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마지막 시대를 위한 사탄의 전략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전략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전략은 시대를 따라서 바뀌어 왔습니다. 구약시대에 사탄은 율법주의로 교회를 공격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 갔습니다. 신약시대가 시작되면서 사탄은 3세기까지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제국을 통해서 초대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맹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부터는 사탄의 공격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던 로마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탄의 기가 막힌 전략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던 핍박이 사라지고 기독교 안으로 돈과 명예가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안에 어떤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성도들이 목숨으로 지켜오던 수많은 가르침과 진리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성도들은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었고 종교 암흑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중세기 천여 년 동안 5천만~8천만 명의 순교자가 생기는 참혹한 핍박이 지속되었습니다. 사탄은 천주교회를 통해서 성경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자들, 성경대로 믿는 자들을 공격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종교 암흑시대가 끝나면서 기독교회를 공격하는 그의 전략을 다시 한번 크게 바꾸었습니다. 중세기 천 년 동안 하나님과 신앙의 이름으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고통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와 신에 대한 깊은 회의와 환멸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98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면서 나폴레옹은 교황 피우스 6세를 포로로 잡아가서 옥사시켰으며, 바티칸의 땅과 소유를 몰수하는 놀라운 사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무신론과 진화론의 등장

이렇게 해서 중세기 핍박의 세력이 무너지고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생기자, 사탄은 어떤 전략을 세웠을까요? “하나님은 없다”는 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벨하우센이 성경의 영감성을 부인하는 고등비평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철학자 니이체는 “하나님은 죽었다”는 사신 신학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855년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해서 창조를 부인하고 이 세상은 처음부터 진화되어 왔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은 온 세상과 기독교 신앙을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사탄은 진화론을 퍼뜨림으로써 온 세상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 세력이 아주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무신론 세력은 공산주의라는 정치 철학을 만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사탄의 전략이 크게 성공했습니다.

 

진화론이 20세기에 발표되었더라면…

진화론이 20세기에 발표되었더라면 아마 거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 도 없고 모순투성이인 진화론이 대중들에게 쉽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시대 적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천주교가 지배하던 약 1,000년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수많 은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해져 있었고, 그러던 중 1798년 교황 피우스 6세가 프랑스에 잡혀가 옥사했습니다.

그 이후 1859년 다윈이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종의 기원>을 발표하였을 때, 그것이 과학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창조와 반대되기 때문에, 종교에 환멸을 느 끼고 있는 민중들이 그것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게 된 역사적 배경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를 타고 진화론은 아주 짧은 시간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사상을 사로잡아 점령하게 된 것이지요.

 

진화론과 무신론 세력은 학문 속으로도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무신론주의는 인본주의(휴머니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깊이 퍼져나갔습니다. 인본주의란,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에서는 하나님보다 인간이 먼저입니다. 진리보다 인간의 생각이 먼저입니다. 하나님보다 인간의 생각과 느낌이 중요시되면서, 내가 원하고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상이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내가 선택하기만 하면 동성애도 할 수 있다는 사상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으면 지식인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마지막 시대를 위한 사탄의 전략이 무엇입니까? 창조를 부인함으로써 온 세상과 교회에서 하나님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나오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상한 사상과 악의 조류들이 세상과 교회 속으로 밀려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오래전에 “진화론과 빅뱅은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고백을 했으며, 개신교회에도 ‘창조진화론’이라는 이론이 들어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라고 불리우는 중세기 종교 암흑시대에도 창조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창조가 무시되고 놀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를 돌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창조의 근본이신 이”로 표현했습니다. 창조의 근본이신 그리스도께서 창조가 흔들리는 마지막 교회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4,15)

 

사탄이 마지막 시대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상을 퍼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탄은 창조를 무너뜨리려고 할까요? 하나님의 창조를 무너뜨리면, 십계명에 기록된 창조의 기념일도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날, 창조를 기념하는 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모든 것을 만드신 후 여섯째 날에 사람, 즉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면서 기념하는 거룩한 날로 지정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6일 동안은 천연계를 만드셨고 일곱째 날에는 창조를 기념하는 특별한 날(24시간)을 만드셨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 2:1-3)

 

왜 일곱째 날을 특별하게 지정하셨을까요?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4). 집마다 준공일이 있고 제품마다 그것을 만든 제조일이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지구 창조를 마치면서 일곱째 날을 창조의 기념일(안식일)로 정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유대인의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가 영원토록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정하시고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드리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돌비에도 넷째 계명으로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해서 거룩하게 지키라”고 새겨놓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지구를 창조한 분은 하나님이다”라는 진리를 지워 없애기 위해서 공격할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세기 종교 암흑기 동안 사탄이 안식일을 태양신의 경배일(Sunday, 태양의 날)로 바꿀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까지 만들어낼 것을 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미혹 당해서 창조의 기념일을 잃어버릴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이 올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기록해놓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공격에 대한 하나님의 응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안식일 계명을 회복시키는 한 백성을 준비시키십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 사탄의 세력과 싸우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용(사탄)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를 무너뜨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를 무너뜨려야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수많은 종교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독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 땅에서 돈 잘 벌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까? 아니면 신들의 신, 하나님을 만나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시겠습니까?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계에만 1~2천억 개의 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에 그런 은하계가 1~2천억 개가 있습니다. 그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죽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모든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보호 하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부디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게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질문10, 신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이기적입니까?

오래전에 인도의 간디는 자신이 기독교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실망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좋아하지만, 기독교인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과 예수님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실망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돈을 사랑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서 충성스런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이 함께 예배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알곡(충성스런 그리스도인)과 가라지(거짓 그리스도인)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교회 안에 수많은 가라지를 뿌릴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탄은 왜 가라지를 교회 안에 들여보낼까요? 왜냐하면 교회에서 알곡들이 자라서 열매 맺으면 복음이 능력 있게 전파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뿌려서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무성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을 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의 의도대로 오늘날 사람들은 “왜 교회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세속적인가?”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탄이 밭에 가라지를 뿌린 이유는 교회를 가라지로 뒤덮어 버리기 위해서입니다. 가라지는 빠르게 번식합니다. 별다른 영양을 공급하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가라지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알곡들이 있으며, 결국 알곡만 구원받게 됩니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물론, 교회 다니는 가라지 교인들 때문에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진실한 성도들을 갖고 계십니다. 그들은 혼탁한 교회 속에서 진리를 붙잡고 순결한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수많은 가라지가 있지만, 오직 알곡들만 구원받게 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a remnant shall be saved)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롬 9:27-28)

 

교회 안에 믿는 사람이 바다 모래처럼 많을지라도 오직 알곡들만 구원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 때문에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알곡들만 정확하게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진리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성경은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으로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4-17)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대 교회를 보시면서 너무나 역겨워서 토해 내치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차라리 차가워져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 밖 세상으로 나가버리면,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에 괴로움과 가책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서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덥지 않고 차지도 않은 상태로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토해 내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교회 사이의 중간에 서 있으려는 태도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지금 기독교회는 마지막 시대에 대한 성경 예언을 매우 비관적인 모습으로 성취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지 같은 교인들을 보면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성도들은 가라지가 아닙니다. 교회에 실망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학교에 가면 불량한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교회가 세속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불행한 결정입니다. ■

질문9. 사람은 왜 세상에 태어하는 것입니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은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자연과 우주에서 느끼는 자신의 직관을 부정하고 양심의 음성을 억누르지 않고서는 무신론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과 슬픔과 고통이 없는 영원한 세계를 사모하는데, 그것은 신이 인간의 본성 속에 넣어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이 질문에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거의 모든 종교에서 이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철학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하게 대답해 줍니다.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6,27).

