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돌나라가 올 때 누가 구원받을까요?

이 기사는 미국 남침례교회 폴 워셔 목사님의 글을 편집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 글은 매우 강력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빛을 향해 나가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음성으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마지막 사명 편집실>

예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여름이 오고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겨울은 오는 것처럼,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기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 중 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의 최종 결론입니다. 재림이 없다면 부활의 소망도 없고,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상태에서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음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 속에서 찾을 때마다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문제 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문제를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13~27)

설교 문제

진리를 정확하게 전하려면, 사람의 눈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어떤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직자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면서 걱정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 설교를 매주 듣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되고 있는가?”입니다. 설교자는 “내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정말 죄를 버리는 회개를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지 않으면 교회 신자들 대부분이 지옥불의 형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8~10).

세속 문제

오늘날 기독교인의 신앙이 성경 말씀과 상관없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내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든지 구원받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처럼 살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 장로님도 그렇게 살고, 저 집사님도 그렇게 사니, 나도 이렇게 살아도 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내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나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들어온 가장 멋진 이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수님께 “제 마음에 들어와 주세요.”라고 기도만 하면 예수님은 항상 그 사람의 마음속에 거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30년 전만해도 기독교 안에서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원이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반드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하며 죄로부터 돌아서는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것을 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성장하는 사람은 세속을 의미없고 유치한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을 흉내내거나 닮지 않게 됩니다.

30년 전에는 교인들이 숨어서 영화를 보고 몰래 술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교인들끼리 모여서 영화관에 가고 어울려서 술 마시러 갑니다. 많은 집사님과 장로님이 이제는 거룩함이 무엇인지 모르며 관심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구원 문제

50년 전에는 진리는 하나라고 가르쳤습니다. 오직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고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진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진리는 사지선다형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50년 전에는 구원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오지도 않으며 하나님께 반역하고 계명을 범할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한 것같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나를 높이는 정신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지만 깊이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정신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가난한 심령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과 사랑을 바라보면, 성령을 통해서 하늘의 생명 에너지가 마음과 생애 속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됩니다. 중생의 경험 속에서, 마음 깊은 곳에 은근히 깔려있던 교만과 자랑, 세상에 대한 욕심과 정욕은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육적인 것들이 내 속에서 충동질해도 진리와 성령의 음성을 따라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마음이 전격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전에는 눈치보고 두려워하면서 억지 신앙을 했고, 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내 온 몸과 마음을 바쳐서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 하나님 한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감추고 싶은 죄와 우상이 없기 때문에 영혼에 평안이 깃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복음을 위와 같이 설명하면 이런 항의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죄가 많을지라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한 번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결코 예수님이 우리를 버릴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다음과 같은 말씀은 사도들이 구원을 어떻게 설명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거룩함 문제

요즘 젊은 목회자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정죄하거나 미워할 수 없습니다. 죄와 불순종 때문에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도덕률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그런 신앙은 행위 신앙이고 율법주의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만 바라보세요.” 나는 그런 목회자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책망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가 마약에 빠져 사는 것을 미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사랑하게 되면 거룩하지 않는 것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거룩함을 잃어버렸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32)

어떤 사람들은 기도회에 가기 전에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갑니다. 그리고는 “왜 나에게는 성령의 감동이 없고 뜨거움이 없는가?”를 고민합니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뜨거움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억지 감동을 얻기 위해서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방언을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후에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불안을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영께서 내 안에 임재하지 않으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을 섞지 말아야 합니다. 왜 섞으면 안 될까요? 왜냐하면 그 둘이 섞이면 사탄에게 미혹당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거룩하지 않은 것을 통해서 영혼을 채갑니다.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신 22:9~11)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십자가와 죄 문제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이 씌워졌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관통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로마 군인이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 우리의 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죄를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떨어졌어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떨어졌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죄의 댓가를 치루어야만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누군가는 지옥불의 형벌을 받고 멸망당하는 둘째 사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무서운 죄의 댓가를 치루도록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루스벨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이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그리스도)과 그의 사자들이 용(사탄)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계 12:7, 8).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깊은 슬픔과 상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진노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죄>입니다. 십자가는 죄가 너무 치명적이고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음으로 내몰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죄를 범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지옥을 경험하면서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진노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대로 받으시면서 죽음의 길을 끝까지 걸으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부터 예수께서는 이미 피의 잔을 들이키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온전하게 치루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런 사랑과 죽음을 보여주신 후, 예수께서 우리를 좁은 문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가 문이 너무 좁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17~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좁은 문과 좁은 길 문제

구원은 주기도문을 외우거나 “나는 회개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내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마음과 생애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번 거듭나면 영원히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예방주사처럼 한 번 경험하면 무조건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습니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계십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자아를 부인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예수께서 그 일을 끝내지 않으셨는데 내 마음대로 그 일을 중단하고 “나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우리는 복음의 중요한 가르침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문만 좁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가는 길도 좁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교회로 인도한 후, “이제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남은 인생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됩니다”라는 인상을 주면 안됩니다.

