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과 성령의 역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께서 주신 누룩의 비유에서 새 언약의 경험에 대한 중요한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예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누룩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은 맛이 없고 딱딱해서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누룩이 없는 그리스도인도 맛이 없고 딱딱해서 성품과 생애 속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에게 성령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설명해 줍니다.

“성령의 능력이 역사할 수 없을 만큼 극악하고 타락하고 저속한 사람은 없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는 사람 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심어짐으로써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써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섞지 아니하면 변화가 생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죄인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교양과 교육을 받을지라도 죄인이 하늘의 자녀로 변화될 수 없다.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수 있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예수님의 비유, 96-97)

누룩은 밀가루의 성질을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화시키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우리 마음과 생애를 그렇게 변화시킵니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으면, 속에서부터 부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점차 밖으로 나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성령의 역사도 먼저 마음속이 새로워짐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하나씩 뜯어고치는 방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저런 악한 습관을 교정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윤리와 도덕을 개선해서 하늘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입으로 고백하는 것과 진리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리를 지식적으로 알더라도, 마음과 생각의 방향이 전격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던 것이 좋아하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이런 변화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되면, 육체에 끌려다니지 않는 승리의 생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새 언약하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새 언약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새 언약의 경험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 언약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교회 안에는 새 언약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경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참된 새 언약의 경험을 모르기 때문에 죄는 이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계명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회를 휩쓸고 있는 거짓 복음

참된 새 언약의 경험을 모르면 결국 다음과 같은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 성벽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부모에게 받은 성격대로 살다가 은혜로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 죄는 이길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계명은 정말 지킬 수 없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셨고,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옥불에 던지는 것인가요? 사탄은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말과 설교를 들을 때 박수를 치고 춤을 춥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과 설교는 죄와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복음은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죄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복음은 죄인의 마음과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면 죄를 버리고 순종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죄” 때문에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바라보면, 죄인의 마음속에 “말할 수 없이 죄송하고 감사한 빚진 자의 심령”이 생기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서 이 심령을 받는 사람들은 새 언약의 승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2-13)

 

십자가 앞에서 빚진 자의 심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속에 의를 사모하는 소원을 새겨주십니다.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고 싶어하는 소원을 넣어주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심령 속에서 새 언약이 이루어져야만 죄와 유혹을 뿌리치는 승리의 생애가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새 언약의 시대에 산다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께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의의 경험이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지배하시면, 죄를 품은 생각은 사라지고 악한 습관을 끊게 됩니다. 분노와 시기와 분쟁이 사라지고 사랑과 겸손과 화평이 생깁니다. 기쁨이 슬픔을 대신하고 우리의 표정과 모습에서 하늘의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사람이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늘의 능력이 내려와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게 되는데, 이것이 새 언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