얼마나 분명합니까?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자기가 사는 기간 동안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는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한 진리입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고달프고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내가 태어난 모든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의 목적이 이루어지면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위로자로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시므로 초조할 필요도 없고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됩니다.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었는데, 무엇을 더 얻으려고 경쟁하고 욕심을 내겠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영혼의 평안을 갖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께서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독자 여러분,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죽음을 눈앞에 두면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계신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왜 죽음을 앞에 두면 그런 질문을 할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 속에 그 질문을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일이 어려울까요? 조금 전에 읽은 사도행전의 말씀은 “그는 우리에게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숨어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하기면 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통해서, 천연계의 나무와 꽃들을 통해서, 놀라운 인체구조를 통해서, 곤충과 새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땅속 지층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의 절묘한 움직임과 눈동자의 기가 막힌 기능 속에서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속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은 아메바나 원숭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만물의 영장입니다. 지구에서 오직 사람만 하나님을 느끼고 만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지구에 사는 생물 중에 오직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 한 번만 주어지는 인생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실수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영원한 생명을 붙잡을 유일한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암으로 고통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하나님을 찾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낮추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과 진리를 만남으로써 상상도 하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행복과 영혼의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을 꼭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

질문8, 하나님은 왜 죄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다. 하나님께서 사탄(마귀, 루시퍼)을 만드셨다.”는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데, 왜 천사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하늘에서 반역과 전쟁이 일어나도록 했습니까? 왜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죄가 시작되도록 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기에 천사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까요?

 

자유의지란?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자유의지를 준 이유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고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천사들은 지구가 창조되기 오래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창조하셨을 때 그들 중에 “루시퍼”라는 천사가 장차 반역할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천사들을 절대로 반역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왜 천사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로보트처럼 만들지 않으셨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해서 한 가지 분명한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자유의지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독재적이지 않고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결코 반항하거나 불순종하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난다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된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무조건 부모 말씀에 순종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로보트 같은 자녀를 갖기 원하십니까? 선택의 자유가 없이 로보트처럼 태어나는 자녀가 참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런 자녀를 보면서 부모가 참된 행복과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거나 불순종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면 죄와 반역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에 사랑과 신뢰는 생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랑과 신뢰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우주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과 신뢰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창조주와 피조물 모두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을 즉시로 죽이지 않은 이유

사탄(루시퍼)은 그의 활동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Lucifer, 루시퍼, KJV)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2-14)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갖고 온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사탄이 활동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목적을 아셨지만 그가 반역을 일으켰을 때 즉시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요? 만일 루시퍼가 그 마음에 교만을 품고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즉시로 죽였다면, 죄가 지구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즉시로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왜 죽이지 않으셨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반역이 루시퍼(사탄)의 마음속에 싹트는 즉시 그를 제거해 버렸다면, 하늘에는 하나님께 대한 의심이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루시퍼를 죽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루시퍼가 죄를 마음에 품자마자 즉시로 죽인다면, 다른 천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서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 천사들 사이에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맺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탄에 대한 형벌과 심판을 뒤로 미루시고, 사탄의 교만과 악한 의도가 온 우주 앞에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왜 죄와 반역의 가능성을 열어놓았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과 인격을 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셔야만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이 완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에게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줄 경우, 반역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반역이 생겼던 것처럼,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의지를 주면 지구에서도 죄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고, 사랑을 완전케 하려고 그들에게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지만, 사탄은 그것을 이용해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도 있었지만, 사탄의 시험에 빠져서 그의 말을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서 시작된 죄가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자유의지는 십자가의 시작이다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준다는 것은 죄와 반역이 생길 수 있는 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희생을 포함한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줘서 죄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는 것은, 장차 죄가 생길 경우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한 자는 반드시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죄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때 죄와 반역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구속의 계획을 세워야만 했는데,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구원의 계획입니까?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순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그늘 속에서 사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선택의 권리를 주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언젠가 이 땅에 내려와서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죄와 반역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사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담보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 세상에 이런 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피로 주어진 자유의지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순간, 죄와 반역의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기 전에 이미 구속의 계획을 세워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영원 전에 세워진 구원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계 13:8, KJV)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다시는 죄와 반역이 생기지 않는 이유

하나님 아들의 죽음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은 살아있는 동안에 진리를 발견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진리를 발견할 뿐 아니라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하늘의 천사들은 이 땅에서 우리가 자유의지와 지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하늘의 천사들은 사탄과 죄를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공의를 보면서 감탄할 것입니다.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죄의 역사를 보면서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사탄이 악하고 불의하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곧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의인들을 데리고 하늘로 가실 것입니다. 길고 긴 죄의 역사를 지켜본 하늘의 천사들과 구원받아서 천국에 간 성도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자유의지가 주어질 것이지만, 다시는 죄와 반역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과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피와 사랑으로 물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간 성도들은 구원받아서 죄를 범할 경우 어떤 슬픔과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아는 사람들입니다. 천사들은 루시퍼가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온 우주가 엄청난 혼돈 속으로 들어간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성도들과 천사들은 여전히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는 충성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온 우주는 영원히 죄와 슬픔이 없는 완전한 행복만이 있을 것입니다. ■

질문7,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많습니까?

몇 년 전 한국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사건 때문에 온 국민이 너무나 마음 아픈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가 침몰할 때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고통과 슬픔이 많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존재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참 억울한 오해를 받고 계십니다. 커다란 사고와 재난이 생길 때마다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원망들이 쏟아집니다.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재난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재난이 전혀 없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재난도 없었고 불행과 죽음도 없었습니다. 완전한 아름다움과 완전한 건강과 행복이 있었습니다. 재난과 고통은 사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

아주 오래오래 전에,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하늘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계 12:7)

하늘에 전쟁이 있었는데, 그 전쟁은 용과 미가엘이 싸우는 전쟁입니다. 성경에서 용은 사탄을 가리키고 미가엘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미가엘을 천사장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후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미가엘은 그리스도께서 전쟁에 나설 때 사용하는 특별한 이름입니다(단 12:1).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사탄과 그를 지지하는 천사들 사이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온 하늘이 둘로 나눠져서 전쟁을 했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루시퍼)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9)

 

하늘의 전쟁에서 패배한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지구로 옮겨진 전쟁

이 사건 이후, 사탄과 악한 천사들은 이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사탄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나무로 갔습니다. 왜 그곳으로 갔을까요?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창 2:16,17). 법을 무너뜨리면, 법을 만드신 하나님의 권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탄은 집요하게 하나님의 법을 공격합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벌어진 지구 최초의 전쟁은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는데, 그 전쟁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늘의 반역이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죄가 생기기 전 에덴동산에는 낙엽도 없었고, 동물들끼리 서로 죽이는 약육강식의 모습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가시나무와 독초들이 자라나게 되었고, 동물들의 성질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즉시 자연계에 무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 영향은 인간에게도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가 노화되기 시작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을 갖게 되었고 태어나면서부터 악하고 교만한 본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죽음과 슬픔과 고통이 인간 세상에 들어오게 된 상황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범죄한 이후, 사탄에게 지구에 대한 임시 지배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자신의 권한를 이용해서 지구에 각종 재난과 고통을 일으키면서, 그 모든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재난이 생기고, 사고가 나고, 또 병에 걸릴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암에 걸려야 하나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사고를 당해야 합니까?”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쳐다봅니다. “내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난과 고통을 주신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지금은 사탄이 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기간입니다. 악인이기 때문에 암에 걸리고 교통사고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죄 없는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지구를 사탄의 손으로부터 완전하게 구원해주실 때까지 모든 사람은 재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모든 고통과 죽음과 슬픔의 최종적인 해결책입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하늘과 땅이 시작될 것이고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시작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난과 고통과 슬픔 속에 있을 때 우리 곁으로 가장 가까이 찾아오십니다. ■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시편 118:5-7)

질문6, 나사렛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지 아십니까? 창조와 예언입니다. 창조와 예언을 모두 살펴보면, 하나님을 정면으로 만나게 됩니다.

