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에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옛 언약과 십계명을 동일시합니다. 그런 분들은 옛 언약이 폐해지면서 십계명도 함께 폐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큰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옛 언약이 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십계명은 폐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폐해진 것은 십계명이 아니라 옛 언약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서 8장 6-13절을 근거로 옛 언약이 폐해질 때 십계명도 폐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그 말씀은 폐해진 것은 십계명이 아니라 옛 언약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증거

“이제 그리스도께서 더 아름다운 직분(하늘 성소의 대제사장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저 첫 언약(옛 언약)이 무흠하였더면(흠이 없었다면) 둘째 것(새 언약)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 8:6-7)

 

  1. 첫 번째 증거, 더 좋은 약속과 더 좋은 언약을 주신 것이지 계명을 폐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 언약을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이라고 불렀습니다. “더 좋은”이라는 표현은 구약시대에 세워진 옛 언약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암시해 줍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옛 언약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십계명이 “옛 언약” 그 자체라면, 십계명 속에서 어떤 빈약하고 좋지 않은 약속들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계명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의 내용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십계명에 기록된 도덕률이 매우 “옳다.”고 말했습니다.

 

“자녀들은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옛 언약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암시했던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는 십계명을 빈약하거나 흠이 있는 언약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 권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8장에 기록된 흠이 있는 옛 언약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 두 번째 증거, 옛 언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계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옛 언약에 대한 오해 중에서 가장 큰 오해는 “옛 언약에 결함이 있었다.”는 말씀에 대한 의미입니다.

 

“저 첫 언약(옛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흠이 없었다면) 둘째 것(새 언약)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 8:7)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옛 언약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새 언약이 생기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옛 언약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십계명이 “옛 언약” 그 자체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돌비에 기록하신 십계명에서 어떤 결함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시편 저자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고”(시 19:7)  

 

히브리서에서 옛 언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성경은 “옛 언약에는 흠이 있다.”고 했지만, “십계명은 선하고 거룩하고 의로우며 영혼을 소성케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계명에 흠이 있다.고 말하는 대신에 오히려 흠이 없는 완전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말한 흠이 있는 옛 언약은 십계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세 번째 증거, 낡아지고 없어진 것은 옛 언약이지 십계명이 아니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옛 언약)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히 8:13)

 

여기서 사도 바울은 옛 언약이 폐지되어 없어졌다는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일 바울이 말한 옛 언약이 “십계명”을 뜻한다면, 하나님께서 돌비에 새겨서 주신 십계명이 낡아져서 없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에서는 옛 언약은 낡아지고 사라진다고 했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계명은 폐해질 수 없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8장에서는 옛 언약이 낡아져서 사라졌다.고 했는데, 로마서 3장에서는 계명은 결코 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단순합니다. 문제가 있어서 사라진 것은 옛 언약이고,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은 십계명이라는 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낡아져서 사라진 옛 언약이 결코 십계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십계명에 대한 분명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새 언약이 더 좋은 약속인 이유

“이제 그리스도께서 더 아름다운 직분(하늘 성소의 대제사장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히 8:6)

 

시내산의 옛 언약에서 약속을 깨뜨린 것은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언약이 깨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8장에서 “옛 언약에 흠이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옛 언약에 있는 “흠”이란 무엇일까요? 백성들의 마음 상태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 안에서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율법의 속박에 갇혀서 율법의 종으로 불행하게 살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옛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은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왜 “순종하겠다.”는 언약을 지킬 수 없었을까요? 왜냐하면 마음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계명이 너무나 무거운 멍에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순종하겠다.”고 맹세했지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참된 회개와 중생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거룩한 계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죄에 끌려다니는 참담함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전적으로 세상을 버리기로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상을 받아들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배도에 깊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예수께서 둘째 언약, 즉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졌던 동일한 문제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깊은 죄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순종하기 원하지만 순종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 언약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브리서 8장에서 새 언약을 “더 좋은 약속”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를 죄로부터 구원해내는 새 언약의 복음입니다.

 

내 법(십계명)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0-12)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율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이 새 언약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새 언약이 “더 좋은 약속”인 이유입니다.

