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3,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까? 실제 상황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실제 상황으로 이해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유로써 이해해야 합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넣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예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왜 하셨으며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서 하셨는가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대한 공포를 이용해서 말씀을 전하면, 일시적인 “회개(?)”가 생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품성과 지옥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커다란 상처를 가져다 줍니다.

 

비유란 무엇인가?

램덤 하우스 대학사전에는 비유의 정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유란, 진리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간단하고 풍유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비유 가운데 사용하고 있는 상징과 실제의 상황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유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든지 간에 그것은 어떤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비유가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사사기 9장 15절에 나오는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도록 요구하는 이야기도 비유이고, 알곡과 가라지 비유도 유대인의 농사와 추수를 비유로 해서 세상 끝에 있을 보상과 형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비유인지 실제 상황인지 정확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 줄거리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우 호화롭게 사는 부자가 있었고, 그 부자의 대문 앞에 거지 나사로가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죽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옥불에 떨어진 부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을 향해서 도와달라고 소리를 치면서 나사로를 시켜서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내 혀에 떨어뜨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또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집에 보내서 형제들에게 자기처럼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눅 16:27-28)

아브라함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깊고 큰 수렁이 있어서 부자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대답했습니다(눅 16:31).

이것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천국과 지옥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실제 상황일까요?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강론할 때 자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 13:34). 왜 예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그 당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공격하고 책잡기 위해서 엿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기 원하는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종종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실제 상황이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첫 번째,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것이 실제라면, 의인이 죽으면 모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될까요? 아브라함 한 사람 품에 어떻게 구원받은 수많은 의인들이 안길 수 있습니까? 이 말씀은 의인들이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두 번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는 지옥에 있는 부자가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물을 달라고 부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이것이 실제 장면이라면, 지옥에 있는 악인들이 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소리를 쳐서 혀에 물을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과 지옥을 간다고 믿고 있는데, 만일 이 이야기가 실제 장면이라면, 사람이 죽는 순간 몸 전체, 즉 손가락과 혀와 갈증을 느끼는 몸을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간다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가 무덤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가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희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의 무덤은 주인을 잃어버린 채 비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시체가 무덤에 들어가면, 몸 자체가 천국이나 지옥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중국과 이집트의 고대 왕실의 무덤을 발굴해 보면 지금도 여전히 시체가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비유가 아니라 실제라면,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되었다가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통하여 부활하게 된다는 성경의 부활신앙과도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실제 상황으로 해석하면 한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실제라면, 천국의 의인과 지옥의 악인은 날마다 서로 보면서 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정말 그렇다면, 천국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만약 천국에 간 부모들이 지옥에서 불타는 자녀들을 매일 보고 대화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날마다 천국에 있는 부모를 향해서 “아버지, 어머니, 저 너무나 뜨거워요. 목마르고 죽을 지경입니다. 제 혀에 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려 주세요!”라고 소리친다면, 천국에 있는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요? 지옥에서 고통스럽게 불타고 있는 자녀들을 보면서 영원히 사는 것이 정말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비유입니다. 실제 상황이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 주신 말씀인가?

예수께서는 누가복음 15장부터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처음부터 돈과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인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4절에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어떤 상황입니까?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실 때,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부자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을 주시는데, 그것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돈과 재물을 사랑하던 탐욕적인 부자 바리새인들을 지적하기 위해서 부자는 지옥에 가고 거짓 나사로는 천국에 간다는 말씀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회는 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죽어서도 천국에 갈 것이고, 가난한 자들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고생을 하고 죽어서도 지옥에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유대교회의 가르침을 잘 아시는 예수께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시면서 이기적인 부자들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거지 나사로가 천국에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학과 사고방식을 고쳐주시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를 문자 그대로, 실제적으로 해석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

죽은 지 나흘된 나사로를 예수께서 부활시키셨을 때 큰 무리의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부활의 증거인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요 12:9,10). 예수께서는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나사로의 부활을 부인하려고 하자, 나사로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가고 부자는 지옥에 간다는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유대교회 지도자들을 책망하고 양심에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강력한 교훈을 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비유를 읽을 때 비유가 주는 교훈만 받고, 비유에 사용된 이야기는 버려야 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느린 거북이 같은 사람도 부지런하고 성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실제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 봐, 거북이가 토끼보다 빠르지. 거북이는 토끼보다 빠른 동물이야.” 비유를 실제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이런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천국과 지옥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는 아직 지옥불이 없었을 때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천 년이 지난 후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올 텐데 그때 무덤에서 부활한 모든 악인들은 불태워져서 사라질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태웠던 유황불에 의해서 악인들이 모두 태워져서 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옥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서로 마주 보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과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 그리고 죄를 불로 태우고 정결케 하신 다음, 지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하실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잃버버렸던 낙원이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진리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중세기 종교암흑시대 동안 사탄은 수많은 진리를 짓밟고 비틀어 놓았습니다. 왜 사탄은 빛을 가리고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공격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보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빛은 진리이고 진리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와 빛이 흐려지고 어두워지면,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됩니다. 진리를 오해하면, 그 오해는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어두움 속에 가두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가장 크게 왜곡시키는 사탄의 기만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한다”는 지옥설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죽음을 통해서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풀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원한 고통의 지옥설을 믿으면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신 하나님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이번 호에서 제시된 빛을 통해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질문12, 성경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지옥에 대한 교리가 이토록 혼란스럽게 된 배경에는 성경 번역의 오류도 큰 몫을 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상과 편견에 의지해서 번역함으로써 지옥에 대한 교리에 큰 혼돈과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악인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히 불탄다는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성경을 번역함으로써 “지옥”이라고 번역하지 말아야 할 단어들이 지옥으로 번역되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지옥으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옥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4가지 원어로부터 번역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스올”이라는 히브리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하데스, 타르타루스, 게헨나라는 헬라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는데, 번역하는 과정에 오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4가지 원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어의 의미를 알면, 지옥에 대한 오해가 벗겨지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음부”로 번역된 “스올”

구약성경에서 지옥이라는 뜻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sheol(스올)”인데, 그 뜻은 “보이지 않는 세계”(the unseen world)입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스올”이 주로 “음부”로 번역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이나 흠정역에는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과 사상에 따라서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그리고 3번은 “구덩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더욱더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살펴보면 “음부”로 번역된 “스올”이라는 곳이 사람(의인 또는 악인)이 죽었을 때 들어가게 되는 “무덤”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히브리어 “스올”=무덤)

