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2부 – 144,000인, 그들은 유대인인가? 거듭난 성도들인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진리를 보관하고 구원의 도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끝까지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절하자, 그들을 통해서 이루려고 했던 하나님의 계획이 교회를 통해서, 다시 말해서 영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계시록 7장에서 144,000인을 설명할 때 이스라엘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인은 유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계시록 7장에서 144,000인을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이 144,000인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나온다고 했으므로 144,000인은 유대인들입니다.”

 

3가지 문제점

144,000인을 유대인으로 해석하는 가르침에는 3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와 창세기에 나오는 12지파의 이름이 다르다.

계시록에 나오는 12지파에는 구약시대의 12지파에서 에브라임과 단 지파가 빠지고, 다른 지파가 들어왔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인에서 왜 12지파에서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를 뺏을까요? 에브라임은 우상숭배로 이스라엘을 배도로 이끈 대표적 지파입니다. 또 에브라임은 북방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이 속한 지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에브라임 지파처럼 배도와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은 144,000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단 지파는 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에서 빠졌을까요? 창세기에 단 지파의 성격이 나옵니다.

 

“단은 길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 49:17)

 

사도 요한이 단 지파를 12지파의 이름에서 뺀 이유는 분명합니다. 뒤에서 몰래 뱀처럼 다른 사람의 약점을 무는 사람, 뱀처럼 간교하게 다른 사람을 걸고 넘어뜨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144,000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12지파 이름을 인용해서 144,000인을 설명했다고 해서 144,000인이 유대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상징과 표상으로 기록된 예언서입니다. 예언과 계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2.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고 할지라도 12지파의 혈통과 가문은 결코 복원될 수 없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배도에 빠져서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12지파 중 10지파가 속한 북방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에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당했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때 이후로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의 10지파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2,70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가문과 혈통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남방 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방 유다에는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서기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2천 년 동안 그들은 수많은 나라들로 흩어져서, 여러 민족과 결혼하고 피를 섞으면서 살아왔습니다. 이제와서 그들의 혈통과 가문을 따져서 마지막 시대의 예언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정말 성서적이고 합리적일까요? 매우 비성서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입니다.

 

3. 사도들은 1세기에 이미 이방인 교회들을 12지파로 불렀다.

우리는 이미 1세기에 사도들이 이방인 교회들을 12지파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약 1:1)

 

사도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12지파에게 문안한다고 했는데, 흩어져 있는 12지파가 누구입니까?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던 이방인 교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왜 이방인 교회들을 12지파라고 불렀을까요? 구약시대 12지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유업이 이방인 교회에게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이런 사상을 모르면, 신약성경과 계시록에 나오는 12지파와 이스라엘을 지금 현재 중동지방에 있는 이스라엘로 오해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십니까?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는 구약시대에 조직된 12지파가 아닙니다. 계시록의 12지파는 참된 신앙을 가진 영적인 지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12지파 이름을 사용해서 144,000인을 설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세기 49장에는 늙은 야곱이 12지파의 조상이 될 아들들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한 유언과 같은 기도가 나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12아들이 갖고 있는 악한 기질과 성품에 대한 깊은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그런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중에서 남은 무리를 인도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고 메시아를 탄생케 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12아들과 같이 악하고 이기적인 사람들 중에서 남은 무리를 부르시고 그들을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인을 쳐서 144,000인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12지파의 이름을 사용해서 144,000인을 설명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가 비록 악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갖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고 성령으로 인도하실 때 그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이마에 인을 치시고 144,000인으로 택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유대민족의 운명

예수께서는 유대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유대민족은 결국 그들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고 회개의 열매 맺는 새로운 백성이 그들의 자리를 채우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유대인들은 멸망당했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인들이 신약시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도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유대국가를 상징)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자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 21:19)

 

예수께서는 유대국가가 얼마 동안 열매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처럼, 유대국가는 지난 2천 년 동안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영원히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열매 맺지 못할 것입니다. 70주일 예언과 신약성경 전체가 유대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국가를 바라보면서 예언의 성취를 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2제자를 통해서 초대 교회를 세우셨고, 중세기를 지나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였고 복음을 전파해 오셨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고 온 세상에 전파하실 것입니다.

 

질문 :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이방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십자가 이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차이도 없고 벽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이 대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누가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입니까?> 진짜 이스라엘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유대인이든지 아니든지 말씀에 충성하는 성도들이 “이스라엘”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가 주인공이다

신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을 택하셔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성도들을 인도하십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복음 전파의 사명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유대인들입니까? 아닙니다. 12제자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세우고 진리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주인공은 유대인들이었고 이스라엘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주인공은 교회이고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약속과 복이 교회와 영적 이스라엘에게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왜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알아야만 할까요? 왜냐하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지금 전혀 엉뚱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예언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시대의 예언은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새끼양 같은 짐승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짐승의 표 환난이 오는데, 그 예언이 이루어지면 곧바로 예수께서 재림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엉뚱하게 유대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회의 모습을 잘 아는 사탄은 앞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기만할까요?

중동의 이스라엘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점점 더 그들 속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이적이 일어나게 할 것입니다. 사탄은 마치 유대인들 속에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미혹의 시대입니다. ‘누가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인가?’에 대한 진리를 모르면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미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불공평하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이유

얼마 전에 미국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팔레스타인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도록 허락했습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항상 이스라엘 편을 들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지지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이슬람 사람들이 얼마나 속상하고 분노할까요? 비록 미국이 이슬람 세계로부터 미움을 받고 강력한 테러까지 받고 있지만, 미국은 이스라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국 정부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시대의 144,000인은 유대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결코 이스라엘을 등질 수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70주일 예언 해석과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이 누구인가?>에 대한 진리가 오해되고 왜곡됨으로써 벌어진 일입니다. 지금 기독교회에서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이십니까?

