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죽어도 영혼은 불멸한다”는 영혼불멸 사상의 근원은 어디이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동양의 불교나 유교는 물론이고 로마 천주교회, 희랍정교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회와 심령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강신술 그리고 무당까지도 공유하고 있는 영혼불멸 신앙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영혼불멸 사상의 시작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시조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영혼불멸설로 미혹했습니다(창 3:4). 불순종하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탄의 영혼불멸설 사이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영혼불멸설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는 죽음을 부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죽어도 우리 몸 안에 있는 어떤 존재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에 속아서 영혼불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혼불멸”이라는 인간의 착각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이 되었습니다. 힌두교, 불교, 자연신교, 무속신앙 등 거의 모든 종교인들이 불멸과 환생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세운 “영혼불멸설”이 진리를 무너뜨리고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지만, 성경은 여전히 영혼은 죽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롬 6:23)

 

기원전: 헬라 문화에서 철학으로 발전한 영혼불멸설

사탄이 시작한 영혼불멸 사상은 헬라 문화와 접목되면서부터 새로운 체계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몸을 떠나 존재하는 영혼과 윤회와 환생의 사상이 수많은 종교 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영혼불멸 사상에 기초하여 윤회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했습니다. 이렇게 “철학”이라는 옷을 입은 영혼불멸 사상은 기원전 5세기에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는데, 그는 죽음을 통하여 영혼이 해방되어 감옥과 같은 육신에서 벗어나서 불멸의 존재가 되어, 영원한 “이데아”(idea)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실증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사탄의 교리에 속아서 죽음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열렬한 주창자가 되었으며, 그의 논집인 파에돈(Paedon)은 영혼불멸 사상의 교과서로 자리 잡게 되어서 중세기까지 서방 정신 문화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혼불멸 사상은 고대 헬라의 신비주의에 기초를 둔 이교 사상이라는 사실을 “유대 대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영혼불멸의 신앙은 헬라 사상, 특별히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상을 이상하게 혼합한 신비 종교를 받아들인 플라톤의 철학과 접촉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유입되었다.”

 

3세기: 영혼불멸 사상, 기독교회로 들어오다

로마제국의 헬라 문화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당대에 있어서 최대 규모의 신학교가 있었는데, 3세기 초에 신학교의 교장을 지낸 오리겐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영혼불멸 사상을 기독교회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다”라고 선언하고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플라톤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오리겐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북아프리카 칼다고 출신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도 플라톤의 영혼불멸설을 지옥으로까지 적용시켰습니다. 그는 의인의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처럼 악인의 영혼도 지옥불에서 영원히 탄다는 영원지옥설을 기독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죄의 결과인 “사망”을 “영원한 불행과 고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터툴리안, 오리겐, 어거스틴 등과 같은 영혼불멸의 신봉자들이 모두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의 본거지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아프리카 지역의 교부들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5세기: 영혼불멸설을 근거로 연옥설의 문을 열다

터툴리안과 같은 라틴 교부이며, 북아프리카의 히포 출신인 당대 최고의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중세 천주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세웠습니다. 그는 33세 때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했는데, 그전까지 영혼불멸을 믿는 마니교의 신자였으며 플라톤주의를 열렬히 신봉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회로 개종한 이후에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만들기 위해서 무리하게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각 개인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되며 내세에는 정결케 하는 고통이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연옥의 개념을 천주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연옥설이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진 사람이 그곳에서 일정 기간 동안 죄를 정결케 하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고통을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에 대한 두 번째 기회가 생기게 된다는 교리입니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연옥의 개념은 플라톤의 “그치지 않는 고통의 처소 개념”에서 받아온 것입니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기초가 놓여진 연옥설은 서기 582년에 교황 그레고리에 의해서 교리로 인정되었습니다.

 

13세기~16세기: 이단이 된 정통, 정통이 된 이단

영혼불멸 사상과 그것에 기초해서 생긴 연옥설은 13세기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서 확고한 신학으로 집대성되었으며, 그로부터 50년 후에는 단테의 <신곡>이라는 소설에 의하여 영혼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이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영혼불멸설이 천주교회 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불길이 일어나기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를 반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영혼의 속성은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거룩한 회의에서 결정된 대로, 영혼은 … 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의 교시에 따라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며 그와 같은 그릇된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들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

 

이때부터 영혼불멸을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식적으로 이단이 되었으며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운동 이후: 칼빈을 통해서 개신교회로 들어 온 영혼불멸설

젊은 천주교 신자였던 요한 칼빈은 개신교회로 개종한 지 2년째가 되던 해인 1534년(25세)에 영혼불멸을 반대하고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으로 가르친 그리스도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최초의 신학논문인 “혼수론”을 저술했습니다. “혼수론”은 오늘날 개신교회가 영혼불멸 신앙을 따르도록 만드는 불행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혼수론”은 칼빈이 개신교회로 개종한 지 불과 2년만에 나온 논문이고, 그것을 저술한 때의 그의 나이가 25세라는 어린 나이였음을 생각할 때, 그가 저지른 신학적 과오를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결과와 영향은 참으로 상처가 크고 깊습니다.

종교개혁 운동을 주도했던 영국 옥스포드대학의 교수인 위클립과 틴데일 그리고 독일의 마틴 루터는 중세 천주교회의 영혼불멸설 교리가 이교적인 사상임을 공공연하게 지적했지만, 칼빈이 선배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혼수론”을 통해서 이교적이고 비성서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칼빈이 받아들인 영혼불멸 신앙은 도대체 어디에 기초를 둔 것일까요? 칼빈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인 “그리스도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이교도 철학자들로부터 영혼의 정의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플라톤은 ‘영혼은 불멸의 본질’이라고 바르게 정의하였다.”

 

칼빈이 저술한 “그리스도교 강요” 제1권 15장 6항의 “영혼과 그 기능” 이라는 항목에는 자신의 가르침이 플라톤의 사상에 근거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칼빈과 플라톤은 영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매우 유사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에 관한 칼빈의 정의:  “사람의 신(spirit) 혹은 영혼(soul)은 몸과 구분되는 본질이다. … 몸이 죽은 후 영혼은 감각과 지성을 갖춘 채 살아있다. 여기에서 나는 영혼의 불멸 이외에 어떤 다른 사상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단언하는 바이다.”(기독교 대백과사전 8, 1246. Mead, 86,87)

 

“죽음의 온 밤을 통하여 영혼은 행복을 누리기에 필요한 모든 의식과 감각을 가지고 깨어 있다.”(Thomsen, 40,41)

 

영혼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 “죽음이란 몸이 영혼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하고,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우리가 몸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는 한,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그토록 큰 악에 의해서 더럽혀져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분명한 지식에 도달해 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몸에서 분리되어야 한다.”(Paedo, Mead 197,202)

 

어떤 학자들은 칼빈의 “혼수론”에 대해서 “기록은 칼빈의 손으로 했지만, 목소리는 플라톤의 목소리이다”라고 개탄했는데, 그 이유는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종교개혁자들은 영혼불멸과 연옥 신앙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중세기 천주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고 개혁하려고 했지만, 플라톤 사상을 이어받은 천주교회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칼빈을 통해서 영혼불멸설이 오늘날 개신교회의 전반에 걸쳐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칼빈만 종교개혁자들과 협력하였더라면, 영혼불멸 사상, 연옥 사상, 영혼이 죽은 순간에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간다는 사상은 종교개혁 운동에 밀려서 개신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독자들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사탄의 영혼불멸설이 헬라 철학을 통해서 천주교회로, 그리고 개신교회까지 들어왔습니다. 영혼불멸설을 그대로 따라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