성도 여러분, 한글성경에서 “음부”로 번역된 “스올”이란 말은 “무덤”이란 뜻으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스올”을 지옥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야곱, 욥, 다윗과 같은 의인들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갔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중 하나인 야곱은 자신이 죽으면 음부로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내가 슬퍼하며 음부(스올)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창 37:35). 이 말씀은 야곱이 죽어서 무덤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말씀에 나오는 “음부”(스올)를 지옥으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야곱이 죽어서 지옥으로 내려간다는 전혀 엉뚱한 뜻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애굽의 무리를 애곡하고 그와 유명한 나라 여자들을 구덩이(스올)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스올)에 던지며 … 이제는 구덩이(스올)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수치를 당하고 살륙당한 자 중에 뉘었도다”(겔 32:18,25). 이 말씀에 나오는 “구덩이”와 “지하”는 어떤 곳을 말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에 나오는“구덩이”와 “지하”를 지옥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여기서도 “무덤”으로 해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26절에서 그들이 가는 곳을 “무덤”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 메섹과 두발과 그 모든 무리가 있고 그 여러 무덤은 사면에 있음이여”(겔 32:26). 이처럼 히브리어 “스올”이 “구덩이”나 “지하”로 번역되었지만, 그 의미는 항상 “무덤”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잠시 머무실 곳을 “음부”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이 말씀에서도 “음부”는 지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3일 동안 머무실 무덤을 뜻합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지옥”으로 번역된 “스올”이 문맥과 전체적인 의미에 맞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새국제역(NIV)은 “지옥” 대신에 “무덤”으로 번역함으로써 잘못된 번역을 수정했습니다. 근래에 번역된 대부분의 영어성경에서는 성경 문맥과 신학상의 문제 때문에 원어인 “스올”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지옥 대신에 무덤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글성경에서는 아직 수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스올”을 지옥으로 해석하면, 다음에 소개하는 욥, 다윗과 같은 의인들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갔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1) 의로운 욥도 죽으면 “스올”로 내려간다고 하였다: 욥 14:13 ; 17:13-16

2) 다윗도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다: 시편 18:4,5 ; 30:3

 

신약성경에서 지옥으로 번역된 헬라어 3가지

신약성경에는 지옥(hell)으로 번역된 말이 모두 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하데스”(hades), 12번은 “게헨나”(gehenna) 그리고 나머지 1번은 “타르타루스”(tartarus)라는 헬라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번역 상의 오류 때문에 지옥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1. “하데스”는 지옥이 아니라 무덤이다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스올”에 해당하는 단어로서 “무덤”을 뜻하지만 종종 지옥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혼돈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음의 두 성경절은 동일한 말씀인데, 시편에서는 “스올”을 사용하고, 사도행전에서는 “하데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이는 내 영혼을 음부(스올=무덤)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신약성경: “이는 내 영혼을 음부(하데스=무덤)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 2:27)

 

소아시아의 무덤에 있는 묘비를 보면, 묘비 위에 기록된 “ooo의 무덤”이라는 글에서도 “하데스”라는 단어가 “무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데스”는 신약성경에서 종종 “지옥”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그 의미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우리 모두가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문맥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20세기 이후에 번역된 성경들은 “하데스”를 “무덤” 또는 원어 그대로 “하데스”로 표현함으로써, “하데스”를 “지옥”으로 번역할 때에 생기는 문맥상 그리고 신학상의 혼란을 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약성경의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스올”처럼, 의인과 악인이 들어가게 되는 “무덤”이라는 뜻의 용어입니다.(히브리어 “스올”=헬라어, “하데스”=무덤)

 

2. “타르타루스”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지구”이다

“타르타루스”라는 단어는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나오는데 한글성경에는 “지옥”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루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 2:4)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지적하면서 지금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악한 천사들이 지금 지옥불 속에서 붙타고 있다는 말인가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루스)에 던져.”

그런데 동일한 단어(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이라는 말로 번역됨으로 혼돈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타르타루스, a dark 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셨으며”(유 1:6)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지옥으로 번역되었던 “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어두운 구덩이)으로 번역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범죄한 천사들이 갖혀 있다는 “지옥”과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가둔 “흑암”은 어디를 말할까요? 계시록 12장에는 사탄과 악한 천사들이 땅(지구)으로 쫓겨 내려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는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지구)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 12:7-9)

그러므로 “범죄한 사탄과 악한 천사들이 던져져서 심판의 날까지 흑암 가운데 가두워진 곳”과 “천사들을 큰 날 심판까지 가둬 놓은 곳”은 지구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기에서도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천 년 동안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결박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도 “지구”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지옥”으로 번역되었고, 유다서 6절에 “흑암”(abyss)으로 번역된 “타르타루스”는 지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3. “게헨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일까요?

신약성경에서 게헨나(gehenna)는 모두 12번 “지옥”이란 말로 번역됨으로써,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헨나는 12번 중에서 단 한 번(약 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특이한 표현입니다. 그중에서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말씀은,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절입니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번역상의 오류 때문에 “게헨나”가 한글성경에 지옥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게헨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2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1

 게헨나는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성되어 생긴 단어로서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란 뜻을 갖고 있는 특정 지역의 이름입니다. 구약성경에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지역명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수 18:16).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게헨나는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을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힌놈의 골짜기”(gehenna)는 저주와 살륙을 의미하는 장소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게헨나(힌놈의 골짜기)에서 자녀들을 몰렉신에게 불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하스가 …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힌놈의 아들 골짜기(게헨나)에서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 그 자녀를 불사르고”(대하 28:1-3)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골짜기가 장차 살륙의 골짜기로 불려지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게헨나)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렘 7:31-33)

실제로 요시아 왕은 힌놈의 골짜기(게헨나)에 죄인들의 시체와 각종 쓰레기를 버리고 불태웠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항상 처형당한 죄인의 시체와 죽은 동물의 시체와 쓰레기 때문에 항상 구더기들이 들끓었으며, 그것들을 태우는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게헨나”, 곧 “힌놈의 골짜기”라고 불리웠던 예루살렘 성 밖의 남쪽 골짜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차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게 될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힌놈의 골짜기”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 날에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구더기와 쥐들이 계속해서 각종 동물의 시체들을 뜯어 먹는 장면을 지적하시면서, 지옥의 완전한 멸망의 모습을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 힌놈의 골짜기)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마 9:48)

 

증거2

 만일 한글성경에서 지옥이라고 번역된 “게헨나”가 유황불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지옥이라면, 어떻게 “구더기”가 그곳에서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겠습니까?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구더기들을 사람의 혼(soul)으로 해석하는데, 그런 해석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도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에서 “구더기”를 사람의 혼으로 표현하거나 상징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더기와 지옥의 유황불은 결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게헨나”는 한글성경에서 모두 “지옥”이란 말로 번역되었지만(마 5:22,29,30 ; 10:28 ; 23:33), “게헨나”가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혼백이 영원토록 불 속에서 고통받는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게헨나”가 지옥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때는 항상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 몸 전체가 유황불에 소멸되는 장소로 묘사되었습니다(마 5:22 ; 25:41 ; 마 10:28 ; 5:29,30).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게헨나)불에 들어가리라”(마 5:22)

“…온 몸이 지옥(게헨나)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30)

질문11, 지옥불 이후에 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지옥불이 휩쓸고 간 후에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천년기 이후, 즉 유황불이 내려와서 사탄과 모든 악인들을 태우고 소멸시키면, 하나님께서 지구를 다시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지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과 같은 상태로 회복될 것입니다. 모든 죄의 결과가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죄도 없고 죄인들도 없고 유혹하는 사탄과 악도 없을 것입니다.

