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노예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자녀가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영혼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종의 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의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주인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노예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주는 벌이 무서워서 복종하며 주인 집에서 살지만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종의 모습입니다. 종은 주인이 주는 삯을 노리고 일합니다. 그래서 평생 주인 밑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주인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종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늘 아버지와 참된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종의 영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 위해서 하나님 곁에 있고, 멸망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복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고 형벌이 두려워서 교회 다니게 됩니다. 이것이 종의 영, 노예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동기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 참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양자의 영”,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을 받아야 합니다. 양자의 영을 받으면, 더 이상 형벌이나 보상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시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사는 나를 불러 주셨고, 새로운 삶의 목적을 주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그분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나에게 어떤 이익이 생기거나 손해가 오는가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지 않으면 주말마다 교회 다니고 십일조를 열심히 드리며 일 년에 몇 번씩 성경을 통독해도 마음이 늘 허전합니다. 부모 없는 고아처럼 이 세상을 외롭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메마르고 어두운 삶을 살게 됩니다. 양자의 영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를 주관하지 않기 때문에 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사라지고 내 뜻과 내 음성만 시끄럽게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희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와 진정한 부자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하늘 아버지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내 자신이 미워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면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간절한 효심이 생기게 됩니다. 하늘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함과 죄송함이 밀려옵니다.
진짜 관계와 가짜 관계
만일 자녀가 이렇게 말하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가 시킨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이제 제가 밥을 먹어도 되고 아버지 집에서 살아도 돼죠? 저를 사랑해 주실거죠?” 이런 말을 들을 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요? 정말 비참할 것입니다. 일은 아버지도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도와주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힘들 때 아버지께 와서 손을 붙잡고 “아버지, 요즘 제가 참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요즘 제 마음이 너무나 외로워요. 제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어요. 아버지 제 친구가 돼 주세요.” 자녀가 아버지의 등 뒤에서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이런 말을 할 때, 부모의 마음은 한없이 행복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믿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문제를 털어놓는 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울까요? 아버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양자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만 영혼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녀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죠? 아버지가 행복한 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나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5~6).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하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을 받은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빚진 자의 심령을 정말 사모하십니까?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욕망을 물리치기 원하십니까? 양자의 영을 받기 원하십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은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들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의 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 우리는 영광의 주님에게 형벌을 내리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이 나의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배은망덕과 반역으로 일관된 생애를 살아온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낀다.”(Jesus Lessons, 9)
간절한 자가 받는 하늘의 선물
우리가 정말 육체의 정욕과 죄에 끌려다니는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그래서 로마서 7장 마지막에 나오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라는 절규가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온다면, 주 앞에 나가 회개하고 양자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용서를 만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의 은혜가 밀려오면서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속이 싫어지게 되고, 그렇게 버릴 수 없었던 죄가 혐오스럽게 느껴지면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죄는 내가 이기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너무나 미워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빚진 자의 심령과 양자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루어지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영혼의 평안은 그런 심령 속에만 허락되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좁은 길을 걸으면, 그 길은 좁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복음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면입니다. 빚진 자의 심령을 가진 성도,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 성령 충만한 성도는 좁은 길이 그렇게 좁고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 있어서 좁은 길은 실제로 좁은 것이 아니라 좁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죄의 짐을 예수께 맡기지 않기 때문에 진리의 길이 좁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짐, 돈을 사랑하는 짐, 경쟁하는 짐들을 잔뜩 등에 진 채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을 바라보면, 그 길은 너무나 좁고 협착하며 가팔라서 도무지 갈 수 없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짐을 주 앞에 내려놓고 “주여, 이제부터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면, 그 길은 멀리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로 느껴지게 됩니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영혼의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지금부터 백여 년 전에 쓰여진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글은 참된 신앙의 중심 경험을 설명해 줍니다.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버려야 한다…어떤 사람들은 안일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정신에서 돌아서야 한다. 우리는 절반은 하나님께 속하고 절반은 세상에 속할 수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영혼의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의 소유가 될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우리를 위해서 바치신 하나님의 희생과 은혜가 너무나 크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어떤 것도 버리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실 때에는 우리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버리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이 되는지를 아신다…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기 좋아하신다고 오해하지 말라. 온 하늘은 우리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 가지 않으신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다만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한 습관과 죄에서 돌아서기를 원하실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행복과 하늘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을 아신다.”(The Pathway to Jesus, chapter 5)
아, 얼마나 영감적인 말씀입니까? 날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마음과 생애 전체를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