마음에 창조에 대한 불신이 있다면 천연계로 나아가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꽃과 나무와 바다를 보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에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은하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기이하게 인도해오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양심 속에 분명한 음성을 주실 것입니다.

좀 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이 필요하십니까? 그런 분들은 성경의 예언으로 가셔야 합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수천 년을 내다보시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살펴보면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가?

2천여 년 전에 이스라엘의 나사렛 마을에서 허름한 모습으로 목수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문짝을 짜고 창틀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랐습니다.

기독교는 그런 나사렛 예수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정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예언으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무엇을 할 것이고,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자세히 예언해 놓았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수백 년 내지 천여 년 전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모든 예언들이 나사렛 예수에게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한번 확인해 볼까요?

 

  1. 선지자 미가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7백여년 전에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1. 선지자 이사야도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7백여 년 전에 메시아는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께서는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예수께서 우리 인간과 다르게 태어나기 위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났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남성 정자의 도움 없이 마리아의 태 속에 들어간 것이고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 사람이 태어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지만,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죄를 승리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6백여 년 전에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1. 선지자 예레미야는 메시아가 태어날 때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 예언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헤롯 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2살 아래의 아기들을 죽였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올 때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1. 시편기자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천 년 전에 메시아가 친구의 배반으로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님은 제자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1. 선지자 스가랴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5백여 년 전에 메시아는 은 30냥에 팔릴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도 예수님께 성취되었습니까?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은 30냥에 팔려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 선지자 스가랴는 메시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1. 시편기자는 천여 년 전에 사람들이 메시아의 옷을 제비 뽑아서 나눠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 22:18). 이 예언 그대로 로마 군인들이 그리스도의 옷을 벗기고 나눠 가졌습니다.

 

  1. 시편기자는 메시아는 죽을 때 뼈가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께서 죽으실 때 단 하나의 뼈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1. 이사야 선지자는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7백여 년 전에 메시아는 죽어서 부자의 무덤에 묻힐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예수님은 죽어서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1. 선지자 다니엘은 예수님이 태어나기 6백여 년 전에 메시아의 사망 연도와 날짜와 시간까지 예언했는데, 예수님은 그 예언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1. 선지자 호세아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7백여 년 전에 메시아는 3일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 예언도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성취

이외에도 메시아에 대한 수많은 예언들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들이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그리고 부활까지 모두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이런 예언의 성취를 보면, 나사렛 예수가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는 당당하게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세상 앞에 선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천 년 전에 기록된 모든 예언들을 성취시키면서 이 땅에 오셨고, 예언대로 사셨으며, 예언대로 죽으셨고, 예언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신들 중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예언을 성취시키면서 자신을 증명한 신은 없습니다. 전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신들의 신이었습니다.

 

메시아의 예언이 우연히 이루어질 가능성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이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에게 우연히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그런 가능성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확률을 계산해 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에 대한 300개 이상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모두 나사렛 예수가 태어나기 5백 년 내지 천 년 전에 기록된 예언들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파사데나 대학의 수학과/천문학과의 학장인 피터 스토너 박사는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일 가능성을 수학으로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600명 이상의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확률”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습니다.

피터 스토너 박사는 300여 개의 예언 중에서 8개를 고른 다음, 8개의 예언이 한 사람의 생애 동안에 정확하게 성취될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10의 33승 분의 1이라는 확률이 나왔습니다. 즉, 1나누기 10의 33승에 해당하는 확률이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예언 중에서 8개만 골라서 그것이 한 사람의 생애 속에서 성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메시아에 대한 300여 개의 예언이 한 사람에게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였다면, 어떤 확률이 나왔을까요? 독자 여러분이 대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는 틀림없는 메시아입니다. 수학으로 계산해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기독교인은 맹목적으로, 아무렇게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혹은 메시아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믿음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실험실에서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예언으로 당신 자신을 증명하십니다.

“이 세상을 봐라.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수억 개의 은하계를 봐라. 이래도 너희가 나를 믿지 않을래?”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천 년 전에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수많은 예언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살고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는데, 그래도 예수를 믿지 않을래?”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붙잡게 될 것입니다. ■

특별기고, 내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간 이유

“나는 기독교의 신앙에 대해서 깊은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교육과 유교에서 배운 윤리와 도덕이 기독교의 신앙에 비해서 별다른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섬기던 신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안은 가문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일 년에 여러 차례 조상을 섬기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휴가 때마다 절에 가서 지성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사드리고 불공을 드리면서도 마음 한쪽에 항상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정말 내가 섬기는 신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신인가? 이왕 신을 섬길 바엔 우주에서 가장 강한 신을 섬겨야 하는데 그분은 누구일까? 나는 신들의 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삶이 바쁘고 힘들더라도 가능한 많은 신을 섬겨야만 한다. 여러 신을 섬겨서 보험을 들어두면 집안에 문제가 생기고 우환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회가 되는 대로 신들을 찾아가 제사와 재물을 드려야 한다. 나는 신을 이용해서 가문의 영광과 번영을 지켜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부끄럽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런 고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내가 믿어온 신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돌이나 나무에 새기지 말라고 금지했지만, 내가 믿는 신은 나무와 돌로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지만 내가 믿는 신은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신이었습니다. 내가 믿은 신의 정체를 안 다음부터 마음의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에서는 계속해서 교회에 나가라는 음성이 들렸지만, 나는 내가 믿는 신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열정을 소멸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내 속에서 마음의 음성이 점점 더 크게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을 무시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음성의 진실함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는가? 네 부모와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우주만물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 네가 믿는 우상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가? 오직 성경의 하나님만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 모든 신들 위에 최고의 신이 있는데 그 신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밤낮 이런 음성과 논쟁을 펼쳤지만 내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내가 믿던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성경을 읽자, 성경은 나에게 놀라운 사실을 주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사당을 찾아가 절할 필요도 없고 무당에게 돈을 주고 굿을 하거나 불상 앞에서 빌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나에게 벌을 내릴 다른 잡신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평안을 줍니다. 이제 더 이상 구차하게 여러 신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진노를 풀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죽은 조상의 혼을 달래려고 좋은 음식과 술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복을 빌려고 죽은 짐승의 머리를 상 위에 올려놓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자녀의 취직과 대학입학을 위해서 돌우상 앞에 무릎 꿇고 빌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부터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를 믿고 따라가면 됩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길이 좁고 협착해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섬기던 우상과 너무나 다릅니다. 우상은 섬김 받기를 좋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심지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 그런 신이 있습니까? 어떤 신이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놓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나 사는 동안 신들(gods)의 신(God)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특권입니다.

