문 조사 결과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9/11 사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는데 6개월도 되지 않아서 그들 중 대부분이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뉴욕타임즈는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왜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까?”

그들이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그들은 “교회가 죽어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설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뉴욕 쌍동이 건물이 손쓸 사이도 없이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그들은 교회에 가서 자신의 타락과 죄를 책망받고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이 없는 설교와 엔터테인먼트로 뒤덮힌 예배로 그들의 갈증을 외면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외식과 위선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겨움을 느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다시는 교회를 다니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이 현대 기독교회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진단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미혹”에 대한 징조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심령과 정직한 양심으로 이어지는 글을 읽게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교회안의 징조 1

죄를 인정하는 교회

죄에 물들어 있고 생명을 잃어버린 교회의 모습이야말로 예수 재림의 강력한 징조입니다. 가장 분명한 징조는 지금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택한 자들까지도 미혹을 받아서 잃어버림을 당하는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죄 때문에 하늘에서 루스벨과 천사들이 쫓겨났고, 죄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으며, 죄 때문에 노아홍수가 와서 세상을 멸망시켰고, 죄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당했습니다. 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죄 때문에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았고,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서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죄의 뿌리인 사단과 죄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악인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받았던 유황불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지금 죄를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죄를 마음에 품고 있고 공공연히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마음대로 침례(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설교가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 받는다.”는 교리로 포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구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죄를 버리고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멸망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말세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재림의 징조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강조하신 재림의 징조는 전쟁이나 기근이나 홍수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강조한 징조는 교회 안에서 전세계적으로, 대규모로 일어나는 “사람의 미혹”입니다.

또한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도” 미혹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는 수단으로 사단이 거짓 이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큰 표적과 기사들”이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도 미혹”당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사단의 미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징조는 점점 더 극심해져서 짐승의 표 환난 때에는 최고도에 달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이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단이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미혹하는 장면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 14).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는 이적과 초자연적인 기적이 하나님의 증표였지만, 마지막 때에는 사단이 거짓 기적을 성령의 역사로 둔갑시켜 내놓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가 사단의 큰 미혹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미혹하는 배도가 있은 다음,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살후 2:1~3).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대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넓은 길을 걸어도 구원받고, 죄를 품고 있어도 구원받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도 구원받을 것처럼 가르치는 설교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불순종과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멋있고 수준높은 설교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회개와 성령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안수하는 두려운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정결한 삶을 살지 않아도 예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귀있는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0~12). 어떤 사람들이 재림의 날에 하나님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교회 안의 징조 2

소돔의 죄를 받아들인 교회

20여년 전에 뉴욕 타임즈에 놀라운 그림이 실렸습니다. 어떤 초등학생이 미술 시간에 가족의 모습을 그렸는데 성인 남자 둘 사이에서 한 아이가 서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에서 그 그림을 특종으로 다룬 것입니다. 남자 동성애 부부에게 입양된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때문에 미국 전체가 경악했습니다. 20년 전만해도 그런 그림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30만 명 이상의 동성애자들이 대낮에 뉴욕 5번가에서 행진하기 위해 모이고 있고,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사랑한다” 또는 “하나님은 동성애자이다.”라는 푯말을 들고 행진합니다.