천국가는 길에는 좁은 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도 있습니다. 50년 전에는 교회에서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야 한다.”는 설교를 거의 매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예수께서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표적은 좁은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표적을 무엇으로 제시합니까? “한 번 영접기도를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신자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교회가 무엇이라고 말해줍니까? “당신은 영접기도를 한 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지금 너무나 쉽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교회에게 그런 자격을 주었습니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과 동기를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위해서 전혀 준비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 상태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세례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금 교회는 진리를 말하지 않으며 진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갤럽 조사, 바너드 조사, 그외 어떤 통계 조사를 볼지라도 기독교인들의 삶과 세상 사람들의 삶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지금 교회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교회도 세상만큼 돈을 사랑합니다. 교회도 세상만큼 이혼합니다. 교회도 세상만큼 포르노를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 한입으로 세상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약 3:10, 1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3~15, 20)

신학대학 문제

오늘날 기독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교리는 신학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교인에게도 구원을 선언해 주는 교리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교리 대부분이 신학대학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 졸업장을 받고 목회에 나서는 성직자의 모습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로 세우신 좁은 길을 넓히려는 시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거듭나지 못한 마음과 세속적인 정신을 기준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일들이 꾸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Once saved, always saved.”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교리, “믿기만 하면 내가 어떻게 살든지 간에 구원받는다”는 교리,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교리들이 교회를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악인에게 “의롭다 하심(칭의)”을 선언해 주는 교리 때문에 교회 속에 세상이 깊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악인을 의롭다고 하고 의인에게서 그 의를 빼앗는도다”(사 5:20, 23)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8, 9)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5~9)

교회 문화와 예배 문제

요즘 교회 안에서 유행하는 말들은 기독교인들이 입는 티셔츠 뒤에 쓰여진 문구들에서 나옵니다.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많은 말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나 복음성가의 가사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예배 형식이 기도와 금식과 성경 연구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하는데, 세상 문화와 트랜드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습니다. 먼저 티셔츠나 복음성가에 나오고, 세상 문화와 트랜드에 의해서 만들어지면, 그것을 성경 말씀으로 포장해서 교회에 내놓습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양들은 그것을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따라가게 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새롭게 나타나는 대부분의 예배 형식과 아이디어들은 그렇게 만들어 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

여기에 희망이 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받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수께서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그분의 사랑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십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모두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을 “천국행”과 “지옥행”으로 미리 정해놓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은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면, 왜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합니까?”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 거절하고, 양심에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호소하셨던 것입니다(행 26:14).

구원을 거절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음성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뜻대로 이끄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했으며(딛 2:11),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다고 했습니다(히 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인데, 그것은 의롭게 하고 거룩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저항하고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에 구원받게 될까요? 심령 속에 진리에 대한 목마름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구원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이르러 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구원이 이르러오자, 그녀는 값비싼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의 발에 쏟아부었습니다. 삭개오에게 구원이 찾아오자, 예수님께 죄를 고하고 자신이 토색질한 것들을 4배로 돌려주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진리에 대한 간절함과 목마름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고 천국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버지의 큰 사랑와 은혜를 보면서 회개하고 죄를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신앙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백성으로 준비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진리의 빛을 주셔서 바벨론의 거짓 복음과 거짓 가르침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본 사람들은 결코 사탄이 교회 속에 넣어둔 거짓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깨달은 자녀는 결코 부모를 배반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죄와 배도 때문에 고통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드리고 싶은 소원이 마음을 채울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내 구원, 내 자녀, 내가족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이웃과 가난한 자들의 손을 붙잡아 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율법주의에 빠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신앙의 중심에 하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충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남들에게는 자비로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가난한 자와 어려운 자들을 돕고 위로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있다고 했습니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동기와 생애가 순결하다는 것입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상식과 내 철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얻어진 순결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계명에 불순종하며,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동안에는 순결함이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도에게 의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끌려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께 가기 위해서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를 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가는 것입니다. 원해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은 구원받지만, 진리의 이끌림을 거절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멸망당하게 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12:35).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이지만,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지식적으로 깨닫는데서 그치면 구원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경 말씀이 가슴에 새겨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그리스도인은 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할 필요도 없고, 목사나 장로가 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의 동기와 영혼의 순결함입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며, 누구를 위해서 살며, 왜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깊숙한 곳을 보시면서 기뻐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진리를 무시하고 돈과 세상을 사랑할 때,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 위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지옥불을 피하기 위해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순종은 구원받기 위한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호소

교회를 바라보면 마음이 아프고 깨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모님과 자녀와 형제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음성을 듣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가 지금 어떤 모습인가를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책망을 들었을 때 목을 세우지 말고 자존심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예수께서 피와 죽음으로 세우신 진리를 붙잡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 재림을 위해서 준비시켜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

2부, 재난의 징조가 몰려 오고 있다!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온 세계가 큰 충격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역사상 6번째 크기의 지진으로 인해서 태평양에서 형성된 엄청난 크기의 쓰나미가 시속 800km의 속도로 일본을 덮쳤습니다. 길이 500km, 폭이 200km의 쓰나미가 일본 동쪽 해안을 강타하자 지구의 자전축이 움직였고, 일본 땅 전체가 한반도 방향으로 2m 이상 밀려났습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5만 배나 되는 위력으로 일본의 동부 해안선을 쓰나미가 덮치자 모든 산업과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었고, 핵발전소가 파괴되어 방사능이 주변의 넓은 지역을 오염시켰으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실종된 도시도 여러 군데 생겨났습니다. 9.0의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흔드는 동영상을 보면서 성경 예언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눅 21:25~26).

