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하나님의 마음에는 비밀휴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결코 비밀리에 휴거시킬 수 없습니다. 구속의 역사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하나님께서 6천여 년 동안 기다려온 구속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의인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비밀휴거는 구속의 역사를 이끌어온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는 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피를 통해 구원받는 성도들의 모습을 온 우주에 보여주기를 얼마나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품고 순종하며 살다가 죽은 성도들이 무덤에서 나와 환호하는 모습을 온 우주와 천사들 앞에 공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팔과 같은 큰 음성으로 “내 아들의 피가 죄인을 구원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중세기에 화형대에서 불타서 죽은 성도들, 알프스 깊은 곳에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다가 죽은 성도들, 돈과 세상을 버리고 진리만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죽은 성도들, 사탄과 악령들이 멸망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공격했던 성도들이 부활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령들 앞에서 보여줄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 음성으로 크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마지막 날에 그 자리에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비밀휴거와 그것에 포함된 종말론은 너무나 허탄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개신교 신앙을 물려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상관없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도 전혀 다릅니다.

만일 비밀휴거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이단으로 취급한다면, 그러한 가르침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마틴 루터, 요한 낙스, 요한 칼빈, 요한 웨슬리와 같은 19세기 이전의 개혁자들도 이단으로 낙인 찍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재림의 약속은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가시적이고(계 1:7), 가청적이며(살전 4:16), 온 세상이 알 수 있고(마 24:27),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역사의 마지막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가르시고 이 땅에 오실 때 죽은 의인들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살아있는 성도들도 홀연히 변화되어(고전 15:50-53), 승천하게 될 것입니다(살전 4:16-18). 의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광채로 인하여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어 승천할 것이지만, 동일한 광채가 악인들에게는 죽음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

비밀휴거의 문제점에 대해서 설교하면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독교회에 수많은 목사들과 교인들이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을 믿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틀렸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진리는 숫자나 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오직 성경으로만 확인하고 결정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진리는 대다수의 경우에 소수의 편에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진리는 선지자들과 소수의 남은 무리가 붙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에도 아주 적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유대교회 전체가 예수를 거절하고 무시했습니다. 아주 적은 무리만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했습니다. 대다수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서 미혹 당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역사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정확하게 반복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중세기 종교 암흑기 때에도 진리는 소수의 편에 있었습니다. 진리에 충성하기 원했던 소수의 성도들은 깊은 산과 계곡에서 광야교회를 세우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의 대도시에 세워진 화려한 교회에서 진리를 타협했고 말씀을 버렸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틴 루터와 츠빙글리와 같은 개혁자들이 진리를 높이 쳐들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반대편에 섰습니다. 수많은 개혁자와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 진리를 지켰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매 시대마다 진리는 소수의 남은 무리가 붙잡았고 충성했으며 지금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얼마나 많은 숫자가 믿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신학박사가 말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단이 인정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결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가르침을 따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든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비밀휴거를 믿는 분들에게 보내는 호소

비밀휴거를 믿는 어떤 목회자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환난이 오기 전에 우리는 비밀리에 휴거 당해서 하늘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은행에서 융자해서 사용해도 됩니다. 신용카드를 마음대로 만들어서 사용해도 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책임에서 면제되어 있습니다.”

목회자의 이런 설교에 교인들은 크게 환호하면서 손뼉를 쳤습니다. 휴거 당해서 천국 가겠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승천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도덕과 양심이 어떻게 이렇게 타락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독자 여러분,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모르면 완전한 암흑 가운데 있으면서 “나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 당할 자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생애의 열매와 성품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간이 매우 가까이 왔다는 증거들이 온 세상에 편만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는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교회 안과 밖의 도덕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겸비한 마음으로 진리가 무엇인가를 살피고 예수께서 가신 좁은 길을 따라가는 성도들은 예수께서 오실 때를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살전 5:4)

 

누가 곧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할까요? 누가 지금 당장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늘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기로 결정할까요? 지금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오직 의인과 악인으로 구별될 것입니다. 지금은 중간에 서 있는 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성령의 음성에 굴복한 자들은 구원받고 거절한 자들은 멸망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완전한 구원과 완전한 멸망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준비하라! 준비하라!”는 성령의 호소에 누가 전격적으로 반응할까요?

독자 여러분께 최종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비밀휴거의 가르침이 정말 성경적인 진리라고 믿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부활을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공중으로 올라가는 비밀휴거를 기다리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대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8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집니까?

비밀휴거를 가르치는 분들은 의인들이 먼저 하늘로 휴거 당하고 악인들은 이 땅에 남아서 한 번 더 구원받을 기회를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의인이 먼저 휴거 당하고 악인들은 이 세상에 남아서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갖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도 단 한 번의 기회로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비밀휴거론과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갖는다는 이론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리입니다.