미국에만 동성애자들이 4백만 명에 이르고 세계적으로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합해서 4억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숫자가 급격히 많아지자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동성애를 했지만, 이제는 영화배우, 예술인, 대학교수와 지식인에게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해 주기 시작했으며 심지어는 자녀를 입양하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동성애가 트랜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들도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대학마다 동성애 클럽이 생기고 있고,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면 지식인 취급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자유와 평등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안에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분명한 순리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 27).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여자가 여자에게 음욕을 품고, 남자가 남자에게 음욕을 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리를 거꾸로 거스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그런 순리를 정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하와를 배필로 주심으로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순리로 정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순리를 거꾸로 거스리는 개인과 사회에는 “보응”과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때와 같으리니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30). 구약 성경에서 롯의 때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천사들)을 상관하리라(창 19:1, 4, 5). 여기서 “상관한다”는 말은 “성관계”를 뜻합니다(창 4:1 참조). “소돔 백성들”은 롯의 집에 들어 간 낯선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비열한 정욕에 불타는 소돔의 사람들은 롯에게 찾아와서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고 협박했습니다. 이것이 유황불의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소돔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도 소돔의 죄를 지적하면서 경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동성애)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세상이 소돔성이 되자 교회 안까지 소돔의 죄가 깊이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또 하나의 강력한 징조입니다. 미국의 대형 기독교 교단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성애를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동성애 문제를 다루는 설교를 하면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으므로 그런 설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수적인 교단까지도 동성애에 대한 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에게 침례(세례)를 베풀고 집사와 장로의 직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성직자로 임명하는 교단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엘리야와 침례 요한의 정신을 가지고 교회의 죄를 지적하고 외치는 참 목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단지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로 변화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회복되고 구원을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전 세계에 음란물 사이트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의 마음이 악해지고 음란해지면서 포르노가 거대한 산업이 되었습니다. 현재, 포르노 관련 사이트에 3억 7,200만 페이지가 있으며, 1초마다 266개의 음란물 사이트가 새롭게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깊이 숨겨져 있던 것들이 이제는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어린아이들까지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루어진 조사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이 포르노를 접하는 비율과 세상 사람들이 접하는 비율이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포르노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서 성령께서 점점 지구로부터 거두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 안의 징조 3

재림을 선포하면 핍박하는 교회

사도 베드로는 말세가 되면 세상을 사랑하고 정욕대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주의 재림의 약속을 조롱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 3:3~5). 마지막 때가 되자,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세상과 교회를 채우고 있습니다.

세상과 교회 안에 주의 재림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이 시대에 누가 참된 목자일까요?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마지막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4~46). 마지막 때에는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주는 목자가 참 목자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분별하고, 이 시대에 맞는 말씀을 전하는 종들이 참 목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종들이 있어야 성도들이 잠에서 깨어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에 예수께서 보내신 종들이 재림을 선포하고 징조와 예언을 전하면, 또 하나의 징조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마 24:48, 49).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악한 종들이 나타나서 재림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교회 안에 퍼트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 재림은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옛날부터 지진과 홍수가 있었지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들을 “악한 종”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을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48절). 물질과 세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재림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을 갖게 됩니다. 신랑이 올 것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없는 신부는 외도를 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한다고 했습니까? “동무들을 때리며”(49절). 예수께서는 악한 종들은 “동무들을 때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악한 종들은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말씀을 전하는 종들을 핍박하고 괴롭힐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예수 재림의 징조를 말하고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말씀을 전하면 교회 안에서 핍박을 받게 됩니다. 좁고 외로운 사역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는 성령의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종들은 그 확신을 붙잡고 재림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는 종들은 술친구들과 사귄다고 했습니다.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49절). 이 말씀은 악한 종들이 술을 마시는 친구들과 사귄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돈과 세속과 생활의 염려 때문에 마음이 영적으로 취하고 둔해져서 재림의 징조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재림이 덫과 같이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마지막 시대의 교회 모습

교회가 세속화 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죄를 가볍게 여기는 정신이 교회 안에 들어왔고, 그 결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변질되었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성령의 음성과 말씀에 충성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짓 복음이 교회 안에 뿌리 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 2). 이런 일이 교회 안에 생기자, 예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는 신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배는 형식이 되었고 성도들의 신앙은 순결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두려운 사실은, 사도 요한은 말세에 교회가 바벨론이 되면서 무너질 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 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제자들과 사도들은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 위에 순결한 초대 기독교회를 세웠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서 교회가 귀신의 처소가 되고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바벨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교회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지구 인구 72억 명 중에 20억 명이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예수께서는 “인자가 올 때” 믿는 자가 많을지라도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적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진지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지금 우리는 두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며, 눈이 있는 자는 재림의 징조가 세상과 교회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듣고 보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죄를 버리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합니까? 언제까지 돈 버는 일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냉랭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지금은 그렇게 살 때가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늘을 사모하지 않고 말씀을 깊이 살피지 않는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이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 긴 기간이 흘러갈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께서 재림하실 수 없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림을 향한 강한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것이 신랑과 신부의 마음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신랑(예수)의 마음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신부(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제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1부, 재림의 징조에 대한 10가지 질문