 

계21장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2)

사도 요한은 유황불로 멸망당한 지구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라고 불렀을까요? 왜냐하면 하늘에 간 의인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신랑은 그리스도를 표상하고 신부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계21장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계 21:4)

사도 요한은 새롭게 창조된 땅에는 더 이상 눈물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악인들은 우주의 어딘가 있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더 이상의 고통이나 눈물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한 지옥이 존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물이나 고통이 없다는 말과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한다는 말은 서로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다시는 죄의 고통이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죄와 고통을 종결지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사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유황불도 없을 것입니다. ■

질문10,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옥불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매우 구체적이고 순서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예수께서 7재앙으로 황폐된 지구로 재림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계시록 20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유황불로 지구의 표면이 불타면서 시작되는 지옥의 모습이 나오며, 계시록 21장에는 유황불로 모든 것이 불탄 지구로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놀라운 장면이 이어집니다. 창세기 1장에서 잃어버린 낙원이 계시록 21장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계시록 19장부터 21장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사건의 순서와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시록 19장: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재림에 대한 약속을 남겨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를 위한 처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늘의 처소가 준비되면 성도들을 데리러 이 땅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계시록 19장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계19장 :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4-16)

짐승의 표 환난과 7재앙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의인들은 모두 환호하며 뛰쳐나가서 그리스도 재림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때 지구 전체에서 무덤이 열리면서 죽은 의인들이 모두 부활해서 일어납니다. 그 장면은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천천만만 천사와 함께 재림하시는 장면을 보는 성도들은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는 성도들은 7재앙으로 황폐하게 된 땅 위에서 재림의 장면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큰 나팔 소리가 들리면서 수많은 무덤들이 열리고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해서 건장한 모습으로 걸어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는 썩지 않을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들이 죽은 아기를 무덤에서 꺼내서 부모에게 건내주는 모습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입니까?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살아있는 의인들과 무덤에서 부활한 의인들은 모두 공중으로 이끌려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천만만 천사들과 함께 하늘을 향해서 우주 여행을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 자들만 천국에서 “항상 주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곧바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하늘에 갈 수 없습니다.

 

악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어떻게 될까요?

예수 재림의 장면을 목격하는 살아있는 악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스러운 광채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7재앙으로 인해 황폐된 지구 위에는 악인들의 시체들만 뒹굴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과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7-10)

예수께서 재림하실 악인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지 못합니다. 그대로 무덤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악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빛 때문에 모두 쓰러지고 죽을 것입니다. 그때 한 천사가 새들을 불러 악인들의 시체를 뜯어먹으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계19장 :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계 19:17-18)

계시록 19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장면이 나온 다음, 계시록 20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재림 이후에는 어떤 사건이 생기게 될까요?

 

계시록 20장: 재림과 함게 시작되는 천년기

계시록 19장의 끝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나오고, 20장의 시작에는 천년기가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부터 천년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천년기가 시작될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탄을 큰 쇠사슬로 결박합니다. 사탄은 미혹할 사람이 없는 지구에 천 년 동안 갇혀 있게 됩니다. 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사건들의 순서를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20장 :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 20:1-2)

사탄은 악인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무저갱 같은 지구에서 천 년 동안 갇혀 있게 됩니다.

 

계20장 :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계 20:3)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지구에 사탄을 천 년 동안 결박시켜 놓으신 후 어떤 일을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서 하늘에 간 의인들에게 보좌를 마련해 주시고 놀라운 권세를 주십니다.

 

천 년 동안 심판하는 권세를 받는 의인들

계20장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의인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순교자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의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 20:4)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왕은 다스리고 재판하는 권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들은 천 년 동안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인들은 죽은 악인들에 대한 심판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의인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20:4).

많은 분들이 장차 하늘에서 의인들이 악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과 천사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 우리가 천사(악한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전 6:2-3)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은 악인들을 심판할 뿐 아니라 사탄과 악한 천사들까지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과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에 대해서 무엇을 심판하게 될까요? 하늘에서 의인들은 사탄이 왜 하늘에서 쫓겨났으며, 악인들이 왜 구원받지 못했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하늘에서 의인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 내 아내는 하늘에 오지 못했을까? 왜 내 아들은 하늘에 오지 못했을까? 왜 우리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은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까?” 하늘의 천사들은 책들을 펼쳐놓고 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구원받아서 하늘에 온 의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젼혀 알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의인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의인들 각 사람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시고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악인들이 왜 형벌 받아야 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천 년의 심판을 통해서 의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구원과 형벌을 나눠주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미천한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천 년 동안 죄의 세력을 살펴보고 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배려이고 지혜입니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온 우주는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년기의 끝에 악인들이 부활하고 사탄이 풀려난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격한 악인들은 그리스도와 천천만만의 천사들에게 나오는 영광의 빛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새들이 그들의 시체를 뜯어 먹는다고 했습니다.

천 년이 지나면서 선과 악의 전쟁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고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끝날 때까지 악인들은 지구에서 죽은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천 년이 찰 때까지, 지구에 남아있는 악인들은 결코 부활할 수 없습니다.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를 분별하는 심판을 마친 후에 의인들이 부활했던 것처럼, 천년기 동안 심판을 마친 후에 악인들이 지옥불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계20장 : “그러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계 20:5)

천년기 후에 “나머지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고 했는데, 이것은 어떤 부활입니까? 악인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두 종류의 부활이 있다고 말합니다.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고, 악인들은 천년기 후에 심판의 부활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모두)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천 년이 차면서, 지구에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기 위해서 부활하여 일어나게 되고 또한 사탄의 결박도 잠시 풀리게 됩니다.

 

계20장 :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 20:3)

천 년이 차면서 사탄은 감옥 같은 지구에서 풀려나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계20장 :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계 20:7-8)

천년기가 끝나면서, 지구에 갇혀 있던 사탄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년기가 끝나면서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하늘에서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면서” 악인들을 심판하는 일이 끝나게 됩니다.

둘째, 지구에 남아있던 죽은 악인들이 천년기 후에 최후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 무덤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셋째, 지구에 결박되어 있던 사탄이 천 년 후에 잠시 풀려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건은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일어나게 됩니다. 잠시 후에 성경절로 확인하겠지만, 천년기가 끝나면서 새 예루살렘 성이 악인들과 사탄이 있는 지구로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보는 사탄과 악인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요? 그들은 다시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사탄은 바닷모래처럼 많은 악인들을 모아서 최후의 공격을 준비합니다. 그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계20장 :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닷모래 같으리라”(계 20:7-8)

이 장면은 사탄과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해서 탈취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나오는 “곡과 마곡”은 무슨 뜻일까요? 