 

노아의 때처럼 심판이 이루어진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께서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7일 동안 홍수 심판이 오지 않았습니다. 7일 후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방주 문을 열어달라고 매달리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방주 문이 닫혔을 때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은혜의 시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도 이와 동일하게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지구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은혜의 시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기 전에 끝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의 시간이 끝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과정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들이 세계 도처에 나타나면서 짐승의 표 환난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구의 이곳저곳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홍수와 쓰나미와 지진이 몰아닥치면서 세계 경제는 파탄에 이를 것입니다. 온 세상이 두려워서 자신들을 구해줄 구세주를 찾을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구약 시대의 엘리야와 같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온 세상 사람들은 교파와 종교를 초월하여 하나로 연합해서 짐승과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계 13:12-13)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세력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으라고 강요할 것이고 결국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성도들을 향해서 사형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 13:15-16)

 

악인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고, 의인들은 그것을 거절할 것입니다. 그때 누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까요? 사도 요한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의인들의 신앙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1-12)

 

짐승의 표 환난을 지나면서 지구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과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나눠질 것입니다. 짐승의 표에 의해서 온 세상은 의인과 악인으로 나눠질 것이고, 구원받는 자와 멸망 당하는 자로 결정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시키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방주 안에 들어가든지 밖에 남든지를 스스로 결정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스스로 결정할 것입니다. 짐승의 표 환난을 지나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나면 지구에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게 됩니다. 노아의 때에 한번 닫힌 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았던 것처럼, 이 세상 은혜의 문이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방주 문이 닫히고 홍수가 오기 전까지 7일이 지났던 것처럼, 이 세상 은혜의 문이 닫히고 성령이 거두어지면, 하늘로부터 7 재앙이 지구에 떨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섯째 재앙 때 아마겟돈의 투쟁이 시작되어 일곱째 재앙이 내릴 때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짐승의 표를 거절한 살아있는 의인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때 죽었던 성도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환호할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사건의 순서입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은혜의 시간 끝)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재림과 함께 주어지는 보상)”(계 22:11-12)

 

열 처녀의 비유처럼 심판이 이루어진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노아의 때와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자 그분을 기다리던 처녀(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졸면서 잠들게 됩니다. 갑자기 신랑(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소리가 들리자, 그때 비로소 잠이 깬 미련한 처녀들이 일어나서 기름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다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슬기로운 처녀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10)

 

미련한 처녀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문은 굳게 닫혔으며,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재림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처녀들은 뒤늦게 문을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간청했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왜 열리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은혜의 시간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지만, 세상을 사랑하고 말씀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성령의 음성에 부주의함으로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 25:11-12)

 

성경 전체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에는 구원을 위해서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자비의 구세주께서는 모든 인류들이 변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 그것으로써 모든 것은 끝나게 됩니다. 노아의 설교와 회개의 초청을 끝까지 거절했던 사람들에게 은혜의 시간이 끝났었던 것처럼, 소돔을 떠나라는 롯의 간절한 호소를 거절했던 가족들과 소돔의 시민들에게 은혜의 시간이 끝났었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기 전에 은혜의 시간이 끝납니다. 비밀휴거와 세대주의 신학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은혜의 시간이 끝난다는 가르침이 없고, 오히려 악인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는 미혹의 음성만 있습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대답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휴거 당하지 못한 악인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질까요?”

7부,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집니까?

비밀휴거론자는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성도들이 비밀리에 휴거 당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이제 적그리스도의 출현 시점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회는 서로 다른 두 적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2천 년 동안 조용히 있다가 비밀휴거 후에 갑자기 나타나서 7년 대환난을 주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적그리스도는 초대 교회에 이미 나타났으며 중세기 종교암흑기에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해서 성도들을 크게 핍박하고 진리를 땅에 짓밟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초대 교회로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성도들을 미혹하는 세력인데 마지막 짐승의 표 환난 때 온 세상을 이적으로 미혹하여 짐승의 표를 받게 합니다.

두 적그리스도 중 어느 것이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일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칩니다. “지금은 적그리스도가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비밀휴거 후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옮기시면서 비밀휴거가 일어나게 됩니다. 의인들이 비밀리에 하늘로 휴거 당하고 나면, 그 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7년 대환난을 일으키고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십니다.”

종말에 대한 대부분의 영화나 소설들은 이와 같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오늘날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예언 해석과 예언 세미나도 비밀휴거, 적그리스도의 출현 그리고 7년 대환난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현대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나타나서 세계를 지배하는 한 사람의 능력자입니다. 그런데 성경도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충격적인 사실은, 성경은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적그리스도는 1세기에 이미 나타났다

적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성경에 5번 나오는데, 모두 사도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적그리스도가 세상 끝에 나타날 것이라고 설교하고 있는데, 사도 요한은 그 당시 이미 적그리스도가 존재하였다고 했으며,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이미 활동하고 있다고 증거했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요일 2:18)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

 

많은 사람이 사도들이 남긴 이런 말씀의 중요성을 놓침으로써 적그리스도에 대한 이해가 크게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났”다고 말했고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이미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고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씀을 덮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나타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적그리스도가 온갖 거짓 교리와 거짓 복음과 거짓 계명으로 교회를 공격해서 진리가 땅에 짓밟혀왔는데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나타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보지 못하고 변질된 복음과 교리의 위험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비밀휴거 이후에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 해석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초자연적인 존재로 나타나서 세상을 주관하게 될 것이다.”라는 비밀휴거론자들의 가르침은 종교개혁 운동과 개신교회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루터교회)와 요한 칼빈(장로교회)과 요한 웨슬리(감리교회)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모두 초대 교회에 이미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은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적그리스도라고 선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로 교황을 지목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기 동안 사탄이 교황과 바티칸을 통해서 수많은 이설과 거짓 복음과 거짓 계명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거짓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이것이 개신교회를 세운 선구자들의 개혁 정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개신교 설교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미래에 있을 비밀휴거 후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가르침은 사라져버렸고, 사도들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출현 시점과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시점 사이에는 적어도 2천 년 이상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그리스도가 미래에 나타난다고 믿으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기만과 미혹은 전혀 알 수 없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나타났고 지금도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는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기 원하십니까?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만 마지막 시대의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배도 후의 적그리스도인가? 비밀휴거 후의 적그리스도인가?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적그리스도)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순서와 상황을 말하고 있는데,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밀휴거를 믿는 세대주의론자들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순서를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먼저 의인들의 비밀휴거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지배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비밀휴거 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적그리스도 때문에 기독교회가 크게 배도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무시하게 됩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예언하고 있는 중세기 교회의 배도 역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기독교회가 배도하기 이전에 믿었던 순수한 복음과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초대 교회가 예수께로부터 받았던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기독교회가 크게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제자들이 세운 초대 교회는 언제 큰 배도에 빠지게 되었고 어떻게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까?” 월간이슈 20호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었습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예언은 독자 여러분의 인생과 신앙에 결코 잊지 못할 빛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영혼들은 마지막 시대에 사탄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월간이슈 20호를 꼭 주문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 위치에 놓는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장면에서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참람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과 대적하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무엇인가?