가장 놀라운 경험은 무엇보다도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정면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성경 예언을 이 세상 역사와 하나씩 대조해 보면서 하나님의 예언이 인간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보는 감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성경의 예언을 공부할 때마다 우상을 섬기던 종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감격과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이 어떻게 끝나게 되고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운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왜 하나님을 믿었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와 예언 앞에 굴복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놀라운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

질문5, 부처를 신으로 믿을 수 있을까요?

욕심 없이 고결하게 사는 어떤 스님의 삶을 보면 불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란 신을 섬기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교를 선택할 때 꼭 기억해야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신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불교의 석가모니는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는 한 번도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와 후예들이 그를 신으로 만든 것입니다. 불교의 윤회사상에는 창조가 없습니다. 윤회설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말해주는 사상이 아닙니다. 윤회설은 이미 존재하는 생물들이 끝없이 순환된다고 믿을 뿐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도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불교를 믿으면, 나의 조상이 동물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원숭이나 미물들이 다음 생애에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살생을 하지 않는 교리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 생애에는 원숭이나 동물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살생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죽은 내 친구나 가족을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사람의 조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불교 역시 진화론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처라는 이름의 의미는 “깨달은 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는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이지 이 세상의 기초를 놓은 신이 아닙니다. 부처는 왕족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어렸을 때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어느 날, 싯다르타는 병자와 죽어가는 사람,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 수행자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본 싯다르타는 인생에서 가장 까다로운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됩니다. “왜 우리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고통을 피할 수 없는가? 지혜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싯타르타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궁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싯타르타가 찾은 결론을 불교도들은 “사성제”라고 부르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삶은 고통이다. 고통의 원인은 이기적인 욕망이다. 욕망이 그칠 때 고통도 그친다. 수행을 통해서 자아가 바뀌면 고통도 그친다.” 시대를 거쳐서 사람들은 부처의 심오한 통찰과 고통의 문제를 깨닫고자 했던 부처의 인내와 노력을 높이 평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부처는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는 창조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지구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고 우주의 근원은 무엇이며 인간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죄와 고통과 죽음이 언제, 어떻게, 왜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부처가 씨름했던 주제는 “왜 고통이 존재하는가?”였습니다. 부처는 사상가이고 현인이고 인류의 고통을 위해서 고민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처를 신으로 섬기고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질문4,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아폴로 11호 때문에 무너진 진화론

1969년 7월 16일에 발사된 아폴로 11호(Apollo 11)는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유인 우주선입니다. 그 당시 미국우주항공국의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달 착륙선의 다리 길이는 매우 치열한 논쟁점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착륙선의 다리가 매우 길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미우주항공국의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수십억 년 이상 된 달 표면에는 엄청난 양의 먼지가 쌓여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항공우주국의 과학자들은 수십억 년 동안 쌓여왔을 우주 먼지 때문에 달표면에는 매우 깊은 우주 먼지 수렁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주선이 착륙할 때 깊은 먼지 수렁에 빠지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우주가 수십억 년 동안 아주 서서히 생성되었다는 믿음을 가지면 당연히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정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달 착륙선 다리를 가능한 한 길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폴로 11호 달 착륙선의 삼각다리가 길게 설계되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착륙선이 달표면에 착륙했고 아폴로 11호의 선장인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표면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미우주항공국의 모든 과학자들은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착륙선에서 제일 먼저 내리는 닐 암스트롱 선장이 우주 먼지 구덩이에 빠져서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닐 암스트롱 선장은 달표면에 발을 대는 순간 놀라운 탄성을 냈습니다. 그가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It is solid!”(표면이 단단한데!)라는 탄성을 터뜨렸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달표면에 먼지가 거의 쌓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암스토롱 선장의 입에서 나온 이 한마디가 지구와 달의 나이에 대한 미우주항공 과학자들의 믿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주가 수십억 년 동안 서서히 생성되었다는 이론이 깨진 것입니다.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은 달표면에 쌓인 우주 먼지의 두께를 측정하였는데, 그것은 약 0.8인치(약 2c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구에 사는 인류의 역사가 만 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에 의하면 인류 역사는 대략 6,000년 정도입니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말하는 지구의 나이

오래전에는 중동지역에만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이제는 셰일오일이 발견되고 개발되면서 지구 전체의 퇴적암층에 포함되어 있는 오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구의 땅속에 왜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을까요? 석유의 원료라고 할 수 있는 삼림과 유기물질이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퇴적암층에 파묻히게 되었을까요?

그 답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전 세계적인 대홍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300년 전 노아 시대에 일어난 대홍수는 대륙을 가로지르며 지표면에 있는 엄청난 양의 유기성 퇴적물을 파묻으면서 빠르게 수천 미터의 두께로 퇴적지층들을 생성시켰습니다. 이 과정은 유기물질의 자연적인 분해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유기물질 잔해들을 땅속에 밀봉시키고 고압력으로 매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수백만 년이라는 세월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말하지만, 매장된 오일의 압력은 만 년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지질학자들은 말합니다. 석유와 가스층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탄도 퇴적암층에서 발견되는 유기 연료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석탄은 사람이 진화되기 이전에 수백만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지하 석탄층의 이곳저곳에서 사람의 뼈와 금으로 만든 각종 귀금속들이 발견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석유와 천연가스와 석탄이 세계적으로 퇴적암층에 산재되어 있는 것은 노아 홍수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으며, 지구에 사는 인류의 역사가 만 년 이하로 매우 젊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대기권의 헬륨이 증거하는 지구의 나이

진화론자들은 우라늄과 같은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지구의 표면에서 지난 수십억 년 동안 끊임없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방사성 물질이 붕괴될 때는 반드시 헬륨이 그 부산물로 생성됩니다. 그러므로 지구의 대기권 내에 있는 헬륨의 양을 조사해보면, 방사성 물질이 얼마나 오랫동안 붕괴되어 왔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으며, 그 계산치는 곧 지구의 나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사성 물질의 붕괴가 수십억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면, 지구의 대기권은 현재 대기권 내에 있는 헬륨의 양보다 훨씬 많아야만 합니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대기권 내에 헬륨의 양이 원래 있어야 할 양보다 적은 이유에 대해서 “헬륨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헬륨은 수소와는 달리 대기권 밖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헬륨은 대기권을 빠져나가기보다는 태양의 코로나로부터 대기권 안으로 진입하여 들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지구의 대기권 안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은 지구의 나이가 대략 만 년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구는 젊습니다.