“곡과 마곡”: “마곡”은 지역 이름이고, “곡”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악한 지도자들을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에스겔서에서 “곡”은 “마곡’이라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악한 지도자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겔 38:2). 그러므로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라는 말씀은, 사탄이 부활한 악인들을 불러모아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계20장 :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새 예루살렘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계 20:9)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서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해서 달려오는 악인들과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태워 없앨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불 때문에 지구가 불덩어리가 되는데, 바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옥입니다. 천년기 후에 지구가 불타는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기 이후에 반드시 지옥불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앞으로 있을 것이므로 소망을 갖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행 24:15).

 

계20장 :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지옥불 속으로 사탄만 던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중세기 이후부터 사탄의 세력으로 기독교회를 미혹했던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모두 지옥불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천년기 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올 때까지 아무도 형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어야 하고 천 년이 지나야만 악인들의 형벌이 시작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악인은 죽는 순간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교리는 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재림, 천년기, 형벌의 순서로 이어지는 시간표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마지막 만남

천년기 후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의 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습니다. 벽옥은 투명한 보석입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있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성입니다. 하늘은 숨기거나 가리울 것이 없는 곳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지구로 내려올 때, 의인들은 성안에 있고 악인들은 성 밖에 있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부활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부활하고, 어떤 사람은 문둥병이 퍼진 채 부활할 것입니다. 그때 사탄은 부활한 악인들에게 나타나 최후의 미혹을 할 것입니다. 사탄은 이렇게 선동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새 예루살렘 성을 빼앗을 수 있다. 우리의 숫자가 저들보다 훨씬 많다. 저 성을 공격해서 빼앗자.” 악인들은 사탄의 말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사탄과 악령들은 악인들을 앞장세우고 새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때 의인들은 성안에서 기가막힌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을 빼앗기 위해서 달려오는 악인들 중에 내 남편이 있고, 내 아들이 있고, 내 딸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악인들 속에 섞여서 내 어머니와 내 친구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와 함께 예배드렸던 교우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흰옷 입은 성도들의 심정이 어떨까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의해서 태워지는 최후의 형벌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성도 여러분, 온 마음과 생애를 주님께 드리고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안전하며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진리와 거짓의 분명한 차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과 똑같은 종류의 불이 천년기 후에 악인들을 화염으로 태우게 될 것입니다. 의인들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나와 “완전히 타서 재가 된 악인들을 밟”고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말라기서 말씀의 의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악인들) 다 초개(마른 풀) 같을 것이나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얼마나 확실한 설명입니까? 의인들은 악인들이 타고 남은 재를 밟게 될 것이라는 말씀보다 지옥불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성경절을 찾을 수 있을까요? 구약에 나온 악인들의 형벌과 계시록에 나오는 지옥불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지옥불은 영원히 타는 불이 아니라, 사탄과 악인들을 태워 없애서 재로 만든 다음에 꺼지는 불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원한 지옥불 교리는 중세기에 만들어진 거짓 교리입니다. 영원한 지옥은 중세기에 천주교회가 이방종교로부터 들여온 이교사상입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개혁자인 틴데일은 헬라어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했는데, 그는 성경을 번역한 죄 때문에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틴데일은 퓨리턴의 역사라는 책에서 “죽으면 곧바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교황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진리를 말하는 순교자의 증언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천주교회의 교황과 사제들) 몸을 떠난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고 가르침으로써, 그리스도와 바울이 입증한 부활의 논증을 파괴하고 있다. 참된 믿음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순간마다 바라보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교의 철학자들은 이것을 부인하고 영혼은 언제나 살아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가르침과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가르침을 섞어 놓았지만, 진리와 오류는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조화될 수가 없으며나에게 말해 보시오. 만약 구원받은 영혼들이 하늘에 있다면, 이미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새삼스럽게 부활해야 하는가?”(D. Neal, History of the Puritans, Vol. 1,269)

 

성도 여러분, 부활과 지옥에 대한 진리가 이토록 분명한데 왜 오늘날 기독교회는 “악인이 죽으면 곧바로 지옥의 불 속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지글지글 타면서 고통받는다”고 가르칠까요? 왜냐하면 사탄에게 미혹당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중세기 종교암흑시대에 천주교회를 통해서 지옥에 대한 거짓 교리를 기독교회 전체에 퍼트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사탄은 지옥에 대한 이교의 사상을 기독교회 속에 집어넣었을까요? 사탄은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에 대한 불신을 넣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사탄의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하며 불공평한 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옥불이 무서워서 따르고 있습니다. 사탄은 지옥에 대한 교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

질문9. 지옥불은 영원히 탈까요? 꺼질까요?

지옥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의 말씀보다 더 분명하고 힘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burn up)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10,20)

성경은 악인이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악인이 기름처럼 타서 연기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사야서에서는 악인이 마른 풀처럼 타서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라 그들은 초개(마른 풀)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치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더웁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사 47:14)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도 불타고 있나요?

유다서에도 영원한 불이 어떤 불인지에 대한 예증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지적하면서 지옥불은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타는 불”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정말 그런 뜻입니까? 중동지방에 가면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도 불타고 있습니까? 불은 꺼졌고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타서 흔적도 찾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 불로 형벌 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불타서 없어졌습니다. 소돔 성을 태워서 재로 만들었던 “영원한 불”은 세상 끝에 악인들이 받게 될 표본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6)

그렇다면 왜 성경은 지옥불이 “영원하다”고 말할까요? 왜냐하면 지옥불이 영원하다는 것은 지옥불에 타서 멸망한 결과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옥불이 영원하다”는 것은 한 번 지옥불 속에 들어가면 형벌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꺼지지 않고 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형벌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꺼지고 사라지게 됩니다. 악인이 타서 재가 되고 연기 되어 사라질 때까지 유황불이 지속된다는 것이 “영원한 지옥불”의 실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민들이 악을 행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불로 타서 멸망당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 악인들도 그들처럼 불로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서에서 “거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이것을 알면, “영원한 불”의 의미가 풀린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몇 개의 성경절에 대한 오해 때문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지옥에 대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믿기 원하는 것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지글지글 태우면서 고통을 주실까요?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십니까?