“저는 대적하는 자라 …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성전일까요? 이 질문은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날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를 믿는 분들 중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중동지방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밀휴거를 묘사한 대표적 소설,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휴거의 시작)>에서도 의인들이 하늘로 휴거 당한 후에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밀휴거론자와 세대주의론자의 주장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중동지방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해석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을 유대인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144,000인도 유대민족으로 해석하게 되고,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도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항상 중동지방과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성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성전”에서 “성전”의 헬라어 원어는 “나오스”인데 바울의 다른 편지서에서 “나오스(성전)”가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살펴보아야만 “하나님의 성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나오스)인 것과”(고전 3:16)

 

이 말씀에서 바울은 “너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 6:16)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성도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성전”은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성전이 아닙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이 말씀에서는 바울이 “하나님의 성전”을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도의 마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앉게 될 “하나님의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건물도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서에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전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면서 운명하셨을 때 성소 휘장이 둘로 찢어졌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51)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한 손이 예루살렘 성소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무엇을 뜻할까요? 아브라함 이후 유대인들이 거의 2천 년 이상 제단과 성소에서 수행해오던 동물의 희생제도가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양의 피를 흘리는 제사제도가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어떻게 그런 곳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두 종류의 성소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십자가 이전의 성소는 “유대인의 성소”를 말하는 것이고 십자가 이후의 성소는 성도들의 “마음 성소”를 뜻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는 바울의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어떤 성소에 앉을 것이라는 뜻일까요?

분명합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성도의 마음 성소를 지배하고 미혹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거짓 가르침과 거짓 복음으로 수많은 성도들을 미혹해서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을 경고했던 것입니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교회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인도하셨지만, 신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을 택하셔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유대민족입니까?

아닙니다. 12제자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진리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큰 이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온 세상과 교회를 미혹하게 될 것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3-15)

 

월간이슈 29호에서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과 144,000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깊이 있게 다루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적그리스도는 세상 끝까지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한다

“불법의 비밀(적그리스도)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이미 적그리스도의 활동이 시작되었다고 경고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았던 초대 교회에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전해준 진리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순결했던 초대 교회가 언제, 어떻게 흔들리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자 한 사람 한 사람 연로한 기수들이 그들의 자리에 쓰러져갔다. 초대 교회를 세운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짐을 넘겨받아야 할 젊은 사역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옛 신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켰지만,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The Acts of the Apostles, 1st centry church).

 

초대 기독교회를 세운 나이 든 성도들이 하나씩 죽어갔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셨던 말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재림의 약속이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세운 장로들이 늙어가면서 젊은 세대가 올라왔는데, 그들은 더 이상 핍박받으며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호소하는 설교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롭고 신기하고 놀라운’ 복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옛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서 바울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했고, 요한은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다고 했던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회 안에 있었던 세속적 정신과 사상이 결국 중세기에 성도들을 핍박하는 놀라운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를 비밀휴거 후에 나타나는 미래의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비성서적이고 비논리적입니다. 적그리스도를 미래의 존재로만 강조하면, 과거에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지 않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 2천 년 동안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복음과 거짓 계명이 어떤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적그리스도를 미래에 적용시킬 때 나타나는 무서운 미혹입니다.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에서 시작된 “불법의 비밀”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7-8)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1세기에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정신은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교황 세력으로 크게 강성해졌고 이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존재하는 세력이 될 것입니다.

 

예언의 순서를 바꾸는 사탄의 목적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먼저 비밀 재림이 있고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사탄이 이런 가르침을 교회 안에 뿌려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탄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적그리스도가 온 세상 앞에 나타날 때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으로 착각하게 유도하는 것입니다. 비밀휴거와 세대주의 예언 해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짐승의 표 환난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그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일어나는 세계적인 미혹의 장면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3-14)

 

왜 짐승의 표 환난 때 수많은 성도가 미혹 당하게 될까요?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는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고 그 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이용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엄청난 이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성경은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재림의 순서를 분명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주의 재림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이 말씀에서 바울은 무엇을 경고하고 있습니까? 먼저 멸망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것이므로 미혹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적그리스도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먼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오늘날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를 믿는 분들은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적그리스도가 멸하여질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멸하시리라”(살후 2:8)

 

짐승의 표 환난 후에 의인의 구원과 부활이 있다

사도 요한은 먼저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짐승의 표 환난이 있고, 그것을 통과하면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의인들이 구원받고 하늘에 가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이 차기까지 왕 노릇 하니 이는 첫째 부활(의인의 부활)이라”(계 20:4)

 

적그리스도가 강요하게 될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순교한 사람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말씀은, 먼저 의인들의 휴거(구원)와 부활이 있은 다음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7년 동안 장악할 것이라는 세대주의론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는 기독교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승이 사람들에게 강제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기 전에 나는 미리 휴거되어서 환난기 동안 하늘에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입니까? 적그리스도는 “첫째 부활”이 있기 전에 그의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질까요?”