질문 1: “몇 해 전에 일어났던 일본의 쓰나미는 재림의 징조입니까? 재림의 징조가 아닙니까?”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답변: 일본에서 생긴 쓰나미는 분명한 재림의 징조입니다. 태평양에서 형성된 엄청난 크기의 쓰나미가 시속 8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일본을 덮쳤습니다. 쓰나미가 일본 동쪽 해안을 강타하자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였고, 일본 땅 전체가 한반도 방향으로 2미터 이상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흔든 지진보다 더 큰 것들이 오래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것은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대부분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없었고, 재산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재난이 도시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지진과 재난이 깊은 산 속이나 사막이나 대양 한가운데서 일어났는데, 이제는 지진과 재해가 일어나는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을 흔들고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 재림이 점점 더 가까워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에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 은혜의 시간이 남아 있는 동안 신앙을 준비하고 우리의 삶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난이 일어나는 장소가 사람들이 밀집된 곳으로 가까이 움직여 올 때, 성경과 예언의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이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질문 2: “오래 전부터 재림의 징조가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에도 재난과 홍수와 기근와 같은 징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답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재림의 징조를 오래 전부터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징조와 지금의 징조는 그 크기와 빈도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빛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여기서 바울은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인이 아기를 해산할 때가 가까워져 오면 고통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면서 그 주기 또한 점점 더 짧아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난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그것이 일어나는 주기와 빈도가 짧아지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매우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재난과 재해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크기에서 매년 기록을 깨고 있으며 그 주기와 빈도 역시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재난과 징조들이 “잉태한 여인의 해산 고통”처럼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질문 3: “예수께서는 도적같이 오시기 때문에 재림하시는 때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요?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아시는 것이 아닌가요?”

답변: 물론, 아무도 그날과 그때는 알 수 없습니다. 정확한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러나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재림의 징조를 주시면서 재림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 33). 무화과 나무를 보면 봄인지 여름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림의 징조를 살펴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떤 시점을 통과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가 되면 재림의 징조를 분별하는 사람들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3~6).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세상의 멸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결코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의 자녀이고 어두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의 빛을 통하여 멸망이 어떻게 올 것이며, 어디쯤 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멸망이 갑자기 임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 4: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오면, 점점 더 기근과 지진과 홍수가 심해진다고 하는데 얼마나 심해질까요?”

답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재림의 징조들이 점점 더 커지고 심해지는 정도에 대해서 성경은 매우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9.0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흔드는 뉴스를 보면서 성경 예언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 26). 성경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나타나게 되는 재난과 자연재해에 대해서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 혼란한 중에 곤고함,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해서 기절함”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쓰나미는 정말 땅이 흔들리고 바다와 파도가 무섭게 울면서 해안과 도시를 강타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기절할 정도로 두려워했습니다. 지축이 흔들리고 땅이 움직이게 하는 엄청난 지진의 위력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정말 세상 끝이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홍수와 지진과 기근의 소식이 한 지역과 나라 밖으로 흘러나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재림의 징조들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질문 5: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말세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는 아직도 오시지 않나요? 지금이 말세인 것은 맞나요?”

답변: 말세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사실은, 말세란 어떤 시점이 아니라,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예언은 세상 역사를 몇 개의 기간으로 나누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2장의 금신상,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예언은 모두 세상 역사를 몇개의 기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 또는 “마지막 때”란 세상 역사를 나누는 기간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기간을 뜻합니다. 기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므로 말세에도 시작점과 끝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말세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말세의 끝인 재림을 향해 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말세란 언제 시작되었나요? 다니엘 12장 4절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 예언은 마지막 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은 장차 사람이 왕래하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때가 올텐데 그때가 말세의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세가 시작되면 봉함되었던 다니엘서 예언의 뜻이 공개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왕래하는 교통의 속도가 빨라지고 지식이 크게 늘어나는 때가 되면 그때부터 말세가 시작되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이 나타나서 봉함되었던 다니엘서 예언의 의미를 세상에 공개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인간은 말이 달리는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12장 4절이 예언했던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갑자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증기 기관차가 나오게 되었고, 엔진이 개발되고 급속하게 발전되더니 지금은 음속의 몇배로 날아다니는 우주시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산업혁명 무렵부터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12장 4절에 기록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는 예언도 성취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교통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질 무렵에 다니엘서의 예언의 의미가 공개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구약시대부터 봉함되어 온 예언을 펼쳐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천 년의 종교암흑시대가 끝나면서 종교개혁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면서 개신교회가 등장하더니 그들이 세계 선교를 하면서 다니엘서의 예언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마지막 때가 분명하고,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는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재난과 사건들입니다.