 

과연 유대민족 전체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을까?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있는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세속에 빠져 있는 무신론자들입니다.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으로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유대교가 신앙이 아니라 문화이고 전통에 불과합니다. 유대인 중 일부만이 유대교의 제사와 의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수많은 개신교인들이 그런 유대인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언을 강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또한 유대인이 144,000인이 될 것이고, 유대인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그런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 시대의 예언과 교회가 아무 상관없게 됩니다. 개신교인들은 뒷짐을 지고 중동지방에 있는 유대인들이 잘해주기만을 기대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예언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교회 안에서 움직이는 사탄의 기만이 보이십니까? 사탄이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사탄은 다음과 같은 6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6가지 목적

1. 사탄은 마지막 시대의 중요한 예언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성취된다는 거짓을 뿌려놓음으로써, 기독교 전체를 요한계시록 예언과 완전히 분리시키려고 한다.

2. 사탄은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으로 유대인을 내세움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마지막 시대의 사명과 예언에서 완전히 퇴장시키려고 한다.

3. 사탄은 마지막 시대의 복음 전파가 유대인들에게 맡겨졌다는 거짓을 퍼트려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한다.

4. 사탄은 마지막 환난이 오기 전에 의인들은 미리 비밀휴거된다는 거짓 소망을 갖게 하여,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을 환난을 통과하지 못하는 나약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5. 사탄은 유대인들이 144,000인이 된다는 거짓을 전파하여, 144,000인이 되고자 하는 성도들의 거룩한 노력과 정신을 없애려고 한다.

6. 사탄은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감추려고 한다. 초대 교회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중세기에 핍박의 세력으로 등장한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적그리스도는 미래에 나타나서 3년 반만 활동할 것이라는 가짜 적그리스도를 만들어 놓았다.

 

누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가?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사도 요한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놀라운 말씀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5,16)

 

이 장면은 아마겟돈 전쟁의 장면입니다. 이 말씀 어디에도 중동에 있는 유대인들이나 이스라엘 국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누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했습니까?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지 않은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의의 옷, 흰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이스라엘 국가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의의 옷을 입고 있는 거룩한 성도들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미사일과 탱크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탄에게 기만당한 사람들이 성도들을 죽이고 핍박하는 마지막 환난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은 자신이 믿고 동의하는 모든 가르침이 말씀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나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는 모아서 결국 불에 태울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의의 옷을 입을 것이고 벌거벗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알곡으로 거두어져서 단으로 묶여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마에 인을 쳐서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실 것인데, 그들이 바로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이고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더 이상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 아닙니다. 중동지방에 있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성경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들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구주를 영접하면 구원받고 거절하면 멸망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리를 놓치면, 깊은 암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편집실)

 

Do you know?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주신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마다 나오는 질문이 있는데,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7장 7-8절에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신 이 언약은 마지막 시대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성경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은 조건적이며, 그 조건은 한마디로 말해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끊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너희 이스라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며 (이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너희가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한 이 (예루살렘) 성전이라도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4-7)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수없이 경고하고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유대민족에게 주셨던 모든 약속을 폐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을 던져서”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온 세상에 흩으셔서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끊어버리겠다.”는 조건이 유대민족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조건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성경 말씀과 예언에 대하여 이상한 오해를 갖게 됩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영광스럽게 묘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무조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배도하고 아무리 반역할지라도,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복음을 거절할지라도, 한번 약속하셨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야 할까요? 그런 주장은 성서적도 아니며 합리적인 생각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불순종하고 반역하고, 심지어 부모를 죽이기까지 했는데, 자녀에게 축복과 유산을 물려주겠습니까? 물려준다면, 패역한 자녀가 부모에게 받은 것을 잘 사용할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진리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비록 과거에 구원받고 복을 받았을지라도, 배도하고 진리를 버리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약속과 구원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순종하지 않고 진리를 따라가지 않는 자들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Do you know?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요?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노역을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때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며 황무지가 꽃을 피울 것이고 사막에서 물이 흐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예언을 주셨을까요? 이스라엘이 70년간 바벨론에서 노예로 고된 삶을 살지라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은 2,600년 후에 재건될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설교자들이 예레미야와 에스겔서의 말씀을 가져다가 이스라엘 국가의 건국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아랍과의 6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들이 사막에서 물을 끌어올려서 농사를 잘 짓고 황폐한 땅에서 나무를 기르고 숲을 만들자, 이런 설교들이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자, 이것을 보십시오.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지금 유대민족에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황무지가 꽃을 피우게 되었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런 설교는 길을 잃어버린 설교입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했고 소망을 말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예언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유대인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예언은 구약시대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에스겔과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 명령에 따라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을 재건했습니다. 70년 동안 버려졌던 황무지에 꽃이 피고 사막에 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을 유대인들로 오해하면, 다음과 같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도 오늘날 중동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적용하게 됩니다.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이 정말 이스라엘이 1948년에 건국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까? 아닙니다. 왜 아닐까요?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아모스의 예언이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였도다 기록된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행 15:14-17)

 

얼마나 분명합니까? 사도 바울은 “무너진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는 아모스의 예언을 어떻게 적용했습니까? 유대인들이 버린 십자가 복음을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서 초대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10)

 

사도 베드로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제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 교회가 이스라엘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며, 선택된 백성이고 제사장 나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 이어서 새롭게 등장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면서 교회를 소개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을 향해서 “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스라엘이 되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누가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인가?