2015년 4월, 또다시 네팔에서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지진이 네팔의 수도인 카투만드 시를 3m나 이동시켰습니다. 순식간에 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아직도 사상자가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네팔 정부는 사상자 집계를 낼 수 없다고 합니다. 카투만두 시민 30%가 여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카투만두 시를 빠져 나갔습니다. 지구를 움직이게 만드는 엄청난 지진의 위력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정말 세상 끝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재난이 이동하고 있다

일본을 흔들었고, 네팔을 흔들었던 지진보다 더 큰 쓰나미와 지진이 과거에도 몇 번 있었지만, 그것들은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대부분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대규모로 죽지 않았고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과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 재난이 도시와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에는 지진과 재해가 깊은 산속이나 사막이나 대양 한가운데서 일어났는데, 이제는 지진과 재해가 일어나는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을 흔들고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 나가 우리의 마음과 생애를 정결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재난이 일어나는 장소가 사람들이 밀집된 곳으로 가까이 움직여 올 때, 성경과 예언의 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이 매우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십자가 앞에 나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입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한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대규모의 재난이 대도시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움직여 갈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한적한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할 필요를 느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밀집되어 사는 대도시를 빠져나가 조용한 곳에 살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확실합니다.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언들이 성경에 기록된 정확한 순서와 시간에 맞추어서 일어나 왔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동방박사

예수께서 초림하실 때, 동방 박사들은 이방인이지만 메시아의 오심을 유대교회와 세상에 알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박사들과 과학자들이 재난과 재해를 경고하면서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동방 박사들이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지구 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당하고 있는 모습을 교회와 세상에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때, 영적으로 눈을 뜨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때가 가까운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재림의 징조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아버지 때부터 있었는데 아직도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재림의 징조를 오래전부터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징조와 지금의 징조는 그 크기와 빈도에 있어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여기서 바울은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여인이 아기를 해산할 때가 가까워져 오면 고통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그 주기 또한 점점 짧아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재난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그것이 일어나는 주기와 빈도가 짧아지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매우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재난과 재해는 그 크기에서 매년 기록을 깨고 있으며 그 주기와 빈도 역시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지진이 1900년 이전에 일어난 지진의 총 합계보다 숫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세상의 멸망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결코 도적같이 갑자기 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움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난과 징조, 지진과 쓰나미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처럼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자주 일어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예언의 빛을 통하여 멸망이 어떻게 올 것이며, 어디쯤 오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도 요한처럼 외칠 것입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

 

1부, 2,600년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예언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신 꿈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2,600년 간의 세상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으며, 두 번째 부분은 세상 역사가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를 보여 줍니다.

첫 번째 부분-세상 역사: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1~33)

두 번째 부분-세상 끝과 재림: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 2:34, 35)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서 본 신상의 모습을 처음 대하는 분들은 황당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막막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해석까지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중요한 예언들은 모두 일정한 패턴에 의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그 패턴은 먼저 예언의 내용이 나오고 그것에 이어서 해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준 꿈도 동일한 패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 꿈의 내용을 설명해 주셨고(단 2:31~35), 그것에 이어서 해석을 주셨습니다(단 2:38~45).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신상을 다니엘 2장 38절 이하에 나오는 해석과 비교해 보면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쉽고 분명합니다!

1. 머리: 금 나라 – 바벨론 (BC 606-539)

꿈:“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단 2:31, 32)

해석:“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단 2:36~38)

예언을 해석하는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간 예언은 그 계시를 받은 선지자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상 예언도 다니엘 시대, 즉 느부갓네살 왕의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이 “금머리”라고 말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곧 금머리이니다” 38절.

바벨론이 금으로 예언된 이유: 바벨론은 황금의 제국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을 “황금의 도시”(Golden City)라고 했으며(사 14:4, 영어성경), 예레미야 선지자도 바벨론을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 잔”이라고 불렀습니다(렘 51:7).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바벨론은 엄청난 양의 금을 사용했는데, 바벨론이 섬기는 우상과 식탁은 그 무게가 22,500kg에 달했다고 했습니다. 다니엘 3장에도 느부갓네살 왕이 순금으로 만든 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나라도 바벨론만큼 많은 금을 사용한 나라는 없습니다. 황금의 나라, 바벨론을 금머리로 상징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신상의 구조와 의미: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보았던 신상은 전체가 금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상은 4개의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금머리-바벨론이 세상을 계속해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금속의 종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제국이 일어나서 권세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상을 통해서 세상 권력과 제국이 바뀌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심으로써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2,600년간의 세계사는 수십 권의 책에 기록해도 부족한 엄청난 양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복잡한 세상 역사를 금, 은, 동, 철이라는 단순한 재료를 사용해서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신상을 만들어 보여주셨습니다.