 

“세세토록, 영원토록”의 의미

사도 요한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한 자는 “세세토록” 지옥불 속에서 고통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성경절이 지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for ever and ever, 영원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계 14:11)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이 말씀에 나오는 “세세토록”이란 단어의 원어를 살펴보면, “정해지지 않은 기간”(unspecified period of time)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기간”이란, 말 그대로 특정하게 정해진 기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단어를 사용해서 지옥불을 설명하셨을까요? 왜냐하면 모든 악인들이 동일한 기간 동안 형벌 받는 것이 아니라, 악인마다 자신이 행한 대로 형벌 받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분명한 사실은, 성경이 “세세토록, 영원토록”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실제로는 끝이 있는 기간을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원토록”이란 단어의 의미는 문맥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할 때 히브리 원어로 “영원히”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했지만, 한글성경에서는 “오래도록”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forever, 영원토록) 막았사오나”(욘 2:6). 요나가 영원토록 물고기 뱃속에 갖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기간을 표현하면서 히브리어로 “영원히”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증: 노예가 영원히 살았습니까?

히브리 종이 주인을 섬기는 장면에서도 “영원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출 21:6)

히브리 종이 주인을 영원토록 섬길 수 있을까요? 아무리 종이 주인을 오랫동안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종도 죽고 주인도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도 “영원히”라는 단어는 “죽을 때까지”라는 정해진 기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증: 사무엘은 영원히 살았습니까?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아기를 낳으면 하나님께 아들을 영원히 바치겠다”는 서원을 드렸습니다.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삼상 1:22)

아들을 하나님께 “영원히” 바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몇 절 뒤에 “영원히”라는 말의 의미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8). 한나는 아들의 평생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을 하면서 “영원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영원히”라는 단어는 “일평생 또는 죽을 때까지”라는 정해진 기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원히”이라는 단어는 어떤 상황에 사용했는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영원히”라는 단어가 의인들이 받게 될 영생을 의미할 때는 끝이 없는 영원한 시간을 말합니다. “영원”이란 단어가 의인들에게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는 것이지만, “영원”이란 단어가 불멸의 생명을 받지 못한 악인들에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유황불에 타서 없어질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 사이에 존재하는 영생과 멸망의 차이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증: 예루살렘의 성의 불은 지금도 타고 있습니까?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렘 17:27)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서 꺼지지 않은 불로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고 있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전소시킬 때까지 불이 탈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옥불은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인데, 한번 불붙으면 마귀와 악인들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벌이 끝나면 불도 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옥불을 끄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왜 악인의 형벌이 영원토록 지속되도록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냐하면 그런 형벌은 하나님 자신에게도 너무나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 영원토록 불 속에서 타면서 고통당한다면, 그 모습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자신의 가족과 친구가 지옥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의인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성도 여러분, 지옥불은 영원히 계속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지옥불은 온 우주를 영원히 슬프고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서 지옥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를 마음껏 감사하고 구원의 길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지옥불 교리는 중세기에 사탄이 기독교회에 심어놓은 것입니다. 지옥불에 대한 진리가 여러분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

질문8,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에 탈까요?

지옥에 대한 가장 어려운 질문은 “악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불 속에서 고통받을 것인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이 영원토록 불 속에서 죽지도 않고 고통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분들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예수께서 언제 보상을 주시겠다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상하시겠다고 했습니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형벌을 받는다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자신의 동생을 죽인 가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가인은 죽은 즉시로 영원한 유황불 속에 떨어져 고통당하고 있을 것입니다(성경적으로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음). 그런데, 가인이 죽은 지 5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후에 6백만 명 이상을 죽인 아돌프 히틀러가 지옥불 속으로 떨어졌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한 사람을 죽인 가인이 6백만 명을 죽인 히틀러보다 5천 년이나 더 오랫동안 유황불 속에서 형벌을 받은 것이 됩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올라오게 될까요? 너무나 억울하고 하나님의 불공평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식으로 악인을 취급하실까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각 사람의 행위를 따라”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며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2-14)

우리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공로나 행함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형벌은 우리가 악을 행한 만큼만 받게 됩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형벌입니까? 성도 여러분,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까? 선을 행한 자녀에게는 무한히 나눠주기 원하지만, 악을 행한 자녀에게는 그가 행한 만큼만 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도 자녀가 악을 행했을 경우, 계속해서, 두고두고 벌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불순종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처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 12:47). 얼마나 합당한 말씀입니까?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불순종하면 그 사람은 많은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과 말씀을 잘 알지 못해서 죄를 범한 사람은 적은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형벌의 원칙입니다.

 

몸과 영혼을 함께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형벌을 내리실 것이며, 자신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마쳐질 때 몸과 생명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지적하면서 지옥불 속에서 몸은 태워져서 없어지지만, 영혼은 영원히 고통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정말 그런 뜻인가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성경을 보지 말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얼마나 분명합니까? 예수께서는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서 태워서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옥을 오해하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오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균형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게 되면 이런 간증을 하게 됩니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악인들을 고문하시는 분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를 거의 등질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을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옥불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지옥의 형벌은 악인의 행위와 죄값에 따라서 다르다는 성경 진리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

질문7, 언제 어디서 지옥불이 점화될까요?

성경은, 악인은 죽는 순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심판 날까지 죽은 채로 무덤에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언제, 어떻게 시작될까요?

 

언제 지옥불이 시작될까요?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0-42)

예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추수 때 가라지들을 모아서 불에 태우는 것처럼, 세상 끝에도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악인들을 태우는 지옥은 지금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에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상 끝”은 정확하게 언제일까요? 악인들의 형벌은 언제 이루어지게 될까요? 이 문제는 “질문 11)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옥불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디서 지옥불은 점화될까요?

오래전에 사람들은 땅을 파고 깊이 내려가면 지옥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지옥은 우주 저 끝에 있다고 믿습니다.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옥은 땅 아래 깊은 곳도 아니고 우주 저 끝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지구의 표면이 지옥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통해서 유황불이 하늘에서 지구로 내려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저희가 지면(지구의 표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계 20:9-10)

이 말씀에서 “하늘에서 불이 지구로 내려와서 악인을 소멸한다”는 것은 “지구에서 악인들이 불로 태워져서 멸망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장면은 무엇을 연상시킵니까? 구약시대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당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창 19:24-28)

하늘에서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 소돔과 고모라 도성을 뒤집어 엎었고 멸망시켰습니다. 그곳에 남아있던 악인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고 연기만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의 악인들이 멸망되었던 것처럼, 세상 끝에도 악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유황불로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은 어디입니까?”에 대한 질문은 “질문 10)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옥불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질문6, 죄의 결과는 영원한 고통입니까? 멸망입니까?