교회 다닌다고 모두 영적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다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하고 열매 맺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민족도 성경을 갖고 있고 수많은 예언을 갖고 있었지만, 순종하지 않고 회개의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버림받았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조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이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경고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옳도다 저희(유대민족)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교회)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0-21)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원래의 가지로 삼았던 유대민족도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 아끼지 않고 버리셨으므로, 이방인들도 순종하지 않으면 버리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0-23)

 

결론

“우리에게는 보다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날이 새어 샛별이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를 때까지 여러분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벧후 1:19, 현대인번역)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예언은 불안하고 어둡고 혼란한 세상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천국까지 안내해주는 네비게이션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언에 관심이 없는 것은 네비게이션 없이 전혀 모르는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잘못된 예언 해석을 믿고 따라가는 것은 고장난 네비게이션을 의지하여 운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 살펴본 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대표적인 종말론이라고 할 수 있는, 비밀휴거를 포함한 마지막 7년 대환난은, 성경 전체의 흐름에 맞지 않는 황당한 예언 해석입니다. 7년 환난 해석은,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지목하자 그것을 와해시키고 피하기 위해서 천주교회 학자 리베라가 만들어놓은 미래주의 예언해석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1827~1830년경,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던 다르비(John Nelson Darby)가 천주교의 미래주의 예언 해석을 개신교식 미래주의로 발전시켜서 세대주의 종말론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개신교회의 종말론을 이끌어가는 이론이 된 것입니다. 성경 중심의 올바른 신앙을 하기 원하는 개신교인들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7년 대환난 종말론과 비밀휴거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다리는 분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짐승의 표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를 읽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지혜가 함께 하시어 올바른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2편, 1부 –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오늘날 기독교회에 “구약시대에는 유대민족이 이스라엘이었는데, 신약시대에는 누가 이스라엘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마지막 시대의 이스라엘’에 대한 두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두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을 믿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신앙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날 꽤 많은 분들이 지금 중동지방에 있는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특별한 종이라고 믿습니다.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이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국가가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스라엘 국민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는 극적인 회심을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큰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 믿음을 가진 분들은 이렇게 설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현재 중동지역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이스라엘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인도 유대인들이고, 유대인들에게 마지막 시대의 예언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가르침이 성경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가르침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 기독교회를 받치고 있는 예언의 큰 기둥이 무너지게 됩니다. 비밀휴거가 무너지고 세대주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번 기사에서 다루는 말씀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정말 중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게 된 배경

사도시대 이후 중세기를 거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회는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이지만, 십자가 이후의 하나님의 백성은 예수를 영접한 성도들과 교회”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1948년 큰 전환점을 가져오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건국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1,900년 동안 온 세상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을 조금씩 구입하더니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을 선포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성경 예언 해석이 크게 바꾸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결국 이렇게 해서 성취되는 것이구나.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도 이스라엘 국가를 사용하시는구나.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도 유대인들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사건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을까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치시는 144,000인은 유대인들이고,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도 이스라엘 국가라는 가르침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이 나타나면서 어떤 현상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기독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실제 이스라엘 나라로 이민 가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중동지방에 있는 이스라엘로 헌금을 보내야 한다는 설교자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가의 정책과 결정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 주인공이고, 계시록의 예언이 그들에 의해서 성취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예언을 통해서 사건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데, 사건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재건되기 전에는 전혀 이런 가르침이 없었는데,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세워지면서 갑자기 성경 예언을 그 사건에 맞춰서 재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예언을 사건 중심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결국에는 성경의 기둥과 같은 말씀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어떤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성경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쪽에서 나오는 말만 듣지 말고 그 가르침이 성경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유대인들이 144,000인이고, 유대민족이 마지막 시대에 복음 전파의 주인공이 된다는 가르침은 빗나간 해석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가르침이 어디서, 어떻게 빗나가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빗나가게 되었는가?

유대민족의 역사는 배도와 불순종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케 하시고 돌이키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까지 유대교회와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대민족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은 110만 명 이상이 살육당하면서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됩니다.

 

질문 : “유대민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후부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유업을 누가 이어받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얼마나 분명합니까? 오해할 여지가 전혀 없는 말씀입니다. 신약시대에는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누가 하나님의 약속과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고 참된 거듭남을 경험하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질문 : “신약시대에는 누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롬 2:28,29)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피부와 몸이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피부와 혈통이 중요한 것은 모두 구약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신약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된다고 했습니까? 바울은 “이면적 유대인”이 진짜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는 사람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입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로 그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얍복강에서 이기는 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누구든지 복음을 통해서 죄와 세상을 이기는 경험을 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택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 이후에는 마음에 할례를 받는 성도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 어떤 경험일까요? 육체의 할례를 통해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 마음으로부터 죄와 세속이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란, 성령을 통해서 참된 회개와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이고  마지막 시대의 유대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통해서 진리를 보존하셨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고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모든 약속과 축복도 교회를 통해서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질문 :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육신과 혈통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유대인의 육신을 갖고 태어났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약속을 받은 성도들이 “이스라엘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70주일 예언이 최종적으로 마쳐지자, “이제는 유대인들을 떠나서 이방인에게 가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죽이고 복음을 거절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방인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바울의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 :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신약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합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할례받는 경험을 하면 “이스라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거듭남, 중생)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5-16)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할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거듭나고 중생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사상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 신앙을 ‘유대인의 할례와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를 할례와 유대인의 사상으로 끌고 가려는 거짓 선지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바울은 “누가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인가?”에 대한 질문에 분명한 답을 줍니다.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에서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자녀가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3장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 6장에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1편, 2부 – 마지막 한 주일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7년 대환난은 정말 존재하는가?

오늘날 기독교 서점에서 팔리는 종말론에 대한 책들을 보면, 거의 모든 책들에서 다루는 공통적인 이슈가 나오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7년 대환난>입니다. 지금 기독교회는 세상 종말에 반드시 <7년 대환난>이 일어날 것을 흔들리지 않는 진리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 대환난>은 성경 어디에서 나온 개념일까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마지막 환난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그것은 짐승의 표 환난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7년’이라는 기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이제부터 7년 대환난의 진실과 실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70주일 예언에서 69주일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70주일 중에서 마지막 한 주일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69주일까지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었는데, 70번째 마지막 주일은 누구에 대한 예언일까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종말 사건에 대한 예언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제부터 70주일 예언의 마지막 부분을 독자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 주일과 62 주일이 지날 것이요 … 62주일 후에 (62주일 후는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AD 27년 이후를 말함)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주일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주일(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5,26,27)  

 

이 장면이 어떤 장면입니까? 이 말씀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AD 27년 후 시작되는 마지막 한 주일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진다.