 

Do you know?

개신교를 세운 종교개혁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 적그리스도가 기독교회에 엄청난 배도를 가져왔으며 수많은 진리를 무너뜨렸고 수천만 명의 성도들을 박해하고 죽였다고 가르쳤습니다. 위클리프과 마틴 루터의 동료 개혁자인 멜란히톤, 요한 낙스 그리고 예언 해석을 많이 강조하지 않았던 요한 칼빈까지도 중세기의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요한 칼빈의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증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이라고 단언한다.”

최초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배포한 옥스포드 출신의 학자인 틴데일은 “로마의 적그리스도를 천주교회는 교황이라고 부른다.”고 했다가 순교당했습니다. 동시대 케임브릿지의 학자인 로버트 반스는 교황을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적그리스도로 선언했다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화형당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앞장서서 교황과 바티칸을 적그리스도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개혁자들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 해석에 있어서 놀라운 일치를 보였습니다.

 

Do you know?

비밀휴거와 세대주의 종말론의 뿌리를 알고 계시나요?

사도 바울이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미래의 어떤 시점으로 가르치는 비밀휴거론의 주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성경이 영어로 번역되자 종교개혁 정신은 유럽 전역에 걸쳐서 불길처럼 번져 나갔으며,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적그리스도는 교황과 바티칸 세력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천주교회에서는 예수회의 사제 두 사람, 알카자(Alcazar)와 리베라(Ribera)를 내세워서 반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 말씀을 앞장세운 예리한 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두 가지의 새로운 예언 해석을 만들었는데, 알카자 신부는 과거주의 예언해석을 만들었고, 리베라 신부는 미래주의 예언 해석을 만들었습니다.

알카자 신부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를 교황과 천주교회가 나타나기 이전 시대로 돌려서 적그리스도와 교황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았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중세기를 지배한 기간인 ‘1,260일’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같은 예언 기간도 중세기 이전의 과거로 돌려서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가 유대인을 핍박하던 기간으로 해석함으로써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미래주의 예언 해석을 만든 리베라 신부도 동일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나타나는 미래의 인물로 해석하였고, 미래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성도들을 핍박하면서 하나님처럼 행세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황과 적그리스도의 연결선을 끊어놓았습니다.

 

바로 이 미래주의 예언 해석에, 비밀휴거를 탄생시킨 세대주의 종말론의 뿌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19세기의 유명한 성경 주석학자 요셉 터너(Joseph Turner)는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확신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확산되자, 교황은 마침내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두 가지의 다른 해석법을 마련하였다. 16세기 말경, 로마 천주교회의 예수회 소속인 두 명의 신부는 자신들이 이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동일한 목표를 위해서 각각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자면,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교황권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적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해석법을 창안해 내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회 신부인 알카자르는 심혈을 기울여 과거주의 예언 해석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교황이 로마에서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썼다. 이와 반면에 또 다른 예수회 신부인 리베라는 미래주의 예언 해석 체계를 내놓음으로써,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하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그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교황권에게 적용해서는 안 되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어떤 초자연적인 인물, 즉 마지막 환난 기 간 동안에 지상을 장악할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하였다. …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미래주의 해석법을 지지하고 있다. 개신교회가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성경적인 진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워주는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요셉 터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16~17p)

개신교 신앙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은 천주교회의 두 신부가 만들어낸 과거주의나 미래주의 예언 해석이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를 주도해온 교황의 역사와 행적을 예언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기 위해서 창안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리베라 신부의 미래주의 해석에 뿌리를 박고 있는 비밀휴거론자들의 세대주의는 현대의 칼빈 신학을 대표하는 벌코프 박사나 훼케마 박사에 의해서도 매우 위험한 것으로 비평받고 있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서 혼동하게 만드는 비밀휴거론의 종말론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매우 위험한 기만입니다.

6부, 비밀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나요?

비밀휴거를 믿는 분들은 성도들이 비밀리에 휴거 당하면 곧바로 7년 대환난이 생기고 그 후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재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7년 대환난은 성서적인 가르침일까요?

오늘날 기독교 서점에서 팔리는 종말론에 대한 책들을 보면, 거의 모든 책들에서 다루는 공통적인 이슈가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7년 대환난>입니다. 지금 기독교회는 세상 종말에 반드시 7년 대환난이 일어날 것을 흔들리지 않는 진리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 대환난은 성경 어디에서 나온 개념일까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마지막 환난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그것은 짐승의 표 환난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7년’이라는 기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7년 대환난은 다니엘 9장의 70주일 예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70주일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마지막 종말론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월간이슈 29호에서 70주일 전체 예언과 7년 대환난 문제를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월간이슈 29호를 꼭 읽어보시고 마지막 시대의 종말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되길 바랍니다.

 

70주일은 무엇에 대한 예언인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배도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마다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으며 고난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순종과 반역의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은혜의 기간을 주시는데, 그것이 70주일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70주일 예언을 통해서 유대민족에게 경고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을 주겠다. 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 아들, 그리스도를 70주일 예언의 시간표대로 유대 땅에 보낼 것이다. 그리스도가 언제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언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에 대한 경고를 70주일 예언을 통해서 주겠다. 만일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너희는 70주일 예언대로 메시아를 죽이게 될 것이다.”

