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의 교회를 갖고 계시는데, 그 교회는 정확한 진리로 인도되는 교회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성서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를 위해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생명을 바치신 교회는 아름답고 흠이 없는 교회인데 성경은 교회를 어린양 예수와 결혼하게 될 “신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의로다 하더라”(계 19:7~8)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순결한 하나님의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자라게 된 것입니다. 알곡만 있어야 할 교회 안에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자라는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4~30)

 

사탄이 가라지를 뿌린 이유

하나님의 교회는 순결한데 어떻게 가라지가 생기게 되었을까요?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잘 때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렸”다고 하셨습니다. 밭에 가라지를 뿌린 것은 사탄입니다. 왜 사탄은 교회 안에 가라지를 뿌렸을까요? 왜냐하면 교회에서 알곡들이 자라서 열매 맺으면 복음이 능력 있게 전파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뿌려서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교회로 만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무성하게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혼돈합니다. “왜 교회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세속적인가?”라고 말하면서 가슴을 치고 한탄합니다. 교회 안에 알곡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가라지들만 잔뜩 올라오는 것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실망하고 당황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밭에 가라지를 뿌린 이유는 교회를 가라지로 뒤덮어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가라지는 빠르게 번식합니다. 별다른 영양을 공급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가라지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알곡이 있으며, 결국 알곡만 구원받게 됩니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수많은 가라지가 있지만, 오직 알곡들만 구원받게 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a remnant shall be saved)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롬 9:27~28). 교회 안에 믿는 사람이 바다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오직 알곡들만 구원받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남은 무리입니다.

 

알곡을 위한 교회인가? 가라지를 위한 교회인가?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예수께서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이 교회 밖만큼 죄가 많습니다. 교회 안이 교회 밖만큼 세속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교회 안이 교회 밖만큼 포르노와 음란물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창녀처럼 음란하지만, 하나님께서 눈동자처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어차피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서로 연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세상 끝까지 함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에 알곡만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알곡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대로 인간의 눈으로 가라지를 구별해서 함부로 뽑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7).

우리는 교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는 당연히 알곡과 가라지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교회 안에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가라지들이 교회 안으로 들여오는 죄와 배도 역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교회 속에 가라지가 뿌려졌기 때문에 인간의 눈에 교회는 쓰러질 것처럼 보이고 연약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 구원받는 교회는 알곡이며 남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회 안에 가라지가 많을지라도 심판의 때가 되면 가라지가 거두어져서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알곡을 키우기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알곡을 보호하고 알곡이 성장할 수 있는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알곡의 믿음을 향상시키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목회자가 가라지를 중심으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좋아하는 설교를 해 주고, 가라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라지가 좋아할 만한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목회가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가라지들이 활개를 치게 되고 알곡들은 외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가라지가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데, 알곡들이 교회에 대한 깊은 실망을 품고 떠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께서는 교회 안의 양과 염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돈과 세상을 사랑하는 염소들이 거룩함을 추구하는 양들을 괴롭히고 놀리는 시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실망하는 것은 교회 안의 양들 때문이 아니라 염소들 때문입니다. 교회 안의 가라지와 염소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놀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라지와 염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마음에 말씀과 충성이 새겨진 성도

하나님의 교회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는 성도들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지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안다고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기록되는 경험을 하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교회입니다. 성령께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한 충성을 새겨 놓으시는데 그것이 거듭남의 경험입니다.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고자 하는 충성이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교파도 아닙니다. 아무리 큰 건물을 갖고 있고 멋진 잔디밭과 아름다운 시설을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 자체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새겨진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신부에게 유아 세례를 받는다고 하나님의 교회에 소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로부터 “당신은 구원받았다.”는 선언을 듣는다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집사와 장로로 안수받았다고 할지라도 심령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가 없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순종의 정신이 마음에 새겨지는 경험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교회에 속한 교인일지 모르지만, 하늘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의 신부는 아닙니다.

 

한마음으로 한길을 걷는 교회

“하나님의 교회에는 죄와 가라지가 가득 차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하나님의 교회는 단 한 번도 그렇게 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는 성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마음과 한 도(way, 길)를 주어”(렘 32:38)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단 한 번도 분열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신부는 언제나 “한마음으로 한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부가 걷는 길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장로교인이든지 침례교인이든지 성공회 교인이든지를 불문하고 성령에 의해서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새겨진 성도들을 만나면, “아, 이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런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서 “한마음과 한길”로 연합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서로가 갖고 있는 빛의 종류와 밝기가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말씀을 살펴봄으로써, 진리 안에서 하나로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핍박이 올 때 서로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줄 수 있는 관계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한마음과 한길”을 주신다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과 거룩함으로 가는 길”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교파에 속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영께서 인도하시는 “양”과 “알곡”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게 될 것이고 진리를 통해서 거룩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거룩함은 진리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는 경험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어떤 교단에 속해 있든지 간에 진리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진리를 통해서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각 교파에 있는 알곡과 양들을 불러내서 “한마음과 한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지금 기독교회의 상태는 하나님의 양들 가운데 수많은 염소가  들어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심어 놓으신 알곡들 사이에 사탄이 수많은 가라지를 뿌려서 함께 자라고 있는 것이 지금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목회자가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정확한 복음을 나눠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염소와 가라지가 마음대로 교회를 휘저으면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염소들과 가라지들이 교회 안으로 온갖 죄를 가지고 들어와서 양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목회자가 입을 다물고 침묵하면 어떻게 될까요? 알곡과 양들이 말할 수 없는 실망을 가슴에 품고 다른 교회를 찾아가게 됩니다. 가라지와 염소를 지키기 위해서 알곡과 양들이 진리를 찾아서 떠나게 만드는 목사들은 장차 알곡과 양을 보호하고 지키지 않은 죄에 대해서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양을 지키는 목자가 있고 양을 버리고 도망치는 삯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요 10:12~13). 참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만, 삯꾼에게는 진리를 전하고 양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서는 용기와 믿음이 없습니다.