2.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마지막 한 주일의 중간에 많은 사람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정하면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의 의미

예루살렘 중건령이 내리고 7주일과 62주일이 지난 후에, 다시 말해서, 서기 27년 후 마지막 70번째 주일이 되었을 때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킹제임스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의 의미가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 동안 메시아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예언입니다. 이 예언도 나사렛 예수에게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신 후 3년 반의 공생애를 사신 후에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지는 정확한 시기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27절의 주인공을 메시아가 아닌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마지막 한 주일을 69주일과 하나로 연결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고, 70주일과 분리시켜 세상 끝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믿습니다. 다음 말씀을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이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62주일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주일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주일(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6,27)

 

가브리엘 천사는 26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한 다음에 27절에서 “그가”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가”는 누구일까요? “그”는 앞 절에 나오는 메시아와 동일한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맥을 볼 때 그렇게 해석해야만 합니다. 70주일 예언, 즉 490년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일관성 있고 연속적인 예언입니다.

바로 이 성경절에서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는 크게 빗나갔습니다. 그들은 27절 말씀에 나오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세상 끝에 나타나서 언약을 굳게 정할 것이고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정말 이 말씀을 그렇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번 기사를 끝까지 읽으면 비밀휴거와 세대주의의 실상과 정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한 주일의 절반에 언약을 세운다”는 말의 의미

27절에서 “한 주일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했는데, 이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지막 한 주일 동안 십자가에서 피의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얼마나 분명합니까? 그리스도 피의 언약은 70주일 예언의 마지막 주일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피의 언약이 언제 이루어졌습니까? 가브리엘 천사는 “한 주일의 절반”에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그리스도)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주일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주일(마지막 주일)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27절 전체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 마지막 “주일의 절반”이 언제인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먼저, 마지막 주일의 절반이 언제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일주일의 절반은 며칠입니까? 일주일은 7일이므로 절반은 3.5일입니다. 예언 해석 원칙에 의해서 하루는 1년으로 환산하므로, 3.5일은 3년 반이 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70번째 주일의 절반은 언제일까요? 69주일, 즉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해(AD 27)로부터 3년 반이 되는 때입니다. 예수께서 침례받고 3년 반 후에 무슨 사건이 생겼습니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70주일 예언대로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신 후 3년 반 동안 복음을 전파했고, 그 해 봄에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예언대로, 정확한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해가 언제입니까? 예수께서 침례받은 AD 27년에 3년 반을 더하면 AD 31년입니다. 예수께서는 AD 31년에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게 될까요?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이 문제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금지된 제사와 예물이란 무엇인가?

유대민족은 믿음으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오심을 바라보면서 성소에서 “제사와 예물”을 드렸고, 동물을 죽이는 의식을 통해서 용서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자 더 이상 성소에서 “제사와 예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사와 예물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린양이 되셔서 직접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 이후부터는 양을 잡아 죽이는 “제사와 예물”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사와 예물에 대한 의식법이 십자가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4-15)

얼마나 분명합니까? “의문에 쓴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제사와 예물에 대한 구약시대의 의식법’이 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어떤 분들은 십자가에서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십자가에서는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는 도덕률인 십계명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제사와 예물 드리는 의식법이 폐지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 성소의 휘장을 둘로 찢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 15:37-38)

 

예수께서 돌아가시는 순간 왜 성소 휘장이 찢어졌을까요? <The Life of Jesus>라는 책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큰 부르짖음이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나왔을 때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 뜰에 서서 희생제물인 어린양을 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죽이려고 칼을 들자 땅이 진동하였다. 제사장은 놀라서 칼을 땅에 떨어뜨렸고 어린양은 도망을 쳤다. 지진과 천둥의 소음 속에서 성전예식에 참여한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성전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는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시간에,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신 채 운명하셨다. 드디어 구약시대 동안 동물의 희생제도로 지켜져왔던 표상이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다. 여러 세기를 통해 성전의 봉사가 가리켜온 바로 그 사건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온 인류를 위한 속죄를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표상이 실체와 만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을 예표하는 모든 의식들은 폐지되어야 했다.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소 휘장이 찢어지고 희생제물을 죽이는 칼이 떨어졌으며 어린양이 도망친 것이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아서 폐해졌다고 한 “의문에 쓴 증서”나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모세가 기록한 제사제도와 절기에 대한 법을 뜻합니다. 제사와 절기에 속한 모든 예물은 십자가에서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교회들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가르칠까요? 왜냐하면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이 십자가에서 폐지되었다는 말씀의 의미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70주일 예언 요약

가브리엘 천사는 70주일 예언에서 <69주일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께서 그 예언을 성취시켰습니까? 그렇습니다. 69주일이 되는 해, 서기 27년에 예수께서 성령을 기름 붓듯이 받으면서 침례를 받았고 공중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의 절반에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께서 이 예언을 성취시켰습니까? 그렇습니다. 침례받고 공생애를 시작한 지 3년 반 후, AD 31년 봄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주일 동안 언약을 굳게 세운다>고 했는데, 예수께서 이 예언도 성취시켰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주일의 중간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고 했는데, 이 예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성소의 제사제도와 예물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모든 예언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 속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70주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을 제대로 해석하면 비밀휴거와 세대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 한 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7년 대환난>이라는 종말론을 만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70주일의 마지막 한 주일을 별도로 분리시켜서 세상 끝의 7년으로 적용하면, 오늘날 기독교회가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기둥처럼 붙잡고 있는 구원의 가르침이 근본부터 흔들려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70주일 예언에 대한 유대 랍비들의 저주를 아십니까?

유대의 랍비들은 탈무드 법전에서 70주일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를 펼쳐놓고 다니엘서 9 24-27절에 기록된 (70주일) 기간을 계산하려고 하는 자의 손의 뼈들과 손가락 뼈들이 썩어서 없어지길 기원한다. 그리고 (70주일 예언을 계산한) 사람의 기억이 지구 상에서 영원히 썩어져 사라지길 기원한다.”(탈무드 율법책, 978페이지, 섹션 2)

이것은 정말 끔찍한 저주입니다. 유대의 랍비들이 70주일 예언에 대해서 이런 엄청난 저주를 퍼붓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70주일 예언이유대민족이 메시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의 자격을 영원히 잃어버리고 멸망당하게 된다.” 예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랍비들은 누구도 70주일 예언을 읽거나 연구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를 믿는 분들은 유대 랍비들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70주일 예언은 유대민족의 종말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마지막 주일은 세상 끝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유대민족은 종말까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며 마지막 시대의 주인공입니다. 그들은 144,000인이 되어서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오늘날 기독교회가 예언의 빛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비밀휴거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짐승의 환난이 것입니다. 그러나 7 대환난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허망한 삶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7 대환난을 기다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하지 못하다가 종말을 맞이하게 것입니다.

