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휴거 종말을 주제로 쓴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휴거의 시작)라는 내용의 소설이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읽혀졌고, 2014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비밀휴거와 두 단계의 재림에 대한 개념은 익숙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광스러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구 역사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마지막 정점을 이루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수 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모든 신학자와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한 번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가르쳐왔습니다. 예수께서 두 단계로 나누어서 재림하신다는 비밀휴거설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생기기 시작한 최근의 이론입니다. 그러나 비밀휴거설을 믿는 목사들 중에는 그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비밀휴거설을 버리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의 고백

오즈월드 스미스 목사는 오랫동안 비밀휴거를 믿고 가르쳤던 목사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비밀휴거의 허구성을 깨달은 후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2단계 재림론을 주장했으나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보니 비밀휴거와 공중재림으로 나누어지는 종말론은 성경에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휴거를 뜻하는 말이고, 다른 단어들은 예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뜻으로 알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다. 신약성경을 모두 살펴보아도 주의 오심을 2단계로 암시하는 말씀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비밀휴거 이론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번 연구해보라. 성경의 단 한 구절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Oswald J. Smith, Tribulation or Rapture – Which?)

 

하나의 사건을 나타내는 3개의 헬라어

비밀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이론을 세우기 위해서 헬라어 원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먼저 ‘파루시아’, 즉 예수께서 비밀리에 오시는 비밀 재림이 있고, 그로부터 7년 환난 후에 ‘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 즉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재림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먼저 비밀 재림(파루시아)가 있고, 7년 환난 후에 공개적 재림(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헬라어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헬라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파루시아, 아포칼립시스 그리고 에피파네이아는 모두 동일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이들 단어에 7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습니다.

 

공개적인 재림의 의미로도 사용된 파루시아

비밀휴거론자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파루시아)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살전 4:16-17)

 

비밀휴거론자는 이 말씀에서 “강림”(파루시아)이라는 단어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파루시아는 비밀 재림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임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는 이 엄청난 사건이 비밀스러운 재림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비밀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또 다른 편지서에서 파루시아가 ‘영광스럽고 공개적인 재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

 

비밀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성경절은 7년 환난 후에 있는 그리스도의 공개 재림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파루시아’라는 단어가 예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영광스러운 공개 재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재림에 대한 헬라어는 모두 세상 끝에 있는 단 한 번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파루시아 = 에피파네이아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씀은 비밀휴거의 문제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공개적 재림)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를 죽이는 장면입니다. 비밀휴거론자는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는 7년 환난의 끝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실 때에 죽임을 당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성경절에서는 ‘파루시아’를 공개적 강림이란 뜻의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와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밀휴거론자는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뜻한다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공개적 재림을 설명하면서 파루시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기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나누기 위해서 억지로 성경을 풀면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모순이 생깁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만일 비밀휴거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파루시아’가 비밀 재림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죽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비밀휴거 다음에 이어지는 7년 환난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라는 그들의 종말론 시나리오에 치명적인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바울이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을 사용해서 하나의 재림을 설명했기 때문에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파루시아 = 아포칼립시스

이미 수차례 언급했듯이, 비밀휴거론자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스러운 재림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도 비밀스러운 재림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마태복음에서는 “인자의 임함”이 ‘파루시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동일한 말씀이 공개적 재림을 뜻하는 ‘아포칼립시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 공개적 재림)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 30)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자의 임함”은 누가 보아도 동일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재림을 한 성경절에서는 파루시아를 사용하여 재림을 표현했고, 다른 성경절에서는 아포칼립시스를 사용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두 성경절 모두 공개적 재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두 단계의 구원이 없었던 것처럼, 인자의 때에도 두 단계의 구원은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파루시아(임함)와 아포칼립시스(나타남) 사이에 7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재림의 소망을 둘로 쪼개는 비밀휴거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재림은 짐승의 표 환난의 끝에 있는 영광스러운 재림과 부활이 아니라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비밀휴거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스러운 소망”으로 고대하는 것은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공개적 재림이라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공개적 재림)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성경에 없는 비밀휴거가 만들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로 나누어졌습니다. 절망 속에 있는 인류의 유일한 소망인 재림이 두 단계로 쪼개지고 말았는데, 그것이 비밀휴거론자가 만들어 놓은 최대 문제입니다. 독자 여러분, 마지막 환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말세의 끝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죄와 세상을 버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늘 하던 기도 말고 진심으로 죄를 버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환난을 위한 준비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난 속에서도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비밀휴거를 믿으면 환난을 위한 준비가 안 됩니다. 혹시 휴거 당하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막연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두 단계로 오시나요?”라는 질문에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