금속의 강도가 의미하는 것: 신상은 4가지 금속(금, 은, 동, 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상의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는데 가슴과 배, 다리와 종아리로 내려가면서 금속의 가치는 떨어지지만 그 강도는 점점 더 강해집니다. 이것은 황금의 나라, 바벨론보다 부유한 국가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군사력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금속의 강도가 사탄의 공격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금, 은, 동, 철 중에서 철의 강도가 가장 강력한 것은 신상의 가슴과 배, 다리와 종아리로 내려가다가 네 번째 철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과 핍박이 가장 강해지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놀라운 사실은 네 번째 나라에서 시작되는 철이 열 발가락까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네 번째 나라에서 나타난 강력한 핍박의 세력이 마지막 열 발가락 시대까지 이어지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2,600년간의 복잡한 세계 역사가 “신상”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펼쳐졌고, 그 속에 사탄의 공격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니엘 2장 예언을 연구하는 사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신상 예언을 쉽게 풀이하는 방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발가락 시대입니다. 지금은 신상의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모든 예언이 성취된 때이므로 다니엘 2장 예언을 해석할 때,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2,600년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역사와 예언을 비교해 보면 됩니다. 다니엘은 금머리는 바벨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을 멸망시키면서 나타나는 국가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면, 금머리에 이어서 등장하는 은으로 된 가슴과 양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언의 성취를 목격한 다니엘: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는 장면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신상에 대한 예언을 해석했을 뿐 아니라, 그가 살아있는 동안 바벨론이 메대 페르시아의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되면서 은가슴과 양팔의 제국이 나타나는 예언의 성취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예언의 성취를 목격하는 다니엘의 마음에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확신과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예언을 아는 사람은 예언이 성취될 때 분명한 확신을 갖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지만, 예언을 모르는 사람은 예언이 성취된지도 모른 채 살다가 사탄의 큰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비석에 “오! 바벨론이여, 내 눈을 기쁘게 하는 바벨론 왕국의 영광이여! 너는 영원히 지속될지어다!”라고 기록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언의 시간이 되자 황금의 제국, 바벨론은 무너졌습니다.

2. 가슴과 두 팔: 은 나라 – 메대와 페르시아 (BC 539-331)

꿈:“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단 2:32)

해석: “(바벨론) 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단 2:39)

다니엘은 금으로 상징된 바벨론이 무너지게 되면, 그보다 못한 은으로 상징된 나라가 뒤를 이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벨론에 이어서 어떤 나라가 나타날까요? 역사책을 찾아보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메대 국가와 동맹을 맺어서 메대와 페르시아의 연합군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킴으로써 유럽을 정복한 두 번째 제국을 세웠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상 가슴에 두 팔을 끼고 있는 모습은 메대와 페르시아 연합군에 의해서 바벨론이 정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페르시아는 동쪽으로는 인도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유럽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땅을 차지한 정복자로 200년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페르시아가 은으로 예언된 이유 : 은이 금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페르시아의 문화와 부는 황금의 나라, 바벨론을 능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은이 금보다 더 단단한 것처럼, 페르시아는 바벨론보다 더 강력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의 특성을 금속과 기가막히게 연결시켜 놓으셨는데, 페르시아는 은으로 세금을 거둔 최초의 제국이었습니다.

“마치 은이 가치에 있어서 금보다 못한 것처럼 바벨론에 이어서 세계적인 왕국이 되었던 페르시아는 부와 영화에 있어서 바벨론보다 못하였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은이 많기로 유명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최초로 각종 세금을 은으로 지불했었다. 그러므로 페르시아 제국은 은으로 심히 부요해졌다. 그 제국은 주전 539년부터 332년까지 약 200년간 계속되었다.”(Unfolding Daniel’s Prophecies by R. A. Anderson, p. 48).

사탄의 공격 : 바벨론은 남방 유다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와 노예로 만들어 바벨론의 신앙을 강요했습니다. 히브리인의 이름을 바벨론식으로 바꾸고 우상을 섬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이어서 나타난 페르시아도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페르시아의 왕과 신하들에 의해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고, 에스더서에 나오는 히브리인 몰살 위기도 페르시아 시대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탄은 금은동철로 이어지는 국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페르시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자 새롭게 나타난 국가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150년 전에 예언된 고레스 왕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 이 태어나기 150년 전에 그의 이름을 이미 정확하게 지목하 면서 그의 사명을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 는 이르기를(하나님께서 태어나지도 않은 고레스의 이름을 지명하심)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고레스가 유 대인 포로들을 석방해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을 중 건할 것이라는 예언) 하며 …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받은 고 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 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바벨론 정복 전쟁을 승리케 하실 것이 라는 예언)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 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 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사 44:28~45:3).

하나님께서는 고레스왕이 태어나기 150년전에 그의 이름을 지목하시면서 그가 장차 성취하게 될 예언을 이사야 44장 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바벨론은 패망했지만 정직하고 고 결한 성품을 가진 다니엘은 페르시아의 총리로 선임되었습니 다. 그러자 다니엘은 이사야 44장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게 펼쳐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고레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마음으 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고레스왕은 유대인 포로들을 석방하게 되었고, 그 결과 유대인들은 바벨 론 포로생활 70년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 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또 하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예루살렘)으로 돌아오 게 하리라”(렘 29:10).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3. 배와 넓적다리 : 놋 나라 – 그리스 (BC 331~168)

꿈:“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단 2:32)

해석:“셋째로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단 2:39)