 

질문 6: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 7절에서 말씀하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될까요?”

답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가 성취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어갈 것인데, 그것은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는 징조가 성취될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는 징조들이 생길 때마다 복음의 문호가 열려서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세의 시작점임 산업혁명 시대 이후부터 교통이 발전되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개신교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니엘서 예언의 빛이 밝아졌는데, 그와 함께 각 교파를 통해서 복음이 온 세상에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시작되자, 사단도 다아윈의 진화론을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을 앞장 세워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을 온 세상에 퍼트렸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때문에 유물론과 공산주의 사상이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국가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동유럽과 구 소련의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1989년).
이제 남은 것은 북한과 이슬람권입니다. 이 두 지역에서도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징조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민족끼리 대적하고 있고, 중동의 이슬람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서구 나라들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두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면서 복음 전파를 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중동지역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징후를 보였는데, 그것을 “중동의 봄”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15억 명입니다. 지구 인구의 20%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슬람권이 복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한 천국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동국가들은 반드시 복음에 대해서 문호를 여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북한 역시 가까운 장래에 복음에 대해서 문을 여는 방향으로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다는 징조는 북한과 중동지역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민족과 나라 사이에 대적하는 징조와 자연재해가 도처에서 극심해지는 징조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그러므로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민족과 나라들 사이에서 대적하고 다투는 일이 생길 때, 자연재해가 극심해지는 일들이 함께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 그대로 이슬람권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왕권이 흔들리고 있으며, 북한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연재해가 지난 10년 동안10년 동안 매해 기록을 깨면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시대의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질문 7: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징조들 중에 가장 마지막에 일어날 징조는 무엇인가요? 예수께서 오시기 바로 직전에 있을 징조가 무엇인가요?”

답변: 예수께서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고 다투는 일, 그리고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 일이 끝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은 시작을 알리는 징조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6~8). 이 말씀에 나오는 “재난의 시작”이란 말의 원어의 의미는 “Beginning of sorrows”인데 그것은 “슬픔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난리와 난리, 민족과 나라의 대적, 자연재해의 징조는 슬픔의 시작부이고 본격적인 슬픔은 그것에 이어져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징조들의 순서를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마 24:7~10). 다시 말해서, 나라와 민족의 다툼이 심해지고, 자연재해가 극심해져 가면 그것을 “이제 곧 환난이 온다”는 전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일어나는 징조의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고 다투면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입니다. 또한 그와 함께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큰 환난이 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큰 환난에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 일은 있었지만,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들에게 미움을 당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건을 짐승의 표 환난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환난입니다. 그때는 온 세상이 두 무리로 나뉘어 질 것입니다. 핍박을 가하는 사람들과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게 될 것이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되면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믿음과 신앙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살피고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마음을 씻어야 할 때입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질문 8: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21장에서 마지막 때에 “온역”이 창궐할 것이라고 했는데 온역이란 무엇이며,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답변: 누가복음 21장에도 “온역”이 나오지만, 영어성경을 보면 마태복음 24장에도 재림의 징조로 온역이 나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온역(pestilences)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온역이란 치료되지 않는 전염병을 뜻하는데 우리를 이 징조를 주의깊게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온역이 특별히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빠른 속도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이 발전하고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어 왕래하는 이 시대에 온역은 정말 두려운 질병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오면서 온역은 끊임없이 인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불치의 전염병인 에이즈가 나타나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도덕과 성이 문란해지면서 유럽과 미국같은 선진국 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까지 에이즈가 깊이 퍼져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3430만 명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약 2/3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의 경우 성인 36%가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어서 국민 평균수명이 30세가 안됩니다. 또한 짐바브웨와 같은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은 15세 이상의 사망자들 중에서 절반 이상은 에이즈로 죽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저쪽에서 나타나고 있는 징조입니다.
에이즈가 나타나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더니, 또 무엇이 나타났습니까? 광우병이 나와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 온역이 나타났습니까? 조류독감이 나타나서 세계를 떨게 만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홍수가 오기 전에 새와 동물들이 방주로 들어가는 징조가 나타났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새와 동물계에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제역, 돼지독감, 조류독감과 같은 질병들은 해다마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의 과학이 한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동물계와 인간 사이를 오가는 변형 바이러스가 나타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몸 속에서 내성을 길러온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을 공격할 경우,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온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물계로부터 전이된 바이러스가 출현할 경우,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슈퍼 박테리아와 슈퍼 바이러스의 출현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슈퍼”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그것이 항생제에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슈퍼 박테리아와 슈퍼 바이러스 때문에 대규모 재앙이 올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수십년동안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온역들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이제 곧 환난이 오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