 

70주일 예언의 종점

이제 우리는 마지막 한 주일의 나머지 절반만 살펴보면 됩니다. 마지막 한 주일의 절반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나머지 절반, 3.5년이 지나가면 70주일 예언 전체가 마쳐지는데, 그 해가 언제입니까? 서기 31년 봄에 십자가가 세워졌으므로 서기 31년 봄에 3년 반을 더하면, 서기 34년이 됩니다. 서기 34년에 70주일 예언이 완전히 끝마쳐졌습니다. 서기 34년, 그때 무슨 사건이 생겼습니까? 기독교회 첫 번째 순교자가 생겼습니다. 스데반은 유대교회를 향해서 “과거 구약시대에 너희 조상이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인 것처럼, 너희가 메시아를 죽였다.”고 설교했는데, 그때 유대인들이 그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1-60)

유대민족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였고, 그분의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을 죽임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의 시간, 70주일(490년)을 완전히 종결시켰습니다. 서기 34년 이후부터, 유대민족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닙니다. 70주일 예언과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70주일 예언을 준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의 유대민족을 위해서 주신 예언입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주일(490년)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얼마나 분명합니까? 70주일 예언의 첫 번째 목적은 유대민족에게 주어진 마지막 은혜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둘째 목적은,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한 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적그리도와 연결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 3년 반을 더 주셨는가?

70주일 예언을 설명하면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백성들에게 왜 3년 반이라는 은혜의 기간을 주셨습니까?” 왜냐하면 유대백성 중에는 유대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속아서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의 생각대로 처리하면, 메시아를 죽였는데 당장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서 유대민족을 심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르고 범한 죄에 대해서는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유대민족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자 온 유대국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나사렛 목수, 예수가 메시아였다는 사실이 온 유대교회에 증명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자들과 다락방에 모인 120명에게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다시 한번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무식한 제자들이 방언으로 복음을 전파했고, 그들이 설교하면 하루에 3천 명씩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엄청난 일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한 초대 교회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영광스런 모습을 온 유대민족과 지도자들이 지켜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 메시아를 죽인 유대민족에게 3년 반이라는 기간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마지막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끝까지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AD 34년, 기독교 첫 번째 순교자로 스데반이 돌에 맞아죽었고, 그것이 70주일 예언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행 8:4)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AD 34, 70주일 예언이 최종적으로 마쳐지면서 유대민족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었고, 이방인을 위한 복음 시대가 열렸습니다. 

 

유대국가의 멸망 (AD 70년)

유대민족을 위한 70주일, 490년의 은혜 시간이 마쳐진 후 유대국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70주일 예언과 함께 유대국가가 어떻게 멸망당할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단 9:2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가브리엘 천사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죽은 후에 한 왕이 나타난다고 했고 그가 예루살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민족이 메시아를 십자가에서 죽인 후에 한 왕이 나타나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한 왕”이 누구일까요? 세상 끝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 나오는 왕은 그리스도께서 끊어져 죽은 후에 나타나는 왕입니다. 그러므로 이 왕은 로마황제, 베스파시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AD 70년, 베스파시안 황제가 보낸 군대가 예루살렘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고 멸망시켰습니다. 26절과 27절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26절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27절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이미 정한 종말”은 어떤 종말입니까? 메시아를 거절함으로써 정해진 예루살렘의 종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26절과 27절은 연결된 말씀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26절에서는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고, 27절에서는 메시아를 죽인 유대국가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이 장면에서도 우리는 마지막 한 주일이 세상 끝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밀휴거론자들과 세대주의자들은 27절에 나오는 “또 강포하여 미운 물건 (abominations he shall make it desolate) 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라는 말씀을 세상 끝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다니엘 9장 27절 말씀을 인용해서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the abomination of desolation)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1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데 그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라.”는 의미를 ‘적그리스도가 제3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 행세를 하면서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말 이 말씀이 그런 뜻일까요? 추측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 이 말씀에 대한 정확한 의미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눅 21:20,21)

 

얼마나 분명합니까? 다니엘 9장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강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라고 한 것과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을 보거든”이라고 한 것은 모두 “로마군대들이 거룩한 예루살렘을 침공해서 에워싼다.”는 의미입니다. 두 말씀 모두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니엘서와 예수께서 예언하신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AD 70년, 로마의 타이투스 장군은 베스파시안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8만 명의 대군으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어미가 자식의 시체를 뜯어먹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성은 처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1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무참하게 학살되었습니다. 성벽도, 성전도, 도시도 모두 불타버렸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에 있는 금으로 된 모든 기구들이 불에 녹아서 돌들 사이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로마군인들은 그 금을 캐내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의 돌 하나하나를 치우고 들추면서 찾았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는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유대민족은 메시아를 죽였고, 그 결과 서기 70년 예루살렘성은 참혹하게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특권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기독교회를 흔드는 마지막 한 주일의 예언

만약 70주일 예언이 메시아와 십자가에 관한 예언이라면, 그리고 마지막 한 주일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분리시킬 수 없다면, 오늘날 기독교회를 떠받치고 있는 <7년 대환난> 예언의 기둥이 송두리째 흔들려서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70주일 예언은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예언입니다. 70주일의 마지막 한 주일은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며 결코 종말적 사건이 될 수 없습니다. 70주일 예언 전체가 예수님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예언 어디에도 적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밀휴거와 세대주의는 모래 위에 세워진 허망한 가르침입니다.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미래로 가져가는 세대주의와 비밀휴거는 성경 밖으로 나간 가르침입니다. 더 이상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Do you know?