70주일 예언은 정말 두렵고 놀라운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이 70주일을 깊이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잘 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70주일 예언은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주신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서 잘 준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70주일 예언 시간표 그대로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다니엘 9장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70주일 예언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일, week)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이레”라는 말은 영어로 week,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70이레로 기한을 정했다는 말은 70주일로 기간을 정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위해서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0주일이라는 기간 중에 어떤 일이 생길까요?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續)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단 9:24)

 

이것이 어떤 사건입니까? 죄가 영원히 속량 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사건이 어떤 사건일까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70주일의 기간이 마쳐지기 전에 인류의 죄를 속량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는 십자가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70주일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예언임이 틀림없습니다.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 9:2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70주일이라는 기간을 정해놓았는데, 그 기간 중에 지극히 거룩한 자,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70주일 예언 기간 중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누구일까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말의 헬라어가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말의 히브리어가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70주일의 예언 기간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났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70주일 예언의 요약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4-27)

70주일 예언의 내용을 대략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BC 457년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출현하기까지 7주일(49년)과 62주일(434년)이 지날 것입니다. 여기에서 49년이 별도로 구분된 것은, 예루살렘 성(城)을 중건하는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 성 중건이 완성된 후(BC 408년) 62주(434년)가 지나고 나면 메시아가 출현할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BC 408년에서 434년이 지나면 AD 26년이 되는데, 연대에서는 0년이 없기 때문에 뺄셈을 한 다음 1년을 더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계산에서 산출된 해가 AD 27이고 그 해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3)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을 위한 은혜의 기간 70주일(490년) 중에서 69주일(7주일+62주일), 즉 483년(49년+434년)이 지나고 이제 한 주일, 즉 7년이 남게 됩니다.

(4) 성경 본문에 의하면, 그 남아 있는 1주일(7년)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동안 예수를 상징하던 어린양을 잡아 제사드리던 성전의 제사제도가 어린양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직접 희생당하심으로 더 이상 예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드리는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한 주일의 절반(3일 반 = 3년 반)은, AD 27년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3년 반이 지난 시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AD 31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AD 31년에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5) 그 후로부터 나머지 3년 반이 지나면 AD 34년이 되는데, 바로 이 해에 초대 교회 집사였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였고, 이때로부터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본격적인 핍박이 시작되어 사도들 외에는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나라로 흩어지기 시작하여 복음이 이스라엘 지경을 넘어 이방 나라에게 전파되기 시작하므로 이스라엘을 위한 은혜의 기간이 끝난 것입니다. 490년 은혜의 기간은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지금까지 70주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드린 내용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70주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을 제대로 해석하면 비밀휴거와 세대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 한 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7년 대환난’이라는 종말론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0주일의 마지막 한 주일을 별도로 분리시켜서 세상 끝의 7년으로 적용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기독교회가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기둥처럼 붙잡고 있는 비밀휴거과 7년 대환난이 근본부터 흔들려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회가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에서 69주일까지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69주일까지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침례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70주일 예언에 대한 이해 차이는 마지막 한 주일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집니다. ‘7년 대환난’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다. 그 결과, 70주일 예언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와 언약의 피는 사라졌습니다.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69주일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의인들을 비밀휴거시킨 후에야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69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집어넣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밀휴거론자와 세대주의론자들은 예언의 시간표를 69주(483년)+2,000년에 이르는 기독교회 시대+세상 끝의 1주(7년)로 만들었습니다. 70번째 주일인 마지막 7년을 ‘7년 대환난’이라고 이름 붙인 후, 7년 환난의 앞에 비밀휴거를 넣었고, 7년 환난 후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2단계의 재림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 예언을 완전히 왜곡시킨 가르침입니다. 

오래전부터 세대주의와 비밀휴거를 믿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던져졌지만, 지금까지 성서적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을 믿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70주일 예언에서 69주일까지는 역사적인 순서대로 해석하다가 왜 마지막 한 주일은 따로 분리시켜서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까? 어떤 말씀을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선지자 다니엘에게 “네 백성(유대 백성)과 네 거룩한 성(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70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라고 말함으로써, 70주일 예언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예언임을 분명히 했는데(단 9:24), 왜 70주일 예언을 둘로 나누어서 그 사이에 2천 년의 공백을 집어넣었습니까? 성경에서 기간을 나타내는 모든 예언은 하나로 연결된 사건으로 해석하는데, 왜 70주일 예언만 둘로 나누어서 마지막 1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까?”

이제 독자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비밀휴거와 예수 강림 사이에 7년 대환난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5부, 예수께서 두 단계로 재림하시나요?

비밀휴거 종말을 주제로 쓴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 휴거의 시작)라는 내용의 소설이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읽혀졌고, 2014년에는 같은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비밀휴거와 두 단계의 재림에 대한 개념은 익숙한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광스러운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구 역사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마지막 정점을 이루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수 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모든 신학자와 성직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한 번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으로 가르쳐왔습니다. 예수께서 두 단계로 나누어서 재림하신다는 비밀휴거설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에 생기기 시작한 최근의 이론입니다. 그러나 비밀휴거설을 믿는 목사들 중에는 그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비밀휴거설을 버리는 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의 고백

오즈월드 스미스 목사는 오랫동안 비밀휴거를 믿고 가르쳤던 목사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비밀휴거의 허구성을 깨달은 후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2단계 재림론을 주장했으나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보니 비밀휴거와 공중재림으로 나누어지는 종말론은 성경에 단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휴거를 뜻하는 말이고, 다른 단어들은 예수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시는 뜻으로 알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었다. 신약성경을 모두 살펴보아도 주의 오심을 2단계로 암시하는 말씀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비밀휴거 이론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한번 연구해보라. 성경의 단 한 구절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Oswald J. Smith, Tribulation or Rapture – Which?)