 

열역한 제2법칙과 지구의 나이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도시 뉴욕을 아무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어떻게 될까요?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않아 곧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그리고 에너지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퇴화되어 가는데, 이러한 법칙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열역학 제2법칙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생물이 진화되어 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생물계가 무질서에서 질서로,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발전되어 나왔다는 가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우주는 다윈의 진화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퇴화되어 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형태의 발전된 생물이 나타나기는커녕 오히려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수백 종의 생물들이 멸종되어 왔고, 지금도 수많은 생물들이 멸종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광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라늄은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라디움으로 퇴화되고 또 그것이 다시 납으로 퇴화됨으로써, 물질은 그것이 새로운 종류로 전환될 때마다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우주와 생물계과 물질계는 진화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열역학 제2법칙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만일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물질이 수십억 년 전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모든 것이 퇴화하여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퇴화해서 결국에는 죽음과 혼돈만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자연법칙을 근거로 볼 때 지구의 나이는 결코 수십억 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지구의 생명 에너지가 가장 높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은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구에 생명력과 넘치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구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물고기와 새에게 물어보세요

이 세상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성경은 창조주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짐승과 새에게 물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짐승들에게 물어보아라. 그것들이 가르쳐줄 것이다.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보아라. 그것들이 일러줄 것이다. 땅에게 물어보아라. 땅이 가르쳐줄 것이다. 바다의 고기들도 일러줄 것이다. 주님께서 손수 이렇게 하신 것을, 이것들 가운데서 그 무엇이 모르겠느냐? 모든 생물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고 사람의 목숨 또한 모두 그분의 능력 안에 있지 않느냐?”(욥 12:7-12, 새번역)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공중의 새들과 땅속의 화석들이 창조하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소리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의 은하계를 보십시오. 수많은 행성계가 조화를 이루면서 정해진 궤도와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서 운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이 우주가 우연히 생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주와 천연계를 유지하고 돌아가게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와 정보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창조주 하나님 이외에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공허하고 외로울 때 밖에 나가서 밤에 하늘을 보시기 바랍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저 광활한 우주가 정확한 수학과 물리법칙으로 기가 막히게 운영되고 있음을 보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9)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우주와 자연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자동차를 보면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듯이, 누구든지 자연과 우주를 바라보면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성경은 이 세상 누구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 핑계할 수 없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물질과 자연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벌들과 새들과 기린과 우주를 보면,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의 엄청난 지혜와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별들과 산과 나무와 동물을 보면 그것이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와 자연을 통해서 메시지를 주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와 음성을 거절한 사람들은 “내가 왜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선택했는가?”에 대해서 심판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 14:1)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면 “어리석다”고 말씀하실까요? 우주와 자연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다 보여주셨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모른다”고 하니 답답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과학자

일본의 과학자 하루야마 시게오 씨는 그의 책 <뇌내혁명> 1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전자현미경 발명자인 후나이 사치오 씨는 ‘우주 전체에 창조주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 의지가 유전자라는 형태로 우리 몸 안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주의 의지에 합당한 사람은 살아남고 합당하지 않은 자는 소멸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몸 안에 장치되어 있다.”(하루야마 시게오, 뇌내혁명 1권, 박해순 역, 사람과 책, 1996, 34쪽)

일본인들은 대체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자현미경을 발명하여 평생 동안 인간의 세포와 생명 현상만을 연구한 과학자인 후나이 사치오 박사는 오랜 연구 끝에 결국 우주에 창조주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고백하였으며, 하루야마 시게오 씨는 그 창조주의 의지가 인간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정직한 양심을 가진 이 두 과학자는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온 세상에 편만한 생명의 현상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창조를 부인하는 이유

사람들이 창조를 부인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더 나아가서, 진화론을 믿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세상 쾌락을 즐기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바보 취급 받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신앙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진리이기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의지할 사람도 없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사람도 찾기 힘듭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는데, 혼자 힘으로 살아가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요? 이제라도 남은 인생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으면 행복합니다. 인생은 나그넷길입니다. 인간이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늘입니다. 그곳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입니다.

질문3, 생명체가 “우연히” 생길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비록 진화론이 가설에서 출발한 이론이고 중간형태의 화석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는 전문가의 답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인 Scientific American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습니다.

 

“확률적으로 본다면, 현재의 주어진 환경에서 한 개의 단백질 분자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생명체의 탄생을 위하여 지구가 가진 모든 공간과 시간을 허용한다고 할지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지구 상에 생명체가 우연히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은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화론에 대한 전문가의 견해입니다. 그런 확률을 믿을 바엔 하늘의 신이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과학자는 “팽창하는 우주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거”라는 책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자연히, 우연히 생성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물질들이 서로 섞여 흔들리다가 우연히 한 개의 단백질 분자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 우주 전체 안에 있는 물질의 백만 배 이상에 해당하는 양이 존재해야만 한다. 더구나 단 하나의 단백질 형성이 지구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확률적으로 거의 끝없는 시간, 즉 수십억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The Evidence of God in an Expending Universe, p.23)

 

놀라운 사실은, 진화론과 빅뱅 이론은 우주의 생성과 수많은 생물들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우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가장 피해야 할 표현이 “우연”인데, “우연”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광활한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스마트폰은 정교한 기계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수많은 부품들이 하나의 깡통 안에서 수억 년 동안 흔들리다가 우연히 만나서 만들어졌다면 여러분은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보다 수억 배 복잡한 우주가 “우연히 생성되었다”는 이론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화론의 확률이 너무나 낮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진화가 긴 시간에 걸쳐서 우연히 이루어질 수 있는 수학적 확률을 계산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진화론자 헉슬리 박사는 진화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진화론의) 확률은 소수점 이하로 0이 삼백만 개가 붙어야 되는 숫자이다. 이 숫자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500페이지 두께의 책이 3권이나 필요할 정도이다. … 아마 아무도 그렇게 실현 가능성이 없는 일에 승산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어났다!”(Evolution in Action, p.46)

 

바로 이것이 진화론자들의 믿음입니다. 진화가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엄청난 확신을 갖고 믿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에 대해서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자 여러분, 단세포 생물이 인간의 조상이라고 믿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믿기가 쉽습니다. 아메바가 수십억 년이 지나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는 데에는 엄청난 믿음과 추측이 요구됩니다. 이제 우리는 양심적으로 대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손으로 빚으시고 당신의 호흡을 불어넣으셔서 만드신 만물의 영장입니까? 아니면 아메바가 조상이며, 지금도 진화 중에 있는 하나의 동물입니까? 도마뱀과 사람의 조상이 모두 동일한 단세포 생물로부터 나왔습니까? ■

질문2,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는 비과학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은 과학적인데 창조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창조를 믿는 것은 미신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과학자들 중에 창조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왜 교수와 정치인과 지성인들이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진화론은 과학적인데 창조는 비과학적이라는 고정된 사고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과학자들이 창조에 대해서 쓴 글들을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됩니다.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어떻게 진화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할까요? 그들의 글을 읽고 강의를 들어보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진리처럼 생각되던 진화론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창조를 믿는 과학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진화론은 진리가 아니라 “허점이 많은 이론” 또는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이론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천 년 동안 철은 물보다 무거워서 물에 뜰 수 없다는 이론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철로 만든 배가 나오자 어떻게 됐습니까? 철도 물에 뜰 수 있다는 정반대의 이론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인간의 이론은 그런 것입니다. 어제까지 진리처럼 여겨지던 이론이 오늘 뒤집힐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를 부인하는 진화론도 그것이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반대의 개념과 이론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이제부터 진화론자들이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화론 자체가 창조를 인정한다

진화론은 우주와 자연계의 시작을 밝혀주는 이론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무엇인가 존재하는 데서부터 이론을 전개합니다. 진화론은 한 생물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나왔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서, 진화론은 사람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오래오래 전에 아주 단순한 구조의 생명체가 있었는데 수십억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되면서 원숭이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다시 장구한 세월을 지나면서 이런저런 형태로 바뀌다가 결국 사람으로 진화되었다.”

만일 사람에 대한 진화론의 이러한 설명이 사실이라면 중요한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질문일까요?

“진화론이 시작되는 첫 번째 생명체는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그것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진화론은 그것이 발표된 때부터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진화가 시작되는 첫 번째 생명체를 “제1원인”(first cause)이라고 부릅니다.