죄를 범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누구든지 죄를 범한 자는 멸망당하게 됩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 나가 회개하고 죄를 버리는 자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그것은 멸망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의인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성도 여러분, 죄의 삯은 사망이고 멸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진리가 크게 비틀어져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의 삯”은 생명을 유지하면서 지옥불에서 끝없이 고통당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구원받는 의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첫 번째 했던 거짓말이 무엇입니까? 사탄은 죄를 범해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하나님의 말씀 -> 정녕 죽으리라         

사탄의 주장 ->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탄은 죄를 범한 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거짓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탄의 거짓말에 미혹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설교자들이 “악인은 지옥불 속에서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악인의 멸망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지옥불로 타서 연기처럼 없어질 것입니다!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10,20)

말라기서는 악인들의 형벌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마른 풀)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그들이(악인들)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And ye shall tread down the wicked; for they shall be ashes under the soles of your feet in the day that I shall do this, saith the LORD of hosts”(Mal 4:3).

이 말씀에서 악인들이 풀무불로 태워지는 형벌의 장면은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 시제로 기록되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계시를 통해서 장차 악인들이 지옥불로 태워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죄를 붙잡고 있는 악인들이 장차 유황불에 의해서 마른 풀처럼 태워질 것을 보았습니다. 유황불이 악인들의 몸을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태울 것이고 재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악인은 타서 재가 될 것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 끝에 있을 지옥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죄의 결과는 유황불로 타서 재가 되어 소멸되는 것입니다. ■

 

이교도의 지옥이 기독교 안에 들어왔다

모든 종교에는 지옥에 대한 개념이 있는데, 한 가지 공통 점은 “지옥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 들은 지옥에서 뱀이나 구렁이에 감긴 채 영원토록 고통당 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생에서 악하게 살았 던 사람들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 영원히 허공을 방황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악인은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지글지글 타 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태초에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미혹했던 거짓말, 즉 “죄를 범해도 결코 죽지 않는 다”는 기만이 불교나 각종 토속신앙을 통해서 온 세상으 로 퍼졌고 그것이 중세기에 기독교회 안까지 깊숙히 들어 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창 3:4).

질문5, 하늘 법정의 심판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하늘 법정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묘사는 다니엘서에 있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하나님)가 좌정하셨는데 …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 인자 같은 이(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하나님)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단 7:9,10,13)

이 장면이 어떤 장면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계시는데 예수께서 천천만만 천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나가 심판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펼쳐놓고 심판하신다고 했습니까?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놀라운 사실은, 의인과 악인의 심판이 책들에 기록된 증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재판이 증거위주로 진행되는 것처럼, 하늘 법정의 재판도 책들에 기록된 증거로 이루어집니다. 사도 요한은 죽은 자들이 책들을 펼쳐놓고 심판받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4,12)

현대 기독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심판에 대한 진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심판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를 영접하면 모두 하늘 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심판을 알아야 심판받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할 텐데 심판을 모르니까 두려움 없이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의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

기독교회가 이렇게 타락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심판에 대한 교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어떻게 심판하고 있는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죄와 세속이 교회를 채우게 된 것입니다.

하늘 법정의 심판은 기록에 의해 진행됩니다. 우리의 죄가 모두 하늘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예수를 영접하면 무조건 하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받지 않고는 누구도 하늘 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심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 심판대 앞에서 “네가 왜 그런 말을 했는가?”라는 심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죄가 하늘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라”(사 65:6,7)

성도 여러분, 심판이 무엇입니까? 심판이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천만만의 천사들 앞에서 책들을 펼쳐놓고 우리 생애의 기록을 살피는 것입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사도 요한은 하늘에 적어도 한 권 이상의 책들이 있고, 그 책들에 의해서 죽은 자들이 심판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늘 법정에 펼쳐져 있는 책들은 어떤 종류의 책일까요?

 

하늘 법정에는 생명책이 있습니다

 요한은 하늘 법정의 심판의 광경을 묘사하면서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계 20:12). 심판은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시행됩니다. 생명책에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겨온 모든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고(눅 10:20), 바울은 성실한 동역자들에 대하여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빌 4:3).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7)

 

하늘 법정에는 기념책이 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기념책”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들의 선한 행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지우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느 13:14).

하늘 법정의 기념책에는 의로운 행위가 빠짐이 없이 기록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유혹을 물리친 것, 악을 이긴 것, 부드러운 자비로 표현한 말 등이 기록됩니다. 그리고 모든 희생적 행위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고난과 슬픔이 모두 기록됩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 56:8).

 

하늘 법정에는 죄를 기록한 책도 있습니다.

“보라 이것이 내(하나님)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치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사 65:6,7)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10)

질문4, 재판도 하지 않고 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지옥에 대해서 다룰 때 꼭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이것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형벌을 먼저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재판을 먼저 받아야 합니까?” 이 세상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아무리 악한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형벌 받기 전에 반드시 재판을 받아야만 한다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 법이 필요할까요? 왜냐하면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판을 통해서 유죄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아무도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는 이 세상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하늘 법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늘 법정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변호사입니다.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시 9:4)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 그래서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악인을 곧바로 지옥불에 넣지 않고 심판 날까지 지키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며”(벧후 2:9)

악인은 결국 형벌 받을 것이지만, 재판 날까지는 악인을 간수하고 지키시겠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정하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악한 자의 형벌이 언제까지 보류될 것이라고 했습니까? “심판 날까지” 악인의 형벌이 보류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악인들의 형벌을 심판 날까지 보류하실까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가 킹제임스 성경에는 좀 더 분명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구해 내시고 불의한 자들은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벧후 2:9)

그래서 욥도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날까지” 무덤 속에서 보존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악인이 멸망의 날까지 보존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은 진노의 날에 불려나가게 되리라(악인의 부활)”(욥 21:30, 킹제임스 성경)

사람이 죽으면 재판을 받는다는 사상은 성경 전체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모두)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마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생애와 행위에 대해서 심판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심판이 있고,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생명의 부활 또는 심판의 부활로 일어나서 보상과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눅 14:14)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여기서 “그때”는 언제입니까? 예수께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까지는 어떤 보상이나 상급도 있을 수 없다는 진리가 확실해집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의문의 여지 없이 명백합니다. 사도 요한 역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재림의 날에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계 22:12)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결정하는 일이 있는데, 성경은 그것을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언제 심판이 이루어질까요?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입니까? 재림하신 후입니까?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심판(재판)이 이루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보상과 형벌을 주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재판)이 끝나야만 예수께서 재림하셨을 때 보상할 자(양)와 형벌 줄 자(염소)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31-33,46)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0-42)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을 때입니다. 보상 줄 자와 형벌 받을 자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늘 법정에서 재판이 끝나고 마지막 날에 형벌을 받게 될 때까지는 무덤 속에서 지켜진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활과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에도 죄인에게 즉시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법에 따라서 증인과 증거를 대조하는 사법적 심리 단계를 거쳐서 신중하게 형을 선고합니다.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죽는 즉시에 형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보는 앞에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히 9:27). ■