 

하나의 사건을 나타내는 3개의 헬라어

비밀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이론을 세우기 위해서 헬라어 원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먼저 ‘파루시아’, 즉 예수께서 비밀리에 오시는 비밀 재림이 있고, 그로부터 7년 환난 후에 ‘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 즉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재림이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먼저 비밀 재림(파루시아)가 있고, 7년 환난 후에 공개적 재림(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헬라어는 두 단계로 나누어진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헬라어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파루시아, 아포칼립시스 그리고 에피파네이아는 모두 동일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이들 단어에 7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습니다.

 

공개적인 재림의 의미로도 사용된 파루시아

비밀휴거론자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파루시아)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살전 4:16-17)

 

비밀휴거론자는 이 말씀에서 “강림”(파루시아)이라는 단어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파루시아는 비밀 재림을 뜻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임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는 이 엄청난 사건이 비밀스러운 재림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비밀 재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또 다른 편지서에서 파루시아가 ‘영광스럽고 공개적인 재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

 

비밀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성경절은 7년 환난 후에 있는 그리스도의 공개 재림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파루시아’라는 단어가 예수께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영광스러운 공개 재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나오는 재림에 대한 헬라어는 모두 세상 끝에 있는 단 한 번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파루시아 = 에피파네이아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씀은 비밀휴거의 문제를 정확하게 드러냅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공개적 재림)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8)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를 죽이는 장면입니다. 비밀휴거론자는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는 7년 환난의 끝에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실 때에 죽임을 당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성경절에서는 ‘파루시아’를 공개적 강림이란 뜻의 헬라어 ‘에피파네이아’와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밀휴거론자는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뜻한다고 주장하지만, 바울은 공개적 재림을 설명하면서 파루시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모순이 생기게 될까요?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런 충돌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 단계로 나누기 위해서 억지로 성경을 풀면 성경의 이곳저곳에서 모순이 생깁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만일 비밀휴거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파루시아’가 비밀 재림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죽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비밀휴거 다음에 이어지는 7년 환난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라는 그들의 종말론 시나리오에 치명적인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바울이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을 사용해서 하나의 재림을 설명했기 때문에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파루시아 = 아포칼립시스

이미 수차례 언급했듯이, 비밀휴거론자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스러운 재림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도 비밀스러운 재림으로 해석해야 할까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마태복음에서는 “인자의 임함”이 ‘파루시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동일한 말씀이 공개적 재림을 뜻하는 ‘아포칼립시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 공개적 재림)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 30)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자의 임함”은 누가 보아도 동일한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재림을 한 성경절에서는 파루시아를 사용하여 재림을 표현했고, 다른 성경절에서는 아포칼립시스를 사용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두 성경절 모두 공개적 재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두 단계의 구원이 없었던 것처럼, 인자의 때에도 두 단계의 구원은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파루시아(임함)와 아포칼립시스(나타남) 사이에 7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재림의 소망을 둘로 쪼개는 비밀휴거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재림은 짐승의 표 환난의 끝에 있는 영광스러운 재림과 부활이 아니라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비밀휴거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스러운 소망”으로 고대하는 것은 예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공개적 재림이라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공개적 재림)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성경에 없는 비밀휴거가 만들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로 나누어졌습니다. 절망 속에 있는 인류의 유일한 소망인 재림이 두 단계로 쪼개지고 말았는데, 그것이 비밀휴거론자가 만들어 놓은 최대 문제입니다. 독자 여러분, 마지막 환난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말세의 끝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마지막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죄와 세상을 버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늘 하던 기도 말고 진심으로 죄를 버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환난을 위한 준비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난 속에서도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비밀휴거를 믿으면 환난을 위한 준비가 안 됩니다. 혹시 휴거 당하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막연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두 단계로 오시나요?”라는 질문에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4부,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난을 면제해 주실까요?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의인들은 마지막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하늘로 휴거 당하기 때문에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것 역시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도들이 마지막 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했고, 의인들을 환난 가운데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3, 9)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전혀 오해할 여지가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환난 때 악인들이 성도들을 죽이려고 할 것이고, 온 세상이 미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마지막 환난의 때에도 정확하게 적용됩니다(요 16:33).

비밀휴거는 성서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의인들은 먼저 하늘로 휴거 당하고 악인들만 남아서 환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과 악인 모두 짐승의 표 환난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환난을 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환난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사도 요한도 의인들이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1-12)

 

얼마나 분명합니까? 마지막 환난에서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성도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입니다. 물론,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충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짐승의 표 환난을 위해 준비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의인들이 환난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리를 세우기 위해서 어떤 성경절을 사용할까요? 이 성경구절을 사용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환난)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tereo ek)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비밀휴거론자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는 말씀을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오해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로 번역된 헬라어가 요한복음에도 나오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tereo ek) 위함이니이다”(요 17:6, 15) 

 

계시록에서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한다”로 번역된 헬라어가, 요한복음에서는 ‘악에서 보전한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인들이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된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환난 때에 의인들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전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라고 하심으로써, 의인들이 비밀휴거 당해서 환난을 면하게 될 것이라는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두 성경절 모두 “말씀을 지킨 성도들”을 위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켰은즉 …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아무나 환난의 때에 보호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지키고 순종한 성도들이 보호받는 것입니다.

비밀휴거론자가 ‘의인들이 마지막 환난을 피한다’는 주장을 할 때 사용하는 또 하나의 성경절이 있습니다.