7년 대환난은 모래 위에 세워졌다!

오늘날 <7년 대환난>을 가르치는 분들은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69주일 다음에 이어지는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의인들을 비밀휴거시킨 후에야 성취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69주일이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69주와 70번째 주 사이에 2,00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집어 넣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언의 시간표를 69주(483년)+2,000년에 이르는 기독교회 시대+세상 끝의 1주(7년)로 만들었습니다. 70번째 주일인 마지막 7년을 ‘7년 대환난’이라고 이름 붙인 후, 7년 환난의 앞에 비밀휴거를 넣었고, 7년 환난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2단계의 재림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니엘서 9장의 70주일 예언을 완전히 왜곡시킨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종말론을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의인들에게는 7년 대환난이 시작되기 직전에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비밀휴거가 있고, 7년의 중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자처하면서 세상을 다스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종말론의 기초가 70주일 예언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70주일 예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연결된 예언이고 그리스도의 침례와 십자가에 대한 예언입니다. 70주일 예언 어디에도 적그리스도와 7년 대환난이 들어갈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7년 대환난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은 7년 대환난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하나의 성경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비밀휴거와 세대주의 예언 해석을 믿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만약 마지막 70번째 주일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가 끊어져 없어졌다면,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주일은 미래의 사건이 될 수 있는가? 마지막 주일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이라면, 7년을 세상 끝으로 가져가서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기간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2. 만일 70주일 예언이 하나로 연결된 예언이고 그리스도의 침례와 십자가에서 모두 성취되었다면, 비밀휴거와 7년 대환난의 시기는 어떤 예언으로 입증해야 하는가?

<7년 대환난>은 사탄이 교회 안에 뿌려놓은 거짓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7년 대환난과 비밀휴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은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떼내어서 세상 끝에 갖다 놓아야만 가능한데,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세상 끝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한 주일 중간인 서기 31년 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마지막 한 주일의 예언이 2천 년 전에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Do you know?

세대주의 종말론의 뿌리를 아시나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처럼 믿고 있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충격적인 사실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뿌리는 천주교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왜 적그리스도가 세상 끝에 나타난다는 종말론을 만들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연구를 통해서, 적그리스도는 중세기에 이미 나타났으며, 적그리스도는 천주교회 안에 있는 교황과 바티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황과 바티칸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바꾸고 변조한 사실과 수천만 명의 성도들을 죽이고 고문한 사실을 유럽 전체에 공포했습니다.

그 당시 유럽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 천주교회밖에 없었는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설명하면서 “적그리스도는 교황과 바티칸이다.”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유럽 전체에서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교황에 항거해서 일어났고 천주교회를 떠났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은 천주교회의 존폐를 위협하는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천주교회는 놀라운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바티칸은 예수회의 사제인 ‘리베라’를 앞장 세워서 종교개혁자들의 예언 해석을 와해시키려고 했습니다. 리베라 신부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주장했는데, 이것을 ‘미래주의’ 예언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1. 적그리스도는 중세기 과거에 나타난 존재가 아니라 미래의 세상 끝에 나타날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2. 적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세상에서 나타나는 슈퍼맨과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베라 신부가 무엇을 한 것입니까? 적그리스도를 미래에 나타날 해석함으로써, 교황을 적그리스도와 전혀 상관없는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리베라의 예언 해석이 개신교회 속으로 들어왔고 세대주의자들의 손에 의해서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을 떼어내서 미래에 갖다놓는 <7년 대환난>의 종말론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 종말론이 기독교회 전체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5백 년 전에 시작된 리베라 신부에 의해서 시작된 사탄의 미혹이 거의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19세기 말의 주석학자인 요셉 테너는 1580년경에 나타난 예수회 사제인 리베라가 만든 미래주의가 어떻게 현대 기독교회의 종말론과 연결되었는지 밝혔습니다.

“16세기 말에 이르러 천주교회의 저명한 학자들이 나타나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교황과 교황제도에 의해서 성취되었다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서로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 예수회 학자인 리베라는 미래주의 해석을 고안해 냈는데, 미래주의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교황의 행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상 끝에 나타나서 3년 반 동안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권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러므로 예수회 사제인 리베라는 현대 미래주의 해석법의 창시자로 간주된다.”(Daniel and Revelation, 16)

개신교회는 적어도 17세기까지는 70주일 예언의 빛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만유인력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다니엘 9장의 70주일 예언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선포하면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다니엘서의 예언을 거절하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뒤엎는 일을 하는 셈인데,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무엇을 경고한 것입니까? 70주일 예언의 빛을 거절하면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왜 무너지게 될까요?

70주일 예언을 모르면, 메시아의 죽음과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빛을 잃어버리게 되며, 유대민족를 위한 은혜의 시간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모르게 됩니다. 유대인들을 여전히 선택받은 민족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유대인 중심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지금 그런 종말론이 개신교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개신교회가 아이작 뉴턴의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천주교회 리베라 사제가 만든 거짓 종말론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리베라 신부가 만든 미래주의가 지금 세대주의로 분장해서 기독교회 전체를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여러분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지키겠습니까? 아니면 리베라 신부의 예언 해석을 따르겠습니까? 아무렇게나 믿어도 예수만 영접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벗어난 곳에는 결코 안전이 없습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분들이 7년 환난과 환난 전 비밀리에 휴거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빗나간 예언 해석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치명적으로 파괴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1편, 1부 – 70주일 예언을 통해서 나타나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의 수많은 예언들을 성취시키면서 이 땅에 오셨고 예언대로 사셨으며 예언대로 죽으셨고 예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 어떤 신이 이렇게 정확하게 예언을 성취시키면서 자신을 나타내고 증명할 수 있을까요?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가장 분명한 예언이 있는데, 그것이 어떤 예언일까요?

다니엘서 9장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입니다. 70주일 예언은 메시아가 어느 해, 몇 월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서 사역을 시작할 것이며, 또한 유대민족이 어느 해, 몇 월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고, 결국에는 언제 유대민족의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자세한 시간표를 알려주는 놀라운 예언입니다.