하나님께서 정하신 역사의 시간이 되자, 그리스(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일어나 페르시아를 멸망시켰습니다. BC 331년, 알렉산더 대왕은 유명한 알벨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패패시킴으로서 유럽에서 세 번째 대제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신상 예언이 주어진 이후 270년만에 다시 한번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20세의 젊은 나이에 정복 전쟁을 시작한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소아시아와 유럽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그는 동쪽으로 인도 간지스 강까지 정복한 다음,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고 하면서 울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스가 놋으로 예언된 이유: 그리스는 청동문화에 기반된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청동 제련기술은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를 놋으로 만든 강력한 투구와 방패로 무장시켰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의 그리스는 세계사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대제국을 세운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를 놋의 나라로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공격:그리스의 철학은 청동만큼 강하게 유대교회를 장악했습니다. 그리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헬라철학과 문화로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시대에는 하나님 백성을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핍박하는 대신에 정신과 사상적으로 유대교회의 신앙을 세속화시키고 무너뜨렸습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에 4백 년의 시간의 공백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말라기에서 마쳐지고 마태복음이 기록될 때까지 4백 년 동안 어떤 성경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그리스의 철학이 유대교회에 깊이 침투했기 때문에 유대교회가 깊은 영적 암흑에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선지자의 음성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초림했을 당시 유대교회의 신앙을 무너뜨린 두 개의 축이 있었는데,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 철학과 교육(학위)으로 물들은 유대교회 지도자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똑똑하고 명망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헬라의 교육을 받게 됨에 따라 그들의 신앙 속에 헬라 철학과 사상이 깊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여전히 성소에서 양을 잡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지만, 순수함과 경건의 능력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높은 학위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 철학에 물들은 사람들이 유대교회 안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침례 요한 같은 선지자는 유대 교회에게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광야의 소리”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는 예수께서 초림하시기 168년 전에 로마 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했지만, 그들의 철학과 문화는 로마 제국에 그대로 전달되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리스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철학과 문화는 유대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백 년 동안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헬라사상에 물든 유대교회는 메시아를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눈이 어두워져서 구세주를 못 박아 죽이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했던 사탄은 그리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과 사상을 무너뜨리는데 크게 성공했습니다.

청동 제련 기술과 헬레니즘 문화로 세계를 제패했던 그리스 제국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또 다른 제국의 길을 열었습니다.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 시대에 이어서 나타나는 철로 된 종아리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200년 전에 발표된 그리스의 국가명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라는 국가가 역사 속에 등장하기 오 래 전에, 적어도 200년 전에 “헬라(그리스)”라는 국가의 이 름을 정확하게 지적하면서 페르시아에 이어서 그리스가 등장할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 타난 이상 후 벨사살 왕(바벨론의 마지막 왕) 삼년에 다시 이상이나타나니라…네가본바두뿔가진수양은곧메 대와 페르샤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그리 스) 왕이요 두 눈 사이에 있는 큰 뿔은 곧 그 첫째 왕이요” (단 8:1, 20, 21). 이것이 예언의 위대함입니다. 이것이 세상 역사를 내다 보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바벨론을 멸망 시킨 고레스 왕의 이름을 그가 태어나기 150년 전에 이사 야서에 기록하셨던 하나님께서 “헬라” 라는 나라가 나타나 기 2백년 전에 다니엘서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얼마나 놀 라우신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므로 예언을 아는 그리스도 인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게 됩니다.

4. 종아리: 철 나라 – 로마 제국 (BC 168 – AD 476)

꿈:“그 종아리는 철이요”(단 2:33)

해석:“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빻을 것이며” (단 2:40)

유럽을 지배한 네 번째 나라는 철의 나라입니다. 그리스를 무너뜨리고 나타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로마 제국입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라틴 민족의 세계 정복은 유럽의 네 번째 국가로 등장하여 650년의 긴 역사를 남겼습니다. 철로 된 종아리가 두 개인 것처럼, 로마 제국은 두 개의 로마, 즉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었습니다(AD 395년).

로마 제국이 철로 예언된 이유: 로마 제국은 강력한 철갑무기로 그리스의 청동 무기를 쳐부수고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나타나면서 놋으로 된 배와 넙적다리 시대는 지나고 철로된 종아리 시대가 도래되었습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본스 경은 로마 제국의 등장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든 우상들을 섬기는 국가들을 철로서 깨뜨리면서 정복하였다”(로마 제국의 쇠망사, 3권, 634쪽)

사탄의 공격 :금, 은, 동, 철 중에서 철의 강도가 가장 강한 것처럼, 네 번째 철의 나라에서 사탄의 공격이 가장 강해집니다. 다니엘은 네 번째 철나라를 설명하면서 그 동안 사용하지 않던 강력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네 번째 나라가 앞에 나왔던 어떤 나라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 나라가 다른 나라를 부서뜨리고 빻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신상이 머리로부터 시작해서 네 번째 나라-철의 나라가 되면서 사탄의 공격은 최고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로마 제국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시자 사탄은 로마 제국의 총독이던 헤롯 왕을 선동해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2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모두 죽임으로써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결국 로마 제국의 철못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그분의 무덤도 로마의 인으로 봉인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가장 강력하게 핍박하고 괴롭힌 나라는 로마 제국입니다. 다니엘 7장 예언에서도 로마 제국을 아주 잔혹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넷째 짐승(로마 제국)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단 7:7).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복음은 유대 민족의 범주를 벗어나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는데,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초대기독교회를 부서뜨리고 없애기 위해서 극렬한 핍박을 가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화영대와 원형극장에서 순교당했습니다.

핍박의 세력이 등장하게 된 배경: 서기 313년에 놀라운 국면 전환이 생겼는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갑자기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그때부터 기독교회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왜냐하면 사탄이 공격 전략을 바꿨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핍박과 죽음으로 기독교인들을 협박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한 사람이 순교한 자리에서 백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가난과 핍박 속에서 진리를 순수하게 지키면서 복음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켰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탄은 기독교회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만듦으로써, 교회 속으로 엄청난 돈과 명예와 인기가 쏟아져 들어오도록 유도했습니다.