 

“이날(마지막 환난의 날)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5-36)

 

“장차 올 이 모든 일(환난)”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환난이 오기 전에 비밀휴거를 통해서 피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지구의 모든 사람에게 환난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기도에서 그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다”(요 17:15)

 

‘환난을 피한다, 환난을 면하게 한다’는 것은 환난 속에서 보전해주신다(지켜주신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환난 속에서 구원받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 환난 속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마지막 시대의 의인들도 짐승의 환난 가운데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가 오기 전에 노아 가족을 하늘로 휴거시켜서 피하게 해주셨습니까? 아닙니다. 홍수 속에서 보전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환난 때도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을 환난 속에서 보호하실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비밀휴거의 증거로 제시되는 말씀을 하나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사도 요한)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사도 요한)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당신의 교회를 휴거시키기 위해서 “올라오라”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말씀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에서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음성은 지상에 있는 교회에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사도 요한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사도 요한)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분명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읽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읽어야만 거짓 교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비밀휴거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알곡과 가라지의 추수 이야기입니다.

 

“좋은 씨(알곡)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마 13:38, 39)

 

이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세상 끝에 추수하실 때, 오직 두 그룹의 사람들, 즉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밀휴거에서는 알곡이, 의인들이 먼저 추수되어 휴거 당한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럴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추수 때(세상 끝)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얼마나 분명합니까? 알곡과 가라지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교회 안에 있다가 마지막 추수 때에 알곡은 하늘 곳간에 거두어지고, 가라지는 불사르기 위해서 단으로 묶어지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추수가 어떻게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7년 환난의 간격을 두고 따로따로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추수는 세상 끝에 한번에,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비밀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추수가 어떻게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의인들을 먼저 거두어서 휴거시키고, 악인들의 추수는 그로부터 7년 환난 후에 별도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끝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놔두라”고 하십니다. 비밀휴거는 예수님의 계획과 완전히 상반되는 교리입니다. 이제 비밀휴거의 문제가 보이십니까?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사건

의인들의 부활과 승천이 언제 있습니까?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에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비밀휴거론자가 말하는 것처럼, 의인들이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모두 휴거된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언제 ‘믿는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했습니까? 마지막 날입니다. 물론, 마지막 날이란 세상 역사의 마지막 날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에 의인들을 부활시킬 것이라고 했는데, 성도들의 휴거가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있다면, 다시 말해서,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의인들이 모두 휴거 당한다면, 어떻게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는 날을 “마지막 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비밀휴거라는 교리를 억지로 만들다 보니 이런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이 질문에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난을 면하게 해주실까요?”

3부, 비밀휴거 후에 악인들은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게 될까요?

비밀휴거를 가르치는 분들은 의인들이 먼저 하늘로 휴거 당하고 악인들은 이 땅에 남아서 한 번 더 구원받을 기회를 받게 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죽음이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의인이 먼저 휴거 당하고 악인들은 이 세상에 남아서 7년 동안 환난 당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확인해볼까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도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노아의 때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밖에 버려짐을 당했습니다.

왜 악인들은 방주 밖에 남아 있게 되었을까요?

또 다른 구원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남았습니까?

아닙니다.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악인들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도 의인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노아의 때처럼 모두 멸망 당하게 될 것입니다.

비밀휴거론자는 의인들이 먼저 구원받고 악인들은 7년 환난 후에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구원과 멸망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의인들이 구원받을 때 악인들은 멸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30) 

 

롯의 때에 먼저 의인이 구원받고 악인들은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롯의 가족이 소돔성을 떠나 구원받는 순간, 소돔에 남아 있던 악인들은 모두 멸망 당했습니다.  롯의 때에도 노아의 때와 같이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비밀휴거론자는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멸망 사이에 7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과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비밀휴거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십니까?

 

Do you konw?

비밀휴거론자가 가장많이 사용하는 성경절이 무엇일까요?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눅 17:34-35)

 

비밀휴거론자는 이 말씀을 근거로 두 사람이 함께 있다가 의인이 상대방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하늘로 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말하기를, “성도는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고, 악인은 지상에 남아서 적그리스도와 함께 환난을 통과하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는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지만, 재림하시는 날에는 의인과 악인의 운명이 영원히 달라지는 분리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한 무리는 하늘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고, 다른 한 무리는 멸망을 위해서 이 땅에 버려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다른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눅 17:37)

 

“주여 어디오니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이 무슨 뜻입니까? “주님, 주께서 의인들은 하늘로 데려가시는 것은 알겠는데, 하늘에 가지 못한 악인들은 어디에 버려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37절)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예수께서는 악인들의 시체는 지상에 버려져서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의인들은 하늘로 승천할 것이지만, 악인들의 시체는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한 채 온 세상에 널려서 새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새들이 악인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장면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재림의 장면) …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계 19:14, 17, 18)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있는 새들에게 악인들의 시체를 뜯어먹으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의인들이 구원받고 승천할 때 우리도 함께 올라가야 합니다. 결코 이 땅에 남아서는 안 됩니다.

구약성경도 재림의 날에 악인들의 시체가 지구 전체에 널려 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륙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렘 25:33)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의인들이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는 사건과 악인들이 버려둠을 당해서 멸망 당하는 사건을 동시에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과 멸망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비밀휴거론자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의인들이 먼저 비밀휴거 당하고 7년 환난 동안 악인들에게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가르칩니다. 얼마나 빗나간 가르침입니까? 성경에는 비밀휴거가 없습니다. 의인들의 휴거 후에 악인들에게 여전히 은혜의 시간이 계속될 것이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거짓 교리입니다.

