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신, 어떤 종교를 찾아가야 할까요? 성경의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 신들은 높은 곳에 앉아서 경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전혀 다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15) 독자 여러분, 어떤 신을 찾아야 합니까?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큼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신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신은 우주 전체에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죄의 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죄를 무책임하게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세상 어떤 신이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주나요?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에 목숨까지 던지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들은 재물과 희생과 봉사를 바치라고 요구합니다. 어떤 신은 절을 수백 번하지 않으면 복을 주지 않고 대학과 직장도 주지 않습니다. 이 세상 신들은 매우 이기적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할 능력도 없으면서 요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섬겼습니다.
“인자(사람의 아들)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놀라운 말씀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런 신이십니다. 다른 신들은 자기를 위해서 희생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고, 그리스도는 “나는 신랑이고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맏형과 친구”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신을 섬기고 싶지 않으십니까?
독자 여러분, 아버지처럼 보호해주시고, 신랑처럼 아껴주는 신을 원하십니까? 맏형과 친구 같은 신을 원하십니까? 그런 신을 원하는 분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죄와 구원에 대한 기독교회의 답변

이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놀라운 구원의 길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빚진 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큰 은혜의 빚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롬 8:12).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빚을 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감사와 충성으로 주님을 따릅니다.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심령으로 따릅니다.
기독교회는 선한 행위가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재물을 바쳐도 소용없습니다. 마음과 심령이 하나님의 피에 대한 감사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으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 가지 않으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복 받으려고 헌금 드리고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큰 빚을 졌기 때문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이 악한 세상을 버리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성경은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을 거듭났다고 말하고 새 마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사람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면, 신문에 나오는 교회의 부패와 세속화는 무엇입니까? 목사들의 위선과 비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독교회의 진짜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가라지라고 부르고 거짓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수많은 가라지와 거짓 선지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우주 최고의 신, 하나님을 만나면 생애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보면, 겸손해지고 교만과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보면,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배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
은혜를 알면 죄와 욕심과 질투에서 돌아서게 됩니다. 마음에서 미움이 올라올 때 그것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 그런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경험입니다.

기독교회의 구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합니다.
기독교는 행위와 고행을 쌓아서 구원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3~24).
놀라운 말씀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하고 희생해서 그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줄 수 있을까요?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죗값이 치러졌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하나님께서 말로만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화목제물이 돼서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신이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님께 나와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사랑과 희생이 있기 때문에 온 우주의 천사들과 피조물이 하나님께 굴복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엄청난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누가 그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거절하겠습니까?
독자 여러분, 착한 일하고 선한 행위를 쌓아서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심을 보십니다.
용서받기 위해서 300번 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봉투에 돈을 넣어서 바칠 필요도 없습니다. 기왓장 사고, 등불 살 필요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피의 은혜로 거저 주어집니다.
그 엄청난 은혜 때문에 우리 심령 속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변화 때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최고의 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기독교 신앙은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받을 때 성경은 ‘거듭났다.’고 합니다. 새 마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구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