“제1원인”이라는 단어는 헬라철학과 중세기 교부들이 사용한 용어로서 “생명체를 존재하게 한 원인” 즉 “창조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진화론은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된 생명체를 시작점으로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이론입니다.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진화론 자체가 창조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거장인 G.G.심슨 박사는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생명의 시작은 오직 생명체의 제1원인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생명체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과학이 미칠 수 없는 너머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얼마나 솔직한 말입니까? 만일 심슨 박사가 말하는 제1원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는 생명의 신비를 완전히 풀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 왈드 박사는 진화론자로서 자신의 마음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진화의 시초가 되는 첫 번째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인간이 자연 발생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다.”(Scientific American, 1954년 8월)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조지 왈드 박사는 진화론의 시작점인 첫 번째 생명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진화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자가 이런 말을 하니까 참 이상하지요? 첫 번째 생명이 자연히(우연히) 생길 수 없음을 인정하면, 창조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학자의 자존심입니다. 수많은 진화론자들이 지금도 “첫 번째 생명체의 탄생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막혀서 미궁을 헤매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 – 중간형태가 없다

진화론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진화론은 원숭이 같은 존재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원숭이가 진화돼서 사람이 된 것이라면,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일들이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왜 지금은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왜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는 중간 단계는 찾을 수 없는 것일까요?

진화론에서는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유기물에서 단세포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진화의 방향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저등한 생물이 고등생물로 발전적으로 변화하여 오늘과 같이 다양한 생물들이 생존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개정판(1872)에서 진화의 각 단계마다 수억 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으므로 반드시 무수히 많은 중간형태의 종들이 땅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기술했습니다. 그의 이론이 사실이라면, 진화의 각 단계마다 수천만 종의 중간형태의 화석들이 쏟아져 나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증거들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무수한 중간형태의 살아있는 생물들이 세계도처에서 태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중간형태의 연결고리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잃어버린 고리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Missing links are what we missed)입니다. 다윈이 주장했던 중간형태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좀 더 똑똑한 원숭이가 있고, 좀 덜 똑똑한 원숭이는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과 원숭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면서 존재해 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생물들이 각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창 1:21)

 

진화론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너뜨리려면, “각각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생물이 다른 생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는 중간형태의 화석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발견될 정도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종류의 중간 과정 화석들이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하나의 생물에서 지구 전체의 생물이 진화되어 나왔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화론자들이 중간형태라고 주장하는 몇 종의 화석이 있지만, 그것으로 지구 전체 생물의 진화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합니다. 오히려 쏟아져 나오는 화석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종류 그대로 화석이 발견될 뿐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은 그의 생전에 이미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지구에는 2백만 내지 3백만 종의 생물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가 관찰하기에 충분한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잘 훈련된 관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생물 종류도 다른 종류로 진화되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Life and Letters vol.3, p.25)

 

이것이 진화론을 창시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진화론은 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진화론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가설일 뿐입니다. 진화론자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간형태의 화석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그리스도인 과학자는 진화론의 허구성을 다음과 같이 익살스럽게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화석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중간 고리들의 증거니라.”

 

멘델의 유전법칙을 아십니까?

사실상,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실 때 나타난 “각기 그 종류대로”의 법칙은 1865년~1866년에 멘델이라는 사람이 완두콩을 이용한 7년의 실험을 통해 발견한 유전법칙을 통해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으로 입 증된 이 유전법칙에 따르면 어떤 종(種)이든지 형질(形 質)은 변할 수 있지만 변종(變種)되지 않습니다. 개의 종류가많이있지만모두개일뿐이고소도종류가많 지만 모두 소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에 의하면 무수하 게 많은 변종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밝혀진 과학적 진리로 인해 진화론은 과학적이 지않은가설혹은추측에불과한이론이라는것이드 러났습니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아메바-유인 원-사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타나야 할 중간형태의 화석은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캄브리안 지층이 던지는 질문

진화론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지층이 있는데, 그것은 캄브리안 지층입니다. 캄브리안 지층은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지층들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지층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석을 포함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지층입니다. 그러므로 캄브리안 지층 아래에 있는 지층들에는 생물의 화석이 없습니다. 화석이 없다가 캄브리안 층에 오면, 거기서 오늘날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캄브리안 지층 아래의 가장 깊은 지층에서도 하등생물 화석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진화의 증거인 중간형태의 생물들이 매 지층마다 수없이 나타나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깊은 지층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캄브리안 지층에 오면서 거의 모든 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생물들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즉, 진화가 아니라 창조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캄브리안 지층 이전 지층에도 진화를 증거하는 화석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그곳에서 진화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나는 만족할 만한 답변을 줄 수 없다. … 현재로서는 그 문제를 불가사의한 것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은 진화론의 견해에 반대할 수 있는 정당한 논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종의 기원, 309)

 

얼마나 솔직한 고백입니까? 다윈은 캄브리안 지층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답변을 제시할 수 없다고 고백했지만, 자신의 이론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진화론자들이 캄브리안 층의 화석에 대해서 비슷한 실망과 좌절을 표현했습니다.

 

미국립박물관의 어스틴 클락 박사: “이상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 캄브리안 지층에 묻혀 있는 연체동물은 오늘날 존재하는 그대로의 틀림없는 연체동물이었다.”(The New evolution: Zoogenesis, p.101)

 

콜롬비아 대학의 마샬 케이 박사와 에드윈 코벌트 박사: “어떻게 그렇게 복잡한 고등생명체들이 캄브리안 층에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이전 20억 년 동안 형성된 지층 속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단 말인가? 만약 생명체의 진화가 진실이라면, 캄브리안 층보다 더 오래된 지층 속에 꼭 있어야 할 화석들이 있어야만 하는데, 없다는 것은 수수께끼이다.”(Stratigraphy and Life history, p.102)

 

성경의 창조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물의 화석들이 캄브리안 층에서 갑자기 발견되고 쏟아져 나오는 것이 수수께끼처럼 보일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아무런 화석이 없다가 캄브리안 지층에 오면서 갑자기 수많은 화석이 발견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창조 때 생성된 생물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만약에 진화가 사실이라면, 현재의 사람 이상으로 진화되는 현상은 왜 일어나지 않습니까? 사자, 호랑이, 고양이, 토끼 그리고 각종 어류들, 조류들은 왜 각기 그 종류대로 고정되어 더 이상 진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진화론은 과학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분명한 증거를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시조새 화석의 사기 사건을 아십니까?

진화론자들은 초조합니다. 왜냐하면 진화를 증명할 수 있는 중간형태의 화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자들이 가장 많이 제시하는 중간형태의 화석은 시조새입니다. 그들은 시조새야말로 진화를 증거하는 “중간고리”라고 말합니다.