2부, 의인들의 휴거는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비밀휴거를 믿는 분들은 휴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의인들의 구원이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 13:26-27)

  

어떻게 이런 엄청난 사건이 아무도 모르게, 보이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지구의 모든 사람이 그 장면을 정확하게 목격할 것입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족속이 “통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에 누가 통곡하게 될까요? 구원받지 못하는 악인들이 두려움 속에서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왜 악인들이 통곡할까요? 왜냐하면 악인들도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

 

각인의 눈이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의인과 악인이 모두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장면을 볼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모두 먼저 휴거 당했으면, 어떻게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밤하늘에 치는 번개보다 우리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있을까요? 재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재림은 보이지 않게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될 수 없습니다. 비밀휴거론자가 말하는 것처럼, 의인들의 휴거가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이제 독자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하나님을 믿고 신앙하면서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이 땅에서 살면서 아무리 가난하고, 외로워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아가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1부, 의인들의 구원이 소리 없이 일어날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들의 구원을 가장 떠들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휴거가 비밀리에 조용히 일어난다고 믿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절을 비밀휴거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비밀휴거론자는 이 성경절을 제시하면서 의인들이 비밀리에 구름 속으로 끌어올림을 받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조용히 비밀리에 일어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 “하나님의 나팔(trumpet)”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진다고 했습니다. 들리지 않는 호령은 호령이 아니고, 소리 나지 않는 나팔은 나팔이 아닙니다.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큰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죽은 의인들을 무덤에서 깨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땅을 뒤흔드는 소리와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어떤 일이 생길까요? 지구 전체에서 수많은 무덤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엄청난 숫자의 성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죽었던 아기들이 엄마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 돌아가신 부모와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구 전체에서 감격과 환희의 소리가 들릴 것이고 성도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비밀리에, 조용히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의인들의 구원은 천지가 개벽하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 사건입니다. 비밀휴거설의 핵심 교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의인들의 구원과 부활이 아무도 모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성경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오류입니다. 바울은 불멸의 몸으로 부활하는 의인들이 이렇게 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성도 여러분, 이런 일들이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일어날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씀의 의미

비밀휴거를 믿는 분들은 “예수께서는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재림하신다.”고 주장합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이 말씀의 의미가 정말 예수께서 도적처럼 아무도 몰래 재림하신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도적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도 갑자기 이르러온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을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1-6)

 

이 말씀에서 바울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도적처럼 갑자기 오시기 때문에 때와 시기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떤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도적같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까?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빛의 자녀들은 성경의 예언을 알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를 살피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느 날 갑자기 임하는 사건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에 대하여 분명한 설명을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벧후 3:10) 

베드로는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겠다고 하면서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주어진 말씀을 그대로 읽으면 됩니다. 예수께서는 도적같이 갑자기 올 것인데, 그날에 하늘이 떠나갈 것 같은 큰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밤에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이 비밀휴거를 의미한다면, 어떻게 베드로가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보이십니까? 누구든지 건전한 상식을 갖고 말씀을 읽으면 비밀휴거의 문제점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서론, 소설입니까? 진리입니까?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만 331번이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무도 의심하거나 혼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재림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가 크게 퍼져 있습니다. 기독교계에 깊은 혼돈의 요인이 되는 신학적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질문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실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검토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재림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비밀리에 공중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오래전에 <지상최대의 증발사건, 휴거>라는 소설이 서점에 나와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그 소설의 내용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비밀휴거(secret rapture)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번 있을 것인데, 첫 번째는 예수께서 비밀리에 오셔서 의인들을 아무도 몰래 살짝 데려갈 것입니다. 그때 지구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비행기의 조종사가 비밀리 휴거 당하기 때문에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하는 일이 생기고, 운행되던 버스의 운전기사가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게 되기 때문에 엄청난 사고와 인명피해가 있을 것입니다. 의인들이 비밀리에 공중으로 휴거되는 일이 생기면 그때부터 7년 동안 대환난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휴거 당하지 못한 악인들은 7년 환난 동안 이 땅에 남아서 다시 한번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7년 환난 후에 예수께서는 공개적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재림이 비밀스러운 재림과 공개적인 재림으로 두 번 이루어질까요? 정말 의인들이 휴거되면, 악인들은 7년 환난 후에 다시 한번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될까요?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실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성경의 결론이요 클라이맥스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재림이 없으면, 십자가도 소용없고 부활도 없게 됩니다. 재림이 없으면 기독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지막 시대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세계적인 미혹을 퍼트리고 있는데, 그것이 비밀휴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비밀휴거가 갖고 있는 8가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은 주제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의인들의 구원이 소리 없이 일어날까요?

2. 의인들의 휴거는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3. 비밀휴거 후에 악인들은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게 될까요?

4.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난을 면제해 주실까요?

5. 예수께서 두 단계로 재림하시나요?

6. 비밀휴거와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나요?

7.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집니까?

8. 믿지 않는 자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집니까?

30호를 시작하며…

오래전에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2년, 다미선교회는 자신들을 추종하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휴거 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그날 휴거되길 기다렸던 어떤 청년이 간증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비밀휴거가 일어나는 날 저녁이 되자 온 가족이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서 흰옷으로 갈아 있고 각자의 방에서 기다렸습니다. 밤 12시가 되자 자명종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몸이 뜨면서 휴거될 것을 기다리면서 자명종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결국, 내 몸은 뜨지 않았습니다. 나는 깊은 두려움에 빠져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울었습니다.

한동안 울다가 급히 옆방에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휴거 당하지 않아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휴거 당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빈 이불만 남아 있었고 두 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 중 나만 지구에 남았다고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면서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승천을 준비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다녀오셨던 것입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 울었습니다.”

이것이 1992년에 있었던 시한부 종말론 비밀휴거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휴거 날짜를 잘못 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날짜를 정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 호에서는 비밀휴거를 집중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과 생애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진리로 인도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