극렬한 핍박에도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핍박을 중지하고 자유를 허락하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밀라노 칙령, 서기 313년).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서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태양신을 섬겼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개종하자 그를 따라서 수많은 태양신도들이 기독교회 속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로마 황제는 기독인들과 태양신교도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태양신교 지도자와 기독교회의 지도자를 불러서 태양신교와 기독교회를 적당하게 혼합시킨 종교를 만들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로서 열두 제자들이 세워놓은 기독교회가 태양신의 이교 가르침을 받아들인 이상한 종교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기독교회 역사에서 수많은 이설과 거짓 교리들이 로마 시대에 만들어 졌습니다. 이때부터 중세기 기독교(천주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은 이 네 번째 나라를 주의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상 종아리의 철이 세상 끝을 상징하는 발과 열 발가락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3). 이 말씀은 로마 제국 시대에 최고조에 달했던 핍박의 정신이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해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종아리의 철이 열 발가락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네 번째 나라에서 나타난 강력한 핍박의 세력이 마지막 열 발가락 시대까지 이어지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5. 발과 열 발가락: 철과 진흙이 섞인 나라 열국 시대 (AD 5세기~현재)

꿈:“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단 2:33)

해석:“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모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단 2:41~43)

멸망이 아니라 분열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신상의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한 나라를 멸망시키면서 다른 나라가 올라왔습니다. 바벨론이 멸망되면서 메대-페르시아가 올라왔고, 페르시아가 멸망되면서 그리스가 올라왔으며, 그리스가 멸망되면서 로마 제국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로마 제국이 멸망되면 다섯 번째 나라가 올라오게 될까요?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지난 천 년 동안 역사가 그런 패턴으로 흘러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이번에는 로마 제국이 열 발가락으로 분열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성취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1) 42절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로마 제국이 열 개의 나라(열 발가락)로 분열될 것이라는 예언(참조: 열 발가락을 예수께서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국가들이라는 의미로 “열국”(列國)또는 “여러 나라”로도 해석할 수 있음)

2) 42절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열 개로 분열된 나라들 중에서 얼마는 강하지만, 얼마는 약해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

3) 43절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 열 개의 나라로 서로 섞여서 공존하지만 결코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

로마 제국이 과연 열 나라로 나눠질까요? 또한 열 나라로 나눠진 국가들이 다시는 하나로 연합되지 않게 될까요? 신상의 발과 발가락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지게 되는지 역사를 통해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42절 “그 나라가(로마 제국) 나누일 것이며”: 로마 제국은 4, 5세기경에 정치적 부패 때문에 쇠퇴해졌습니다. 그때 유럽의 북쪽에 있는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안, 반달, 훈, 수에비와 같은 야만족들이 쇠약해진 로마 제국을 침략해 내려오면서 제국의 토지들을 이곳저곳에서 점령해갔고, 그 결과 여러 나라들로 나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AD 476년, 헤루리족의 침략에 의해서 로마 제국은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머리, 가슴, 허벅지까지는 한 나라가 망하면서 다른 나라가 나타났는데, 종아리에 해당하는 네 번째 나라, 로마 제국은 패망하면서 또 하나의 거대 제국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열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이번에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2) 42절 “그 나라들이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이 예언도 성취되었습니까?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강한 나라들도 있지만, 너무 약해서 부서져버린 3개의 국가도 있습니다(반달, 동고트, 헤룰리). 로마 제국이 열 나라(열 발가락)으로 나눠졌지만, 세 나라는 사라졌고 일곱 나라만 남아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 나라는 왜 망했을까? 로마 제국이 열 나라로 분열된 이후, 천주교회는 종교와 군사와 정치를 아우르는 강력한 권세를 갖게 되었는데, 세 나라가 천주교회의 권세와 대적했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나라들이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한 것이며”라고 예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중세기에 천주교회는 자신들이 세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단자”라는 죄명으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중세기 천 년 동안 5천만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순교당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 시대를 “종교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 제국을 분열시킨 야만족들은 천 년을 지나는 동안, 현재의 유럽국가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민족 이름 기간 현재 국가명
알레마니족 AD 351~현재 독일
프랑크족 AD 351~현재 프랑스
부르군드족 AD 406~현재 스위스
수에브족 AD 406~현재 포르투갈
반달족 AD 406~534(패망) 아프리카 지역
서고트족 AD 408~현재 스페인
앵글로색슨족 AD 409~현재 영국
동고트족 AD 351~538(패망) 이탈리아
롬바드족 AD 453~현재 이탈리아
헤루리족 AD 476~a493(패망) 이탈리아