 

70주일 예언의 배경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는 반역과 불순종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배도하고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마다 선지자를 보내서 경고하셨으며 고난의 역사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순종과 반역의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은혜의 기간을 주시는데, 그것이 70주일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70주일 예언을 통해서 유대민족에게 경고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을 주겠다. 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내 아들, 그리스도를 70주일 예언의 시간표대로 유대 땅에 보낼 것이다. 그리스도가 언제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언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에 대한 경고를 70주일 예언을 통해서 주겠다. 만일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너희는 70주일 예언대로 메시아를 죽이게 될 것이다.”

 

70주일 예언은 정말 두렵고 놀라운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이 70주일을 깊이 연구하고,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하여 잘 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70주일 예언은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주신 마지막 은혜의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서 잘 준비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70주일 예언 시간표 그대로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70주일 예언은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6백 년 전에 기록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 속에서 정확하게 성취된 사실을 확인한다면,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였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70주일 예언이 어떻게 나사렛 예수와 유대민족에게 성취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 9장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70주일 예언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이레(주일, week) 로 기한을 정하였나니…”(단 9:24)

 

“이레”라는 말은 영어로 week,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70이레로 기한을 정했다는 말은 70주일로 기간을 정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을 위해서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70주일이라는 기간 중에 어떤 일이 생길까요?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永續)되며 영 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단 9:24)

 

이것이 어떤 사건입니까? 죄가 영원히 속량되고, 영원한 의가 드러나는 사건이 어떤 사건일까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70주일의 기간이 마쳐지기 전에 인류의 죄를 속량하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는 십자가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70주일 예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예언임이 틀림없습니다.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단 9:26)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70주일이라는 기간을 정해놓았는데, 그 기간 중에 지극히 거룩한 자,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70주일 예언 기간 중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났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누구일까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말의 헬라어가 ‘그리스도’입니다. 또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말의 히브리어가 ‘메시아’입니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모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70주일의 예언 기간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났다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70주일 기간 중에 유대민족이 그리스도를 죽인다는 말입니다. 70주일 예언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70주일이라는 기간이 시작되는 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이 예언이 얼마나 긴 기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알면, 메시아가 언제 나타나고 언제 죽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70주일 예언은 얼마나 긴 기간인가?

건축기사들이 도면을 그릴 때, 실제 크기보다 축소해서 그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예언을 축소법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70주일의 예언 기간이 실제로 얼마나 긴 기간이 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70주일은 얼마나 긴 기간일까요? 70주일은 며칠입니까? 일주일은 7일이니까 70주일×7일 하면 70주일은 490일입니다. 그런데 예언에 나오는 역사적 기간을 해석할 때는 하나님께서 지정한 계산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것은 “1일은 1년”이라는 법칙입니다.

 

1일=1년 원칙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 일이 일 년이니라”(겔 4:6)

“너희가그땅을탐지한날수사십일의하루를일년으로환 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민 14:34)

 

그러므로 1일은 1년으로 환산한다는 법칙에 따라 70주일(490일)을 실제 기간으로 환산해보면 1일=1년이므로 490년이라는 긴 기간입니다. 70주일=490일=490년. 그래서 <현대인성경>에는 70주일을 490년으로 환산해서 성경절을 기록했습니다.

1일=1년 원칙이 확립되어온 역사

예언 기간 해석에 있어서 1일을 1년으로 해석하는 원칙은 초대 교회 시대부터 인정되어온 예언 해석법입니다. 수많 은 성경학자들뿐 아니라 종교개혁자들도 다니엘서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상징적 예언인 1,260일, 1,335일, 2,300 일 등의 예언 해석에 <1일=1년>이라는 원칙을 적용했습니 다. 1년=1일 원칙에 대한 교회사적 증거들을 살펴보면, 이 원칙이 초기 그리스도 교회때부터 시작하여 중세기의 기 독교회와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관 성 있게 적용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일=1년> 이라는 기간 예언의 환산 법칙을 인정했던 학자들은 다음 과 같습니다.

1. 초기 기독교회 성경학자: 터툴리안, 클레멘트, 유세비우 스, 테오도렛, 데오도시우스, 안드로니쿠스

2. 중세기 유대인 학자: 나하웬디, 알리, 라시, 나하메니데 스, 라시바즈

3. 중세기 기독교학자: 요아킴, 아놀드, 우베르티노, 데리 라, 부르테, 니콜라스 크렙

4.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멜란히톤, 풍크, 불링거, 존 낙 스, 존 베일, 토마스 브라이트만, 요한 웨슬리와 그의 조 력자인 플레셔르

5. 1700년대의 성경학자: 루터교회의 신학자인 벵겔, 만 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 경

6. 1800년대의 성경학자: 장로교회 일반의회 의장인 조 슈아 윌슨 박사, 감독교회의 주교인 존 핸셔, 예일 대학 의 총장인 티모디 드와이트, 유니온 대학의 총장인 엘 리팔리트 노트, 오하이오 대학 총장인 조지 정킨

이처럼 <1일=1년> 원칙은 어떤 개인이나 교단의 독창적인 견해나 돌발적인 해석 방법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교파의 다양한 성경학자들의 심도 있는 성경 연구의 열매로 거두어진 결론입니다.