질문3, 죽은 사람들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성경은 죽은 사람들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왜 성경은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할까요? 왜냐하면 “잠”이라는 단어가 죽은 사람의 상태를 가장 완전하게 묘사해주기 때문입니다. 피곤에 지쳐서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깊이 잠들게 되는데, 이런 경우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날 때까지의 시간은 마치 한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잠든 자는 잠자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무의식 세계 속에서 지내게 됩니다. “죽음”이라고 불리우는 “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죽은 자를 가리키면서 “잠자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마 9:24)

예수께서는 왜 죽은 자를 향하여 “잠자고 있다”라고 말씀했을까요? 왜냐하면 잠자는 자는 깰 때가 있는 것처럼, 죽은 자도 잠에서 깨어나 부활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의인과 악인 모두 완전한 무의식 상태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죽음이라는 잠을 깨워주실 때까지 무덤 속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흙으로 돌아간 죽은 자들이 잠에서 깨어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그리스도 재림의 때)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1,2)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사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이 말씀에서 바울은 언제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까?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부활해야만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죽음과 무덤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었던 의인들은 불멸의 몸을 선물로 받을 것인데 그 위대한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53)

어떤 분들은 예수께서 오래전에 죽었던 사람들의 썩은 시체를 어떻게 회복시키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염려합니다. 물론, 어떤 시체들은 폭탄에 맞고, 또 어떤 시체들은 불에 탔고 또 많은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 빠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은 오래된 것을 모아서 짜맞추는 조립이 아닙니다. 부활은 창조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께서 각 사람의 개성을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을 완전하게 부활시키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1,000년 전에 죽었든지 또는 예수께서 오시기 5분 전에 죽었든지, 그들에게 있어서 부활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0.01초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잠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죽은 자들은 완전한 무의식 세계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종 선고를 듣기 위해서 무덤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모두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의인)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악인)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의인들은 무덤에서 부활했을 때 자신의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되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암으로 죽었든지 교통사고로 죽었든지 의인들은 완전하고 영화로운 몸을 받게 될 것이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울까요?

오늘날 교회에서 악인들도 부활한다고 설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도 부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을 행한 자(악인)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악인들은 부활하는 순간 자신이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죽음을 맞이하던 상태 그대로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술자국이 그대로 있고 폭탄에 다리를 잃은 상태 그대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무덤에서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본 악인들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요?

성도 여러분, 사람이 죽는 순간부터 무덤에서 부활할 때까지 어떤 상태로 존재하게 될까요?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할 때까지의 죽은 자의 상태

1. 죽은 자는 부활할 때까지 일체의 감정과 의식이 없는 상태이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전 9:5,6)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plan, 계획)가 소멸하리로다”(시 146:4)

 

2. 죽은 자는 부활할 때까지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는 무활동의 상태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3. 죽은 자는 부활할 때까지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할 수 도 없는 무감각의 상태이다

 “사망 중에서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무덤)에서 주께 감사할 자가 누구리이까”(시 6:5)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시 30:9)

“죽은 자들은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적막한 곳으로 내려가는 자도 다 그러하도다”(시 115:17)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사 38:18,19)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혼이 몸을 빠져 나가서 살아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공중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고 믿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은 영혼들은 제사 때마다 자신의 집에 찾아와서 제사상 위에 차려진 음식들로 배를 채우면서 만족한 미소를 띄운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은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부활의 시간까지 “잠”을 자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부활신앙입니다. ■

질문2, 죽은 악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에도 예수께서는 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모두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의인)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악인)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의인과 악인 모두 부활할 때까지 무덤 속에 있습니다.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무덤에서 일어나고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무덤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지금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성경은 의인과 악인 모두 무덤에서 부활한 후에야 보상 또는 형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서에도 동일한 말씀이 있습니다. “악인은 남기워서(reserve) 멸망의 날을 기다리움이 되고 멸망의 날을 맞으러 끌려나감이 된다 하느니라 … 악인이 무덤으로 들어가서 무덤 속에 남아있으리라”(욥 21:30,32). 이 말씀에서도 악인들은 멸망의 날까지 무덤 속에 남기워진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악인들의 형벌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reserve”라는 단어가 욥기서에서는 “남기워서”라고 번역되었는데, 베드로후서에는 “예비해 두사”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들은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사(reserve) 형벌 주실 줄 아시되”(벧후 2:9, 킹제임스 성경)

욥기와 베드로후서에 나오는 두 성경절 모두 악인의 형벌이 마지막 멸망의 날까지 보류되고 미루어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무덤 속에서 형벌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악인이 무덤으로 들어가서 무덤 속에 남아있으리라”(욥 21:32). 악인들은 무덤에서 어떤 상태로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어지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질문1, 얼마나 많은 악인이 지금 지옥에서 형벌 받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당황케 만드는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들은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들은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사 형벌 주실 줄 아시되”(벧후 2:9, 킹제임스 성경)

이 말씀에서 불의한 자들(악인들)은 지금 지옥에 있다고 했습니까? 아닙니다. “주께서 … 불의한 자들을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셨다고 했습니다. 심판의 날까지 “예비해 두셨다”(reserve, 예비하다/예약하다)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아직 형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악인들에 대한 형벌이 이루어지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 또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예수께서는 언제 악인들을 형벌하시겠다고 했습니까? “마지막 날”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형벌을 받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지금은 아무도 형벌 받는 자가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럼 당신은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당신은 지옥불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디 마음을 가라앉히고 끝까지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지옥불은 분명히 있고 악인들은 반드시 그곳에서 태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날에 악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신 말씀과 “심판의 날까지 형벌을 예비해 두시겠다”고 한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왜 “마지막 날, 심판의 날”까지 기다렸다가 형벌을 받게 될까요? 왜냐하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모든 민족과 백성을 양과 염소로 나누시고 그때 보상과 형벌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31-33,46)

아직 예수께서 재림하지 않았고, 아직 의인들도 무덤에서 부활하여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 중 누구도 아직 지옥불 속에서 형벌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누구도 보상이나 형벌을 받을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부활이 있고 그 다음에 보상과 형벌이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회가 믿는 부활사상입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모두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의인)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악인)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예수께서 말씀하신 악인의 형벌

예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면서 가라지(악인)는 세상 끝에 불에 태워 없앨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마 13:37-42)

이 말씀은 어린아이라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추수 때에 가라지를 모아서 불에 태우는 것처럼, 악인들은 “세상 끝에”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의인과 악인이 보상을 받거나 형벌을 받는 시간은 “세상 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아무도 형벌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 지옥불에서 불타고 있는 악인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악인들은 즉시로 지옥불 가운데 던져지는 형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악한 자들이 “세상 끝”에 불가운데로 던져진다는 주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성도들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실 때까지 누구도 보상과 형벌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서론, 왜 하나님을 이런 눈으로 바라보십니까?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악인의 형벌과 지옥에 대한 많은 질문이 있습니다.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옥의 형벌은 이미 시작되었습니까? 아니면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악인들을 위한 형벌이 시작되는 것입니까? 한 번 지옥불에 들어가면 죽지 않고 영원히 붙타면서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옥불로 온몸이 불타고 재로 변해서 없어지는 것입니까?” 이번 호에서는 서론부터 독자 여러분 중 어떤 분은 당황하게 될 것이고, 어떤 분은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호를 끝까지 마음을 집중해 인내하며 읽으시면, 여러분은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진리 속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편집실>