시조새는 독일의 졸른호펜(Sornhofen)의 석회암에서 발견된 것으로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되는 과정에 있는 “중간고리”라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주장입니다. 그 이유는 꼬리가 길고 이(齒)와 날개 끝에 발톱(wing claws)을 가진 것은 파충류와 닮았으나 깃털, 날개, 부리를 가진 것은 조류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이 새가 쥬라기 시대에 살았던 작은 육식성 공룡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파충류에서 조류가 되려면 엄청난 비약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기어 다니던 동물이 날기 위해서는 날개뿐 아니라 모든 신체구조가 날기에 알맞게 바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날개만 달렸다고 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도 파충류가 조류로 진화되는 수많은 종류의 중간형태가 화석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조새의 화석과 같은 지층에서 현대 화석이 발굴되어 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Science News, 112, September, 24, p 124, 1977]. 왜냐하면 진화론자들은 시조새는 지금부터 수억 년 전에 있었던 새라고 주장해왔는데, 현대 화석과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수억 년 전에 시조새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떻게 이런 발견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래서 영국의 저명한 천문학자인 호일(Fred Hoyle)은 “영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시조새 화석은 조작된 것으로, 이빨을 그려 넣고 날개는 병아리 날개로 조작한 것”이라고 발표해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시조새와 관련하여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 1999년에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의 리아오닝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되었다는 “깃털 달린 공룡”이라는 시조새의 화석 소동입니다. 그 화석의 발굴은 미국국립지리학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학회는 워싱턴 DC 기자회견(1999. 10. 15.)에서 칠면조 크기의 시조새 화석을 제시하면서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은 크리스도퍼 로안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 기고한 것과 같은데 “시조새는 육상공룡과 … 새 사이를 이어주는 복잡한 진화 사슬의 진정한 고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Institution, Washington D.C.)의 조류관장인 올손(Storrs L. Olson)은 “지난 11월에 발표한 기사로 인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는 선정적이고 근거 없는 저속한 기사를 싣는 대중지로 전락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화석의 사진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진화된 증거를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구조도 발견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조류화석 전문가인 캔사스 대학의 마틴도 “진화의 증거인 깃털을 볼 수 없었고 화석조각이 꿰어 맞춘 것이며, 한 개 이상의 동물이 섞여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중국의 화석수집가들이 서로 다른 두 화석을 하나로 합쳐 조립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진화론계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과학뉴스지(Scientific News, Jan,. 2000)는 “고생물학자들은 창피를 당했으며, 중국의 화석 사기꾼들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깃털 달린 공룡은 아마도 새의 몸통과 공룡의 꼬리를 인위적으로 결합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사기극에 대해 올손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깃털 달린 공룡과 새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네이처(Nature)지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편집자들의 합작품이다. 증거에 대한 정직하고 세밀한 과학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있어서 가장 큰 과학적 사기가 이루어졌다.”(Steven A. Austin; 중국에서 발견된 시조새의 진상, 창조 5월호 통권120, pp 22-25, 한국창조과학회출판부, 2000)

저명한 네이처지의 수석 과학집필가인 기이(Henry Gee, 1999)는 “시조새의 지위는 폐기되었고 시조새는 단지 깃털을 가진 또 다른 종류의 공룡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시조새의 화석을 X선으로 분석한 결과 조류와 공룡의 골격을 조합한 사기품임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가짜 화석에 울고 웃는 전세계 과학자, 과학동아, 187, 7월호, pp 30-35, 2001).

오늘날,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은 시조새는 처음부터 조류였으며 현대 조류의 조상이 아니고,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형도 아니라는 데 동의합니다. ■

 

엄청난 에너지와 정보는 어디서 왔나요?

사람들이 창조를 거절하고 진화론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진화론은 과학적인 것인데 창조는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현대 과학은 생명체의 탄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명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부터 지적인 존재가 정보와 에너지를 물질 속에 넣어주어야 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것이 살아서 움직이려면,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물질 속에 에너지와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명이 없는 무기물질에서 생명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창조는 매우 과학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에 에너지를 주입시키고 엄청난 정보를 넣어주셔서 우주가 움직이고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과학적인 이야기입니까? 성경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의 몸을 만드시고, 그 속에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흙이라는 무기물질 속에 생명의 에너지와 정보를 넣으셔서 살아있는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과학적인 이야기입니까?

그러므로 우주의 시작과 기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은 우주와 자연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던 A.H.캠프톤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지고한 지성을 가진 신이 우주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셨으며 또한 그분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차원적인 수학적 디자인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지성이 개입되어 있다는 단순한 원칙을 우리 모두는 인정하기 때문이다. 질서 있고 정확하게 운행되고 있는 우주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엄숙한 기록이 진실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얼마나 정직하고 겸손한 고백입니까? 광활한 우주에 새겨져 있는 창조 디자인을 보는 과학자라면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1, 어떤 신을 믿어야 합니까?

창조인가 진화인가로 종교가 결정된다

이 세상에 수만 개의 종교가 있는데 어떻게 참된 종교를 찾을 수 있을까요? 수많은 신이 있는데, 어떻게 신들의 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창조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라는 질문은 결국 “이 세상이 창조되었는가? 아니면 빅뱅이나 진화로 생성되었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의 기원을 묻는 질문에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 필요합니다.

참 신기한 사실은, 성경의 하나님 이외에 어떤 다른 신도 창조를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어떤 종교도 “우리가 믿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분명하게 주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슬람도 창조를 말하지만, 성경처럼 구체적이고 분명하지 않습니다. 창조를 말하는 군소종파들이 있지만, 성경처럼 확실하게 창조를 선포하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모세오경을 인정하는 이슬람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주체라는 진리가 강조되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 세상에서 성경처럼 창조가 분명하게 기록된 경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을 믿으면, 거기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불교, 유교, 힌두교, 토속신앙, 뉴에이지 등은 모두 진화론을 기반으로 세워진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이미 이 세상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내세를 말하는 종교입니다.

 

최고의 신은 창조주이다

성경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창조를 선포합니다. 성경은 창조 이전에는 이 세상이 어떠했고, 첫째 날에는 무엇을 창조했으며 6일 동안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Spirit of God)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1-5)

 

그러므로 창조가 확실하면 종교의 선택에는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창조를 믿으면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신도 “내가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어떻게 하면 가장 능력 있는 최고의 신을 찾을 수 있을까요? 최고의 신은 우주를 창조하신 신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별들과 태양을 만드신 창조주가 최고의 신입니다. 다른 모든 신들과 종교들은 지구가 창조된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불교, 유교, 토속신앙, 뉴에이즈 등 모든 종교는 창조 이후에 나타난 종교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종교의 신들은 “내가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 “내가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가? 내가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인가? 진화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를 믿으면 불교나 다른 종교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종교가 많고 신들이 많을지라도, 창조를 선포하는 신은 오직 성경의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창조의 종교입니다.  ■

 

왜 우리가 유대인의 신을 믿어야 합니까?

물론, 성경은 유대인들이 기록한 경전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왜 우리가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는 인류 전체의 조상이지 유대인들만의 조상이 아닙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자신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아담과 하와 이후로 거의 2 천 년이 지난 후에 나타나고 형성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의 조상이지 유대인의 조상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경은 하나님을 인류 전체를 위한 신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위한 신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단지 온 세상에 하나님을 소개하고 증거하는 매개체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성경을 대표하는 두 예언서가 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두 예언서를 보면, 세상 전체에 대한 말씀과 예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유대국가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언도 있지만, 세상 역사가 바벨론, 페르샤, 그리스, 로마제국으로 이어지고, 세상 전체가 어떻게 흘러갈 것이며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누구이며, 세상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유대인의 경전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경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경전으로 하는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서론, 정말 하나님이 있습니까?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목적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지기까지 자신이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모르고 무슨 목적으로 이 세상을 여행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방향도 없고 도달해야 할 항구도 없이 해초가 바닷물에 밀려다니듯 살다가 인생을 끝내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된 행복과 평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인간의 철학과 사상을 통해서 이 세상과 인생의 근본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어떤 것에서도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합니다.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고상한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은 신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깊은 고통과 슬픔을 경험한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사모하게 되는데, 그것은 신이 인간의 본성 속에 넣어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그런데 신과 종교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실험으로 입증되거나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무당과 신접한 사람의 고백