 

쉽게 끌어들이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면 사람들이 떠나게 되므로, 우선 교인 숫자를 늘려 놓은 다음에 진리를 전해야 됩니다.” 그래서 수많은 교회가 영혼들에게 “값싼 은혜와 쉬운 구원”을 나눠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영혼들에게 30분 정도 성경 말씀을 재미있게 전한 다음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그물에 잡힌 사람은  5분간의 상담을 받은 후에 “나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라고 적힌 카드를 제출하면  목사는 그 사람에게 “구원받았다.”는 선언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영혼들을 거두어들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세월이 흘러가면서 “왜 이 사람들이 성장하지 않고 열매를 맺지 못할까?”라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해마다 많은 사람이 세례(침례)를 받고 있는데 교회가 성장하지 못할까? 왜 교회에 입교한 신자들이 교회의 뒷문과 옆문으로 빠져나갈까?” 현대 기독교회는 소그룹과 제자 훈련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소그룹을 운영하고 신자들이 교회에 정착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소그룹과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신자들을 교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와 중생에 대한 가르침을 정확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참된 회개와 거듭남을 경험해야만 소그룹과 제자 훈련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의해서 거듭난 영혼은 소그룹이 없고 제자 훈련 프로그램이 부족해도 스스로 말씀을 붙잡고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온갖 핍박과 시험이 있어도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됩니다. 수단과 방법으로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현대 기독교회는 가라지를 알곡으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투자하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지만, 알곡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에게 알곡처럼 살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의 심령 속에 회개의 정신을 불어넣는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만 알곡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돈과 세상을 사랑하는 염소의 마음 깊은 곳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만 양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곧바른 기별이 선포되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들이 왜 교회를 떠나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거짓말과 탐욕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교회 들어올 때 거짓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선포될 때 당황하게 됩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한 번도 구원의 경험이 무엇인지 들어 볼 기회도 얻지 못하고, 알곡과 양으로 변화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과 진리가 선포될 때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가라지 중심의 목회가 가져온 재앙 

진리가 정확하게 선포되면 염소와 가라지가 교회를 떠나기 때문에 말씀을 정직하게 선포하지 않는 목회자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한 목소리로 선포하는 목자는 매우 적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 가라지와 염소가 득세하게 되었고 알곡과 양이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진리로 운영되지 않고 다수결로 운영되기 때문에 압도적인 숫자의 염소와 가라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회가 가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타협적 원칙과 달콤한 설교가 교회 속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가라지와 염소가 교회를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알곡들이 힘을 잃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회의 알곡들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세요! 우리에게 진리의 양식을 먹여 주세요!” 교회 안에서 외롭게 투쟁하고 있는 양들의 외침을 무시하는 목사들, 알곡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않는 설교자들, 알곡과 양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 성직자들은 마지막 심판 날에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성령께서 눈에 안약을 발라 주셔서 지금 현대 기독교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낚시점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는데 미끼를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낚시점 주인이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물고기를 잡기 원하십니까?” 주인이 이렇게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고기마다 좋아하는 미끼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알곡이 좋아하는 말씀이 있고, 가라지가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양이 좋아하는 복음이 있고 염소가 좋아하는 복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양들의 숫자는 적고 염소는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알곡은 너무나 적은데 가라지는 어디를 가든지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성장시키기 원하는 목회자들은 염소와 가라지에 초점을 맞춘 말씀의 그물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길들여진 목회자들은 마침내 본인 자신도 참된 복음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양과 알곡에게 나누어 줄 양식이 자신에게도 없음을 발견하고 심령이 공허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값싼 은혜”라는 그물을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쉽게 잡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쉽게 잡은 물고기는 참된 구원의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빈 깡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는지 배우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허전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말씀을 사모하는 신자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서 고통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교회 안에 나타나는 말씀의 기근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암 8:11~12)

만일 사랑하는 아내가 길거리에서 여러 명의 악인에게 모욕을 당하고 조롱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하면서 지나가겠습니까? 아내를 사랑한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그리스도의 신부가 교회 안에서 가라지와 염소들에 둘러 싸여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양과 알곡이 풍성하게 자라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할 사명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회자 여러분,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라가는 데에는 “희생”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친구와 재산을 잃어버릴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인기와 평판을 잃어버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교단과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희생을 받아들여야만 부흥과 개혁을 기대할 수 있으며 알곡이 양분을 먹고 성장하는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