 

 

70주일 예언의 시작점

우리는 70주일이 490년의 긴 기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70주일, 즉 490년이라는 긴 시간을 은혜의 기간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70주일(490년)의 기간은 언제 시작될까요?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70주일 예언이 언제 시작되는지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70주일(490년)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7 주일과 62 주일이 지날 것이요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성벽)가 이룰 것이며”(단 9:24,25)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이 언제입니까? 가브리엘 천사는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부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날 때까지” 몇 주가 지난다고 했습니까? 7주일과 62주일, 즉 69주일이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아,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인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해로부터 69주일이 지나가면 메시아가 나타나는 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라는 영이 언제 내려졌습니까? 70년의 포로생활이 끝나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는데,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7년에 내려진 조서가 예루살렘성 회복에 대한 가장 완전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칠 년에 …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 무릇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신속히 시행하되 은은 일백 달란트까지, 밀은 일백 고르까지 … 무릇 하늘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하늘의 하나님의 명하신 것은 삼가 행하라 …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스 7:7,12,13,21,22,23,25,27)

 

아닥사스다 왕 7년에 내려진 조서에는 단순히 성전을 건축하는 것뿐 아니라 재판과 통치를 포함한 완전한 예루살렘 성의 회복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은 아닥사스다 왕 7년이며, 그 해는 BC 457년입니다. 70주일 예언이 시작되는 BC 457년은 종교개혁 운동 이후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확인되었습니다. 17세기에 만유인력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뛰어난 물리학자일 뿐 아니라 예언에 해박한 신학자였는데, 그는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이 아닥사스다 왕 7년이며 BC 457년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또한 고대 페르시아의 엘레판틴(Elephantine) 파피루스 문서에서도 아닥사스다 왕 7년이 BC 457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인 BC 457년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분명한 해입니다.

 

지금까지의 요약

70주일 예언은 490년이라는 긴 기간에 대한 예언인데, 이 예언은 누구를 위한 예언입니까? 유대민족에게 주어진 마지막 은혜의 기간입니다. 70주일, 즉 490년 기간의 시작점은 언제입니까?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해부터 시작되는데, 그 해는 아닥사스다 왕 7년, BC 457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언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지는 해(BC 457년)로부터 69주일이 지나면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69주일,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나타남- 그리스도의 침례

70주일 예언의 시작점은 앞에 우리가 확인했던 것처럼, BC 457년입니다.

그러므로 그 해로부터 69주일이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가 나타나는 해를 발견하게 됩니다. 69주일은 얼마나 긴 기간일까요? 앞서 70주일 기간을 계산했을 때와 동일한 방법으로 계산하면 됩니다.

69주일은 며칠입니까? 1주일은 7일이므로, 69주일x7일=483일입니다. 그런데 예언 해석 원칙에서 1일은 1년이라고 했으므로, 483일은 483년으로 환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시작점이 BC 457년이므로, BC 457년으로부터 69주일, 즉 483년이 지나고 나면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는 해를 만나게 되는데, 그 해에는 어떤 사건이 생길까요?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해에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메시아가 유대국가에 나타나는 해가 몇 년입니까? BC 457년에서부터 69주일, 즉 483년이 지나면 몇 년이 됩니까? AD 27년이 됩니다. AD 27년에 어떤 사건이 생겼습니까?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가 나타났습니다. 나사렛에서 목수로서 조용히 사셨던 예수께서 70주일 예언의 정해진 때가 되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면서 성령을 기름 붓듯이 받고 메시아로서 공중 전도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요한이 그 침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행 10:37,38)

 

예수께서는 몇 년에 침례를 받으셨을까요? 성경은 예수께서 침례받은 해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로마황제 디베로15년) …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눅 3:1,3,21)

 

예수님은 디베료 가이사 15년에 침례받았다고 했습니다. 디베료 가이사 15년은 서기 27년입니다. 누가복음은 AD 27년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복음 사업을 시작한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확합니까? 가브리엘 천사는 69주일, 즉 AD 27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께서도 AD 27년에 침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70주일 예언의 정해진 시간이 되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공중 봉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막 1:14,15)

 

무슨 때가 찼다는 것인가요? 다니엘 9장에 예언되어 있는 때, 69주일이 차면서 예수께서 성령을 기름 붓듯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사렛의 목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이십니까?

이제, 70주일 예언에서 마지막 한 주일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어떤 예언이며, 누구에 대한 예언일까요?

이 마지막 한 주일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종말론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이 예언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7년 대환난이 실제가 될 수도 있고 허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Do you know?

  1. ‘69주일’을 왜 ‘7주일’과 ‘62 주일’로 나누어 놓았는가?

다니엘 9장 25절에 “그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라는 말이 나온다.

BC 457년 이전에 예루살렘 성전은 어느 정도 복구되었 지만, 예루살렘 성은 아직 황폐한 중에 있었다.

그러한 상태에 있던 성(城)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다 완성되는데 7주일, 즉 49년이 소요된 것이다. 그 해가 BC 408년이다. “7주일과 62주일이 지날 것이요 그때 곤 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성벽)가 이룰 것이며”(단 9:25)

  1. BC 457년에서 69주일(483년)이 지나면 AD 26년인데 왜 27년으로 계산하는가?

숫자를 계산할 때는 483-457=26이 된다. 그러나 연대

에는영(0)년이없기때문에BC1년에서바로AD1년 으로 넘어간다. 그러므로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 는 연대를 계산할 때에는 1년을 더해 주어야만 올바른 해를찾을수있다.

  1. 예수 탄생이 AD 1년이라면 예수님이 침례받으 신 만 30세는 AD 31년이 아닌가?

예수님 탄생을 서력기원의 시작으로 제안했던 사람은 엑시구스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탄생을 로마건국 연대 754년으로 보고 원년을 잡았다.

그 후 로저 베이컨이라는 역사학자가 예수 탄생은 로마 건국 754년이 아니라 750년이라는 자료를 발견하여 예 수 탄생의 실제 연대는 BC 4년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해는 AD 27년으로 계 산된다.

29호를 시작하며

요즘 제3 성전, 이스라엘 재건 그리고 7년 대환난에 대한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강의와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려지고 있는데,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말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유대민족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예언의 성취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7년 대환난이 시작되면 이스라엘의 모리아산에서 성전이 재건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금으로 된 성소 기구들, 성소에서 사용하는 악기들과 의복 그리고 제단을 준비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폐지되었던 성소제도와 의식들이 기독교 안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유대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는데, 다시 구약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 나타났습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양을 잡아서 죽이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 복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일이 지금 기독교인들 중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성전 짓는 일에 뜨거운 열정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다니엘서에 나오는 70주일 예언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 살펴볼 70주일 예언은 기독교회의 기둥과 같은 예언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신앙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번 호의 말씀 속에서 여러분은 이 시대의 어둠을 비춰줄 등대와 같은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