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하시는 순간,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는 진리가 증명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가운데 정확하게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통해서 하늘로부터 엄청난 능력과 은사가 제자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루에 수천 명씩 회개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하늘의 능력이 제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구원받은 열매가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두 제자는 여전히 가난하고 고생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하늘의 능력이 제자들에게 임했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심한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오늘날 기복 신앙을 받아들인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잘못된 기대가 들어와서 복음의 순수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세상에서 번영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가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성공과 번영을 기대하는 교인들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기복 신앙을 전하는 설교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무당과 교회는 잘된다.” 경제가 어렵고 힘들어지면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나 점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전 세계 도처마다 기복 신앙이 깊이 들어가 있지만, 한국 기독교는 더욱더 극단적인 기복 신앙으로 세계를 평정했습니다. 미국의 한 언론사에서 세계적인 대형교회 50개를 선정했는데, 그 가운데 한국 교회가 20여 개나 포함되었고, 세계 랭킹 1위도 한국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신자들을 허황된 믿음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받고 축복받는다.”는 번영신학이 기독교 신앙을 미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는 마지막 퇴임 설교에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의 축복을 말하면서 행복한 척한다면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큰 교회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임재는 없을 것이며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도 사라질 것입니다. 기복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믿음의 대가로 복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가짜 신들은 자신을 섬기는 믿음의 대가로 복을 약속합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에 황금색을 칠해서 “나를 섬기면 돈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신앙은 단순합니다. 섬기면 복을 받고, 섬기지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신을 섬기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상에게 재물을 드리고 복을 비는 기도를 합니다.신을 이용해서 가문의 영광과 번영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기복 신앙인데, 오래전부터 이런 신앙이 한국 기독교회 안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욥이 가진 신앙의 동기

사탄은 욥이 복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10,11). 사탄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재물의 축복을 넘치도록 베푸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경배받기 위한 수단으로 축복을 뇌물로 사용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축복하는 의도와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동기가 모두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 사탄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의 신앙이 순수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사랑인가? 거래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고 그분께로부터 무엇을 얻어 내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성경 말씀에 충성하는 생애를 사십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경배를 받기 위해서 재물의 복을 미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탄의 궤변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체와 가정을 축복하실 것입니다.”라는 설교가 점점 더 대담하게 교회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런 설교에 귀가 솔깃해진 어리석은 양들은 열심히 헌금을 드리고 교회를 섬기면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믿음과 하나님의 복을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비록 주말마다 교회에 다니지만, 단 한 번도 온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경험이 없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돈과 명예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좁은 길로 인도하여 그들의 성품과 생애가 결정적으로 변화되어 영생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만일 세속적 물질이 하나님의 관심사라면,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교회 건물을 짓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구하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공과 번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끌여들여서 자신을 경배하게 만든다는 사탄의 주장이 옳다고 해야 합니다. 가난한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가 빵과 밀가루를 나눠 줌으로써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듯이,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건강과 물질적 축복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사람들의 경배를 유도하고 계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비를 주시며 햇빛을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역사하십니다. 잘 믿는 자는 복을 많이 받고,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에게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정직한 생애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재물과 건강의 복을 바라보고 당신을 따라오는 자들에게 결코 제자 직분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에 커다란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에게만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의 신앙과 마음에 어떤 결과와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몰려들 것입니다. 재물과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 교인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기적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결코 하늘 왕국에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복 신앙으로 점령당한 교회

하나님께서는 잘 믿는 사람들만 축복하신다는 사탄의 거짓말이 교회를 파고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오해했던 것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지 못해서 어렵게 산다는 식의 신앙이 현대 기독교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번영한다는 증거를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오직 적은 숫자만이 부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부와 재물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엄격한 정직과 순결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매우 어려운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브라함이나 욥 같은 그리스도인 부자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신앙과 양심을 어느 정도 타협해야만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믿어야만 물질과 건강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설교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내기 위해서 헌금을 드리는 이상한 모습이 교회 안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복 신앙을 이용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성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축복을 받는 장소로 여겨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리게 되었고, 그런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함으로 경건해야 할 교회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교회를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지 않고 이기적인 위선자 집단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법과 원칙을 통해서 오는 축복

맹목적으로 복을 구하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순결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고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모든 약속은 조건적인 약속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못할 것이라는 원칙이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일반적인 원칙들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흘러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들만이 수확을 거둔다는 것은 믿는 자와 불신자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은 우리의 노력과 의무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기복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벌주시는 수단으로 고통과 시련을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건강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고통이나 시련이 항상 죄에 대한 형벌로 내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시련 속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거나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의 건강이나 사업이 매우 잘되어 간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신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옥 속에서 외롭게 살다가 목이 잘린 침례 요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베드로, 밧모 섬에서 외롭게 죽어 간 요한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가장 가깝게 계셨습니다.

욥은 재난을 당해야 할 어떤 죄도 범한 적이 없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2:3). 욥은 재난을 받을 만큼 큰 죄를 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이유 없이 끔찍한 재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재난이 항상 죄의 결과로 인하여 생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점에 기복 신앙의 폐해가 있는 것입니다. 기복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재물이 생기고 일들이 잘 되어 가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고 믿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생애 속에 죄와 세속이 깊이 물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거짓 확신을 갖게 됩니다. 기복 신앙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여, 늦은 밤, 물 한 그릇을 떠 놓고 조상신에게 복을 비는 시골 아낙네의 기도와 여러분의 기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황당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기복 신앙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급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공급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이 고통이나 시련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기복 신앙은 우리를 때때로 고통과 시련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가난하든지 부자이든지 이 땅에 살면서 진리를 발견하고 복음에 순종하고 살면, 우리가 태어난 목적은 성취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 27).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가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보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복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조용한 시간에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을 읽고 명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며, 무엇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