 

한번은 미국의 어떤 침례교회 목회자와 함께 지옥불에 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성경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그때 침례교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교회에서 지옥불은 꺼지는 불이고 악인들은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당하지 않습니다.’라고 설교하면, 교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옥불이 영원히 불타지 않는다”고 설교하면 왜 교인들이 싫어할까요? 혹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악인들이 영원히 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는 것은 아닌가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사람을 죽이기 원하실까요?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지옥불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내리는 형벌이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래서 예수께서 “지옥불은 마귀와 악령들을 없애기 위해서 예비된 불”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지옥불은 사탄과 악한 천사들을 위해서 예비된 불이지만, 죄를 끝까지 고집하고 붙잡고 있으면 지옥불에서 사탄과 함께 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지옥불이 꺼진다는 설교를 꺼려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지옥불이 “영원히 타는 불”이 아니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억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지옥불이 얼마나 뜨겁고 얼마나 오랫동안 탄다는 것을 강조해서 기독교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우상숭배자들의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을 하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으로 발전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이유는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지옥불” 때문에 하나님을 거절하고 있다!

“영원히 타는 지옥불”의 교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토록 불 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지글지글 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잔인한 하나님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죄를 범했다고 해서 영원토록 불로 고문할 수 있습니까!” 영원한 지옥불의 교리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전혀 비상식적인 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불신자뿐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영원한 지옥불”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 대한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불을 알면,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믿게 됩니다.

 

사단이 만들어 놓은 네 가지 불신

사탄은 왜 지옥에 대한 이상한 사상을 기독교회 속에 집어넣었을까요?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에 대한 의심을 넣어주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작전은 크게 성공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하며 불공평한 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지옥설” 때문에 기독교인의 마음속에 다음과 같은 불신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1.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죄인을 영원토록 불에 태우십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이런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차라리 죄에 합당한 형벌을 주고 죽여버리고 말지, 어떻게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을 영원토록 불구덩이 고통 속에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하늘 아버지는 그토록 잔혹한 분입니까? 인간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할 수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이런 불신이 없습니까? 지옥에 대한 성서적 믿음을 이해하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의심과 오해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1.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불공평할 수 있나요?”

“영원한 지옥불” 교리를 믿으면,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심에 대해서 깊은 의심을 갖게 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을 죽인 죄로 지옥불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어느 날, 히틀러가 6백만 유태인을 죽인 죄로 지옥에 들어왔다면 가인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요? 가인은 자신보다 엄청난 죄를 범하고 지옥불로 들어온 히틀러를 보는 순간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한 사람을 죽인 사람이 6백만 명을 죽인 사람보다 5천 년 이상 더 지옥불에서 고통당하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세상 법정에서도 그렇게 불공평한 판결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까?

지옥불에 대한 진리를 모르면, 평생 이런 불신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지옥불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영원토록 불 속에서 고통받게 합니까?”

우리 스스로 이 세상에 태어나겠다고 선택한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우리의 출생을 부탁한 적도 없습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했던 어리석은 선택과 죄 때문에 천년만년, 수백만 년, 수억만 년, 아니 영원토록 죽지도 못하고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는 이런 의문이 없습니까? 지옥불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지옥불은 의인들을 보호하고 우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옥불은 사탄과 죄를 없애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죄를 붙잡고 있으면, 사탄과 죄가 불태워질 때 그것을 붙잡고 있는 죄인도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진심으로 죄를 버리고 회개하면 지옥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1. 왜 하나님께서는 삼류 쇼를 하십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악인이 죽는 순간 지옥에 떨어져서 형벌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고통당하고 있는 악인들을 다시 부활시키실까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이 말씀에서 심판의 부활은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악인들은 죽자마자 이미 지옥에 가서 불타고 있는데, 세상 끝에 그들을 다시 부활시켜서 유황불을 받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옥불에 대한 거짓 교리를 믿으면, 하나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서 가장 혼돈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옥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기독교회 안에서 변질되어 왔으며, 각종 토속 신앙과 불교나 유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나 내세의 의미가 기독교회 안까지 깊숙히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지옥의 참된 의미가 크게 왜곡되고 손상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지옥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악인의 최후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과연 영원토록 사람들을 불 속에서 고문하시겠는가?”라는 질문에 성경적으로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모든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천국”과 “피할 수 있는 지옥” 중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주교회에서 말하는 연옥은 없습니다. 우주 어디에도 중립지역은 없으며, 천국에 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두 번째 구원의 기회도 없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1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아봄으로써 지옥불과 악인의 형벌에 대한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

 

지옥에 대한 13가지 질문

1) 얼마나 많은 악인이 지금 지옥에서 형벌 받고 있을까요?
2) 죽은 악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3) 죽은 사람들은 무덤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4) 재판도 하지 않고 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5) 하늘 법정의 심판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6) 죄의 결과는 영원한 고통입니까? 멸망입니까?
7) 언제, 어디서 지옥불이 점화될까요?
8)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에 탈까요?
9) 지옥불은 영원히 탈까요? 꺼질까요?
10)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옥불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11) 지옥불 이후에 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12) 성경 번역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3)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비유입니까? 실화입니까?

22호를 시작하며…

한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와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오늘날 기독교회는 죄를 범한 죄인이 죽으면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된다고 믿는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그 친구는 혐오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보다 더 악하다는 말이니? 인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풀리고, 어느 정도 앙갚음을 하고 나면 마음을 푸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불로 태우는 고통을 영원토록 줄 수 있니?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믿고 존경할 수 있니?”

이것이 불신자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어떤 분이실까요? 성도 여러분, 진리를 오해하면 깊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오해 가운데 가장 심각한 오해는 지옥에 대한 문제입니다. 18세기의 어떤 신학자는 지옥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육체의 모든 부분이 유황불의 고통으로 채워질 것이다. 모든 관절과 신경은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심장과 창자와 머리와 눈과 혀와 손과 발은 하나님의 불과 진노로 채워질 것이다. 죄인은 지옥불의 고통을 세세토록, 영원하게 받는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이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말 그런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이제 지옥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옥에 대한 오해가 풀려야만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풀릴 수 있습니다. 중세기에 천주교회가 이교도들이 믿는 지옥설을 받아들인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께서는 “인간보다 잔혹한 신”이라는 오해에 시달려 오셨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지옥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르게 깨닫게 됩니다. 이번 호에서는 현대 기독교회 전체를 뒤흔들만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호를 끝까지 읽는 분들은 새로운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독자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