 

질문 9: “마지막 환난은 얼마나 큰 환난이며, 환난 때부터 예수 재림까지는 얼마나 길까요?”

답변: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난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큰 환난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다니엘서에도 동일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요한계시록에는 동일한 환난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5, 16).
마태복음 24장과 다니엘서 12장에서는 마지막 환난을 전 세계적인 환난, 태초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환난으로 표현하였고,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는 환난으로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환난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환난은 너무나 큰 환난이기 때문에 긴 기간의 환난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환난의 날을 감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마 24:22). 환난은 역사 이래 없던 큰 환난이지만, 그 기간은 짧을 것이라는 해석을 이 말씀 속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환난이 시작되면 예수 재림은 매우 가까이 임박한 것입니다.

 

질문 10: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짜를 알 수 있을까요?”

답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은 하늘의 천사들과 예수님 자신 도 모르시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왜 재림의 날짜를 알려 주지 않으실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순수하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다. 우리의 성품이 순결하게 보존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를 알려주시기 않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재림의 날짜를 나는 알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이기심과 독선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 이외에 다른 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자극하고 열심을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자극을 통해서 신앙을 유지하려고 하면 할수록 마음과 신앙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열심은 신앙을 극단과 광신으로 끌고 갑니다. 한번 재림의 시기를 정하면 계속해서 시기를 정하는 성향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징조에 몰두하고 재림 날짜를 정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신앙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재림의 시기를 정하게 되면 처음에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정했던 시간에 예수께서 오시지 않으면 큰 실망과 불신이 생기면서 신앙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단순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정확한 시기를 가르쳐 주는 대신에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재림의 징조가 나타날 때마다 깨어 일어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죄와 세속을 멀리하며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선교하고 이웃의 힘든 자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3호를 시작하며…

어떤 미국 목사님이 기독교회가 걸어온 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980대 후반에 구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왔습니다. 그 당시 구 소련과 동유럽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매우 가난했고 언어도 불편했으며 직장도 없었지만, 예배는 뜨거웠고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그 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앞 주차장에는 20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고급 승용차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교회는 죽어 있었습니다. 예배에는 생명이 없었고 기도에는 간절함이 없었습니다. 설교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부유함이 그들의 삶과 신앙에서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산업이 발전되고 돈이 신앙보다 중요해지면서 재림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이 있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기독교회가 깊은 어둠 속에서 경건의 능력을 잃어 버렸지만, “예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설교는 벗어날 수 없는 가난에 묶인 자에게는 여전히 절실한 소망입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채무에 시달리는 자에게 희년의 소식입니다. 불치의 병 때문에 고통당하는 자에게는 치유와 해방의 소식입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고통과 죽음과 죄의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속히 오셔야 합니다. 재림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최종적인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를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면서 글을 준비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

<마지막 사명>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