3) 43절 “그들이(열 나라)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 유럽이 결코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도 성취되었을까요? 열 나라로 나뉘어진 유럽의 국가들은 전쟁을 방지하고, 강한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섞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다른 민족과 섞이기 위해서 서로 피를 나누는 왕족들의 결혼이 수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유럽의 왕족들은 서로 아들과 딸을 주고 받으면서 인척관계로 깊이 얽혀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과 진흙이 섞여 있는 것처럼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열 나라로 분열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할지라도 하나님의 예언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유럽의 독재자들이 나타나서 전쟁으로 유럽을 통일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스페인의 챨스 5세가 유럽통일의 전쟁을 일으켰지만 실패했습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전쟁을 일으켰지만 실패했습니다. 바벨론 시대부터 로마 제국까지 1,000년 동안 4개의 대제국이 일어났다가 패망하면서 유럽을 호령했는데, 로마 제국의 패망 이후 1,500년 동안은 어떤 나라도 유럽을 통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이 유럽은 결코 합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1800년 초기, 나폴레옹은 유럽이 한 언어, 한 헌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복전쟁을 일으켜서 거의 정복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1815년 워터루 전쟁에서 갑자기 큰비가 내림으로써 나폴레옹 군대의 기동성이 크게 떨어짐으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전쟁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영국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며, 유럽통일에 대한 나폴레옹의 의지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누가 그날 큰비를 내려서 나폴레옹 군대의 앞길을 막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 시간, 그 지역에 비를 내리신 것입니다. 전쟁의 패배 이후,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크신 분이시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예언이 사람의 계획을 막았습니다.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43절).

히틀러는 세계2차대전을 일으키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우리의 무기로 이 전쟁을 싸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없이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군대가 연합군을 영국 던커크 해협으로 몰고가서 거의 물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던 때, 그렇게 좋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 지더니 영국 해협에 안개가 짙게 내렸습니다. 그날 밤 연합군들은 무사히 영국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결국 연합군이 세계 2차 대전을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개를 내리셔서 히틀러의 계획을 막으셨습니다.

구 소련 역시 유럽을 통합하려고 했습니다. 1940~50년대 이후, 위세가 당당하던 소련은 동유럽을 위성국가로 만든 다음, 수십 년 동안 호시탐탐 서유럽을 노렸습니다. 그러나 1989년 미국과 교황(바티칸)의 비밀동맹으로 순식간에 동유럽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소련도 무너졌습니다. 왜 소련은 서유럽을 차지하지 못했을까요? 성경 예언이 그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거스리면서 유럽을 통합하려고 했던 나라와 개인은 모두 망했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열 나라)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고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비를 뿌리시고 안개를 내리시며, 합치려고 하는 자들을 망하게 하심으로서 예언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유럽 연합 (European Union)은 하나로 합칠 수 있을까요?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 예언을 연구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유럽 통합이 거의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유럽이 통일되면 하나님의 예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유럽국회가 생기고 “유로”라는 통화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유럽연합을 하나의 국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유럽연합의 정부형태는 미국처럼 50개 주가 하나의 헌법하에 합쳐진 것이 아니라 28개 국가들의 연합체라는 점입니다. 또한 유럽 연합 정부는 23개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회원국가에게 강제로 명령할 수도 없습니다. 유럽 연합은 아직 하나의 국가가 아닙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10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통합이 거의 완성될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예언은 또 다시 유럽 통합을 멈추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미국발 경제파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번지면서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유럽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피해를 보면서 경제파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럽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형편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경제파탄에 대해서 일관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파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 스페인같은 나라는 국가부도 위기를 맞게 되었고 유럽 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유럽의 핵심 국가인 영국이 빠진 유럽 연합은 의미가 없습니다. 경제가 좋았을 때는 별문제 없어 보였지만, 경제가 악화되면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 이해가 충돌하면서 회원국가들 사이에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유럽통합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멈춤”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금새라도 이루어질 것같았던 유럽통일이 왜 실패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 유럽통일을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유럽통일을 막으실까요? 돌나라가 와서 모든 것을 부서뜨릴 때까지 막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유럽통합이 진척되면 진척될수록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예언적 안목입니다. 유럽이 계속해서 통일을 꿈꾸고, 그것이 거의 성취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세상 끝이 그만큼 가까이 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은 정말 세상 끝이 매우 가까운 시대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통합입니다. 세상 열국들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통합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진리를 젖혀둔채 종교연합을 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모습이 예수께서 가까이 오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6. 뜨인 돌의 나라: 세상 끝과 예수 재림

꿈:“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단 2:34, 35)

해석:“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단 2:44,45)

“뜨인 돌”은 언제 임할까요? 뜨인 돌은 “열왕의 때”(열 발가락 시대)에 온다고 했습니다. “뜨인 돌”은 신상의 머리를 치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나 다리를 치는 것도 아닙니다. “뜨인 돌”은 갑자기 날라와서 신상의 발을 침으로써 모든 국가들을 부서버릴 것입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단 2:44).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뜨인 돌”이 날라와서 인간이 세운 국가들을 무너뜨리면서 세상 역사를 끝낼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핵 폭탄으로 멸망하던지, 환경 오염이나 식량의 부족으로 자멸할지 모른다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핵 폭탄으로 망하지 않고, 식량난으로 자멸하지도 않으며, 세계 3차 대전이나 빙하 시대로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신상 예언은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뜨인 돌은 무엇인가요? 오늘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뜨인 돌”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돌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모두 허망한 이야기들입니다. 돌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자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 되신 예수”(벧전 2:4).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지구의 역사는 돌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끝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뜨인 돌”이 되셔서 재림하심으로 세상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뜨인 돌”이신 예수께서 지구에 오는 장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서 주님을 맞이하는 의인들이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늘가는 우주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재림하실까요?