우리 인생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점을 보는 사람들이나 무당들이 영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한번은 신접한 무당이 인터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대학까지 졸업한 지성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당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귀신이 자기를 찾아와서 무당이 되라고 강요했다고 했습니다. 애를 쓰고 거절했지만, 그럴 때마다 귀신들이 자신을 압박하고 아프게 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게 해서, 무당이 되라는 귀신의 요구를 도무지 거절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당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신내림을 받기로 했고 그 후부터 귀신이 주는 음성을 듣고 점을 치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현대 과학은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신을 찾기 전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영적인 세계나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고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독자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신은 존재합니다.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일

1988년, 미국의 권위 있는 시사뉴스지에는 놀라운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민주당 의원이며, 미래문제연구위원회의 의장인 챨리 로즈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낸시 레이건 여사에게는 영매 친구들이 많이 있다. … 워싱턴 정가는 영매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미국 하원의원의 약 25%는 영매와 강신술에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챨리 로즈 의원이 운영하는 미래문제연구위원회를 통하여 영매들이 국회에 진입하여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다.’ … 소식통에 따르면, 많은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점성술사나 영매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있다고 한다.”(1988년 12월 5일 자, U.S. News & World Report)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미국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¼이 죽은 자의 영들과 교통하면서 자문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많은 정치인들이 무당을 찾아가거나 신접한 사람을 찾아가서 자문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과학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의지하고 신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할까요? 독자 여러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신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우주를 통치하는 최고의 신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입니까? 미국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¼이 죽은 자의 영들과 교통하면서 자문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많은 정치인들이 무당을 찾아가거나 신접한 사람을 찾아가서 자문 받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과학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의지하고 신들의 도움을 구하려고 할까요? 독자 여러분,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신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우주를 통치하는 최고의 신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기독교회에서 일어나는 일

놀라운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무당이나 영매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회 안에도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오래전에는 오순절파 교회에서만 주로 하던 방언과 병 고침의 기적이 전 기독교회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방언과 병 고침의 안수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신도들을 건드리면서 지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는데, 쓰러진 사람들은 몸을 뒤틀면서 입에서 거품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앓았던 불치병이 나았다고 손을 들고 소리칩니다. 교인들 전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하면서 열정적으로 소리치는 장면을 우리는 오늘날 교회 속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뭔지 모르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전파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방송이 나오고 핸드폰으로 그림과 영상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몇 해 전에 미국의 어떤 텔레비전 방송에서 신비한 현상을 취재해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습니다. 그 방송은 귀신들이 나타나는 곳을 찾아가서 확인하는 방송이었습니다. 방송 제작자들은 영매들과 신접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뉴에이지에서 일어나는 기적들, 기독교회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기적 같은 일들이 정말 실제로 일어나는 것인가를 알아보고 취재했습니다. 그들은 카메라와 녹음장치를 설치하고 이상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살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접시들이 날아다니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피아노가 혼자 연주되며, 신발들이 움직이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화면에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 잠자리에 드는데 누군가 자신의 목을 조른다고 하면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았던 많은 시청자들이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분들은 영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상을 무조건 부정만 할 수는 없습니다. 독자 여러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세계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부인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혼을 만나는 사람들

오래전에 미국의 선교방송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설교가 방송으로 나갔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많은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죽은 자는 결코 산 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으며 죽은 자는 이 세상의 일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죽은 성도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에서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 전에 교회에서 돌아가신 삼촌의 혼을 만났습니다. 제가 만난 삼촌은 누구입니까?”

 

독자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두 형제의 마지막 대화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중병에 걸려서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아우는 서둘러서 형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형은 동생을 보자마자 손을 꼭 잡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우야, 내가 젊었을 때부터 성공해서 큰 돈을 벌었지만, 너를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나를 용서해다오. 너는 교회에 다니지? 나는 아직 어떤 신을 믿어야 하고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지 모르겠다. 불교에서 스님이 다녀갔고 천주교에서 신부님이 다녀갔지만, 내가 어떤 신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부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종파의 성직자들이 신앙을 권유하는데, 죽음을 목전에 둔 내가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까? 아우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황천길을 떠나야 하는데, 내가 어떤 신을 붙잡고 떠나야 할지 고민이다.“

 

그것이 두 형제 사이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 형은 믿어야 할 신을 결정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것이 죽음을 목전에 둔 많은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쁘게 살다가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에 던지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와 죽음 이후에 관한 것들입니다.

 

마지막까지 갖고 가는 질문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폐암으로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어떤 성직자에게 질문한 내용이 언론에 처음 공개 돼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임종하기 전에 총 24개의 질문을 내놓았는데 모두 종교와 내세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믿어야 할 신을 정하지 못했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두려웠을까요?

이병철 회장은 첫 번째 질문부터 과녁의 정중앙을 향해 던졌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수천 년 전부터 무신론자들이 듣기 원했던 질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기도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묻는 질문입니다. 24가지 질문 중 마지막 질문은 “지구의 종말은 정말 오는가?”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남긴 질문의 핵심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지구에 질병과 고통이 이렇게 많은데 신은 어디에 있는가? 우주는 언제,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 세상 역사는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

 

한국 제일의 부자가 죽음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한 것입니다. 돈에 대한 질문도 아니고 명예에 대한 질문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죽음 앞에 서면 내세와 신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바쁘게 살 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서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남긴 질문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묻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우주를 만든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이병철 회장이 남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사명에서는 이번 호에서 현대인들이 신과 종교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들을 모아서 다음과 같이 열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죽기전에반드시알아야할 10가지 문제

  1. 어떤신을믿어야합니까?
  2. 진화론은과학이고창조는비과학입니까?
  3. 생명체가“우연히”생길수있는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4.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요?
  5. 부처를신으로믿을수있을까요?
  6. 나사렛예수가정말하나님의아들입니까?
  7. 하나님이있다면왜이세상에고통과슬픔이 많습니까?
  8. 하나님은왜죄가생기는것을막지 않았습니까?
  9. 인간은왜세상에태어나는것입니까?
  10. 신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보다 이기적입니까?

24호를 시작하며…

종교와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1. 신(神)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 이렇게 고통과 죽음과 슬픔이 많을 수 있을까?

2.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인가? 신의 도움 없이 진화된 것인가?

3.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나게 되는가?

4. 신이 있다면, 왜 이 세상에 이토록 죄악이 번창하도록 방치하는가?

5. 신이 정말 있다면, 왜 신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신과 종교에 대해서 의심과 회의를 갖게 됩니다. 그런 분들에게 있어서 신은 “알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원망과 불신의 대상”이 됩니다. 현대인들 중에는 신과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은 산의 꼭대기에 살고 계신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종교인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는 길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지만, 모든 길은 결국 산 정상으로 통해 있다. 어떤 길을 가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정말 그럴까요? 아무 길이나 올라가도 결국에는 우주를 창조하신 신을 만나게 될까요? 이 세상에 수많은 신들이 있고 종교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말 신을 찾기 원한다면, 우리는 신들(gods)의 신(God)을 찾아야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어떤 신이 정말로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신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살펴볼 문제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번은 깊이 생각하고 확인해 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호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인생을 마치기 전에 반드시 답을 얻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마음을 열고 이번 호를 읽으시면, 우주를 창조하신 신이 직접 여러분께 와서 마음을 감동시키고 양심에 음성을 주셔서 진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실 것입니다. 원하는 자는 신들의 신, 최고의 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디렉터 앤드류 강