 

Q & A  바울은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지되었다고 했는데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십자가 이후 새 언약 시대에도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또한 어떤 교회에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하여졌기 때문에 십계명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이 진리일까요? 오늘날 많은 분들이 이런 혼돈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두 가지 법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관련된 두 가지 법이 있는데 하나는 십자가에서 폐지되었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서 완전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폐지된 법은 어떤 법이고 완전케 된 법은 어떤 법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모르면 계명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게 됩니다. 지켜야 할 법을 폐지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폐지시켜야 할 법을 지키게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성소 안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7-38)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한 손에 의해서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찢어졌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왜 성소 휘장이 찢어졌을까요? <The Life of Jesus>라는 책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 뜰에 서서 희생제물인 어린양을 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죽이려고 칼을 들자 땅이 진동하였다. 제사장은 놀라서 칼을 땅에 떨어뜨렸고 어린양은 도망을 쳤다. 지진과 천둥의 소음 속에서 성전예식에 참여한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성전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는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시간에,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신 채 운명하셨다. 드디어 구약시대 동안 동물의 희생제도로 지켜져왔던 표상이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여러 세기를 통해 성전의 봉사가 가리켜온 바로 그 사건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온 인류를 위한 속죄를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표상이 실체와 만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을 예표하는 모든 의식들은 폐지되어야 했다.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희생제물을 죽이는 칼이 떨어졌으며 어린양이 도망친 것이다.”(The Life of Jesus, 756)

 

성소 휘장이 찢어진 이유와 의미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 제사제도의 종말을 알리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유대인의 성소에서 행했던 동물의 희생제도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동물의 피를 필요 없게 했을까요? 예수께서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 이상 동물의 피가 흘려질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새 언약을 인치셨기 때문에 더 이상 동물의 피가 흘려질 필요가 없게 되었고 제사제도와 관련된 모든 의식법이 폐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지는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계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서 의문의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기록한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4)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거했다는 “의문에 쓴 증서”란 무엇일까요? 의문의 율법이란, 구약시대 모세가 제사제도에 대해서 기록한 법입니다. 의문의 율법은 십계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골로새서 2장 14절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성소와 동물 제사에 대한 의문의 증서와 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 성소의 휘장을 둘로 찢으신 것입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바울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육체로 폐한 법을 어떤 법이라고 했습니까?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장에서 했던 것과 동일한 말씀을 에베소서에서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더 이상 모세가 기록한 제사제도에 대한 율법은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종류의 법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돌비에 직접 기록하신 십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두루마리에 기록한 의문의 율법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법입니다.

십계명의 내용과 보관 장소: 십계명은 어떤 내용의 법입니까? 십계명의 첫째부터 넷째 계명은 하나님을 향해서 지켜야 할 법이고 다섯째부터 열째 계명은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돌비에 새겨서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속에 보관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의문에 속한 율법의 내용과 보관 장소: 의문에 속한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법입니다. 모세는 절기들과 성소 의식에 관한 의식법을 두루마리에 기록했습니다. 절기에는 유대인들이 지키던 유월절과 요제절과 나팔절과 같은 절기들이 있으며, 의식법에는 양을 잡는 법과 제사장이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 있었습니다. 또한 의문의 율법들은 지성소의 법궤 옆에 두었습니다. 바울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말한 “의문의 증서”와 “의문의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의식법을 뜻합니다.

 

성도 여러분, 십계명과 의문에 속한 율법은 전혀 다른 법입니다. 법을 기록한 저자가 다르고, 법을 보관한 장소도 다르며, 법을 기록한 소재도 다르며 내용도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서 폐해졌다고 한 “의문에 쓴 증서”나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제사제도와 절기에 대한 법을 뜻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교회들에서는 지금도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가르칠까요? 왜냐하면 유대인의 절기가 의문의 율법과 함께 십자가에서 폐지되었다는 말씀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현대 기독교회가 무엇을 오해했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폐해진 것은 모세가 쓴 의문의 율법이지 하나님께서 기록한 십계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십계명에는 제사제도나 제사장의 의식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십계명을 폐지시켜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지될 이유가 전혀 없는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상관없이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한 영원토록 지켜야 할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얼마나 분명합니까? 이렇게 성경을 이해해야만 구약과 신약이 분명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십계명을 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속적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끊임없이 십계명을 폐지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계명을 구약시대의 죽은 유물 취급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고 새 언약을 맺은 사람들은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믿음과 은혜는 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