열 발가락 시대의 끝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장래에 있을 예언입니다. 이 예언도 정말 성취될까요?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금머리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은 가슴과 두 팔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고레스왕에 대한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놋으로 된 배와 넙적다리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철로 된 종아리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제국들이 멸망할 때마다 다른 제국이 일어났지만, 로마 제국은 철과 진흙으로 된 열 발가락처럼 분열될 것이라는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열 나라 시대는 철과 진흙처럼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섞여있을 것인데 결코 합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도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유럽은 지난 1,500년 동안 합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상을 통해서 주신 모든 예언들이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예언은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뜨인 돌”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예언입니다. 재림에 대한 예언이 정말 이루어질까요? 2,600년 동안 이루어진 신상의 예언 성취를 확인한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도 분명히 성취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약 성경 역시 300번 이상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재림에 대한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

서론, 성경에 중국과 러시아가 나오지 않는 이유

국가를 세우시고 멸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단 4:7).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명> 10호는 하나님께서 바벨론 제국, 페르시아 제국,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에 깊이 관여하시고 주관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제국들을 누가 세웠는지 확인하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면 공중에 나는 새라도 결코 떨어지는 일이 없는데, 하물며 나라가 세워지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가들은 인간이 모여서 혁명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켜서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예언 연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이 예언에 등장하게 되는가?

오늘날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중국은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에 나오지 않습니까? 왜 러시아는 나오지 않습니까?” 다니엘의 예언에 등장하는 국가들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 제국처럼 세계사를 주름잡은 국가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강대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나라는 등장하고, 어떤 나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이해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그 전쟁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성경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이 철저하게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국보다 100배 큰 나라가 존재했다고 할지라도, 그 나라가 하나님과 사탄의 전쟁(진리의 전쟁)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성경은 그 나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전쟁에서 어떤 나라와 민족이 그 중심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구약 시대 동안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는 유대 교회였으며, 유대 교회가 진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진리를 세우고 보존하시자, 사탄도 유대 백성을 공격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블레셋이 나오고 애굽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나라들이 중요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미천한 사람일지라고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면 성경에 기록됩니다. 다니엘서에 바벨론이 나오는 이유도 바벨론이 세계적인 대제국이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남방 유다를 침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어떤 국가가 예언에 나타나게 되는가?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예언이 어떤 사람들과 어떤 나라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유대국가가 메시아를 거절하고 초대 기독교회를 핍박하면서 복음은 유대국가 밖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열두 제자와 사도들은 주로 이스라엘의 서쪽으로 진출하면서 복음을 전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쪽 지역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아시아와 로마 그리고 유럽 쪽에서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성되고 이동하는 곳을 쫓아다니면서 하나님과 전쟁을 벌였는데, 그것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 다루는 다니엘서 2장의 신상 예언에서도 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제국 같은 국가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쫓아다니면서 공격하고 핍박하는 장면은 마지막 시대까지 계속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12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 국면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다니엘 2장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신상은 세상 역사에 나오는 대제국의 흥망성쇠와 세상 끝에 대해서 알려주는 예언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상은 새로운 국가들이 나타나는 순서와 각 나라의 특성을 알려 줄 뿐 아니라, 이 세상이 결국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예언입니다. 사탄은 여기에 나오는 국가들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교회를 공격하는데, 다니엘 7장에는 사탄이 적그리스도 세력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내용이 자세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2장 예언을 기초로 해서 다니엘서 전체 예언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이 꿈으로 본 예언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 배경과 느부갓네살 왕의 꿈

느부갓네살 왕은 기원전 605년에 즉위하여 바벨론 제국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켜 나갔는데,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남방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다니엘과 많은 유대인들이 그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다니엘서는 바로 그 시점부터 시작됩니다.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 바벨론 제국은 최대 영토를 가지면서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된 바벨론 제국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벨론이 영원히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제국이 나타나서 바벨론을 멸망시킬 것인지를 염려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날 밤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예사스런 꿈이 아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아침에 잠이 깨는 순간 꿈의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왜 꿈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우상 숭배자인 느부갓네살 왕에게 누가 진짜 하나님이며, 누가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벨론의 술객들과 학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마음대로 해석해서 혼돈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의 내용과 해석을 다니엘에게 알려주셔서, 느부갓네살 왕이 오직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이다 왕이여 왕이 침상에 나아가서 장래 일을 생각하실 때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가 장래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사오며 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다른 인생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으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단 2:27~30)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신 꿈은 2,600년간의 역사를 요약해서 보여주신 것이며, 이 세상의 강대국들이 어떻게 세워지고 망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는 놀라운 예언입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 경은 대영백과 사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다니엘 2장의 신상은 인간 역사의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묘사하는 것이다.”(대영백과사전 40권, 631). ■

10호를 시작하며…

몇 해 전에 USA Today지에 실린 통계 자료에 의하면 현대 점성가나 점술자가 말하는 미래에 대한 예언의 정확성이 15~2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라면 사지선다형 문제를 맞추는 확률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한 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학자들은 성경이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역사가 1/3, 교훈이 1/3, 예언이 1/3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경의 30%가 예언이기 때문에 예언을 모르면 하나님의 뜻의 1/3을 놓치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래를 보여주기 원하는데, 우리가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여기면 길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미혹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장래 일을 예언하실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도들을 사탄의 공격과 기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시대마다 성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탄의 공격과 기만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 예언입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예언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이때 이렇게 공격하고 기만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성도들은 정신을 차리고 미혹당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울수록 사탄의 기만은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예언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미혹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다니엘 2장 예언은 다니엘 예언의 기초를 놓은 중요한 예언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번 호에서 하나님께서 2,600년 전에 주신 예언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현재 우리가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9) ■

<마지막 사명>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